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78)화 (178/300)

내 귀에 흘러든 목소리의 억양은 여느 때처럼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깃든 온도는 가슴이 시릴 정도로 낮았다.

나는 뿌리를 내린 것처럼 바닥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검은 구둣발을 타고 시선을 올렸다.

그러자 어스름한 음영이 그려진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도대체 언제부터 방에 들어와서 그 자리에 서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고요한 눈이 방 안의 모습을 한 차례 훑고 지나가 다시금 내게 멈췄다. 건조한 듯하기도 하고 서늘한 듯하기도 한 그 눈빛은 내가 평소에 체스휘에게서 보던 것과 달랐다.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은 그에게 필사적으로 기어갔다. 꼭 도움을 요청하려는 것 같기도 한 몸짓이었다.

하지만 체스휘의 눈은 그녀를 스쳐 지나간 이후 한 번도 다시 닿는 법 없이 줄곧 내게만 못 박혀 있었다.

그리고 한순간, 그의 눈에 선득한 이채가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체스휘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으나, 애초에 그도 내게 대답을 들을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왠지 이럴 것 같기는 해서 와 보긴 했는데… 내가 조금 늦었나 보네요.”

혼잣말처럼 들리기도 하는 조용한 목소리가 깔리는 순간, 방 안의 온도가 소리 없이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어이 건드리면 안 될 걸 건드리고.”

체스휘가 열고 들어온 문은 이미 닫힌 상태였고, 방 안에 있는 창문도 틈 하나 없이 굳게 잠겨 있었다. 그런데도 밀폐된 방 안 어디에선가 스산한 한기가 새어 들어오는 것 같았다.

마침내 멈춰 있던 체스휘의 발이 움직였다. 그러나 그가 향한 곳은 내가 있는 곳이 아니었다.

“정도껏 해야 귀찮아서라도 못 본 척해 주지.”

처음에는 혼잣말인 것 같았지만, 듣다 보니 아무래도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체스휘는 아까부터 명확한 청자를 두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대상은 내가 아닌 듯했다.

“그런데 항상 지나친 욕심을 부린단 말이야. 머리가 참, 나빠.”

이내 작은 발소리가 멈춘 자리에서 냉연한 시선이 떨어져 내렸다.

“마리네즈 씨.”

나는 체스휘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듣고 숨을 얕게 들이마셨다.

원래대로라면 영혼 상태인 여인의 모습이 체스휘에게 보일 리 없었다. 지금까지도 그는 자신의 앞에서 수없이 얼쩡거리는 영혼을 보고도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체스휘의 시선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의 발밑에 쓰러진 검은 베일을 쓴 여인에게 내리꽂혀 있었다.

“그동안 정말 많이도 먹었나 봐요. 하긴, 저택에 있는 걸 거의 다 혼자 독식했으니까.”

체스휘는 기어이 그의 발을 붙들고 늘어진 여인을 향해 찡그린 건지 웃는 건지 모를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도 잘됐네요.”

나는 체스휘가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을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몸을 낮추는 모습을 숨을 죽인 채 바라보았다.

“봐, 지금은 이렇게….”

언뜻 다정하고 달콤하게 들리는 목소리가 부드럽게 속삭여지고, 다음 순간 그의 손이 검은 옷자락으로 감싸인 여인의 몸에 닿았다.

“내가 당신에게 닿을 수 있잖아.”

미처 감추지 못한 짙은 만족감을 드러낸 채 체스휘가 웃었다. 거기에 동조하듯이 검은 베일을 쓴 여인도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녀의 손이 체스휘의 다리에 꼭 덩굴처럼 더 깊게 엉겨 붙었다.

“내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하지만 이어진 체스휘의 행동은 어둠 속에서도 선명한 그의 미소나 나긋한 속삭임과는 달리 조금도 달콤하지 않았다.

콰악!

“당신을 내 손으로 완전히 죽여 버리려고.”

- ……!

억센 손아귀에 목을 붙들린 영혼이 놀란 듯이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그녀를 마주한 체스휘에게서는 작은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영혼이 충분한 힘을 갖지 못한 상태라 서로에게 물리적인 영향을 끼칠 수 없었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영혼이 인간에게 직접 손을 댈 수 있게 된 것처럼, 인간 또한 영혼에게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방금 체스휘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나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이 어떻게 이렇게 단기간에 강한 힘을 얻고 악령화 된 것인지 의아했는데, 그것은 그만큼 많은 수의 영혼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어째서인지 문득 지난번에 내가 받은 퀘스트의 내용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new퀘스트: 레드포드 저택의 수상한 고용인들

레드포드 저택에는 선택받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수많은 고용인이 있다.

그러나 요즘 고용인들 사이에는 기묘한 일이 일어나는 듯하다.

나날이 숫자가 줄어 가고 있는 고용인들에게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또 과연 저택의 고용인 중에 현재 남아 있는 진짜 사람은 몇 명일까?

(tip1. ‘진짜 사람’의 기준은 단 한 번도 죽지 않고, 새로운 영혼을 몸에 받아들이지 않은 존재로 정의한다. ‘고용인’의 기준은 레드포드 저택의 아이들을 위해 고용되어 종사하는 사람 전반으로 정의한다.)

(tip2. 정답의 변동 가능성이 상시 존재하는 퀘스트이니만큼, ‘현재’의 기준은 플레이어가 충분한 관찰을 통해 정답을 확신하여 결정한 날과 시간으로 지정한다.)

※실패 페널티: ?

※성공 보상: ?

(실패 페널티와 성공 보상은 퀘스트 종료 시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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