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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85)화 (185/300)

“응? 미뉴엘, 털에 뭘 묻히고 있는 거예요? 어휴, 뒷발도 까만 것 좀 봐.”

말끔해 보이기만 하는 고양이의 털을 여기저기 뒤적거리며 살피는 척하는 모습이 제법 천연덕스러웠다. 물론 그래 봤자 그의 얼굴에 남은 웃음의 잔해를 완전히 가릴 수는 없었다.

야옹!

미뉴엘의 이름을 가진 노란 고양이는 갑자기 제 발바닥을 주물러 대는 체스휘가 귀찮았는지 다소 신경질적으로 이를 드러냈다.

“잠깐 가만히 좀 있어 보라니까. 어, 지금 나 쳤어요? 린 씨, 방금 봤죠? 미뉴엘이 이렇게 날 홀대해요. 내가 매일 밥도 챙겨 주고 간식도 주는데.”

나는 고양이의 앞발에 맞아 엄살을 피우는 체스휘의 모습을 보고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해져서 찡그린 눈으로 그를 흘겼다.

그런데 갑자기 내 다리 위에 올라와 있던 흰 고양이가 냥냥거리면서 내 관심을 끌었다.

“뭐야, 왜 그래? 갑자기.”

버둥거리면서 나한테 뭐라고 의사 전달을 하려 애쓰는 것 같기는 한데, 당연히 고양이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반면 체스휘는 꼭 고양이와 의사소통이 가능하기라도 한 것처럼 입매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그린 채 혼잣말을 시작했다.

“아하. 그랬어?”

냐앙!

“응, 나도 알지.”

냥!

“그래, 린 씨가 자꾸 다른 고양이를 봐서 서운했구나.”

나는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는 체스휘를 살짝 어이없는 눈으로 쳐다봤다.

그런데 고양이와 대화하는 체스휘의 모습은 또 쓸데없이 퍽 자연스러웠다. 체스휘가 한마디씩 할 때마다 대답하듯이 울어 대는 고양이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마음 한편으로는 절대 그런 게 가능할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또다시 긴가민가한 의혹이 싹트려고 했다.

혹시 이 고양이하고 정말 말이 통하는 건 아니겠지?

“진짜야…? 정말 내가 너 말고 다른 고양이를 쳐다봐서 이러는 거야?”

내가 고양이의 붉은 눈을 보면서 작게 소곤거리자, 고양이가 또 그렇다고 대답하듯이 미야오옹! 길게 울었다.

기분 탓인지, 다이안의 이름을 가진 고양이가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유달리 애처롭게 느껴졌다. 체스휘의 비웃음을 사며 한풀 꺾였던 의심이 다시 슬그머니 고개를 들려고 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옆에 있는 체스휘에게서 얼굴을 가렸다. 그러고는 또 흰 고양이의 귀에 대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세상 심각하게 속닥거렸다.

“다이안…? 혹시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 거면 왼쪽 손을 들어 올려 봐요.”

체스휘는 노란 털을 가진 고양이와 실랑이를 하느라 이번에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보석처럼 영롱한 붉은 눈과 가까이에서 시선이 마주쳤다. 나는 숨을 죽인 채,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이어질 고양이의 반응을 기다렸다.

고양이는 꼭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크게 뜨며 코를 움찔거렸다. 그러고는….

할짝!

갑자기 뒷다리를 번쩍 들어 올린 흰 고양이가 내가 보는 앞에서 폭풍 그루밍을 시작했다.

“다, 다이안? 왼쪽 손을 들어 보라니까요?”

할짝, 할짝!

“뒷다리 말고 앞발… 아니, 손….”

할짝!

내가 원했던 대로 왼쪽 손을 들어 올리는 것은 고사하고, 양쪽 뒷다리를 번갈아 가면서 그루밍에 심취한 고양이를 보고 나는 그만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다이안이… 크흠. 워낙 깔끔쟁이거든요.”

옆에서 또 웃음을 참는 듯한 체스휘의 목소리가 들려온 건 바로 그때였다.

“지금은 자기가 이만큼 그루밍을 잘한다고 린 씨한테 보여 주고 싶어서 저러는 것 같은데.”

내가 봐도 흰 고양이는 나한테 뭔가를 어필하려고 갑자기 이런 짓을 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한마디로 장기 자랑을 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나를 향한 반짝이는 붉은 눈에도 꼭 칭찬을 기대하는 듯한 눈빛이 어려 있었다.

“그렇구나…. 그루밍도 혼자 잘하고 참, 멋진 고양이네….”

야옹!

애써 미소 지으며 고양이의 털을 쓰다듬자, 이번에도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높은 울음소리가 귀에 울렸다. 하지만 이제는 거기에 속지 않았다.

“미뉴엘, 우리도 옆에 있는 친구를 따라 해 볼까요? 지금 내 말이 들리면 오른발을 한번 들어 볼래요?”

나는 소리 없이 고개를 돌려, 노란 고양이와 또 실랑이를 시작한 체스휘를 다시 한번 노려봤다. 쓸데없이 귀는 밝아서, 조금 전에 내가 흰 고양이에게 한 말도 다 들은 모양이었다.

냐아아!

그때, 체스휘의 품에서 둥지를 틀고 있던 고양이가 탈출했다. 표정과 몸짓에서부터 불만이 잔뜩 느껴지는 걸 보니, 자신에게 치근덕거리는 체스휘가 참을 수 없이 성가셔진 모양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사지라도 받는 양 체스휘의 손길을 한껏 즐길 때는 언제고, 역시 고양이들은 변덕스러웠다.

게다가 당황스럽게도, 황금색 눈을 가진 고양이가 유유히 걸어서 도착한 다음 목적지는 바로 나였다.

유연하게 폴짝 뛰어서 내 다리 위로 올라온 고양이 미뉴엘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흰 고양이를 몸으로 밀어냈다. 그러고는, 조금 전에 체스휘의 품에서 그랬던 것과 똑같은 모습으로 내 다리 위에서 둥지를 틀었다.

졸지에 자리를 빼앗긴 흰 고양이가 그루밍을 멈추고 어리둥절하게 눈을 깜빡였다. 나는 나대로 노란 고양이의 넉살에 당황해 엉거주춤 몸을 굳혔다.

“역시 린 씨는 어디에서나 인기가 많네요.”

나한테 고양이를 빼앗긴 체스휘가 별로 아쉬운 기색도 없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 격으로 노란 고양이에게 영역을 빼앗긴 흰 고양이는 그 울분을 참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난데없는 침략에 고장 난 것처럼 멍하니 멈춰 있던 흰 고양이가 갑자기 눈을 부릅떴다. 아무래도 뒤늦게 자신의 처지를 깨달은 모양이었다.

격분한 듯한 흰 고양이가 갑자기 민첩하게 몸을 날려 노란 고양이의 머리를 솜 발바닥으로 후려갈겼다. 편안히 누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던 노란 고양이도 갑작스러운 습격에 격노한 듯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앗, 잠깐…!”

히악!

캬악!

나는 고양이들이 짧은 앞발로 난타전을 시작한 광경을 황당하게 쳐다보았다. 처음에 깜짝 놀라서 소리쳤던 것이 민망하게도, 이 고양이들의 전투력은 그리 대단하지 않은 것 같았다.

혹시나 서로 물어뜯거나 발톱으로 긁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두 마리의 고양이는 솜털 같은 주먹을 말아 쥐고 서로를 번갈아 투닥투닥 때리기만 했다. 그 하찮은 주먹질에 말문이 다 막힐 지경이었다.

“안 말려도 돼요?”

“말려야 될 것처럼 보여요?”

내 물음에 체스휘가 반문했다. 그의 반응을 보고 나도 수긍했다.

어쩜 이렇게 하찮게 투닥거리는 모습까지도 다이안과 미뉴엘을 닮은 건지….

“아, 웃었다.”

그때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체스휘의 손가락이 내 입매를 가볍게 툭 건드렸다.

“사흘 만에 처음 웃네요.”

나는 내가 웃고 있다는 자각이 없던 참이라, 그의 말을 듣고 손을 들어 입매를 더듬거렸다. 과연 입꼬리가 아주 희미하게 올라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무척 미세한 차이라서 미소라기엔 좀 부족해 보였는데, 체스휘는 어떻게 그 순간을 또 포착한 모양이었다.

“린 씨가 웃으니까 나도 좋아요.”

그러는 체스휘야말로 지금 보는 사람을 너끈히 따라 웃게 만들고도 남을 만큼 예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떻게 사람이 저런 식으로 웃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다정스러운 미소였다. 나를 보는 눈이 꼭 봄볕을 가득 머금고 피어난 팬지꽃 같았다.

나는 그걸 보면서 상당히 양면적이고도 모순적인 기분이 들었다.

“배고파졌어요. 밥 먹으러 갈래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고양이들이 싸움을 멈췄다. 갑작스러운 내 움직임에 놀랐는지 흩어진 고양이들이 열린 문으로 후다닥 빠져나갔다.

“그래요, 그럼 식당으로 가요.”

체스휘도 몸을 툭툭 털며 나를 따라 일어났다.

“고양이들은 어때요? 이따 방으로 데려갈까요?”

그러고 나서 그는 내 의중을 묻듯이 눈을 응시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또 이중적인 기분이 들었다.

“이따가 말고 지금요. 전 다이안을 찾을 테니까 체스휘 씨는 미뉴엘을 찾아요. 그러고 나서 식당에서 만나면 되겠네요.”

체스휘는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이내 조용히 웃었다.

“그러죠. 린 씨가 원하는 대로.”

그리하여 우리는 함께 방에서 빠져나가 사라진 두 마리의 고양이들을 찾기 시작했다.

체스휘는 아까처럼 나를 따라오지 않고 미뉴엘의 행적을 좇아 어디론가 사라졌다.

‘내 숨구멍을 틔워 줄 생각인 거야.’

나는 아까보다 살짝 가라앉은 기분으로 복도를 걸어갔다. 드물게 마주치는 고용인들이 내게 공손히 인사했지만, 화답해 줄 마음은 들지 않았다.

조금 전에 한 말을 생각하면, 체스휘는 내 기분이 안 좋은 걸 나름대로 신경 쓰고 있기는 한 것 같았다. 오늘 갑자기 고양이들을 내 앞에 데려와 보여 준 것도 그래서인 듯했다. 그리고 고양이들을 각자 찾아오자고 내가 먼저 꺼낸 요구에 다른 속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지금 이렇게 나한테 혼자 있을 시간을 준 것도….

그런 생각을 하면 또 가슴속에서 보글거리는 무언가가 조용히 솟구쳐 올라올 것 같았다.

‘…어?’

그러다가, 때마침 복도를 지나가던 고용인 중 한 명에게 시선이 닿은 것은 우연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굳은 것처럼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이었다.

사흘 전, 혼란에 빠진 나를 보고 저택의 고용인들과 유일하게 다른 반응을 보였던 그 사람.

멀리서 다가오던 사람도 내 존재를 눈치챘는지, 정면을 향하고 있던 시선을 내게 돌렸다.

지난번처럼, 지금도 분명 한순간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하지만 마치 그것이 내 착각이라고 말하기라도 하듯이, 잠깐 얽혔던 시선은 금방 옆으로 비껴 지나갔다.

나는 자연스럽게 방향을 틀어 다른 곳으로 향하기 시작한 사람을 쫓아 급히 자리에서 걸음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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