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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63)화 (163/300)

“난 바쁜 사람이에요, 닥터 콘라드. 게다가 내 뒤통수를 친 사람 옆에서 24시간 대기하면서 기다려줄 정도로 인내심이 많지도 않고.”

나는 콘라드의 발을 가볍게 툭툭 치면서 냉담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혼자 머리 좀 식히면서 내가 물어본 말에 어떻게 대답할지 잘 생각해 봐요.”

물론 콘라드가 지금 나와 떨어지자마자 또다시 환청이 들리는 것처럼 고통스러워하는 걸 뻔히 보면서 하는 소리였다.

“아까 닥터 콘라드가 관리자의 권한으로 우리를 잘라 버릴 수도 있다고 협박했지만, 우리한테도 양육자의 권한이란 게 있거든요.”

콘라드가 두 번이나 내 신원 조사를 맡긴 걸 보니까, 어차피 내가 그와 같은 단체에 속한 동료가 아닌 걸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는 듯했다. 그러니 이렇게 된 마당에 정체를 숨기려고 애쓸 필요도 없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도 콘라드의 어깨를 잡고 그에게 고개를 조금 더 가까이 기울여 협박하듯이 소곤거렸다.

“수틀리면 당신 그냥 확, 모로스로 몰아서 없애 버릴 거야.”

단순히 콘라드를 겁주기 위해 허풍을 떠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콘라드와 미운 정이 든 건 사실이지만, 어쨌거나 내 최우선은 다이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의 안전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없애 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저택의 주치의 하나쯤, 그렇게 죽어 버려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걸? 우리한테 책임을 묻지도 않을 테고.”

“어,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내 눈을 마주한 콘라드가 전기라도 오른 듯이 몸을 파르르 떨었다. 내가 겉으로만 으름장을 놓고 있는 게 아니란 걸 그도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렇네요. 가끔은 혼자 조용히 명상하는 것도 나쁘지 않죠.”

그때, 내 뒤에 가만히 있던 체스휘가 입술 사이로 바람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낮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평일에는 고용인들도 별관에 잘 오지 않으니 편안하게 쉴 수 있을 거예요. 혼자 휴가라니 부럽네요, 닥터 콘라드.”

그는 나를 따라 의자에 기대고 있던 상반신을 바로 세우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입은 막아 둘까요?”

“그러네요. 시끄럽게 굴 수도 있으니까 그게 좋겠어요.”

그의 물음에 나는 고민하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콘라드가 또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듯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지만, 방금도 말했듯이 내가 알 바냐? 먼저 나와 우리 다이안에게 나쁜 짓을 하려고 한 건 이 녀석이었다.

“자, 잠깐만요…! 7호실 양육자님, 기다리… 읍!”

그래도 체스휘보다는 나한테 비벼 볼 만하다고 생각했는지, 콘라드가 애타게 나를 불렀다. 하지만 체스휘는 바닥에 떨어진 더러운 천 조각을 주워 야멸차게 그의 입을 막아 버렸다.

그러고 난 뒤 우리는 콘라드를 두고 방에서 빠져나왔다.

나는 콘라드가 입을 열지 않으면 차라리 세라 쪽을 파 볼까 생각하며 별관을 나섰다.

누군가가 살그머니 내 옷소매를 붙잡아 온 건 바로 그때였다. 이 저택에서 나한테 이런 짓을 할 만한 사람은 다이안밖에 없었던 터라, 지금 그가 이런 곳에 있을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한순간 흠칫했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자 내 눈에 들어온 건, 뒤에서 짐짓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는 잘생긴 남자였다.

“뭐, 뭐예요.”

“방금처럼 박력 있는 모습도 멋있어요, 린 씨.”

체격도 좋은 성인 남자가 귀엽게 소맷자락을 붙잡고 있는 게 징그러울 만도 한데, 역시 세상 모든 일의 개연성은 얼굴인 건지 체스휘에게는 이런 모습도 퍽 잘 어울렸다.

아무튼, 느닷없는 칭찬에 나는 살짝 황당했다.

내가 한 일은 콘라드를 협박한 것밖에 없는데, 보통 이런 걸 보고 박력 있다면서 좋아하던가?

게다가 지금은 여러 가지로… 이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지 않나?

미소 지은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던 체스휘가 고개를 내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기울이며 속삭이듯이 다시 한번 귀여운 소리를 했다.

“뽀뽀해도 돼요?”

“…갑자기요?”

“갑자기 하고 싶어졌어.”

뜬금없이 뭐야, 싶었지만 그래도 밖이라고 내 의견을 물어보는 게 어디인가 싶었다.

나는 잠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앗, 아니. 다행이긴 뭐가? 별로 허락해 줄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내가 주위를 살피는 걸 수락의 의미로 알아들었는지, 체스휘가 다소 조급하게 느껴지는 움직임으로 고개를 숙였다.

물론 그가 나한테 한 건 말처럼 귀여운 뽀뽀가 아니었다. 체스휘는 내가 숨이 막혀서 어깨를 퍽퍽 때리고 나서야 떨어졌다.

내가 새빨개진 얼굴로 헉헉거리면서 숨을 몰아쉬는 걸 보고 체스휘는 또 예쁘게 웃었다.

“헉…. 내가, 그만하라고… 했죠? 진짜 매번 이럴 거예요?”

뭐야, 진짜 갑자기? 밖인데 적당히 하지 않고…!

“미안. 참기가 어려워서요.”

체스휘가 젖은 입술을 손가락으로 훔치면서 별로 미안하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체스휘의 눈빛이 살짝 이상했다. 그냥 지나가듯이 보면 티가 잘 안 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요한 척하는 눈에 위험스러운 빛을 내는 뭔가가 박혀 있었다.

“린 씨가 다른 사람한테 냉담하게 구는 걸 보니까 흥분돼서 어쩔 수 없었어요.”

체스휘가 태연한 얼굴로 읊조린 소리를 듣고 나도 모르게 그에게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이, 이 남자가? 대낮부터 못 하는 소리가 없네?

“아니, 그렇게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그보다 어쩐지 아까보다 기분이 좋아 보이더라니, 그런 이유 때문이었나? 역시 아까 콘라드한테 질투한 거 맞잖아.

“난 먼저 갈 테니까 체스휘 씨는 따라오지 마요!”

“목적지가 같은 방향인데요.”

“사내 연애의 기본 수칙 몰라요? 같이 나타나면 티 난다고요! 내가 가면 기다렸다가 5분 후에 움직여요!”

체스휘가 웃는 건지 찡그리는 건지 모를 얼굴로 나를 쳐다봤지만, 그를 무시하고 뒤돌아서 빠른 걸음으로 혼자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다 나왔다.

이게 무슨 일이래? 방금… 체스휘의 말에 나도 모르게 살짝 몸이 동했다.

왠지 체스휘와 하루 종일 이런 식으로 붙어 다니다가는 나조차 막지 못할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이제부터라도 비밀 사내 연애의 선을 지키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오늘따라 이상하게 햇볕이 뜨겁다고 생각하며 거의 뛰다시피 체스휘가 있는 자리를 벗어났다.

***

“린 님! 물어보신 걸 알아 왔어요.”

그날 저녁, 약속했던 대로 사라로사가 나를 찾아왔다.

그녀는 첩보물이라도 찍는 듯이, 미행이 붙지는 않았나 확인하는 것 같은 몸짓으로 재빨리 복도를 살핀 뒤 민첩하게 방문을 닫았다.

“멜로디아라는 메이드는 저택에 없다고 하던데요?”

그리고 사라로사가 내게 다가와서 속닥거린 말을 듣고, 나는 좀 심각하게 미간을 좁힐 수밖에 없었다.

“여러 부서에 다 물어봤는데,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저택에서 꽤 오래 일했다는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모르는 걸 보면, 중간에 그만두고 나간 것도 아닌가 봐요.”

내가 사라로사에게 부탁한 건, 저택에서 일하는 고용인들에게 가서 멜로디아에 대해 물어보라는 것이었다. 예전에 내가 엠버에 대해서도 알아봐 달라고 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사라로사는 내 말에 호기심을 보이면서도 군말 없이 알겠노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직접 알아보려면 그럴 수도 있었지만, 나는 다이안을 케어해야 해서 시간을 따로 많이 낼 수가 없었다. 또 오늘은 콘라드의 일까지 더해져서 쉬는 시간에 별관까지 왔다 갔다 하느라 바빴다.

게다가 원래 저택에서 일하는 고용인들만의 결속력이 있는 법이기에, 같은 메이드인 사라로사를 통해 알아보는 쪽이 더 양질의 정보를 얻어낼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이건 의외라고 해야 할지, 예상대로라고 해야 할지….

도서관에서 마리엔과 대화했을 때부터 이상함을 느꼈지만, 그녀만이 아니라 저택의 사람들 모두가 멜로디아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소리에 괜히 뒷덜미가 스산해졌다.

“그럼, 샤밀리아는요? 그쪽에도 확인해 봤어요?”

“네에…. 직접 만나서 물어봤는데 멜로디아라는 이름을 가진 메이드하고 같은 방을 쓴 적은 없다는데요? 계속 혼자서 독방을 쓰고 있다나 봐요.”

나도 모르게 소리 죽여 사라로사에게 묻자, 그녀도 나를 따라서 덩달아 작게 소곤거리며 대답했다.

헉, 샤밀리아까지 멜로디아를 모른다고 하다니?

나는 점점 이야기가 심상치 않아지는 기분에 인상을 쓴 채 생각에 잠겼다.

전에 말했다시피, 내가 이 게임을 플레이했을 때 말뚝을 박았던 직업은 메이드였다. 그런 만큼 나와 접촉이 많았던 메이드들에 대해서는 제법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물론 멜로디아는 나와 친하지 않았지만, 반대로 내게 툭하면 시비를 거는 적대적인 캐릭터로 게임 플레이 중에 자주 마주치곤 했다.

샤밀리아는 그런 멜로디아의 동료이자 룸메이트였고 말이다. 그런데 그녀 역시 사라로사에게 멜로디아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는 건 확실히 예사롭지가 않았다.

“린 님이 이름을 불러 주신 다른 고용인들에 대해서도 알아봤는데, 전부 똑같았어요.”

사라로사에게 함께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던 다른 고용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멜로디아처럼 근래 들어 저택에 보이지 않는 듯했던 고용인들 몇 명을 추가로 조사해 봤지만, 그들 역시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상태였다.

“전부 똑같았다고요….”

나는 사라로사의 말을 곱씹으며 말끝을 흐렸다.

당연히 이런 식으로 저택 내에서 고용인들의 존재 자체가 지워진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것은 무척 기이한 일이었다.

물론 게임의 장르가 장르이니만큼, 레드포드 저택에서 일하는 고용인들이 죽어 나가는 건 드문 일이 아니긴 했다.

하지만 게임 내에서 죽는다고 해도, 원래 이런 식으로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인간인 상태로 죽든, 모로스가 된 상태로 죽든 마찬가지였다.

튜토리얼 때 죽은 메이드장 제인도 아직 모두가 기억하고 있지 않던가? 그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런데 갑자기 저택의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증발하듯이 사라지고 있다니,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그때, 사라로사가 나를 보면서 살짝 머뭇거리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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