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70)화 (170/300)

다이안이 이렇게 화가 난 건 처음 봤다. 이렇게 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흥분한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도 처음이었다.

예전에 비비가 일부러 그를 속여 위험에 빠트렸을 때도 이 정도로 화를 내지는 않았던 것을 보면, 확실히 이건 이례적인 일이라 할 만했다.

그러나 비비는 다이안이 왜 이러는지 영문을 몰라서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왜 이래? 옷 갈아입으러 갔다가 뜬금없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요즘 저택에 있는 사람들의 물건을 하나씩 몰래 가져가서 숨기고 있잖아.”

비비의 얼굴은 정말 무고해 보였으나, 다이안의 눈빛은 여전히 누그러지지 않았다.

“내 방에 있던 것도 네가 가져간 거 아니야? 그런 장난 하나도 재미없으니까 빨리 돌려줘.”

그래도 애써 분노를 삭이려는 듯이 다이안이 감정을 억누르려 노력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가 비비를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확실했고, 비비도 그것을 느껴서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다.

비비는 얼굴을 구기며 자신의 어깨를 붙잡은 다이안의 손을 떼어 내려 했다. 하지만 그것이 수월하지 않자 더 성이 난 눈치였다.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 갑자기 뭐 하는 짓이야? 난 네 방에 있는 물건은 쓰레기 하나 안 가져갔어!”

“거짓말하지 마! 그럼 내 방에 있던 게 혼자서 어디로 사라졌는데?”

“내가 알 바야? 하, 그래. 일단 들어나 보자. 도대체 뭐가 없어졌다는 건데?”

“내 옷장 두 번째 서랍에 있던 거 말이야!”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너 정말 이렇게 계속 모른 척할 거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껏 화해한 것처럼 두 사람의 사이가 좋아 보이더니, 지금은 오히려 분위기가 더 살벌해졌다.

“잠깐! 잠깐만요.”

이러다가 또 뽀시래기들의 관계가 악화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나는 상황을 더 지켜보지 않고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다이안. 중요한 물건이 없어져서 속상한 건 알겠지만, 제대로 설명을 해야지 비비도 이해하지 않을까요?”

비비의 어깨를 붙든 다이안의 손 위로 내 손을 겹치자, 다이안이 몸을 움찔 떨면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 너무 흥분한 것 같으니까 일단 이것부터 놓고 천천히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내가 그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최대한 평상시와 비슷한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자, 다이안도 서서히 마음을 가라앉혀 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그에게 덧붙여 말했다.

“특히 오늘 아침에는 세탁실에 보냈던 각 방의 물건이 뒤바뀌는 일도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혹시 그 잃어버린 물건도 옷장 서랍에 두었다가 빨래통 같은 데 실수로 섞여 들어갔을지도 모르고요.”

아무래도 이 말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마침내 다이안의 손이 비비의 어깨에서 완전히 떨어졌다. 여전히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단 침착하게 대화로 이 상황을 해결할 마음을 가진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비비는 갑자기 봉변을 당해서 엄청나게 억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지난번의 일로 자신이 다이안에게 신뢰를 잃은 걸 알긴 아는지, 그는 혼자 씩씩거리기만 할 뿐 다이안에게 더 성을 내지는 않았다.

“그리고 정확히 뭐가 없어졌는지 말해 줘야 다 같이 찾든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혹시 말하기 어려운 거예요?”

다이안이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 건 처음이라 아무래도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최대한 그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조용히 물었다.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보석같이 생긴 동그란 물체야.”

다이안은 무언가를 망설이는 듯한 모습으로 잠깐 말이 없다가, 이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색깔은 보라색이고. 살짝 납작하게 생겼는데, 한쪽 면에 긁힌 자국 같은 게 여러 개 있어.”

“난 그런 거 본 적 없어!”

다이안이 말을 끝내자마자 비비가 꼬리 밟힌 토끼처럼 소리쳤다.

확실히 무턱대고 비비를 의심하는 것도 옳지 않은 일이기는 했다. 아마 다이안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터였다.

“마지막으로 드레스룸에 있는 걸 확인한 게 언제인데요?”

“어제 저녁 식사.”

“그럼 이렇게 해요.”

내가 짝 소리가 나게 손뼉을 치자, 아이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다이안 도련님은 혹시 옷장 구석이나 바닥 같은 데 잃어버린 물건이 떨어져 있지 않은지 방을 좀 더 찾아보고, 저는 지금 바로 방 청소를 담당하는 메이드에게 혹시 발견한 게 없는지 확인해 볼게요. 그러고 나서도 못 찾으면, 그때는 다른 방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로 해요. 혹시 모르니까 세탁실에도 알아보고요.”

다이안도 별다른 수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반대하지 않았다. 그는 입술을 꾹 깨문 뒤 몸을 돌려 움직였다.

비비는 불만과 불편함이 뒤섞인 얼굴로 입술을 비죽거렸다. 하지만 비비는 의외로 화를 내면서 자신의 방으로 팽하니 가 버리는 게 아니라, 다이안을 도와주려는 듯이 주춤거리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내가 도와줄까?”

“됐어.”

“그래도 혼자 찾는 것보다는 둘이 보는 게 더 빠를 텐데….”

“…그럼 넌 저쪽 바닥 좀 봐 줘.”

“알았어!”

나는 혹시 또 둘이 싸울까 봐 불안했으나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의 분위기는 생각만큼 나쁘게 흘러가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마음 놓고 방을 나설 수 있었다.

***

“글쎄요. 저한테 잘못 들어온 물건은 없는데.”

체스휘가 난감한 듯이 웃으며 내 물음에 답했다.

“방은 잘 찾아봤고요?”

“네, 그런데 아무 데도 안 보여서요.”

결국 다이안이 잃어버린 물건은 그의 방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다이안의 방을 청소한 메이드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일단은 고용인에게 세탁실을 확인해 달라고 말한 뒤 가까운 위치에 있는 아이들의 방부터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이번에는 미뉴엘의 차례였는데, 마침 체스휘도 그와 함께 있었다.

체스휘가 나를 보자마자 눈에 이채를 띠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가로 다가온 데 반해, 미뉴엘은 소파에 거만하게 팔짱을 끼고 앉아 혀를 쯧쯧 찼다.

“걔는 칠칠맞지 못하게 뭘 또 잃어버리고 그런대? 중요한 물건은 나처럼 간수를 잘해야지.”

어쨌든 이 방도 허탕이구먼.

나는 잔뜩 실망할 다이안을 떠올리며 표정을 흐렸다. 조금 전에도 그는 실의에 잠긴 얼굴로 울적한 기운을 사방에 흘려대고 있었다.

“다이안 도련님한테 되게 소중한 물건인가 봐요.”

“응. 나한테… 아주 중요한 거야. 예전에 누가 멀리 떠나면서 준 건데…. 부적 같은 거라고 했어.”

물론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다이안의 예민한 태도를 봤을 때 잃어버린 그 물건이 그에게 아주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참담해 하는 얼굴을 보니 무슨 일이 있어도 그에게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 줘야겠다는 굳은 결의가 생겨났다.

“혹시 비슷한 거라도 보게 되면 말해 줘요. 저희 애가 간절히 찾고 있어서요.”

“그럴게요.”

체스휘는 내 말에 알겠노라며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바로 뒤돌아서 방을 나서려다가 한순간 멈칫했다.

체스휘는 평소처럼 나른함과 여유가 동시에 느껴지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은 오늘도 체스휘의 옆에 붙어 있지 않았다.

이렇게 체스휘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니, 어젯밤에 느꼈던 미묘한 껄쩍지근함이 다시금 나를 부채질하는 듯했다.

“그럼 가 볼게요.”

하지만 일단 석연찮은 마음을 뒤로 하고 별다른 말 없이 미뉴엘의 방을 나서려고 했다. 그러나 눈치 빠른 체스휘는 다른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내 얼굴을 보고 무언가를 깨달은 눈치였다.

그는 나를 배웅하려는 듯이 따라와, 내게 고개를 슬쩍 기울여 작게 낮춘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닥터 콘라드한테는 새벽에 내가 들렀으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상태도 아주 멀쩡하고, 그대로 며칠은 더 놔둬도 괜찮겠더라고요.”

“앗, 닥터 콘라드….”

그러고 보니 잠깐 잊고 있었다. 아무튼 말로는 계속 콘라드를 방치해 둘 것처럼 으름장을 놨지만 정말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체스휘가 먼저 들러 봤다니 다행이었다. 며칠은 더 놔둬도 될 것처럼 멀쩡한 상태였다는 말은, 곧이곧대로 믿어도 될지 사실 의심스럽지만….

그런데 뭐야? 그 말을 해 놓고 왜 이렇게 뭔가를 기대하는 듯한 눈으로 날 보는 거지?

“아, 예…. 그랬구나. 잘했어요.”

나는 체스휘의 눈빛에 떠밀려 반사적으로 그를 칭찬했다.

그러면서도 긴가민가했는데, 아무래도 이게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내가 애매한 기분으로 노고를 치하해 주자, 체스휘의 미소가 한결 만족스러운 듯이 짙어졌다.

“뭘요. 린 씨 일인데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죠.”

“둘이 뭘 그렇게 소곤거려?”

그때, 체스휘의 뒤에 있던 미뉴엘이 수상하다는 듯이 우리를 가늘게 뜬 눈으로 쳐다보았다.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 난 진짜로 이만….”

“아, 잠깐 가지 말고 기다려 봐.”

나는 진짜로 방문을 나서려 했다. 하지만 미뉴엘이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대충 다리 위에 엎어 놓으며 나를 불렀다. 그는 갑자기 ‘흐음’ 하고 오묘한 여운을 남기는 소리를 내면서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니까, 내가 다이안이 찾고 있는 거랑 비슷한 걸 보긴 한 것 같은데.”

나는 막 방을 나서려다가 미뉴엘의 말을 듣고 얼른 다시 몸을 돌렸다.

“정말? 언제? 어디서 봤는데?”

“오늘 아침에. 체스휘한테서.”

반사적으로 미뉴엘이 지칭한 사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체스휘, 아까 소파 앞에서 떨어뜨린 거 주머니에 다시 넣었잖아. 지금도 가지고 있지? 한번 꺼내 봐.”

체스휘는 어딘가 살짝 찡그린 듯이 미소 지은 얼굴로 미뉴엘을 보고 있었다. 미뉴엘은 천연덕스럽게 그런 체스휘를 마주했는데, 어쩐지 그의 눈빛이 체스휘를 도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분 탓인지 체스휘의 눈빛도 약간 서늘해 보였다. 어딘가 약간 성가시고 귀찮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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