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58)화 (158/300)

“다이안 도련님, 저 왔어요!”

영 느낌이 찝찝했지만, 마침 다이안의 방에 다다라서 머리에 떠올리던 생각은 옆으로 치워 버렸다.

“제가 저택을 한번 살펴봤는데, 일단 눈에 띄는 건 없었어요.”

“그래?”

“지금은 어때요? 제 느낌으로는 아까보다 괜찮아진 것 같은데…. 아직도 뭔가 이상해요?”

내 말에 다이안이 조금 머뭇거리다가 문으로 다가가 밖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뒤에서 보니까 그 모습이 꼭 덤불 속에 고개를 처박은 꿩 같았다. 예전에 새끼강아지가 경찰견으로 훈련받는 영상을 본 적이 있었는데, 주변을 유심히 살피며 두리번거리는 다이안의 모양새를 보니 그 장면이 연상되기도 했다.

아무튼 내 말은… 오늘도 내 새끼는 귀여웠단 말이다.

하, 그런데 이렇게 귀여운 어린애를 노리는 흉악한 어른들이 많다니…. 세상이 말세였다.

나는 별관에서 본 콘라드와 그가 가지고 있던 수상한 자료들을 떠올리며 이맛살을 구겼다. 콘라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니 또다시 골치가 아파지는 것 같았다.

“뭐지? 지금은 괜찮은 것 같아.”

잠시 후, 다행히 다이안에게서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다이안도 아까의 그 느낌이 뭐였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까는… 내가 착각했었나 봐. 괜히 귀찮게 해서 미안해.”

“아니에요. 미묘하긴 했지만, 아까는 저도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걸요?”

우리는 원래의 목적대로 도서관에 가기 위해 방에서 나와 함께 복도를 걸었다. 저택에 있는 아이들이 활동할 시간이 되어, 아까까지만 해도 바쁘게 복도를 오가던 고용인들은 썰물이 빠져나가듯이 자리를 비운 뒤였다. 그래서 복도는 아주 한적했다.

어쩌면 그래서 잠시 후에 고용인의 복장을 한 남자 한 명이 복도에 나타났을 때 더욱이 눈에 띈 것일지도 몰랐다.

단순히 그냥 복도를 지나갔으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 그는 멀리 있는 다이안과 나를 발견하지 못한 듯이 복도와 방을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그 모습이 뭔가 어리바리하게 보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상쩍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이안도 남자를 발견하고 의아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저 사람은 왜 저러는 거지?”

“그러게요….”

“꼭 비비가 다른 애들 몰래 가져간 물건을 어디에 숨겨 놓을지 고민하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것 같은 모습이네.”

“비비가요?”

“비비가 가지고 놀던 공 있잖아? 거기에 구멍이 뚫려서 이제 못 가지고 논대. 그래서 새로운 놀이를 찾은 게 그거야. 모험 소설에 나오는 걸 봤다는데, 보물찾기인지 뭔지….”

물론 이번에도 비비 혼자만 즐거워하고, 당하는 사람들은 전부 짜증스러워한다면서 다이안이 투덜거렸다.

“토요일에는 올리비아가 타킷이었다니까? 겁도 없이 올리비아가 떨어뜨린 귀걸이를 몰래 가져가서 숨겨 놨는데, 그것 때문에 올리비아가 코뿔소처럼 변해서 장난 아니었어.”

비비…. 그 녀석은 어째서 매번 그런 장난만 치는 거지? 혹시 아까 메이드가 비비를 찾던 것도 그래서인가?

아무튼 다이안의 표정을 보니, 투덜거리듯이 말해도 주말 동안 나름대로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한동안 퀘스트 때문에 바빴지만, 아무래도 조만간 나도 다이안과 같이 놀아 줘야겠다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복도에 있던 남자가 마침내 다이안과 나를 발견했다. 깜짝 놀란 듯이 그의 몸이 흠칫거리는 게 멀리서도 눈에 들어왔다.

“아, 안녕하세요.”

남자는 막 열었던 문을 다시 닫으며 나와 다이안에게 인사했다. 예의 바른 다이안도 고용인에게 고개를 작게 까딱여 마주 인사해 주었다.

“여기서 혼자 뭐 해요?”

나는 영 하는 짓이 석연찮은 남자를 향해 물었다. 그러자 그가 허리를 곧추세워 자세를 바로 한 뒤 내 질문에 대답했다.

“아, 실은 제가 지난 주말에 새로 레드포드 저택에 들어온 고용인인데요. 오늘부터 정식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아직 저택의 구조가 익숙하지 않아서….”

변명하듯이 말하는 소리를 흘려들으며 마주한 얼굴을 구석구석 뜯어봤다. 머리 스타일이나 옷차림이 달라져서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으나, 가까운 거리에서 확인해 보니 역시 얼굴이 낯익었다.

“그러지 말고 좀 더 친하게 지내자. 나도 곧 한자리 얻어서 저택에 들어갈 것 같은데.”

이 남자, 분명히 전에 사이비 단체… 아니, 프로메테우스 혁명 단체의 모임에서 보았던 사람이었다. 메이드 세라에게 친한 척하면서 집적거리던 그 날티 나던 남자 말이다.

그때 저택에 들어올 것 같다고 말한 게 진짜였나 보네.

“그런데… 7호실 도련님과 양육자님이시죠?”

“그런데? 린하고 나한테 뭐 할 말 있어?”

“그게 아니라, 혹시라도 실수하지 않게 저택에 계시는 분들의 얼굴을 확실히 익혀 두려고 확인차 여쭈어 봤습니다.”

다이안이 그러냐는 듯이 시큰둥하게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시 나를 올려다봤다.

“린, 그만 가자.”

설마 저 자식도 우리 다이안을 노리고 있나…?

괜한 의심병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별관에서 보고 들은 게 있었기 때문에 기분이 찝찝했다.

아무래도 기선 제압을 한번 해 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아이구, 이 계절에 날벌레가 다 있네!”

마침 옆에 있던 벽면에 금이 간 게 보여서 그 한가운데를 조준해 주먹으로 쳤다. 그러자 벽에 가 있던 금이 쩌저적! 소리를 내며 거미줄처럼 넓게 퍼지기 시작했다.

앗,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정곡을 가격해서 그런가? 파급력이 커도 너무 컸다. 벽에서 나온 부스러기가 후두둑 떨어져 메이드들이 깨끗이 닦아 놓은 바닥을 더럽혔다.

앞에 있던 남자가 놀란 듯이 헉, 하고 숨을 들이마시고, 다이안도 부서진 벽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두 눈을 흔들었다.

나도 당황스러웠지만 태연한 척 짐짓 여유로운 모습으로 손에 묻은 먼지를 후우 불어서 날려 보냈다.

“에구, 벌레를 잡는다는 게 그만 벽을 부숴 버렸네요!”

“린…. 내가 알던 것보다 힘이, 세네….”

“다이안 도련님한테 나쁜 벌레가 붙을까 봐 걱정돼서 힘 조절을 못했어요! 놀라셨어요?”

“아냐…. 아주 믿음직스러워. 그런데 벌레가 있었어?”

“네, 엄청 큰 게 있었어요. 앞으로도 다이안 도련님을 위협하는 벌레는 제가 전부 가루로 만들어 버릴 거예요!”

나는 보란 듯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면서 의지를 담아 말했다. 그러자 다이안이 소리 없이 입꼬리를 당겨 빙그레 웃으면서 내 손을 붙잡았다.

“고마워, 린. 거기, 우린 갈 테니까 바닥 좀 깨끗이 청소해 줘.”

“네, 네…! 알겠습니다….”

다이안은 야무지게도, 마침 옆에 있던 남자에게 뒤처리까지 시킨 뒤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경고의 의미로 남자에게 눈을 부라려 준 뒤 다이안의 손을 맞잡고 복도를 걸어갔다.

“다이안 도련님, 우리 도서관까지 무늬 있는 타일만 밟고 갈까요? 먼저 흰색 타일 밟는 사람이 지는 거예요.”

“그래.”

기가 질린 듯한 눈빛이 뒤에서 따라왔지만, 아까보다는 마음이 개운했다.

***

“어? 루스카.”

마지막 타일을 밟고 문이 열린 도서관에 들어가자마자, 다이안이 누군가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도서관에는 선객이 있었다. 다름 아닌 1호실의 소년 루스카였다. 아침 햇살이 내려앉은 곳에 서 있는 차분한 소년의 모습이 도서관의 정적인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안녕하세요.”

“아, 그래. 안녕, 루스카.”

예의 바르게 나한테도 인사를 해 오는 루스카를 보고 나도 그에게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다이안은 루스카가 반가운지, 책장 사이에 서 있는 소년에게 먼저 다가갔다.

“너도 오늘 오전에 수업 없어?”

“응.”

“흐응, 내가 도서관에 제일 빨리 온 첫 손님인 줄 알았는데.”

“나도 방금 왔어.”

“그런데 너 혼자야?”

“아니.”

루스카는 여전히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얼굴로, 다이안의 물음에 그래도 꼬박꼬박 대답해 주었다.

루스카는 저택에 있는 아이들 중에서도 모범생으로 분류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런 이른 시간부터 그가 도서관에 와 있는 게 의외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마리엔 씨하고 같이 왔구나. 그런데 지금 어디에 있어?”

내 물음에 루스카가 도서관의 어느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는 아이들끼리 책을 고르게 놔둔 뒤 마리엔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빛이 내리쪼이는 밝은 곳에 서 있던 루스카와 달리 마리엔은 도서관 구석의 어두운 곳에 자리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잠시 후 시야에 들어온 마리엔을 본 뒤 무심코 흠칫하며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한순간, 벽 앞에 놓인 의자에 앉은 마리엔을 보고 마리네즈인 줄 알았다.

오늘도 검은 옷을 입은 채 어둠 속에 몸을 묻고 있는 마리엔을 본 순간,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의 형상이 그녀의 위로 겹쳐지는 것 같았다.

나는 자리에 멈춰 서서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시야에 비친 사람을 응시했다.

“…왜 그렇게 가만히 서서 쳐다보고 있지?”

팔뚝 위를 기어가는 것 같던 기묘한 감각은 내 인기척을 느낀 마리엔이 고개를 돌려 입술을 뗀 순간 공기 중에 흩어졌다.

“아뇨…. 왠지 오랜만인 것 같네요, 마리엔 씨.”

나는 숨을 한번 조용히 내쉰 뒤, 다시 걸음을 옮겨 마리엔에게 다가가며 아무렇지 않게 화답했다. 하지만 발목을 휘감는 것 같던 기이한 감각은 이미 마음 한구석에 의문을 심어 놓은 뒤였다.

…방금 그 느낌은 도대체 뭐였을까?

마리엔과 마리네즈, 두 사람은 자매였으니 사실 그들이 한순간 닮게 보였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었다.

하지만 방금은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단순한 외모가 아니라, 특유의 분위기…. 그러니까, 좀 더 본질적인 무언가가 짧은 시간이나마 완전히 겹쳐 보였단 말이다. 그리고 그 느낌은 지금도 은은하게 지속되었다.

나는 가까워진 마리엔의 모습을 살펴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