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59)화 (159/300)

마리엔에게서는 전에 없이 음울한 분위기가 풍겼다. 원래도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어두운 느낌은 아니었는데….

혈색 없는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인지 오늘 마리엔의 화장은 평소보다 짙은 편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동생인 마리네즈와 더욱 비슷해 보였던 것 같았다.

하지만 두꺼운 화장에도 마리엔의 거뭇해진 눈가는 완전히 감출 수 없었고, 광대뼈가 도드라질 정도로 얼굴의 살이 내린 탓에 전체적인 인상이 전보다 예민하고 날카로워 보였다.

“몸이 많이 안 좋다고 들었는데, 정말인가 봐요.”

그러고 보니 요즘 저택에서 마리엔을 본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저택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리 따로 생활하고 있다고 한들, 어느 정도는 행동반경이 겹칠 수밖에 없었는데 말이다.

“몸이 좋지 않다니.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지금 누구 얘기를 하는 거지?”

내 말이 거슬렸는지, 나를 응시한 마리엔의 눈에 싸늘한 광채가 스쳐 지나갔다.

“누구긴요. 여기 다른 사람이 더 있나요? 당연히 마리엔 씨 얘기죠.”

“허튼소리….”

“누가 봐도 안색이 좋지 않은데 그렇게 자꾸 아니라고 해 봤자,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요.”

“…….”

마리엔은 자신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다른 사람에게 티 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눈이 달린 사람이라면, 그리고 또 마리엔을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 그녀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그저 불면증일 뿐이야. 겉보기만큼 상태가 나쁜 건 아니니 쓸데없는 소리는 거기까지만 하도록 해.”

마리엔은 나와 더 대화를 나눌 마음이 없는 듯이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마리엔의 얼굴에 한결 짙은 음영이 번져 드는 것처럼 보였다.

도서관의 다른 곳은 밝은데 마리엔이 있는 곳만 왜 이렇게 어두운가 했더니, 이 옆쪽의 창문에만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커튼 좀 걷을게요. 너무 어두우니까 공기가 영 우중충하게 느껴지네요.”

혹시 주변이 좀 밝아지면 마리엔에게서 느껴지는 위화감이 사라질까 싶어, 나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창가로 걸어갔다. 어둠 속에서 마리엔의 푸른 눈이 나를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마리엔의 묵인하에 커튼을 걷고 나서도 그녀를 둘러싼 기묘한 이질감은 없어지지 않았다. 말없이 나를 응시하는 시선에, 따뜻한 햇볕 속에서도 이상하게 팔뚝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마리엔 씨, 진짜 괜찮은 거 맞아요? 제가 봤을 때는 아무래도 상태가 별로 안 좋은 것 같은데, 의사 선생님한테라도….”

하지만 입을 열어 말을 하다 말고 나는 멈칫하고 말았다.

아니, 씨. 레드포드 저택의 유일한 의사 선생님은 콘라드잖아? 그리고 콘라드는 지금 별관에 묶여 있는 상황이고. 그런데 지금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라고 해서 뭘 어쩌려고?

나도 모르게 말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반대로, 지금까지 조용히 나를 응시하고 있던 마리엔의 입술이 천천히 떼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아침에 루스카의 권유로 닥터 콘라드를 찾아갔더니 연구실의 문이 잠겨 있더군.”

그랬겠지요….

“외출을 한 건지, 아니면 방에 틀어박혀 있는 건지, 주말 동안에도 내내 보이지 않고.”

딱 봐도 수척해진 마리엔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나자 역시나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입술을 옴짝거렸다.

“하지만 어차피 지금까지도 감기라느니, 계절성 불면증이라느니 하는 헛소리밖에 안 했으니, 다시 진찰을 받아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는 않을 테지.”

그래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마리엔은 딱히 콘라드에게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는 콘라드의 부재에 별다른 아쉬움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 그래도 ‘참된 명의의 마음’ 1단계 각성으로 콘라드의 능력치가 전보다는 나아지긴 했는데…. 하지만 이런 말을 해 봤자 마리엔이 지금 별관에 있는 콘라드와 만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계속 콘라드 얘기를 하다가 마리엔이 그를 찾아 나서기라도 하면 난감해져서, 나는 어색하게 말을 돌렸다.

“크흠, 그러고 보니 마리엔 씨. 오늘은 메이드들하고 같이 오지 않았네요. 방 밖으로 나올 때마다 늘 뒤에 데리고 다니더니.”

다이안과 루스카도 대화 중인지, 책장 사이에서 도란도란한 말소리가 작게 들렸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냥 단순히 화제를 돌리려고 말을 꺼내 놓고, 정말 마리엔의 메이드들을 요즘 본 적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물론 마리엔이 전보다 밖에 자주 나오지 않으니, 그녀를 따라다니는 메이드들과 마주치는 횟수도 적어질 만했다.

하지만 아무리 주인이 두문불출한다 해도, 그 밑에 있는 메이드들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리는 없었다.

실제로 얼마 전까지는 마리엔 없이 혼자 복도를 지나다니는 그녀의 메이드들을 본 적이 종종 있었다.

특히 마리엔의 메이드들은 그들끼리의 결속력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손목에 붉은 리본을 묶고 다녔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는 편이었다.

“특히 멜로디아라는 이름의 메이드는 원래 1층 복도에서 자주 마주치는 편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아예 모습이 안 보이네요?”

“멜로디아? 그게 누구지?”

그런데 내 물음에 오히려 마리엔이 반문했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한순간 멈칫했다.

나는 짙은 의구심을 느끼며 살며시 찡그린 눈으로 마리엔을 쳐다봤다.

“마리엔 씨, 혹시 평소에 데리고 다니는 메이드들 이름을 따로 안 외워요?”

“누구를 바보 취급하는 건지 모르겠군. 당연히 나와 루스카에게 배정된 메이드들의 이름은 전부 알고 있어.”

“그런데 멜로디아는 왜 모르는데요?”

“그런 메이드를 내 옆에 둔 적이 없으니까.”

마리엔은 나한테 전속 메이드의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당한 것이 기분 나쁜지 다소 냉담하다 싶을 정도로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에요, 잘 생각해 봐요. 왜, 다갈색 머리칼에 어두운 녹색 눈을 가진 메이드 있잖아요. 키가 크고 마른 데다, 새치름한 인상에 목소리가 유독 가느다란….”

“도대체 누구를 보고 착각한 건지 모르겠지만, 내 메이드 중에 그런 사람은 없어.”

“늘 마리엔 씨 옆에 붙어 있었는데요? 일전에 연못에 루스카가 빠졌을 때도 같이 있었고….”

“7호실, 설마 내 메이드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안다고 말할 셈인가? 그런 게 아니라면 우기는 건 거기까지만 하지.”

뭐야…. 아무래도 진심인 것 같은데?

마리엔의 태도가 너무 단호해서 나도 말을 더 잇지 못했다.

마리엔은 정말 멜로디아를 모르는 것처럼 말했다. 그녀의 싸늘한 표정 역시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당연히 나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마리엔에 대한 충성심으로 나한테 양동이의 물까지 쏟아붓고, 늘 마리엔의 뒤를 따라다니던 메이드인데, 그녀를 모른다고?

갑자기 뒷덜미에 으스스한 느낌이 더해졌다.

한동안 문을 닫았다가 오랜만에 개방한 도서관이기도 하고, 또 오전이라 실내에 고인 공기가 유독 싸늘해서 이렇게 등줄기에 시린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했다.

“마리엔.”

그때, 내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왔는지, 책장 옆쪽에 검은 머리칼을 가진 소년이 서 있었다.

“루스카. 책은 다 골랐니?”

“네. 이제 방으로 돌아가요.”

마리엔은 두말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느 때처럼 그녀는 내게 따로 인사 한마디 남기지 않고 내 앞을 스쳐 지나가, 루스카가 들고 있는 책을 대신 옮겨 들었다. 그러고 나서 다른 손으로 루스카의 손을 잡았다.

루스카도 마리엔의 손을 마주 잡으며 내게 살짝 고갯짓으로 작게 인사했다.

나는 루스카와 마리엔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루스카는 마리엔에게서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는지, 그녀를 평소처럼 대했다. 루스카를 대하는 마리엔의 태도 역시 변화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마음 한편에 껄끄럽게 남은 기이한 느낌 때문에, 도서관을 빠져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에서 쉽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린, 뭘 그렇게 쳐다봐?”

다이안이 내게 다가와서 옷소매를 잡아당기고 나서야 나는 어느새 텅 비어 있는 문에서 시선을 뗐다. 다이안은 품에 책을 끌어안은 채 입술을 새 부리처럼 모으고 있었다.

“내가 부르는 소리도 못 듣고.”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다이안이 토라진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얼른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달랬다.

“그랬어요? 미안해요. 그냥 마리엔 씨 얼굴이 안 좋아 보여서 신경이 쓰여서요.”

“아…. 그렇지 않아도 루스카도 양육자 때문에 계속 마음이 쓰이나 보더라.”

다이안도 친구가 신경 쓰이기는 마찬가지인지, 금방 토라진 표정을 지우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1호실의 두 사람이 사라진 문 쪽을 힐끔거렸다.

도서관에서 나와 다시 방으로 돌아간 뒤, 나는 사라로사를 불러 무언가를 부탁했다. 사라로사는 내 갑작스러운 말에도 의문을 품지 않고 흔쾌히 알겠노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오늘 저녁까지 알아보고 쉬는 시간에 다시 올게요!”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방에서 나가는 사라로사의 발걸음이 유독 발랄해 보였다.

[잠재 능력 1: 재능 있는 염탐꾼 Lv.8 (레벨 10 달성 시 ‘뛰어난 염탐꾼’으로 업데이트 가능)]

사라로사의 잠재 능력인 ‘재능 있는 염탐꾼’은 그새 레벨 8에 이르러, ‘뛰어난 염탐꾼’으로의 성장을 거의 목전에 두고 있었다.

‘…이런 게 의외로 적성에 맞나?’

지난번에 엠버에 대해 알아봐 달라고 한 걸 제외하면 사라로사에게 특별히 맡긴 일도 없는데, 혼자서 이만큼이나 레벨을 높이다니….

아무래도 사라로사에게는 메이드가 아니라 다른 직업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이번에 내가 사라로사에게 알아봐 달라고 한 일은 딱히 잠재 능력을 발휘할 필요도 없는 일이긴 했다.

어쨌든, 그렇게 사라로사에게 작은 일 하나를 맡긴 뒤 나는 콘라드가 있는 별관으로 혼자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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