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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84)화 (184/300)

저절로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방금… 저기서 분명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나도 모르게 뒤에 서 있는 체스휘에게 다시 고개를 돌려 그의 반응을 확인했다.

나와 시선을 마주한 체스휘는 방 안에서 나는 소리를 들은 건지 아닌 건지 영 가늠하기 어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그저 이 상황이 조금은 따분한 듯이 느슨히 팔짱을 낀 채 나를 보고 눈을 한번 감았다 떴다.

“들어가 봐요.”

이내 어렴풋한 미소를 지은 체스휘에게서 짤막한 권유의 말이 내뱉어졌다.

혹시 그는 방금 그 소리를 못 들었나? 나는 긴가민가한 마음을 내색하지 않고 방에 들어섰다.

체스휘가 뒤에 있든 말든 방금 기척이 느껴진 피아노 밑이 수상했다. 나는 괜히 음악실 안을 여기저기 뒤져 보는 척하며 창가에 있는 피아노로 다가갔다.

천으로 가려진 피아노는 누가 몸을 숨기기에도 딱 좋아 보였다. 물론 하필 지금 저 안에서 내가 찾는 사람이 타이밍 좋게 나타나리라는 기대를 하는 건 꿈이 야무진 것이라고 할 만했다.

지난 사흘간 저택 안을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이곳에 살던 소년들의 머리카락 한 올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당연히, 단지 그것만으로 이렇게 금방 포기할 수는 없는 게 아니겠는가? 지금도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라는 게 있었고 말이다.

체스휘가 계속 나를 지켜보고 있었으면 움직이기 불편했을 텐데, 그는 잠깐 내게서 시선을 돌려 복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나는 천이 덮인 피아노 앞에 얼른 몸을 낮추고 앉았다.

“…다이안?”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입을 열어 소곤거리듯이 다이안의 이름을 불렀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 대신, 두꺼운 천으로 완전히 가려진 피아노 밑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나는 방금 내 눈앞에서 꿈틀거린 천을 손으로 서둘러 걷어 올렸다.

그러자 그 밑으로 하얀 머리카락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얼른 두 손을 뻗어 그것을 확 끌어당겼다.

“다이안…!”

냐아!

하지만 내 손에 잡힌 건 다이안이 아니었다. 손안을 가득 채운 말랑한 촉감이 낯설어서, 보기도 전에 이게 내가 찾던 소년은 아닐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뭐, 뭐야?”

아니나 다를까, 나한테 붙잡혀 피아노 밑에서 끌려 나온 건 털이 북슬북슬한 흰 뚱보 고양이였다.

“고양이?”

아니, 레드포드 저택에 웬 고양이야? 물론 이 안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게 규정상 가능하긴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런 사람이 없었는데?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 숨어 있었구나.”

그때, 등 뒤에서 저벅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옆으로 다가와 무릎을 굽히고 앉은 체스휘가 굉장히 능숙한 손놀림으로 고양이의 턱을 긁었다. 살짝 힘이 풀린 내 손에서 고양이가 벗어났다.

“축하해요, 린 씨. 방에 있던 게 뭔지 아까부터 계속 궁금해하더니, 결국 찾아냈네요?”

고양이는 체스휘에게 낯가림을 하지 않는지 그의 앞으로 서슴없이 다가갔다. 체스휘가 다시 손을 뻗자, 고양이가 거기에 대고 머리를 비비며 음미하듯이 눈까지 지그시 감고 고롱거리는 소리를 냈다.

“…체스휘 씨 고양이예요?”

“아뇨.”

체스휘는 내 물음에 짤막하게 부정했다.

그럼 다른 사람이 키우는 건가?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지금도 고양이의 털 사이를 매끄럽게 유영하는 그의 손길이 지나치게 노련했다.

‘왠지 집사 스킬이 만렙인 것 같은데….’

그보다, 방금 체스휘의 그 말…. 아까 내 침대에 올라와서 내 얼굴을 핥았던 게 이 고양이였어?

“체스휘 씨가 키우는 게 아니면 누구 고양이예요?”

내 떨떠름한 시선을 받은 고양이가 자신의 얘기를 하는 걸 알았는지, 이번에는 내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고는 내 발등에 통통한 앞발을 올리고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데….

‘귀, 귀엽잖아…?’

아무래도 이 고양이는 개냥이과인 것 같았다. 처음 보는 나한테도 경계심 없이 이렇게 선뜻 다가오는 걸 보면 말이다.

나는 다이안을 찾지 못해 실망했던 마음이 아주 살짝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고양이에게 딱히 관심이 없는 척, 괜스레 딴청을 피우듯이 옆으로 눈을 돌리면서 작게 헛기침을 내뱉었다.

“언제부터 있던 고양이죠? 지금까지 저택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그래요. 사람 손을 타기 싫어해서 주로 자기들끼리만 놀기도 하고.”

나는 대뜸 처음 보는 내게 다가와 달라붙기까지 하는 흰 고양이를 오묘한 눈으로 쳐다봤다.

사람 손을 타기 싫어한다니, 아닌 것 같은데?

“얘, 이름이 뭐예요?”

“방금 린 씨가 불렀잖아요.”

체스휘가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하지만 내가 의문을 느낀 시간은 짧았다. 체스휘의 말을 듣고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어서 무심코 ‘아’ 하고 소리 냈다.

나는 부릅뜬 눈으로 다시 고양이를 내려다봤다.

품종은 잘 모르겠지만, 윤기가 흐르는 흰 털을 가진 장모종 고양이었다. 처음에는 뚱보 고양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털이 북슬북슬해서 몸집이 큰 것으로 착각한 것뿐이었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눈은, 혹시 알비노 고양이인가 싶을 정도로 루비같이 선명한 붉은색이었다.

가만. 그런데 괜한 생각인가? 이 고양이… 왠지 익숙한 느낌인데?

나는 미심쩍은 기분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다이안…?”

야옹.

내 조심스러운 부름에 고양이가 꼭 대답하듯이 입을 열어 간드러진 울음소리를 냈다. 나는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 고양이 이름이 다이안이라고요…?”

체스휘는 여전히 솜씨 좋게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내 물음에 태연히 대답했다.

“원래 이름은 다이아몬드예요.”

“다이아몬드?”

“줄여서 다이안이라고도 부르고.”

미야옹!

내가 체스휘의 말에 뭐라고 더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이번에는 문가에서 좀 더 높고 가느다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체스휘와 내가 있는 방으로 타박타박 걸어 들어오고 있는 또 다른 고양이가 눈에 띄었다.

이번에는 금색 털에 금색 눈을 가진, 흰 고양이보다 크기가 작고 앙큼한 인상을 가진 고양이였다.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디뎌 이쪽으로 다가오는 움직임도 도도하고 새침했다.

이번에도 왠지 보자마자 한눈에 떠오르는 소년이 있었다.

나는 설마 하는 생각에 헛웃음을 내뱉으면서 체스휘에게 물었다.

“설마 이 고양이 이름은 미뉴엘이라고 할 셈은 아니죠?”

냐아옹!

대답은 고양이가 대신했다. 내 말이 맞는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렁찬 울음소리가 귀에 울렸다.

“미뉴엘, 이리 와요.”

체스휘는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이 미뉴엘을 닮은 고양이를 불렀다.

체스휘가 동물을 유인하는 소리를 작게 입으로 내자, 금색 눈을 가진 고양이가 유유히 걸어와서 체스휘의 다리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뭐야, 진짜 이름이 미뉴엘이에요?”

“그럼 가짜겠어요? 엄마가 이름도 모르고 너무하네. 그렇지? 미뉴엘, 다이안.”

고양이들이 메들리라도 하듯이 체스휘의 말에 냥냥거리면서 번갈아 울었다.

나는 또 인지 부조화가 올 것 같았다.

바닥에 아무렇지 않게 앉아서 고양이를 안고 있는 체스휘의 얼굴에는 소년 같은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래서 지금 그가 고양이들의 이름으로 나한테 농담을 하는 건지, 아니면 지금 한 말이 진담인 건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반갑지 않아요? 그렇게 계속 다이안이 어디 있냐고 찾을 때는 언제고.”

체스휘는 그의 검은 바지에 고양이 털이 묻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품에 안은 고양이를 익숙하게 얼렀다.

그러는 동안 방치된 흰 고양이도 자꾸 무릎을 세운 내 다리를 붙잡고 올라오려고 했다.

미뉴엘의 이름을 가진 고양이는 이미 체스휘의 품에 편안하게 들어앉아, 그의 손길을 온몸으로 만끽하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이 고양이들은 개냥이로도 모자라서 무릎냥이 재질까지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렇게 쳐다보는데 한번 만져 주지 그래요.”

기어이 내 다리 위로 올라온 흰 고양이를 흔들리는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을 때, 옆에서 체스휘가 넌지시 말했다.

“귀를 문질러 주면 좋아할 텐데.”

망설이다가 손을 옮기자, 고양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아까처럼 고롱고롱 소리를 냈다.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좀 더 만져 보라는 듯이 등을 쓱 내 손에 대주는 모습이 여간 잔망스러운 게 아니었다.

나는 왠지 말문이 막힌 채 흰 고양이를 내려다보다가 점점 심각해졌다. 고양이를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다이안과 꼭 닮은 붉은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순간적으로 바보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진짜 그럴 리는 없다고 내심 생각하면서도, 체스휘에게서 슬며시 등을 돌린 채 고양이를 붙잡고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 작게 속닥거렸다.

“다이안…? 혹시 진짜 다이안?”

혹시 마법이나 저주라도 걸려서 애들이 고양이가 된 건… 아니겠지?

물론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이 레드포드 저택은 어떤 기묘한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사람이 고양이가 되는 일도… 한 번쯤 있을 법하지 않을까?

나중에 이성을 되찾고 다시 생각해 보면 흑역사 축적이라며 이불을 걷어찰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그때는 이상하게 정말 심각한 기분이었다. 어쩌면 수면 부족으로 정말 인지 부조화가 왔던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다음 순간, 등 뒤에서 얕게 웃음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서 나는 대번에 수치스러워졌다.

목소리를 최대한 작게 줄인다고 줄였는데, 내가 흰 고양이에게 몰래 조그맣게 속닥거리는 소리를 체스휘가 들은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휙 돌려 체스휘를 노려봤다.

그는 언제 나를 비웃었냐는 듯이 시치미를 떼고 딴청을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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