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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74)화 (174/300)

“무슨 일이에요? 모로스라도 나왔어요?”

소란이 큰 것치고는, 의외로 별다른 일이 벌어진 건 아니었다.

내가 사건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상황이 종료된 이후였다.

“앗, 네! 방금 모로스들이 갑자기 나와서 공격했는데, 마침 자리에 계시던 1호실 양육자님이 처리하셨어요. 그런데 한 마리가 밖으로 빠져나가서….”

아니다. 고용인의 말을 들어 보니 상황이 완전히 종료된 건 아니었다. 어쩐지 사람들이 아직 시끄럽다 했더니, 지금도 사라지지 않은 소란은 그것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밖으로 빠져나간 모로스는요?”

“마침 아래쪽에 있던 사람들을 공격한 뒤 어디론가 움직였는데, 그 후에 다른 양육자님이 쫓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직 소식이 없어서….”

고용인은 말을 얼버무리며 층계참에 서 있는 다른 사람을 힐끔거렸다. 나도 의혹 어린 마음에 눈살을 찌푸리며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루스카의 옆에 우두커니 선 마리엔이 있었다.

모로스는 이지를 잃은 괴물이었다. 그러니 스스로 창문을 깨고 달아났을 리는 없었다.

어질러진 방 안의 광경을 봤을 때, 마리엔이 모로스를 상대하다가 한 마리를 창밖으로 날려 버린 것 같았다. 그런데 그녀는 어째서인지 모로스를 바로 쫓아가지 않고 창가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오늘도 마리엔의 얼굴은 어둡게 느껴질 정도로 안색이 좋지 않았다. 저렇게 창백한 낯빛을 하고도 얼굴이 어두워 보일 수 있다니, 어찌 보면 모순적으로 느껴지는 표현이었지만 정말 그랬다.

마리엔은 모로스를 처치하기 위해 빼든 채찍을 다시 집어넣지도 않고, 혼자만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런 그녀는 무언가를 아주 깊이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반대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망연히 굳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옆에 있는 루스카도 그런 그녀가 염려스러운 듯이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봐도 조금 이상해 보이는 모습이었으니, 고용인들이 마리엔에게 쉽게 말을 걸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마리엔 씨, 팔을 다친 것 같은데 빨리 처치해야겠어요.”

나는 문득 시선 끝에 닿은 붉은 흔적을 발견하고 마리엔에게 말했다.

날카로운 손톱에 찢긴 듯이, 마리엔의 갈라진 옷 위로 붉은 피가 스미는 게 보였다.

모로스에게 공격당하면 중독된 것처럼 상처가 쉽게 곪았다. 그러니 바로 성수를 뿌려 독성을 중화시켜야 했다.

“아이구, 1호실 양육자님이 부상을 입으신 줄 몰랐네요! 제가 얼른 성수를 가져오겠습니다!”

내 말을 들은 고용인이 그제야 마리엔의 상태를 알아차린 듯이 서둘러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마리엔도 비로소 정신이 깨어난 듯이 푸른 눈을 움직였다.

“마리엔 씨, 그럼 저는 일단 밖으로 나간 모로스가 처리됐는지 확인하고 올….”

나는 고용인의 뒤를 이어 막 자리를 떠나려다가 그녀의 눈을 마주하고 걸음을 멈췄다.

시야에 비친 여인의 얼굴에는 여전히 눈에 띄는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내게 박힌 눈빛만큼은 한순간 발목을 붙잡을 정도로 강렬했다.

“마리엔 씨, 혹시 저한테 할 말 있어요?”

왠지 수많은 언어가 담긴 것처럼 느껴지는 눈이라 물었으나, 마리엔의 입술은 여전히 굳게 닫힌 채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이 나를 떠나는 일도 없었다. 내 안의 의문도 더욱 커졌다.

“놓친 모로스가 한 마리 맞아요?”

그때, 밑의 층계참에서 나른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시야에 나타난 건 내가 찾고 있던 체스휘였다. 계단을 올라오는 그의 움직임은 조금 전 귀에 흘러든 목소리만큼이나 이 상황이 따분하고 귀찮은 듯이 느릿했다.

“여기서 1호실이 모로스를 상대한 후에 창밖으로 떨어졌다고 들었는데, 방금 내가 처리했….”

하지만 체스휘의 얼굴은 고개를 들어 나를 발견하는 순간 신색을 달리했다.

“어, 린 씨도 와 있었네요? 하긴, 창문 깨지는 소리가 크긴 했으니까.”

그는 언제 무미건조한 얼굴을 하고 있었냐는 듯이 생기가 느껴지는 모습으로 계단을 걸어 올라왔다. 한 팔로 들고 있는 소년의 무게가 꽤 될 텐데도 전혀 무겁지 않은 기색이었다.

“창문에서 떨어진 모로스, 체스휘 씨가 처리했어요?”

“네, 하필 제가 지나갈 때 모로스가 날뛰는 게 눈에 띄어서요.”

마침 그때 눈에 보이지 않았다면 귀찮아서 그냥 내버려 뒀을 거라고 말하는 듯한 뉘앙스였지만, 그것보다는 체스휘의 팔에 붙잡혀 축 늘어진 소년이 더 신경 쓰였다.

“비비는 왜 그래요? 어디 다쳤어요?”

“아니요. 그냥 놀라서 그래요. 모로스한테 쫓기고 있었는데 다른 고용인들은 다들 혼자 도망치느라 바빠서, 좀 위험했거든요.”

이 녀석, 혼자 돌아다니지 말라니까 또 말을 안 듣고 쏘다녔구나?

나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비비를 찡그린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오늘은 정말 많이 놀랐는지, 그는 요즘 질색하던 체스휘의 옆구리에 바짝 붙은 상태에서도 한 번을 버둥거리지 않고 얌전했다.

“비비 너, 내가 위험하니까 혼자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지? 오래전에 말한 것도 아니고, 바로 오늘 오전에 당부했을 텐데?”

“잘못했어요….”

아무리 천방지축인 비비라도 두 번 연속으로 모로스와 마주친 건 타격이 컸는지, 핼쑥해진 얼굴로 순순히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한껏 풀이 죽은 비비를 내려다보며 작게 혀를 찼다.

다이안은 지금 수업 중이라 같이 놀 사람이 없어서 또 혼자 밖으로 나갔나 본데,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비비의 처우 개선이 시급했다.

“그런데 비비, 너도 지금 수업 들을 시간 아니야? 오늘은 수업 없어?”

“…….”

요 녀석…. 내 질문에 찔끔한 얼굴로 대답 없이 시선을 피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진짜 유지니아를 찾아가서 이 상황을 알려야 할 것 같았다.

“어쨌든 다친 곳이 없어서 다행이네.”

나는 일단 다이안에게 하듯이 비비의 머리를 대충 쓰다듬으며 체스휘에게도 다친 곳이 없는지 묻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어째서인지 내가 비비를 쓰다듬는 걸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던 체스휘가 나를 따라 시선을 들어 올렸다.

나는 문득 체스휘의 머리카락 위에 검은 꽃이 붙어 있는 걸 발견했다. 체스휘가 나보다 낮은 계단에 서 있지 않았다면 보이지 않았을 위치였다.

“체스휘 씨, 머리에 모로스의 흔적이 붙어 있어요.”

내 말에 체스휘가 이맛살을 구겼다.

“어디요? 여기?”

“아니, 그 옆에요.”

“이쪽?”

“거기 말고….”

일부러 그러는 건지, 체스휘의 손은 계속 엉뚱한 곳을 헛돌았다.

결국 그걸 보다 못한 내가 손을 뻗어서 그의 머리카락을 툭 치자, 검은 꽃이 부스러져 공기 중에 녹듯이 사라졌다.

“이제 됐어요.”

꼭 강아지들이 털에 묻은 물기를 털 듯이 고개를 작게 흔들던 체스휘가 나를 또 가만히 내려다봤다.

“다른 데 더 붙은 건 없어요?”

“없어요.”

“흐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잘 봐 봐요.”

없다니까 이 남자가 왜 이래?

체스휘가 한 계단 더 위로 올라오자 조금 전보다 눈높이가 가까워졌다. 그는 나한테 더 자세히 살펴보라는 듯이 내 앞에 머리를 살짝 숙여 보이기까지 했다.

그의 팔에 아직도 짐짝처럼 매달려 있던 비비가 이건 또 뭔 짓이냐는 듯이 의문이 담긴 구겨진 눈으로 그런 체스휘를 올려다보았다.

“혹시 머리카락 사이에 엉겨 붙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글쎄요, 없는 것 같은데….”

모로스의 흔적이 한 톨이라도 붙어 있는 게 그렇게까지 싫은 건가? 하긴, 확실히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니 그럴 수도 있었다.

어쨌든, 체스휘가 계속 집요하게 요구하길래 나도 그냥 눈으로만 보지 않고 손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쓸면서 혹시 검은 꽃이 붙어 있지 않은지 확인해 줬다.

그제야 체스휘는 만족스러운 기색이었다.

“1호실 양육자님, 여기 성수 가져왔습니다!”

때마침 잠깐 자리를 비웠던 고용인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고용인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내 뒤쪽에 서 있던 마리엔에게 관심이 생긴 듯이 체스휘의 눈이 미끄러졌다. 그런데 마리엔의 찢어진 팔에 시선이 닿는 순간, 어쩐지 체스휘의 눈이 가늘게 좁혀지는 것 같았다.

“아, 2호실 양육자님도 계셨군요! 밖으로 나간 모로스를 잡아 주셨다고 방금 오는 길에 들었는데, 혹시 2호실 양육자님은 다친 곳이 없으십니까?”

“난 필요 없어요.”

체스휘가 괜찮다고 하자 고용인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마리엔에게 다가갔다.

“1호실 양육자님, 팔을 이쪽으로 주십시오. 성수로 응급조치를 해 드리겠습니다.”

마리엔은 고용인의 말에 잠깐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이내 천천히 팔을 내밀었다.

병에 담겨 있던 성수가 붉게 젖은 마리엔의 팔에 뿌려졌다.

“나 방으로 갈래.”

그때 누군가 내 소매를 잡아당겨서 고개를 내려 보니, 비비가 체스휘의 팔에 배가 눌려서 불편한 듯이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양육자 형, 양육자 누나. 나 방까지 데려다줘.”

하지만 비비는 체스휘에게 내려 달라는 말은 하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더 엉겨 붙으면서 우리에게 말했다. 한동안 체스휘에게 데면데면하게 굴더니, 오늘 일로 또 그에게 친근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7호실.”

그런데 체스휘와 내가 막 비비를 데리고 자리를 떠나려 했을 때, 마리엔이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자, 아까처럼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는 마리엔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그녀는 루스카의 손을 잡은 채 조용히 서서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오늘 저녁에 잠깐 만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아까 마리엔이 나한테 무슨 할 말이 있어 보였던 건 단순한 착각이 아닌 것 같았다.

“꼭 해야 할 얘기가 있어.”

나는 대답을 기다리듯이 가만히 서 있는 마리엔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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