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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81)화 (181/300)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본능적인 위기감이 엄습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지만, 왠지 이런 얘기를 섣불리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양육자와 아이들 얘기를 꺼낼 때마다 고용인들이 내게 보내는 시선도 소름이 끼쳤다.

그래서 그 후 체스휘의 앞에서는 더 이상 같은 화제를 꺼내지 않았다.

혹시 한숨 자고 나면 다시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가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건 헛된 기대였다.

사흘째인 오늘도 나는 다이안이 없는 레드포드 저택에서 눈을 떴고, 저택의 고용인들에게 여주인 소리를 들으며 체스휘와 단둘만의 기묘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나 속이 안 좋아요.”

나는 내 앞에 앉은 체스휘를 관찰하다가, 그의 흔들림 없는 평온함에 속이 살짝 뒤틀렸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불쑥 말했다.

체스휘는 내가 뭘 하든 대부분 그냥 놔뒀지만, 이틀 전에 한 번 크게 체한 뒤로는 내가 밥을 깨작거리고 있으면 더 먹게 하지 않고 그냥 바로 식탁을 치우게 했다.

그걸 보면 내가 억지로 그의 앞에서 멀쩡한 척하고 있는 걸 눈치챈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그런 내색은 또 따로 하지 않았다.

“또 속이 안 좋다고요?”

갑자기 꺼낸 말에, 잠깐 나를 떠나 있던 체스휘의 시선이 다시 내게 돌아왔다. 나를 물끄러미 응시하는 시선에, 혹시 꾀병인 걸 들킨 건가 싶어서 속이 뜨끔거렸다.

하지만 그는 다른 말 없이 내게 호응해 줬다.

“왜 그럴까. 별로 먹은 것도 없는데.”

약간 서늘한 체온을 가진 손이 다가와 내 얼굴을 달래듯이 쓰다듬었다.

“소화제라도 가져오라고 할까요?”

“의사를 불러줘요.”

“말했지만, 레드포드에 의사는 없어요.”

솜털처럼 부드러운 목소리인 것치고는 퍽 단호한 말이었다. 나를 응시하는 눈에는 이번에도 약간의 난감함과 안쓰러움이 담겨 있었다.

당연히 마음속에 불만이 비죽 치솟았지만, 어차피 내가 뭐라고 하든 돌아올 대답은 뻔했기 때문에 그냥 더 따지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냥 소화제 먹을게요. 직접 가져다줘요.”

“알겠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고용인을 두고 일부러 직접 내 수발을 들 필요는 없을 텐데, 체스휘는 순순히 내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그는 기분 나쁜 기색도 없이 웃으며 내 뺨을 가볍게 한번 손으로 쓸어내린 뒤,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사라로사, 창문에서 들이친 비 때문에 테이블이 젖었는데 좀 닦아 줄래요?”

“네, 린 님.”

나는 바로 사라로사를 불렀다.

사라로사는 내 말에 곧장 수건을 들고 다가왔다. 군말 없이 테이블을 닦기 시작한 사라로사를 보다가, 나는 작게 낮춘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사라로사, 혹시 나한테 뭐 할 말 없어요?”

그녀는 표정 변화 없는 얼굴로 나를 보며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그렇게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던 사라로사가 입을 열었다.

“점심 식사를 거의 하지 않으셨는데 혹시 출출하시면 간단한 간식이라도 올릴까요? 혹시 몰라서 린 님이 좋아하시는 매콤한 크림 스튜와 꿀에 절인 오렌지 필을 넣은 케이크를 식당에서 항상 만들어 두고 있어요. 주인님께서도 혹시 린 님께서 생각이 있으시다고 하면 바로 방에 들이라고 하셨고요.”

“아니, 지금 간식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고요.”

“여전히 식욕이 없으시면, 음악을 들으면서 반신욕을 하는 것도 기분 전환에 좋을 거예요. 라일락과 자스민 향을 섞은 입욕제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니면, 오늘은 날씨가 흐려서 상쾌한 시트러스 향이 더 끌리실까요? 아, 냉침한 밀크티도 잊지 않고 준비하겠습니다.”

그런데 사라로사의 말을 들을수록 소름이 돋았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취향을 잘 아네요.”

“이 정도는 당연하지요. 하루 이틀 모신 것도 아닌데요.”

사라로사는 겸손하게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지금까지 사라로사와 이런 사적인 얘기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그녀는 현실에서의 내 취향을 지나치게 잘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는 다른 곳에 신경이 쏠려서 미처 인식하지 못했지만, 지난 며칠 동안에도 언짢은 마음과 달리 몸만큼은 더없이 편안했었다. 내가 따로 말하지 않아도 다들 꼭 속마음을 읽어 낸 것처럼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주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방을 채워 놨으니까….

‘뭐야, 진짜…?’

갑자기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꺼림칙한 느낌이 마음속에 뭉텅이로 더해졌다.

내가 침묵하자 사라로사는 말을 더 잇지 않고 다시 테이블을 닦기 시작했다.

방금도 내가 먼저 요구하니까 입을 연 것일 뿐, 오늘까지도 그녀는 평소처럼 내게 재잘거리며 말을 걸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나를 성의껏 시중들어야 할 고용주로만 생각하는 듯이, 내 행동에 직접 의견을 내비치거나 관여한 적도 없었다.

나는 참고 참다가, 결국 사라로사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정말 지금 다른 사람들이랑 다 같이 나 속이고 있는 거 아니에요? 체스휘 씨도 없으니까 나한테만 살짝 말해 봐요. 아무한테도 말 안 하고 비밀로 할게요.”

사실은 벌써 사흘째 비슷한 질문을 하고 있었고, 그때마다 내게 돌아오는 대답은 판에 박힌 듯이 똑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체스휘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다시 한번 사라로사와의 진실한 대화를 시도해 봤다.

이번에는 조금 난감한 듯이 사라로사가 시선을 들어 나를 지그시 응시했다.

“린 님. 혹시 어젯밤에도 꿈을 꾸셨나요?”

그러나 이번에도 달갑지 않은 익숙한 반문만 되돌아왔을 뿐이었다. 나도 모르게 어금니가 꽉 깨물렸다.

“꿈 같은 건 안 꿨어요.”

“그럼 사흘 전에 꾸신 꿈 때문에 아직도 정신이 혼몽하신 모양이네요.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는 허브차를 올릴게요. 잠에 못 드시는 날마다 주로 사용하시던 향초도 가져오고요.”

꼭 정해진 매뉴얼이라도 있는 것처럼 사라로사는 망설임조차 없이 술술 말한 뒤 방을 나섰다.

‘말이 안 통해!’

“허, 진짜 다들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혼자 남은 나는 고구마를 백 개는 먹은 기분에 가슴을 퍽퍽 두드렸다.

꼭 나 혼자만 이상한 세계로 뚝 떨어진 것 같았다.

내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생각해 봤지만, 이 해괴한 상황이 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곳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 보면, 정말 그들은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내가 가끔 이상한 꿈 얘기를 하고 그들은 그런 내게 적당히 호응해 주는 이런 기막힌 상황을 말이다.

그나마 내가 정리해 본 가설은 다음의 세 가지였다.

1. 나 몰래 단체로 짜고 치는 몰래카메라다.

2. 나 빼고 모든 사람이 세뇌라도 당해서 이상해졌다.

3. 다른 사람들은 정상이고, 정말 내 머리가 어떻게 되어서 나만 혼자 꿈과 현실을 혼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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