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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71)화 (171/300)

“미뉴엘이 착각했나 보네요. 제가 가지고 있는 건 이거예요.”

하지만 체스휘는 미뉴엘의 말을 따라 선뜻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보여 주었다.

그것은 과연 다이안이 설명한 것처럼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보석같이 생긴 동그란 물체였다. 색깔이 보라색인 것도, 살짝 납작한 모양인 것도 다이안의 설명과 비슷했다.

“하지만 이건 내 거니까, 다이안이 찾는 건 다른 거겠죠.”

체스휘가 빙긋이 웃으면서 다시 가볍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는 바람에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것도 자연스럽게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이미 관찰은 충분히 했기에 더 보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러네요. 비슷하게 생겼지만, 이건 아니겠네요.”

체스휘의 말을 믿기도 했지만, 어차피 그가 가지고 있는 것에는 다이안이 말한 긁힌 자국이 없었다.

나는 체스휘의 말에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였으나, 방금 느낀 묘한 기시감에 곧 고개를 갸웃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런 걸 전에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거 보석이에요?”

“린 씨, 이게 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런 나를 보고 체스휘가 갑자기 살짝 실망한 표정을 짓는 게 아닌가?

“린 씨가 선물로 준 거잖아요.”

“제가요?”

‘내가 언제….’라고 생각했지만, 다음 순간 바로 깨달음이 스쳐 지나갔다.

“아, 그때 그거!”

카드리고 저택에서 주워 와 얼떨결에 체스휘에게 준 걸 말하는 거였다.

어둠 속에서 언뜻 보고 단추 같은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어쩐지, 갑자기 그런 걸 선물로 달라고 해서 이상했는데 생각보다 값나가는 보석이었던 건가?! 그래서 그때 체스휘가 먼저 달라고 하고, 그렇게 마음에 들어 했던 건가?

“린 씨, 지금 이상한 생각 하고 있죠?”

그런데 내 표정이 좀 이상했는지, 체스휘가 찜찜한 듯이 콧잔등을 미세하게 찡그렸다.

“아니에요. 역시 세상은 물질만능주의… 가 아니라, 그냥 내가 준 게 생각보다 괜찮은 선물인 것 같아서 안심하고 있었어요.”

어쨌거나 진짜 단추가 아니었다니 그건 다행이다. 물론 체스휘가 달라고 해서 준 거지만, 그래도 선물로 단추는 진짜 좀 아니잖아.

“무슨 소리예요. 지금까지 내가 받아 본 선물 중에 제일 값지고 귀한 거라고 그랬잖아요.”

체스휘가 당연한 소리를 한다는 듯이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하기까지 해서 나는 갑자기 몹쓸 호기심이 생겼다.

“혹시 이거, 희귀한 보석인가요?”

비싼 보석이냐고 물어보는 건 아무래도 너무 속 보이고 노골적인 것 같아서, 최대한 에둘러 물었다. 작게 속닥거리는 소리를 들은 체스휘가 이제야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겠다는 듯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물론 아주 희귀하죠. 억만금을 주고도 못 구할 거니까.”

하지만 그는 곧 장단을 맞춰 주려는 듯이, 나를 따라 목소리를 낮추고 은밀한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작게 소곤거렸다.

“아마 어지간한 사람 목숨보다 귀할걸요.”

“헉, 그 정도예요?”

“네. 세간에서는 이런 걸 주고받으면 거의 결혼 예물을 주고받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던데….”

오오, 결혼 예물이라니 다이아몬드 정도 되는 건가?

“아…! 그러고 보니 제가 지금까지 그런 방면으로는 생각이 미치지 않아서, 린 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네요.”

그러다 갑자기 체스휘가 나와 대화를 나누다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이 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는 체스휘의 말에 혹하다가, 이야기가 왠지 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서 멈칫했다.

“그런 의미로 나한테 이걸 준 거였구나.”

“뭐요?”

“미안해요. 몰랐어요. 내가 린 씨의 깊은 뜻도 모르고.”

“뭐라고요?”

“린 씨…. 나한테 청혼하는 의미로 이걸 준 거였어요?”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나는 황당하게 체스휘를 쳐다봤다.

그는 정말 몰랐다는 듯이 짐짓 감격마저 어린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당연히 나는 이런 뻔한 수작질에 속을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그래서 눈살을 찌푸리며 떨떠름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지금 또 저 놀리는 거죠?”

“이제 알았어요?”

체스휘가 손가락으로 장난스럽게 내 코를 건드렸다.

“이건 보석 같은 게 아니에요. 물론 린 씨가 처음으로 준 선물이니까, 누가 억만금을 줘도 안 바꿀 건 사실이지만.”

나는 조금 뻘쭘해졌다. 지금 체스휘가 한 말은 내가 그에게 저 선물 같지도 않은 선물을 준 날 들었던 소리와 동일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체스휘는 그냥 내가 준 거라서 좋다는 소리를 했었다.

사실 방금은 한순간 저게 진짜 보석 같은 거라 체스휘가 좋아했던 건가 싶은 의심이 들었지만, 왠지 체스휘라면 진짜 내가 단추를 줬어도 좋아했을 것 같았다.

참, 무슨 헌 양말을 선물 받고 기뻐하는 집 요정도 아니고….

“찾았어요! 말씀하신 걸 찾았어요, 린 님…!”

그렇게 내가 살짝 아린 코를 매만지면서 묘한 눈으로 체스휘를 보고 있을 때, 문득 복도에서 사라로사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밖에 좋은 소식이 있나 본데요.”

무심코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내 얼굴 옆으로 탄탄한 팔이 뻗어져 나왔다.

체스휘가 조금 열려 있던 미뉴엘의 방문을 더 활짝 열어젖혔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문가에 느슨히 몸을 기대며 나를 향해 생긋 웃었다.

“가 봐요. 다이안이 기다리겠어요.”

“뭐야, 체스휘가 가지고 있던 게 정말 다이안 거 아니야?”

“미뉴엘…. 애초에 아니라고 말했을 텐데요.”

뒤에서 들려오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체스휘가 애석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걸 본 미뉴엘이 똥이라도 씹은 것처럼 표정을 우그러뜨렸다.

“뭐야, 내가 짜증 나니까 그런 눈으로 나 보지 말랬지?!”

“우리 사이에 그렇게 신뢰가 없었는지 몰랐네요. 요즘 내가 미뉴엘에게 소홀했나 봐요.”

“우리 사이는 무슨…! 징그럽게!”

아무래도 두 사람은 자기들끼리 할 이야기가 많아 보였다. 나는 그들을 두고 다시 다이안의 방으로 향했다.

다행히 사라로사가 찾아온 것은 다이안이 잃어버린 게 맞았다. 그녀의 말로는 세탁실 앞 복도에 놓인 화분의 뒤쪽에서 굴러다니는 걸 찾았다는데, 아무래도 다이안의 방에서 나온 세탁물에 물건이 섞여 들어갔다가 중간에 떨어진 모양이었다.

“찾아서 다행이네요. 그런데 그 귀퉁이, 이번에 떨어질 때 깨진 건가 봐요.”

“그러게…. 그래도 찾았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

다이안은 사라로사가 가져다준 것을 소중히 손에 감싸 쥐었다. 귀퉁이가 살짝 깨져서 속상한 눈치였지만, 그래도 일단은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깊이 안도한 기색이었다.

부적 같은 물건이라고 하더니, 다이안에게 정말 소중한 건가 보다. 나는 그에게 이걸 준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부분이 더 신경 쓰여서 다이안의 손을 자꾸만 힐끔거리게 되었다.

언뜻 보기는 했으나, 다이안의 손에 쥐어진 게 방금 체스휘를 만나서 본 것과 굉장히 흡사했기 때문이다. 생김새가 거의 똑같아 보일 정도로 말이다.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다이안에게 물었다.

“그거 부적 같은 거라고 했죠? 원석이나 장식품 같은 거예요?”

“아니. 린도 이런 거 전에 본 적 있잖아. 생각 안 나?”

“제가요?”

그런데 다이안의 대답이 예상 밖이었다.

혹시 체스휘가 가진 걸 말하는 건가 싶었지만, 다이안이 그런 걸 알 리는 없어 보였다.

어째서인지 다이안은 잠깐 대답을 망설이는 듯하다가, 곧 내 귀에 대고 작게 속닥거렸다.

“이건 린만 알고 있어야 돼. 비밀이야. 알았지?”

응? 이렇게 진지하고 심각할 일인가?

다이안의 비장한 얼굴을 보니 왠지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고 나도 그를 따라 결연한 척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어진 다이안의 말을 듣고 나서는 저절로 웃음이 쏙 들어갔다.

“이거, 사실은 악마의 화원에 있는 씨앗이야.”

당연히 그 말을 듣고 나는 기절할 듯이 놀랐다.

“뭐라고요?! 이런 위험한 걸 왜 가지고 있어요?!”

“아, 아니야! 이건 폭발하는 거 아니야! 잠깐만, 린…!”

내가 다이안의 손에 있는 걸 당장이라도 빼앗아서 집어던질 것처럼 푸닥거리자 그는 당황해서 서둘러 덧붙였다.

“이건 발아하지 않는 거라고 했어! 그러니까 위험한 게 아니라고!”

그 말을 순순히 믿기에는, 지난번에 비비의 장난질에 데였던 기억이 생생했다. 하지만 다이안이 꼭 도토리를 지키는 다람쥐처럼 절박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어서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발아하지 않는 씨앗이라고요?”

“응! 실제로도 몇 년 동안 계속 이 상태였다고 하니까 문제될 건 없을 거야!”

죽은 씨앗이라는 의미인가?

나는 영 미심쩍어서 방금 다이안의 손에서 빼내 온 동그란 물체를 찡그린 눈으로 자세히 살펴봤다.

하 씨, 어쩐지 자꾸 어디선가 본 것처럼 생겼다 했더니만.

과연 광택이나 생김새가 일전에 다이안이 비비에게 속아 악마의 화원에서 가져왔던 씨앗과 비슷했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지금까지는 보석처럼 마냥 예쁘다고 생각했던 게 더없이 불길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이걸 누가 준 건데요?”

찜찜함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기 위해서는 이 괴상한 씨앗이 다이안의 손에 들어오게 된 경위를 알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혹시 나쁜 사람이 못된 마음을 먹고 다이안에게 위험한 걸 준 거라면 큰일이었으니까.

“예전에 알던 사람이….”

“제가 좀 더 구체적으로 대답해 달라고 하면, 혹시 말하기 어려운 사람이에요?”

눈을 마주하며 부드럽게 묻자 다이안이 곤혹스러운 듯이 입술을 우물거렸다. 나는 그를 다그치지 않았다. 가만히 대답을 기다리자, 잠시 후 다이안이 머뭇거리면서 내게 말해 주었다.

“예전에 저택에 있던 메이드야.”

“엠버요?”

순간 느낌이 와서 돌직구를 날리자 다이안의 어깨가 흠칫 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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