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68)화 (168/300)

숙성된 영혼에서는 아주 먹음직스러운 달콤한 냄새가 났다.

빈 육신을 훔쳐 타인의 삶을 흉내 내고 있는 탐욕스러운 영혼. 그들에게서만 풍기는 부패한 향기. 그것을 통째로 집어삼킬 때 배 속에 가득 들어차는 절망과 분노로 뒤범벅된 절박한 비명은 몇 번을 들어도 기분을 고양되게 했다.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은 그런 것들을 생각하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끼아아악…!”

이미 본 주인을 잃어 빈 그릇이나 다름없던 육신은 그 위에 덮어 씌워져 있던 영혼을 그녀에게 빨리자마자 검은 꽃이 되어 부서졌다.

검은 베일 밑으로 언뜻 드러난 붉은 혀가 입맛을 다시듯이 입술을 할짝였다.

오늘도 만족스러운 포식이었다. 오래된 와인처럼 깊은 풍미를 더하며 숙성된 영혼은 아무리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은 검은 꽃을 밟고 미끄러지듯이 차가운 복도를 걸어가 지하실로 향했다.

여느 때처럼 애틋한 움직임으로 검은 문에 얼굴을 살짝 기대자, 희미한 진동이 전해져 오기 시작했다.

우웅.

지금까지 그녀가 아무리 손을 대도 변화가 없던 문은 이제 아주 잠깐이나마 그녀에게 반응을 보여 주었다.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은 희열에 몸을 떨었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그녀는 곧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테고, 아무도 그것을 막지 못하리라. 드디어 그녀를 방해하고 있는 모든 것을 넘어서, 이상향에 가까운 완벽한 삶을 손에 넣을 수 있을 테니.

기쁨에 고양감을 느끼고 있던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은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것에 작게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혹시 전부터 눈독 들이고 있던 그 특별한 영혼도 맛볼 수 있을까?

이 저택에 있는 누구보다도 황홀할 정도로 그윽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는 그 영혼. 분명 그 무엇보다도 달콤하고 그 안에 든 힘 또한 강력할 텐데.

아까 복도에서 그 건방진 암고양이 같은 여자를 발견해 막 손을 뻗으려 했을 때,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나타나 경고하듯이 그녀를 냉연히 응시하던 눈빛이 떠올라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녀가 살아생전에 너무도 가지고 싶어 집착했던 남자는 여전히, 아니, 전보다 더 강하게 그녀의 욕망을 자극하며 안달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더욱이 단순히 지켜보기만 하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여전히 누구보다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긴 하지만, 이렇게 뒤에서 도움을 주고 있는 걸 보면 그 역시 자신의 한결같은 애정에 마음을 돌리기로 한 게 분명했다.

그녀가 이 저택에 와서 거의 완전히 손에 넣을 뻔했던 사랑스러운 아이와 사랑하는 남자. 이제 곧 그 전부가 이 손안에 들어오게 되리라.

그것을 위해서 그녀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정말 무슨 짓이라도….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은 입술을 길게 찢어 웃으며 문에서 돌아섰다.

얼마 남지 않은 그 완벽한 날을 하루라도 빨리 맞이하기 위해 오늘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

‘어제 복도에서 내가 본 건,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이었나?’

다음 날 아침, 나는 세수를 하면서 어젯밤의 일을 곱씹었다.

지난밤에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옷자락을 봤을 때는 이유도 없이 기이한 확신이 들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는지 영 긴가민가했다.

더군다나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은 한동안 내 앞에 옷자락 한번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이 미심쩍은 기분이 들었다.

만약 내가 착각한 게 아니라면, 요즘은 밤에만 활동해서 눈에 띄지 않는 거였나?

게다가 어제 방을 나서기 전까지의 감각은 명료한 데 반해, 복도를 걷던 어느 순간부터 또 내 의식이 몸에서 분리되기라도 한 것 같은 낯설면서도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예 어젯밤의 일 자체가 꿈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났을 때 잠옷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다 시든 꽃을 보면, 어제 침실 밖으로 나간 것 자체가 꿈인 건 아니었다. 그럼 체스휘를 만난 것도 사실일 것이다.

“7호실….”

“어우 씨, 깜짝이야.”

바로 그때, 등 뒤에서 음울하고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젯밤에 체스휘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고 있을 때라 누군가가 나한테 접근하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귀신 생각을 하면 귀신이 온다더니, 한순간 그 말이 진짜 현실이 된 줄 알고 놀랐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자 시야에 들어온 건, 낯익은 남자의 얼굴이었다.

“레이븐 씨, 왜 그렇게 음침하게 나타나요? 유령인 줄 알았잖아요.”

4호실 양육자 레이븐이 내 뒤에 서 있었다. 나는 그를 흘겨보다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뜩이나 족제비 상인 레이븐의 얼굴이 더 핼쑥해져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더군다나 레이븐은 퍽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기까지 했다.

“7호실. 내가 그, 어제 올리비아 씨한테 이상한 소리를 들었는데 말이야.”

그의 입에서 올리비아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깨달았다.

“설마 진짜 2호실이랑 만나는 거야? 아니지?”

아니나 다를까, 레이븐이 내게 캐묻듯이 꺼낸 말은 예상한 그대로였다.

이런 말은 좀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올리비아는 그다지 입이 무겁지 않아 보였다. 그러니 최소한 같은 양육자들 사이에서는 소문이 퍼졌을 줄 알았다. 더군다나 그녀와 함께 있을 때 주변에 있던 고용인들도 입을 다물고 있지 않았을 테고….

나는 다이안의 귀에 이 소문이 들어가는 것도 시간 문제일 거라는 생각에 입맛이 써졌다.

아무튼 조금 성가시기는 해도, 우리 애가 바로 앞에서 듣고 있는 자리도 아니니 부득불 아니라고 잡아뗄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어딘가 초조한 낯빛으로 내 앞에 서서 대답을 기다리는 레이븐에게 그냥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게 됐네요.”

레이븐은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던 건지, 내가 쉽게 수긍하자 턱이 빠질 듯이 입을 크게 벌렸다.

“지, 진짜 2호실이랑? 5호실이 뭘 잘못 안 게 아니라?”

그런데 너무 경악하는 거 아니야?

“그, 그 이중인격자랑 어떻게! 말도 안 돼…! 이건 말도 안 된다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레이븐이 펄쩍 뛰면서 외친 소리를 듣고 한순간 뜨끔했다.

이중인격자? 의외로 체스휘의 본질을 제대로 관통한 듯한 표현이었다.

그렇다고 체스휘가 지킬과 하이드처럼 군다는 의미는 아니었지만, 그의 안에 두 사람의 존재가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레이븐은 예전부터 여기저기 헛발질을 하다가 한 번씩 얻어걸려서 정곡을 찌르는 느낌으로 예리하게 굴 때가 있었다.

“이중인격자라니, 레이븐 씨, 말이 좀 심하네요.”

“지금 그 녀석 편드는 거야? 아니, 도대체 그 앞뒤 다른 놈 어디가 좋은 건데…!”

왜 이래, 진짜….

나는 지나치게 흥분하는 레이븐을 이상한 사람 보듯이 쳐다보았다.

남이사 내가 누구를 좋아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라고. 그런데 밤이라도 샌 것처럼 초췌한 얼굴을 한 채로 뭔가 분하고 억울한 듯이 씩씩거리고 있는 레이븐의 모습을 보자 영 찝찌름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한동안 봉인하고 있던 호감도를 열어 확인했다.

[호감도 92/100]

나도 모르는 사이에 멋대로 90이 돌파한 호감도를 보고 흠칫했다.

아, 아니, 내가 뭘 했다고 이래? 그동안 레이븐하고는 기억에 남을 만한 특별한 일도 없었는데?

기껏해야, 그냥 오다가다 만나서 레이븐이 바보 같은 헛소리를 지껄이면, 난 거기에 대충 호응하거나 타박하는 정도였단 말이다.

물론 레이븐은 보이는 것처럼 가볍고 쉬운 남자라, 예전에도 혼자서 나에 대한 호감도를 80까지 키웠었다. 하지만 설령 공략 대상이라 해도 이 시점에 호감도가 90까지 돌파한 건 웬만해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2호실, 그놈이 얼마나 음흉한 놈인 줄 알아? 이 저택에 있는 사람들 중에 제일 속이 시꺼먼 게 바로 그 2호실일걸? 7호실은 지금 속고 있는 거야…!”

“딱히, 속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래도 팔이 안으로 굽어서 그런지, 레이븐이 계속 체스휘의 흉을 보자 나도 모르게 그를 두둔해 주게 되었다.

사실 레이븐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애초에 내가 처음 생각한 것처럼 체스휘가 마냥 순진하고 착한 남자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이제 나도 알고 있었다.

생각보다 여우 같은 성격에 질투심도 많고, 그런 주제에 내 앞에서는 내숭도 곧잘 떠는 듯했으니까. 게다가 비밀도 많았고….

하지만 레이븐은 내가 체스휘를 믿어서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했는지, 답답하다는 얼굴로 다시 말을 이었다.

“그건 7호실이 그 녀석에 대해 잘 모르니까 하는 말이야…!”

그러나 레이븐의 그 말은 좀 웃겼다. 무의식중에 레이븐을 보고 오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레이븐 씨는 체스휘 씨에 대해 잘 알아요? 아마 아닐 것 같은데….”

이건 딱히 레이븐의 앞에서 체스휘의 편을 들려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냥 나보다도 체스휘에 대해 잘 모를 것 같은 사람이 촉은 또 은근히 좋아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재미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레이븐은 또 내가 체스휘에 대한 믿음으로 이런 소리를 하는 거라고 착각했는지, 말문이 막힌 얼굴로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호감도 93/100]

그런데 느닷없이 호감도가 올랐다. 나는 황당함에 떨떠름하게 콧잔등을 찌푸렸다.

처음에 세라한테 경멸당하면서도 꿋꿋이 집적거리는 걸 보고 눈치챘지만, 진짜 이 녀석 취향이….

역시 괴롭힘당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난 그런 성향이 아니란 말이다.

나는 레이븐으로부터 슬금 뒷걸음질 쳤다.

“아무튼 2호실은 아니야! 차라리 6호실을 좋아한다고 하면 그게 더 이해되겠어!”

“가만히 있는 6호실은 왜 끌어들여요? 그리고 레이븐 씨의 이해나 인정은 딱히 필요 없거든요.”

하여튼, 날 마음에 품고 있으면 빨리 고백이나 하고 차이든가.

아무것도 안 하고 옆에서 깔짝거리기만 하면서 이렇게 뒷북을 치는 걸 보니 애잔하고 한심하기만 했다.

그보다 6호실이라니, 그동안 완전히 잊고 있던 이름이잖아?

그래도 가끔 마주치는 다른 양육자들과 달리 6호실은 존재감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이 저택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조차 아예 잊고 있었다.

“저기….”

“헉!”

“왁 씨, 깜짝이야!”

그런데 호랑이도 부르면 나온다더니.

때마침 갑자기 나타난 6호실 양육자의 모습에 레이븐과 나는 동시에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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