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한 대만에 기절했네.”
남자는 쟁반으로 머리를 한 대 맞자마자 픽 하고 쓰러졌다.
이 남자가 허약한 건지, 내 힘이 너무 셌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쟁반 한 대로 기절하다니 이 남자의 두개골 내구성은 총괄 집사만도 못했다.
“에구, 닥터 콘라드에게 주려고 가져온 게 다 쏟아졌네요. 빵에는 먼지가 너무 묻었고… 그래도 물은 반 정도 남았는데 이거라도 지금 마실래요?”
나는 축축한 손을 털면서 콘라드에게 물었다.
쟁반을 휘두르기 전에 그 위에 올려놓고 있던 것들을 다른 손으로 옮겨 들었는데, 빵은 실수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나마 들고 있던 컵 안의 물도 조금 전에 몸을 움직일 때 쏟아 버려서 콘라드에게 줄 게 별로 없었다.
나는 물컵을 다시 쟁반 위에 올린 뒤 콘라드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콘라드는 어제 봤을 때보다도 상태가 안 좋아진 모습으로 대답 없이 끙끙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방금 눈이 마주쳤던 것 같은데, 저 제이스인가 하는 남자의 뒤에 서 있는 나를 알아본 게 아니었나?
그러나 지금의 콘라드는 허공을 보면서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는 중이었다. 그런 걸 보면, 아무래도 내 말이 귀에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쟁반을 옆에 있는 의자에 내려놓고 바닥에 쓰러진 남자의 몸을 발로 뒤집었다. 그러자 줄곧 뒤통수만 보이고 있던 남자의 얼굴이 마침내 내 시야에 드러났다.
아, 그런데 뭐야. 이 사람이었어?
이제 보니까 방금 나한테 맞아 쓰러진 남자는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메이드 세라와 콘라드의 뒤를 이어 레드포드에 들어온 사이비 단체 소속의 남자. 그는 어제도 복도에서 나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방금 콘라드한테 악마 재배꾼이 어쩌구 하고 떠드는 걸 보고 같은 단체 사람인 걸 눈치채기는 했지만, 문에서 보이는 건 뒷모습뿐이라 어제 그 사람과 동일인인 줄은 몰랐다.
정보창을 확인하니 본명은 ‘제이스’, 현재 레드포드 저택에 잠입해서 사용 중인 이름은 ‘톰’이라고 떴다.
“이 사람, 혹시 닥터 콘라드가 끌어들인 거예요? 아닌데. 입도 막아 놨고, 별관 밖으로 따로 연락을 취할 방법도 없었을 텐데.”
나는 남자를 묶을 만한 천이나 줄 같은 걸 찾으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콘라드는 여전히 내 물음에 대답이 없었다. 나는 커튼 줄을 떼서 기절한 남자의 손목과 발목을 묶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콘라드의 상태가 영 별로인 걸 보니, 역시 그가 도움을 요청하려고 먼저 이 남자를 부른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럼 그냥 공교로운 우연인가?
하긴, 어제도 이 남자는 길 잃은 신입 고용인 코스프레를 하면서 저택을 여기저기 기웃거렸었다. 그러니 오늘도 저택 안을 돌아다니다가 별관까지 흘러들어왔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흐으…. 일부러… 게, 아닙니다….”
그때 콘라드가 또 뭐라고 중얼거리는 게 들려서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콘라드와 의자를 함께 묶고 있던 끈이 약간 헐렁해져 있는 걸 발견했다. 아무래도 조금 전에 이 제이스란 남자가 풀어 놓은 모양이었다.
“닥터 콘라드, 잠깐만요. 여기 거의 다 돼 가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하지만 콘라드는 기운이 빠져서 그런지, 아니면 정신이 다른 데 팔려서 그런지, 이번 기회에 스스로의 힘으로 방에서 빠져나갈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서둘러 남자를 묶은 다음 콘라드도 다시 제대로 의자에 고정시킬 생각으로 손을 빨리 움직였다.
“나도, 당신들을 …고 싶어서… 죽인 게 아니라고요….”
그러다 지금까지 거의 흘려듣던 콘라드의 말이 문득 내 귀에 꽂혀 들어와서 다시금 움직임을 멈췄다.
“그때는… 나도 어쩔 수 없이…. 정말입니다…. 나라고 이런 짓을 하고 싶었겠….”
가만히 듣자 하니, 콘라드는 누군가를 향해 변명하듯이 사과하고 있었다.
“으으, 머리야…. 응? 헉…! 뭐, 뭐야…! 내가 왜 이런 꼴로….”
앗, 그런데 잠깐 의식을 잃었던 남자도 하필 지금 깨어난 모양이다. 그는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면서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려고 하다가 다시 풀썩 쓰러졌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듯이 손발이 묶인 상태로 버둥거리던 남자가 나를 발견한 건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으악! 다, 당신 뭐야?!”
“크읏, 그러니까 이제 제발… 내 귀에서 그만 떠들어….”
“헉, 설마 당신은… 어제도 봤던 7호실 양육자?”
“내가 미안하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이제 그만 닥치란 말입니다….”
“그럼 설마 방금 내 머리를 치고, 사람을 방에 가둔 것도….”
“으으으으, 머리가 깨질 것 같아….”
무슨 돌림 노래하는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시끄러워?
콘라드와 제이스가 번갈아 가면서 뭐라고 떠들어대는 통에 아주 그냥 정신이 다 사나워졌다.
그래서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여전히 몸이 결박된 상태로 고개만 돌려서 나를 보고 있던 제이스가 헉, 하고 또 숨을 들이켰다.
그는 두 눈을 거칠게 흔들면서 잠깐 상황을 파악하는 듯했다. 그러다가 쭈그려 앉은 자세가 불편해서 내가 몸을 작게 들썩이기 무섭게, 경기하듯이 입을 벌려 외쳤다.
“저, 저는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정말입니다…!”
내가 때리려는 줄 알았나?
나는 움직임을 멈추고 앞에 있는 남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것만으로도 위협적인지, 남자가 턱을 움찔거렸다.
“못 보다니 뭘요?”
“그… 그러니까, 이 방에 뭐가 있었는지 같은….”
아, 방에 갇혀 있던 콘라드를 이대로 못 본 척하면 내가 풀어 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에이, 방금 둘이 대화까지 나누고 있었잖아요. 아주 오순도순하게.”
“아, 아닙니다! 저는 혼잣말을 한 겁니다! 절대 대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나하고 하고 있는 건 뭔데요?”
“이, 이것도 혼잣말입니다! 오늘 전 여기서 아무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눈치가 있다고 해야 할지, 그는 굳은 결의가 서린 눈으로 계속 이 방에서 콘라드와 나를 보지 못한 것으로 하겠다고 강력하게 어필했다. 일단 이렇게 몸이 포박된 상태로 여기에서 빠져나가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해서 내 비위를 맞출 심산인 것 같았다.
하지만 설마 이런 말을 내가 순순히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 거라면, 오히려 눈치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무릎 위에 팔꿈치를 얹은 채 손에 턱을 괴고 앉아, 어떻게든 내 앞에서 무해해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남자를 애잔하게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당신, 여기서 나가면 바로 단체에 연락할 거잖아요.”
“헉…. 무, 무슨 단체 말씀이신지….”
“아니다. 어차피 평일이니까 저택 문이 닫혀서 바로 연락은 못 하겠구나. 그럼 세라 언니나 다른 동료한테 말해서 어떻게 할지 같이 상의하려나?”
“헉.”
그는 내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사색이 되었다. 그가 콘라드와 같은 단체 소속이고 또 세라와도 동료인 것을 내가 이미 알고 있어서 놀란 모양이었다.
나는 창백한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는 남자를 가늘게 뜬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계속 살펴봤는데 수상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군.’
일전에 옷 가게의 점원인 척 올리비아를 찾아왔던 마벨과 샤벨은 정체를 들키자 곧바로 자폭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보아하니 이 제이스라는 남자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다. 이 와중에도 바쁘게 눈을 굴리는 걸 보니, 어떻게 이 상황을 빠져나갈지 아직도 고민 중인 모양이었다.
물론 단체에서 부여받은 역할이 그들과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내 눈에는 제이스에게 딱히 단체에 대한 충성심은 없어 보였다. 지난번에 수상한 모임에서 들었던 그의 말을 생각해 봐도 그랬다.
“어차피 너나 나나, 다른 사람들처럼 믿음이나 신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해관계가 일치하니까 이 자리에 있는 거잖아.”
“흐음.”
이 남자는 쉽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지긋한 시선을 받은 남자가 침을 꿀꺽 삼켰다. 긴장으로 굳어진 그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이는 게 보였다.
‘그나저나 체스휘는 어디에 있는 거지?’
문득 아까부터 모습이 보이지 않는 체스휘를 생각하며 나는 콧잔등을 찡그렸다.
미뉴엘의 옆에도 없고, 그의 방에도 없어서 혹시 별관에 있나 싶어 와 봤더니만….
그래도 덕분에 예상치 못한 침입자를 잡았으니 다행인가 싶기도 하고. 물론 별관에 잡아 둘 사람이 하나 더 늘어서 이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이 되기는 했다.
나는 여전히 헛소리 중인 콘라드와 창백한 얼굴로 바닥에 엎어진 제이스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고심했다.
쨍그랑!
바로 그때, 밖에서 무언가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별관 근처에서 들리는 소리는 아닌 듯했으나, 그 직후에 이어진 바깥의 소란을 보니 그냥 이대로 무시해도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바닥에 떨어져 있던 천 조각을 대충 주워 제이스의 입에 쑤셔 넣었다.
“일단 여기 얌전히 있어요. 다시 왔을 때 자리에 없으면 혼내 줄 거예요.”
“잠깐, 그 천은 너무 더럽… 으웁!”
제이스가 질색하며 버둥거렸으나 신경 쓰지 않고 그의 입을 막았다.
닥터 콘라드의 입이 아니라 눈을 가리고 있던 천인 걸 고맙게 여겨라, 이놈아.
나는 제이스와 콘라드를 뒤로 하고 별관을 빠져나왔다.
혹시나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재주 좋게 그들이 힘을 합쳐 달아난다 해도 어차피 저택 안이었다. 뛰어 봤자 벼룩이나 마찬가지란 걸 알고 있어서 그런지 두 사람을 같이 놔두고 와도 딱히 걱정되지는 않았다.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는 곳은 본관 건물이 있는 쪽이었다. 일단 다이안이 있는 곳은 아니라 마음이 놓였다.
나는 소란이 이는 곳으로 발길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