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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87)화 (187/300)

하필 체스휘의 시선이 닿은 방향이 세라가 사라진 곳이라서, 나는 몸을 움직여 체스휘의 시선을 가로막았다.

“고양이! 벌써 찾았네요?”

다행히 세라의 앞에서 한차례 감정을 털어 낸 탓인지, 체스휘의 앞에서는 다시 태연한 표정과 말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난 아직인데. 내가 다이안 찾는 거 도와주려고 왔어요?”

체스휘는 다시 눈길을 돌려 나를 잠깐 말없이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그는 금방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엷게 웃었다.

“다이안은 사람을 싫어하고 구석에 숨는 걸 좋아해서 린 씨가 혼자 찾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요.”

체스휘에게서는 딱히 나를 의심하는 듯한 기색을 느낄 수 없었다. 나한테 시선을 돌린 이후에는 세라가 사라진 자리를 다시 쳐다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워낙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담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남자라, 나도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래요? 그렇지 않아도 고양이가 아무 데도 안 보여서 막막했는데 마침 잘됐네요. 미뉴엘은 어디에서 찾았어요?”

“2층 로비에서요.”

노란 고양이는 자신의 이름을 알아들었는지, 체스휘에게 안겨 불만스럽게 그르릉거렸다. 아까도 치근덕거리는 체스휘를 귀찮아하더니, 지금 또 이렇게 금방 그에게 붙들려 온 것이 영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미야옹!

그런데 바로 그때, 뒤쪽에서도 가느다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다이안?”

어디 있다가 갑자기 나타났지?

방금까지만 해도 털 한 올도 보이지 않던 흰 고양이가 창틀에 올라가 있는 게 보였다. 여기가 1층이라, 열려 있던 창문에서 들어온 건가?

어찌 되었든, 흰 고양이는 창틀에서 뛰어내려 우리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그런데… 얘, 분명히 사람을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까도 그렇고 나한테 너무 서슴없이 다가오는데? 게다가 그냥 가까이 온 것도 아니고, 내 발목에 몸을 비비적거리기까지 했다.

흰 고양이의 친밀한 행동을 본 체스휘가 소리 없이 웃었다.

“다이안이 역시 주인을 알아보네요.”

무슨 소리야? 나랑 언제부터 봤다고….

초면인 고양이의 적극적인 애정 공세에 사뭇 당황스러웠으나, 체스휘는 아무렇지 않게 다가와서 비어 있는 다른 한 손으로 흰 고양이의 배를 받쳐 들어 올렸다.

고양이는 나한테서 떨어지기 싫은 듯이 애옹애옹거리다가, 돌연 체스휘의 팔뚝을 콱 깨물었다. 하지만 체스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안 아파요?”

“이 정도는 매번 당하던 거라 괜찮아요.”

또 이런다. 매번이라니, 당신이 언제부터 고양이를 키웠다고 그래요?

체스휘한테 따지고 싶어서 입이 움찔거렸지만 일단 참았다.

“어허, 미뉴엘. 친구와 싸우면 안 되죠.”

체스휘는 다시 2차전을 시작하려고 하는 두 고양이를 양팔에 따로 안고 천연덕스럽게 얼렀다.

“흰 고양이는 그냥 나한테 줘요. 내가 안고 가게.”

“무거울 텐데요. 요즘 체중이 좀 불어서.”

“뭐 그래 봤자 얼마나 무거우려고요. 이 정도는 괜찮아요.”

체스휘의 팔을 끈질기게 물고 놓지 않던 흰 고양이는 내가 손을 앞으로 내밀자 그제야 입에서 힘을 풀었다. 고양이를 넘겨받고 나서 체스휘의 팔을 보니, 정말 피가 날 정도로 세게 깨문 건 아닌 모양이었다. 옷소매가 고양이의 침으로 살짝 축축해진 것을 제외하면 멀쩡해 보였으니 말이다.

“배고프네요. 이제 그만 식당으로 가요.”

“그럴까요?”

내가 먼저 몸을 돌리고, 체스휘가 내 옆으로 따라붙었다.

“하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열심히 뛰어다녔을 테니 배가 고플 만도 하네요.”

다음 순간, 체스휘의 입에서 지나가듯이 흘러나온 말을 듣고 뜨끔했다.

내가 뛰어다닌 걸 어떻게 알았지? 혹시 세라와 함께 있는 걸 본 건가?

“그, 그렇게 많이 뛰어다니진 않았는데요?”

앗, 그냥 자연스럽게 반응하면 되는데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부정해 버렸다. 차라리 배고파서 고양이를 좀 빨리 찾으려고 뛰어다녔다고 둘러대면 되었을걸.

내가 쓸데없이 강하게 부정해서 괜히 의심스럽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한 박자 늦게 살짝 후회했지만, 체스휘가 가느스름하게 뜬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자 그럴듯한 다른 변명의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안 뛴 건 아닌 것 같은데.”

“아닌데, 맞는데.”

“아닌 거 확실해요?”

“진짜 확실한데.”

젠장, 왜 난 이렇게 유치한 반박밖에 못 하는 거지? 게다가 결과적으로 쓸데없이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방금 괜히 과하게 부정했다고 후회한 게 무색하게도, 이건 더더욱 부자연스러운 모양새였다. 원래도 나는 누구와 달리 순수한 영혼이라, 거짓말 같은 건 잘 못한단 말이다!

체스휘가 그냥 모른 척해 주겠다는 듯이 흐응,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나한테 손을 뻗었다.

“그럼 머리가 이렇게 사자 갈기처럼 된 건 바람이 불어서 그런 건가 보죠.”

나는 머리카락 사이를 누비는 체스휘의 손길을 느끼며 주춤했다.

뭐야, 머리가 산발이라 그런 거였어? 난 또 내가 세라를 부르면서 마구 뛰던 걸 본 줄 알았네.

“됐어요. 머리 좀 헝클어진 게 뭐가 대수라고. 그냥 내버려 둬요.”

여전히 다정스레 내 머리카락을 빗어 주는 체스휘를 말없이 보다가, 고개를 슬쩍 비틀어 그의 손길을 피했다. 내게서 떼어진 체스휘의 손이 허공에서 멈춰졌다.

하지만 그는 설핏 가늘게 좁힌 눈으로 나를 잠깐 내려다봤을 뿐, 다른 말을 더하지 않고 순순히 손을 내렸다.

“하긴, 사자 갈기 머리도 잘 어울리니까. 린 씨도 알고 있었구나.”

“…지금 나 욕해요?”

“아니, 칭찬인데요.”

“확실해요? 칭찬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의심받으니 속상하네요. 린 씨는 사자 갈기 머리를 해도 예쁘다는 소리였는데.”

그런 의미 아닌 것 같은데? 왠지 지금 내 기분이 은근히 나빠지려고 하는데?

나는 뱁새눈을 뜨고 체스휘를 수상스럽게 훑어봤지만, 그는 퍽 순진하고 무해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서 찝찝한 마음을 안고 있으면서도 체스휘에게 더 따지지는 못했다.

***

“너 진짜 다이안인 거 아니지? 응?”

다이안의 이름을 가진 흰 고양이는 그날 아예 내 방에 둥지를 틀었다.

나는 끝내 수상한 마음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흰 고양이를 여기저기 뜯어 봤다.

체스휘를 대놓고 귀찮아하던 노란 고양이와 달리, 흰 고양이는 내가 발바닥까지 뒤집어 구석구석 샅샅이 살펴봐도 얌전히 몸을 대주기만 할 뿐,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나한테 먼저 더 달라붙어서 치대는 모양새로만 보면, 여간 친화력 높은 개냥이인 게 아니었다.

하지만 고양이들이 사람 손을 타는 걸 싫어한다는 체스휘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체스휘나 내게 제법 친밀하게 굴던 고양이들은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그림자만 보여도 피하기 일쑤였다.

저택의 고용인들도 고양이에게 먼저 손을 대지 않았다. 나 같으면 이렇게 귀여운 고양이들이 뽀짝뽀짝 눈앞에서 돌아다니면 참지 못하고 털이라도 한번 쓰다듬어 볼 것 같은데, 고용인들은 기본적으로 고양이들에게 아예 관심을 주지 않았다.

기껏해야, 아까 고양이가 쿠션 뒤에 숨은 걸 모르고 소파를 정리하던 사라로사의 손이 우연히 꼬리에 닿은 게 오늘 내가 본 접촉의 전부였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고양이가 어찌나 사납게 반응하며 하악질 했었는지 모른다.

그런 까칠하고 섬세한 모습까지 진짜 다이안, 미뉴엘과 많이 닮아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내 마음 한구석에 끝까지 찜찜한 미련이 남아 있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역시 그들이 고양이로 변했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시간을 들여 여기저기 살펴본 결과, 이 흰 고양이는….

“…암컷이었어?!”

이렇듯, 다이안과의 아주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그 부분에서 내 마지막 의심도 훌훌 날아갔다.

나는 살짝 허탈해져서 고양이를 눈으로 해부하는 걸 멈췄다.

“너 지금까지 이런 중요한 사실을 나한테 숨겼단 말이야? 하마터면 속을 뻔했잖아.”

냐앙?

“어휴, 나도 참. 아무리 그래도 진짜 이런 고양이가 다이안일 리가 없는데….”

냥!

흰 고양이는 내 마음도 모르고 자신을 더 만져 달라는 듯이 내 손 밑으로 몸통을 들이밀고 보챘다.

하기야, 이 고양이가 무슨 잘못이겠는가. 나한테 그냥 장난을 친 건지, 아니면 진심으로 낚시질을 하려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속인 사람이 잘못이지. 체스휘는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애들하고 비슷한 고양이를 찾아온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앗, 어디 가?”

그런데 흰 고양이가 무슨 소리를 들은 듯이 귀를 쫑긋거리더니, 갑자기 침대 밑으로 뛰어내려 문가로 걸어갔다. 어차피 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기 때문에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고양이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헉?!”

그런데 이 고양이가 글쎄, 갑자기 문 앞에서 점프를 하더니, 문고리를 앞발로 잡고 매달리는 게 아닌가?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철컥,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흰 고양이는 내 얼떨떨한 시선을 받으며 유유히 바닥으로 착지해, 열린 문틈으로 사라졌다.

새, 생각보다 똑똑한데?

나는 잠깐 멍하니 넋을 놓고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가만, 그런데 저 고양이, 그냥 이대로 놔둬도 되나?

지금은 밤이 깊어, 저택의 불도 거의 꺼졌을 때였다. 체스휘와도 아까 잘 자라고 인사를 하고 헤어진 뒤였고 말이다.

그런데 고양이가 혹시 저러고 혼자 밤에 돌아다니다가 성수 디퓨저가 없는 곳에 가서 검은 공기에 중독되기라도 하면….

그러고 보니 원래 고양이들은 밤마다 어디에서 자던 걸까?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체스휘나 사라로사한테 물어볼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양이가 열어 놓은 문으로 걸어가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곧 짧은 고민을 끝내고 어두운 복도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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