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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86)화 (186/300)

입을 열어 이름을 부르려다가, 복도에 있는 다른 고용인들의 눈을 의식해 목소리를 삼켰다. 최대한 티 나지 않게 속도를 높였으나, 저만치서 앞서 걸어가는 사람과의 거리는 어째서인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내가 뒤따라가는 걸 눈치챈 것 같은데?’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옷자락을 휘날리며 성큼성큼 경보하는 사람을 따라 나도 걸음을 더 서둘렀다. 그러자 이번에는 눈앞에 있는 사람이 완전히 뛰기 시작했다.

“앗, 잠깐…!”

방금까지 느긋이 걷다가 갑자기 왜 뛰어?!

처음에는 주변이 신경 쓰여 소리 내지 못했지만, 점점 마음이 급해졌다.

지난 사흘간 틈날 때마다 고용인을 아무리 훑고 다녀도 눈에 띄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하필 지금 이렇게 고양이 핑계를 대고 복도를 걸어 다니다가 마주친 것도 하늘이 내린 우연이라 할 만했다. 그러니 이번이 아니면 언제 또 지금처럼 체스휘 없이 얼굴을 볼 수 있을지 몰랐다.

“저기요, 잠깐만요! 이거 떨어뜨렸어요…!”

에잇, 이판사판이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빈손에 뭔가가 있는 것처럼 주먹을 꽉 움켜쥐고 보란 듯이 위로 치켜들었다. 그러고 나서 나를 힐끔거리는 고용인들을 헤치고 저 앞에서 달리는 사람을 전력으로 뒤쫓아 갔다. 혼자 쇼를 하는 것에 대한 수치심은 목적을 위해 잠깐 잊기로 했다.

앞서가던 사람이 잠깐 멈칫한 걸 보니, 내 말을 듣긴 한 것 같았다. 하지만 복도에 울린 목소리를 듣고 한 번씩 나를 돌아보는 다른 고용인들과 달리, 내 목표물인 사람은 그냥 나를 무시한 채 복도의 모퉁이를 돌아서 사라졌다.

뭐야? 처음에는 혹시나 했는데, 이건 대놓고 나를 피하는 것 같은 모양새잖아?

갑자기 나도 전투력과 오기가 급상승했다. 그래서 전속력으로 복도를 질주해, 목표물과의 본격적인 레이스를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도망가는 사람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헉, 헉! 잠깐… 좀 서 보라니까요?”

다행히 우리가 멈춰 선 복도는 한적했다. 나한테 팔을 붙잡힌 사람은 잠깐 움직임을 멈춘 채 말이 없었다. 다만 나처럼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는 걸 보니, 뜻하지 않은 갑작스러운 추적극이 힘들었던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시야에 비친 뒷모습에서 약간 갈등하는 듯한 분위기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크흠. 안녕하세요, 린 님. 저를 부르시는 줄 몰랐네요.”

그러다 마침내, 내가 찾던 사람이 나를 돌아봤다. 다른 고용인들과 마찬가지로 동요가 거의 없는 태연한 표정과 목소리가 제법 그럴듯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려거든, 애초에 이렇게 숨이 찰 만큼 필사적으로 나를 피해 도망치면 안 되었던 거 아닌가?

게다가 분명 사흘 전에 이 사람이 고용인들 사이에서 혼자만 다른 반응을 보였던 것도, 또 지금 뒤돌아서서 한순간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본 것도 착각이 아니었다.

“제가 떨어뜨렸다는 게 뭐….”

“세라 씨, 왜 나 피해요?”

에두르지 않고 직설적으로 꺼낸 내 말에 달싹이던 여인의 입술이 멈췄다. 그녀가 잠깐 내리깔았던 시선을 다시 들자, 정면에서 눈이 마주쳤다.

검은 단발에 눈물점. 눈에 띄게 예쁜 얼굴에 얼핏 냉랭해 보이는 인상까지.

내가 알고 있는 메이드 세라가 맞았다.

혹시 그녀가 일부러 사람이 없는 곳으로 온 걸까? 복도를 지나가는 다른 고용인들과의 거리는 제법 떨어져 있어서, 다행히 지금 주변에 우리의 대화를 들을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나도 마음 놓고 얘기할 수 있었다.

“사흘 전에, 나랑 눈 마주쳤던 거 기억하죠?”

“…….”

“왜, 제가 다이안을 찾으면서 저택 안을 막 돌아다녔을 때요. 저택 사람들이 전부 나한테 꿈을 꾼 거라고 했는데, 세라 씨만 나를 보고 고개를 저었잖아요?”

세라는 내 얼굴만 응시한 상태로 말이 없었다. 하지만 미약하게 동공이 흔들리는 걸 보니, 내 말에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때 딱 느낌이 왔다. 이 사람은 정말 다른 고용인들과 다르다.

평소 나와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던 사라로사조차 내 말에 조금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는데, 세라의 반응은 확실히 이상해진 고용인들과 차이가 있었다.

“다들 이상해요. 원래부터 저택에 다이안하고 다른 애들은 없었다고 하는데, 단체로 기억 상실에 걸린 것도 아니고…. 하지만 세라 씨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죠? 저택에 사는 아이들하고 양육자들이요. 원래 여기 있었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사람들이 왜 이렇게 이상해졌는지 세라 씨는 아는 거죠? 그렇죠?”

나는 절박한 마음으로 세라의 어깨를 붙잡고, 그녀의 눈을 똑바로 직시하며 대답을 요구했다.

“그런데 왜 날 피하려고 해요? 지난번에 일부러 나한테 신호를 줬던 거 아니에요?”

세라라면 내게 진실을 말해 줄 거라고 기대했지만, 오히려 그녀는 내 말을 들을수록 점점 침착함을 되찾아 가는 것 같았다. 뒤이어 한결 차분해진 얼굴을 한 세라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나는 실망했다.

“죄송하지만, 무슨 말을 하시는지 모르겠….”

“모르긴 뭘 몰라요? 그럼 방금은 왜 그렇게 뛰어서 도망쳤는데?”

“그건 화장실이 급해서…. 린 님이 지금 저한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어요. 사흘 전에 저와 눈이 마주쳤다니, 착각하시는 게 아닌지….”

“거짓말하지 마요! 내가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한테 그런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데!”

결국 세라까지 내 말을 부정한 순간, 나는 참지 못하고 소리치고 말았다.

세라에게 이런 식으로 구는 게 온당한 일은 아니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낸 사람까지 내 기대를 불식시키자 그동안 꾹꾹 눌러 온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다.

“그놈의 착각, 착각! 다들 대본이라도 받았어요? 하나같이 내가 착각을 한 거래! 하지만 말이 안 되잖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체스휘 씨랑 사라로사까지 어떻게 나를 미친 사람 취급해요?”

“아니…. 잠깐만요. 그런 얘기를 저한테 해 봤자, 전 그 두 사람이 아닌데요.”

“나도 알아요! 그 두 사람도 나한테 어이없는 소리만 했는데, 당연히 세라 씨는 나랑 친했던 것도 아니니까 더군다나 나한테 거짓말도 하고, 내가 이렇게 간절하게 부탁해도 그냥 지금처럼 모른 척하고 쌩하니 가 버릴 수도 있겠죠!”

“저기, 일단 진정 좀 하시면 안 될까요? 목소리 좀 줄이고….”

“하지만 계속 같은 말만 들으니까 점점 무서운 생각이 든다고요. 혹시 정말 내가 이상한 건가? 정말 그럴 수도 있는 건가? 더군다나 오늘은 다이안하고 미뉴엘이랑 성격이나 외모도 똑같은 고양이들까지 갑자기 튀어나온 걸 보니까, 뭔가, 뭔가…. 혹시 정말 내가 뭔가를 착각하고 있을 수도 있는 건가 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마음 한편으로 들기도 해서, 진짜로 점점 내가 이상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요. 그게 어떤 기분인지 알아요? 그래서 내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세라 씨를 붙잡았는데…!”

“쉿, 쉿! 아, 진짜 조용히 좀 해요! 알겠으니까…!”

그렇게 내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격양된 목소리로 속에 담긴 말들을 한창 쏟아 내던 중에, 세라가 참다 참다 더 이상은 그냥 들어줄 수가 없다는 듯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

나도 그때서야 내가 평소 같지 않게 너무 흥분한 상태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을 멈췄다.

세라는 손으로 내 입을 막은 채 찡그린 눈으로 민첩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다른 고용인들은 여전히 멀리 있었고, 그들은 우리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는 듯이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제각각 복도를 걸어갔다.

나는 조용히 할 테니까 손을 떼라는 의미로 그녀의 팔을 툭툭 쳤다.

나를 미덥잖은 듯이 보던 세라가 잠시 후, 내게서 떨어졌다.

“미안해요. 내가 잠깐 감정이 격해졌네요.”

나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방금보다 확연히 작게 줄어든 목소리로 세라에게 사과했다.

세라는 여전히 찌푸린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불안한 것 같기도 한 눈빛이었다.

나는 그마저도 달가웠다. 다른 고용인들의 가면을 쓴 듯한 얼굴에 비하면, 이렇게 감정이 살아 있는 눈빛은 오히려 반가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로서는 세라의 이런 냉랭한 눈빛이 오히려 더 익숙하기도 했다.

내가 세라의 냉담한 반응에 이런 기분을 느끼다니…. 레이븐이 이런 나를 봤다면 변태적인 취향을 가진 자신과 동류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하아, 내가 왜 괜히 어울리지도 않게 오지랖을 부려서 이 꼴인지 모르겠네.”

이내 세라가 체념 섞인 얕은 한숨을 내뱉으며 혼잣말을 작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또다시 귀가 쫑긋 서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 말은….”

“이틀 뒤 밤 2시. 본관 건물 4층 동쪽 복도 두 번째 계단 옆 방.”

세라가 조금 초조한 듯이 입술을 깨물며 다시금 주변을 살피다가, 지나가듯이 툭 내뱉는 어투로 내게 말했다.

“딱 5분만 기다릴 거예요. 들킬 것 같으면 그냥 오지 마요. 그전까지는 지금처럼 우연히 마주쳐도 절대 아는 척하지 말고.”

그런 뒤 그녀는 언제 나와 마주 보고 대화를 했냐는 듯이 휙 몸을 돌려 나를 지나쳐 갔다.

나는 반사적으로 세라를 붙잡으려다가 움직임을 멈췄다.

이틀 뒤 밤 2시?

혹시라도 잊지 않게 조금 전 세라가 내게 한 말을 머릿속으로 복기했다.

처음에는 혹시나 헛된 기대가 아닐까 싶었지만, 세라는 정말 지금의 이 이상한 상황에 대해 뭔가 아는 게 있는 것 같았다. 드디어 실마리를 찾았다는 생각에 저절로 심박수가 빨라졌다.

“린 씨.”

얼핏 평온하고 잔잔하게 느껴지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등 뒤에서 내 이름을 불러온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나는 손끝을 움찔 떨며 고개를 돌렸다.

다음 순간 내 시야에 비친 곳에서, 체스휘는 노란 고양이를 안고 있었다. 햇빛이 쏟아지는 밝은 복도에서 예쁜 고양이를 안고 있는 미남자의 모습은 저절로 경계심을 허물어뜨리기에 충분했다.

체스휘는 어렴풋하게 미소 지은 얼굴로 나를 가만히 보다가, 기분 탓인지 살짝 서늘하게 느껴지는 눈을 옆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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