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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60)화 (160/300)

“닥터 콘라드, 설마 자요?”

콘라드는 아까 내가 별관을 나서기 전에 봤던 것과 똑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내가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가고 나서도 콘라드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잠든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입을 열어서 목소리를 내자마자 깜짝 놀랄 정도로 격하게 얼굴을 번쩍 쳐들었다.

어이구, 의사 양반이 디스크의 위험성도 모르나? 저러다 목 나가면 자기만 손해인데.

나는 속으로 혀를 쯧쯧 차며 콘라드에게 가까이 걸어갔다.

“안 자네. 그럼 우리 심도 깊은 얘기를 마저 나눠 봅시다.”

산발한 콘라드의 머리카락 사이로 아까처럼 강렬한 시선이 날아와서 내 얼굴에 꽂혔다. 콘라드는 또 할 말이 무척 많은 것처럼 ‘읍, 으읍!’ 하고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나는 인상을 쓴 채 콘라드에게 다가가 그의 입에 물려 있던 천을 빼 줬다.

으악, 그런데 이 천 너무 축축하잖아? 물론 콘라드가 내내 입에 물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찝찝하게.

“보통은… 콜록, 콜록! 자는 게 아니라, 크, 흐음. 기절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아, 쫄아서 기절한 척하고 있었어요?”

“…….”

건성으로 내뱉은 내 직설적인 물음에 콘라드가 입술을 꿈틀거렸다.

정곡을 찌른 모양인데, 아무래도 콘라드는 자신의 연기력이 똥망인 걸 모르는 모양이다.

“참나. 기절한 척할 거면 다리나 떨지 말든가요.”

그 순간, 아까부터 긴장한 듯이 위아래로 펌프질하고 있던 콘라드의 무릎이 우뚝 멈춰졌다.

나는 손에 들고 있는 축축한 천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고민스러워서 찡그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내가 계속 들고 있기도 찝찝하고, 그렇다고 그냥 바닥에 내려 두자니 이걸로 또 콘라드의 입을 막아야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최후의 양심으로 그냥 콘라드의 다리 위에 젖은 천을 내려놨다.

“나 혼자 왔으니까 눈은 더 굴릴 필요 없고요. 닥터 콘라드, 먼저 나한테 할 말 없습니까? 네?”

그런 뒤 나는 콘라드의 앞에 팔짱을 끼고 서서 그를 고압적으로 내려다보았다.

체스휘와 약속한 시간이 되려면 아직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아까 체스휘에게는 일부러 오전 중에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체스휘에게는 거짓말을 한 셈이었으나, 콘라드와는 따로 대화를 나눠 보고 싶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콘라드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려면 옆에 다른 사람이 없는 게 나을 것 같았으니까.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짧게 물을게요. 아까 제가 본 거, 도대체 뭐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도 콘라드에게 유감스러운 마음이 없는 건 아니라서, 그를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내려다봤다.

그러자 퀭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던 콘라드가 바로 대답하는 대신 다시 고개를 수그렸다.

“후으, 흡….”

그런데 돌연 기이한 숨소리가 밑으로 늘어진 갈색 머리카락 사이로 흘러나왔다.

심지어 콘라드의 다리 위로 뭔가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나는 콘라드의 어깨가 바르르 떨리는 걸 보고 설마 싶어졌다.

“닥터 콘라드… 설마 지금 울어요?”

긴가민가한 상태로 내가 묻자, 콘라드의 흐느낌이 더 커졌다.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인지 부조화가 올 것 같았다.

으, 응? 이거 진짜야…? 진짜 콘라드가 운다고?

플레이어 인생 44회차 동안, 싹퉁머리 없기로 유명한 콘라드가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면서 우는 건 또 처음 봤다. 아까 처음 봤을 때도 체스휘와 나한테 눈을 사납게 부릅뜨고 협박이나 하기에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는데….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린단 말입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린 콘라드의 얼굴은 정말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보고 말문이 막혀서 소리 없이 입을 벌렸다.

“이, 이 별관… 유령이 살고 있다는 소문이 난 건 알았지만… 믿지는 않았는데….”

콘라드는 계속 두려움이 깃든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조금 전부터 자꾸 눈을 가만히 못 두기에 체스휘를 찾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혼자서… 사, 사흘 밤낮을 감금당한 상태로 있다 보니… 진짜 이상한 목소리가 자꾸 들려서…. 지, 지금도…. 7호실 양육자님은 이 소리가 안 들립니까?”

“무슨 소리요?”

“살려 달라고, 저를 죽여 버릴 거라고… 다들 그렇게 떠들고 있지 않습니까?”

콘라드의 말을 듣고 나도 주변을 둘러봤지만, 악령의 기운은 딱히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의심스러운 눈길을 돌려 다시 콘라드를 쳐다보았다.

혹시 신경 쇠약인가…? 콘라드가 주말 내내 여기에 혼자 갇혀 있어서 불안증에라도 걸린 건가?

왠지 그럴듯한 얘기였다. 아무튼, 콘라드가 이렇게 어울리지도 않게 코를 훌쩍거리면서 달달 떨고 있는 걸 보니 영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콘라드를 이렇게 만든 건 아니지만, 왠지 공범자가 되어 애꿎은 사람을 괴롭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물론 콘라드가 먼저 나와 다이안에게 해로운 짓을 하려고 했으니 마음 약해질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불쌍한 모습으로 우는 사람을 앞에 두고 제대로 된 추궁을 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찌푸린 눈으로 잠깐 주변을 살피다가, 아까 콘라드의 눈을 가렸던 천이 의자 옆에 떨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일단 울지 말고 얘기해요.”

“흐읍….”

“아, 울지 말라니까. 얼른 뚝, 해요. 뚝!”

“흡…. 크흥.”

원래도 우는 남자를 달래 주는 재주는 없어서, 조금 윽박지르다시피 말하자 콘라드가 콧물을 먹는 소리를 냈다. 나는 떨어진 천 조각을 주워다가 다소 떨떠름한 손길로 콘라드의 젖은 얼굴을 닦아 줬다.

“대체 무슨 소리가 들린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닥터 콘라드에게 방금 물어본 건….”

“허억…!”

그런데 내가 먼지를 대충 털어낸 천으로 콘라드의 눈가를 문지른 순간, 갑자기 그가 무언가에 크게 놀란 것처럼 급히 숨이 넘어가는 듯한 소리를 냈다.

“뭐, 왜, 또 왜 그러는데요? 유령 나왔어요?”

“그, 그게 아니라….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니 다시 닦아 주십시오.”

콘라드는 언제 두 눈을 부릅떴냐는 듯이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이 아까보다 맹렬해서 영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이맛살을 구긴 채 콘라드를 보다가 다시 손을 움직여 콘라드의 뺨을 천으로 대충 문질렀다.

그런데… 이걸 닦아 준다고 할 수 있는 건가? 얼굴을 흥건히 적시고 있던 물기가 사라진 대신, 바닥에 떨어진 천에 묻은 먼지가 달라붙어서 콘라드의 얼굴이 꼭 검댕을 묻힌 것처럼 얼룩덜룩해지고 있었다.

꼭 탄광에라도 들어갔다 나온 사람 같은데…. 엉망인 옷차림 하며, 머리까지 산발이라 이대로 콘라드를 길바닥에 내놓으면 노숙자라 착각할 수도 있을 듯했다.

“소, 손….”

그런데 내가 멋쩍게 손을 떼자마자 콘라드가 그것을 가로막으려는 듯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아직 덜 닦였는데 손을 왜 떼는 겁니까?”

“세수라도 시켜 줘요? 이 정도면 됐지, 뭐 얼마나 더 닦으라고.”

이 녀석이, 내가 자기 시중이나 들어 주려고 여기에 온 줄 아나?

“난 닥터 콘라드한테 아까 일에 대한 설명을 들으러 왔지, 수발들어 주러 온 게 아니거든요? 이제 정신 차렸으면 내가 물은 말에 대답이나 해요.”

내가 싸늘히 내려다보며 말하자, 콘라드가 초조하게 입술을 짓씹었다. 뒤이어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입장에서 더더욱 기가 막힌 것이었다.

“그, 그럼… 얘기하는 동안 아무 데나 손으로 다시 만져 주면 안 됩니까?”

“뭐라고요?”

나도 모르게 질색하는 듯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분명 콘라드를 보는 내 표정 역시 썩 곱지 않을 게 분명했다.

만져 달라고?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콘라드의 머리가 이상해진 게 분명했다.

“7호실 양육자님의 손이 닿으면 소리가 안 들립니다…! 그래서 그럽니다…!”

내가 변태를 보듯이 뒤로 슬쩍 물러나자, 콘라드가 급히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해명을 듣고 나서도 의구심은 해소되지 않았다. 내가 여전히 뒤로 물러난 채 구겨진 얼굴을 하고 있자, 콘라드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또…. 귀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서…. 그러니까, 손… 손 좀….”

하지만 곧이어 그는 벌게진 눈으로 나를 절박하게 쳐다보며 또다시 어울리지 않는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그런 콘라드의 모습을 보자, ‘이 녀석이 지금 정말 진심으로 이러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싶었지만, 그냥 한번 선심 쓰자 하는 마음으로 속은 셈 치고 콘라드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단지 그것뿐이었는데도, 콘라드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딱딱히 굳어 있던 그의 몸도 긴장이 풀린 듯이 한결 이완되었다.

나는 시험 삼아 버튼을 누르듯이 콘라드의 몸에 손가락을 뗐다 붙였다 하는 걸 몇 번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콘라드의 얼굴도 밝게 갰다가 다시 우그러졌다가, 하면서 갈팡질팡했다.

자연스러운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콘라드가 아까처럼 발연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진짜 내가 손을 대면 환청이 안 들려요?”

“지… 진짜지 그럼, 이런 쓸데없는 걸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장난질은 그만하고, 좀 제대로 손을 대고 있으란 말입니다.”

내가 자꾸 손을 댔다가 떼는 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콘라드가 이를 악물며 독 오른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어이없다. 누가 부탁을 이렇게 예의 없게 해요?”

왜 내 손이 닿으면 환청이 안 들린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콘라드가 이제 좀 살 만한 모양이었다.

내가 콘라드에게서 야멸차게 손을 떼자, 그가 다시 절박하게 고개를 마구 저으며 소리쳤다.

“아… 안 됩니다! 손 떼지 마세요! 이 소리… 정말 미쳐 버릴 것 같단 말…! 으헉!”

하지만 설마 콘라드가 아까처럼 의자에 묶인 상태로 나한테 몸을 날릴 줄은 몰랐다. 나는 내 쪽으로 넘어지는 콘라드를 급히 붙잡았다.

끼이익….

그 순간, 등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왠지 모를 불길함에 고개를 돌리자, 엉겨 붙은 콘라드와 나를 동그랗게 뜬 눈으로 보고 있는 체스휘가 시야에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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