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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76)화 (176/300)

비비가 신경 쓰여서 방으로 찾아갔을 때, 그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펑펑 울고 있었다.

“진짜 유지니아가 죽은 거야? 왜?”

총괄 집사와 메이드장에게 처음 이야기를 전해 들은 직후에는 놀라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하던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덜컥 감정이 북받쳐 오른 모양이었다.

“그 정도로 혼자 많이 아팠던 거야? 난 그것도 모르고, 유지니아가 귀찮아서 나하고 안 만나주는 줄 알고 조금 원망했는데….”

두 눈이 토끼같이 빨개질 정도로 울어대는 어린 소년의 모습은 저절로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안쓰러웠다.

사실 유지니아의 사인이 병사인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었지만, 비비에게 굳이 그런 얘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그냥 엉엉 우는 비비를 끌어안고 위로해 주었다.

나는 유지니아와 별다른 친분이 있지도 않았고, 그녀를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막상 이런 갑작스러운 부재가 닥치자 마음이 영 편치 못했다.

“비비한테 내 방에 와 있으라고 해도 돼?”

얼마 전 체스휘가 했던 말대로 저택의 아이들은 감이 좋았다.

누가 직접 말해 주지 않았는데도 다이안은 저택 안의 분위기가 기묘한 것을 눈치챈 듯이 고용인에게 혹시 양육자 중 누구에게 문제가 생겼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다이안의 방에 들어갔을 때는, 그 역시 바깥의 다른 사람들처럼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저녁 식사 시간이 될 때까지 다이안은 극도로 말을 아끼다가, 이윽고 내게 자신의 방에 비비를 데려와도 되느냐고 물어봤다. 나는 그런 다이안의 눈높이에 시선을 맞춰 몸을 낮춘 뒤 그에게 말했다.

“그럴까요? 비비한테 여기에 와 있으라고 할까요?”

“응. 그래도 혼자 있는 것보다는 낫잖아.”

나는 다이안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밖으로 나가 비비를 데려왔다.

비비의 방으로 갔을 때, 그는 더 짜낼 눈물도 없는 듯이 퉁퉁 부은 눈을 한 상태로 이불 속에 파묻혀 있었다.

내가 다이안의 방에 가지 않겠냐고 권유했을 때 비비는 이불 속에서 눈만 빼낸 채 아무 말 없이 내 얼굴만 쳐다봤다. 그래서 거절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잠시 후 그는 조용히 팔을 뻗어 내 손을 붙잡았다. 다이안의 생각대로 방에 계속 혼자 있기는 싫었던 모양이었다.

비비는 내 손에 이끌려 다이안의 방에 오고 나서도 줄곧 말 한마디 없이 조용했다. 다이안도 그런 비비의 옆에서 섣부른 위로를 건네지 않고, 그냥 따뜻한 차와 비비가 좋아하는 과자, 또 포근한 담요와 인형 등을 그의 옆에 가져다주기만 했다.

그날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굉장히 많은 일이 일어났던 듯한 하루였다. 그래서인지 저녁이 올 때까지 시간은 엄청나게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기도 했고, 반대로 엄청나게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늦은 저녁 시간, 나는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시간은 8시 50분. 내가 마리엔과 만나기로 한 시간은 9시였다. 유지니아의 일이 있어서 마리엔과의 약속도 취소된 줄 알았는데, 그녀 측에서 먼저 사라로사를 통해 쪽지를 보내왔다.

‘이런 와중에 나를 만나서 하고 싶은 말이 뭘까?’

나는 혼자서 마리엔의 속내를 가늠해 보며 복도를 걸어갔다.

아이들의 취침 시간은 10시이니, 마리엔과 이야기를 나누고 다이안의 방에 찾아가면 딱일 것 같았다.

낮에 있던 유지니아의 일 때문인지, 저택에는 유독 조용한 공기가 감돌았다. 아예 저택의 분위기 자체가 축 가라앉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리엔을 만나러 가는 동안에도 아까 봤던 유지니아의 모습이 자꾸 생각났다.

그리고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묻기 위해 아까 불려왔던 3호실의 전담 고용인들…. 그들이 했던 말을 떠올릴수록,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지니아의 전담 메이드는 분명 주인의 명령을 따라 다른 사람들의 출입을 막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전담 메이드 역시 한 번도 유지니아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는 건 확실히 이상했다.

보통 며칠 동안이나 사람이 방에만 틀어박혀서 감감무소식이면 걱정이 되어서라도 한번은 들어가서 확인해 보지 않나? 더군다나 유지니아는 아프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물린 뒤에 내내 밥도 안 먹고, 청소하는 사람조차 안에 들이지 않았다고 하던데.

물론 모든 고용인이 1호실 마리엔의 전담 메이드처럼 주인에게 충성심과 애정이 넘치는 건 아니었지만, 이건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되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정작 그런 변명을 하는 메이드들의 태도는 자신들의 행동이 이상한 걸 모르는 것처럼 당당하고 태연하기만 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복도를 걷다가, 문득 눈앞을 지나쳐 가는 검은 옷자락을 발견했다.

약속 장소에 거의 다다라 가던 참이라, 처음에는 혹시 지금 내가 본 게 마리엔인가 싶었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다시 확인했을 때, 시야에 들어온 것은 마리엔이 아닌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이었다.

그녀는 꼭 나를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움직임을 멈추고 복도의 끝에 가만히 서 있었다.

주변을 살피자, 지나다니는 고용인 한 명 없이 한적하기만 한 복도가 눈에 띄었다.

한동안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내가 먼저 찾아 나설 때마다 나를 피해 다니기라도 하는 양 검은 옷자락 하나 보이지 않던 유령이었다. 하지만 체스휘와 마주쳤던 지난 밤에 그랬듯이, 이번에도 그녀는 먼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더군다나 나를 향해 몸을 반쯤 튼 채 가만히 서 있는 여인을 보자, 싸늘하게 식어 가던 가슴이 차분히 가라앉는 것 같았다.

나는 지난밤에 그랬던 것처럼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을 따라갔다.

그녀는 내가 멈췄던 걸음을 옮기자, 다시 나를 등지고 앞서 걷기 시작했다. 마리엔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거의 다 된 것 같았지만,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터였다.

내 눈앞에서 어른거리며 움직이는 검은 잔상이 꼭 나한테 따라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나는 막힌 복도의 끝에서 검은 베일을 쓴 여인과 마주 보고 섰다.

“오랜만에 보네요. 그동안 여기저기 잘만 숨어 다니더니.”

예전에야 별관의 지박령이던 이 유령을 가엾게 여긴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체스휘에게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것도 거슬렸고, 왠지 이대로 두면 이 여자가 악령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밤에 만났을 때도 꼭 그녀가 나를 유인하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그 또한 내 착각이 아니었던 듯했다. 더군다나 오늘은 나도 유지니아의 일이 있어서 그런지, 더욱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는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이렇게 가까이에서 검은 베일을 쓴 여인과 마주하니 느낌이 더 확실해졌다.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불길한 기운이 예전과 비할 수 없이 강해진 것 같았다.

“도대체 그동안 뭘 하고 돌아다녔기에 이렇게 지저분한 기운을 줄줄 흘리고 다니는 거예요?”

내 말에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의 머리가 옆으로 갸우뚱 기울어졌다.

[레드포드 저택의 ‘방랑하는 영혼’이 린 도체스터에게 빙의를 시도합니다.]

[실패(1/5)]

눈앞에 떠오르는 시스템 창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실소했다.

이 판국에 또 빙의 시도라고?

나는 저택 안에서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대부분 소지하고 다니는 총을 꺼냈다.

탕!

이참에 아예 처리해 버리려고 냅다 총을 갈겼으나,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은 놀라울 정도의 민첩함으로 그것을 가볍게 피했다.

[레드포드 저택의 ‘방랑하는 영혼’이 린 도체스터에게 빙의를 시도합니다.]

[실패(2/5)]

나는 내게 달려드는 영혼에게 다시 한번 총을 발포하며 짜증스럽게 미간을 구겼다.

이번에는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의 어깨에 총알이 박혀 들어가, 그 주변 부근이 재로 흩어지듯이 까맣게 부서졌다.

여인은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면서도 꾸역꾸역 내게 다가왔다. 나는 내게 뻗어지는 손을 피하려다가, 혹시 하는 생각에 움직임을 멈췄다.

검은 장갑을 낀 손은 내 몸을 통과하지 않고 내 손목을 쥐어짤 듯이 거세게 옥죄었다. 그녀에게 잡힌 팔이 금세 검게 물들며 아릿한 통증이 살갗을 파고들었다.

원래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영혼은 서로에게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었지만, 확실히 이 여자는 보통의 영혼이 갖기 어려운 힘을 단기간에 얻어 몸에 품은 상태였다.

나는 일이 번거로워졌다고 생각하며 내 앞에 있는 영혼에게 연달아 총을 발포했다. 끈질기게 내 손목을 붙잡고 있던 여인이 다시금 발작하듯이 몸부림치면서 쓰러졌다.

“하. 귀찮게 됐네, 이거.”

이 유령이 도대체 뭘 어떻게 한 건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제 내가 가지고 있는 총탄만으로는 이 악령을 죽이지 못하게 생겼다. 이 정도의 사악한 악령은 게임 시작 후 몇 년이 지났을 때서야 차츰 나오는 게 정상인데, 어떻게 이런 돌연변이가 혼자 툭 튀어나온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레드포드 저택의 ‘방랑하는 영혼’이 린 도체스터에게 빙의를 시도합니다.]

[실패(3/5)]

[레드포드 저택의 ‘방랑하는 영혼’이 린 도체스터에게 빙의를 시도합니다.]

[실패(4/5)]

심지어 여인은 몇 발이나 총에 맞고, 더 움직이지 못하게 내 발에 밟힌 상태에서도 꿋꿋하게 빙의를 시도하는 집념과 독기를 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눈앞에 떠오르는 빙의 실패 알람은 지금까지 봤던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그냥 배경음 정도로 치부해 대충 흘려 보면서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검은 영혼에 또 한 발의 총알이 틀어박힌 순간, 소리 없는 비명이 복도를 가득 채우는 듯했다.

지금 바로 눈앞에 있는 여인을 처리할 수는 없으니, 일단 도주 불능 상태로 만들어 둘 생각이었다.

[레드포드 저택의 ‘방랑하는 영혼’이 린 도체스터에게 빙의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예고 없이 떠오른 새로운 시스템 알람에 나는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성공! 레드포드 저택의 ‘방랑하는 영혼’이 린 도체스터에게 빙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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