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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52)화 (152/300)

“도서관이요? 거기 지금 사용할 수 있어요?”

“응, 여름에 누수 문제가 생겨서 그동안 보수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제 다 끝났대. 린은 도서관에 한 번도 가 본 적 없지?”

“네에….”

아침 식사 후 다이안은 수업이 없는데도 나와 함께 밖으로 나섰다. 지난여름에 장마 문제로 도서관 건물에 누수가 발생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진행 중이던 보수 작업이 이제 끝난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다이안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하고 말았다.

레드포드 저택에 있는 도서관을 벌써 사용할 수 있다고? 원래는 게임이 시작되고 대략 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쯤 처음 문이 열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쯤 도서관에서 악령들과의 추적극을 벌이는 에피소드가 있어서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 기억에만 의존해 판단하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었다. 43회차까지 게임을 플레이했던 때와는 이미 달라진 게 너무 많았으니까.

그래서 이번에도 그러려니 하며 다이안과 함께 방문을 나섰다.

그런데 내 뒤를 따라 복도로 나오던 다이안이 갑자기 멈칫했다. 갑자기 왜 그러나 해서 쳐다보자, 열린 방문 앞에 서서 바깥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다이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이안 도련님? 왜 그러세요?”

“왠지… 공기가 이상해.”

복도를 훑는 붉은 눈동자에 낯선 예기가 서려 있었다. 미세하게 굳은 소년의 작고 여린 몸에도 평소와 다른 옅은 긴장감과 날카로움이 어려 있는 게 느껴졌다.

그의 말을 듣고 나도 주변을 경계하며 둘러봤다.

처음에는 별다른 이상한 점이 없다고 생각되었으나, 찬찬히 복도를 살피자 정말 다이안의 말처럼 묘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게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전과 비교해서 정확히 뭐가 어떻게 달라졌기에 이런 위화감이 드는 건지도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려웠다.

“그러네요. 뭔가 평소와 다른 것 같긴 한데…. 먼저 제가 밖을 살펴보고 올 테니 일단은 방에 계세요.”

나는 우선 다이안을 방 안에 다시 밀어 넣은 뒤 혼자 걸음을 옮겼다.

제일 처음 의심된 건, 혹시 또 일전에 그랬던 것처럼 성수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하지만 복도에 있는 꽃병들을 살펴보니 그런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지난번의 사건 이후로 총괄 집사와 새로운 메이드장이 눈에 불을 켜고 성수 보관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러니 다시 그와 같은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되었다.

게다가 지금의 이 공기는 그때의 텁텁한 느낌과는 좀 다르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 저택이 이런 상태였지? 혹시 어제 내가 돌아왔을 때부터 이랬나?

“아, 7호실 양육자님 안녕하세요.”

“네, 좋은 아침이네요.”

그렇게 복도를 살폈으나 눈에 보이는 건 저택의 고용인들뿐, 다른 이상한 건 찾아낼 수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복도의 모퉁이 너머로 사라지는 검은 옷자락을 발견했다. 나는 잠깐 걸음을 멈추었다가 혹시 하는 마음에 시야에 남은 검은 잔상을 쫓아갔다.

아침이라 그런지 한창 바쁘게 복도를 오가던 고용인들이 나를 향해 인사했다. 나도 그들에게 대충 화답하며 모퉁이를 돌았다.

“어맛, 깜짝이야!”

그리고 그러자마자 누군가와 바로 몸을 부딪혔다.

“어떤 눈깔 삔 놈이 앞도 제대로 안 보고… 엇! 뭐야, 7호실?”

“앗, 올리비아 씨.”

나는 얼얼한 어깨를 문지르면서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을 얼떨떨하게 쳐다봤다.

아니, 뭐 이렇게 몸이 딴딴해? 이건 무슨, 사람이 아니라 꼭 벽에 부딪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올리비아는 오늘 레이스 리본이 달린 화사한 노란색 버슬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 꽃으로 장식된 보닛 모자 같은 걸 쓰고 있었다.

이런 차림을 하려면 도대체 몇 시에 일어나서 준비해야 하는 걸까 싶을 정도로, 오늘도 그녀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겉모습만 보면 올리비아는 꾸미는 걸 좋아하는 가녀린 여자로 여겨지기 쉬웠지만, 저 포장지 안에 숨겨진 알맹이는 의외로 엄청난 근육질인 모양이었다.

물론 그동안 그녀의 민첩한 몸놀림이나 나풀거리는 레이스 밖으로 은근히 드러나던 탄탄한 느낌의 몸매를 보고 상당히 단련된 육체를 가진 사람이란 건 내심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온몸으로 직접 부딪혀 확인해 보니, 올리비아는 상상 이상으로 속이 꽉 찬 다부진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7호실, 언제 온 거야? 난 또 어제저녁 늦게까지 소식이 없기에 시간 내에 못 돌아오는 줄 알았잖아.”

올리비아가 반가운 듯이 내 어깨를 찰싹찰싹 치면서 호들갑스럽게 반응했다. 나는 그 때문에 두 배로 뻐근해진 어깨를 애써 웃는 얼굴로 문지르면서 그녀에게 답했다.

“네에… 밤늦게요. 자정 직전에 거의 간당간당하게 돌아왔어요.”

“왜 이렇게 늦었어? 혹시 밖에서 무슨 일 있었어?”

“그냥 개인적인 일이 좀….”

올리비아는 내게 저택에 늦게 돌아온 이유를 더 캐묻지는 않고, 대신 어디를 가던 길이었냐고 물었다.

“특별한 볼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요. 아, 혹시 제가 없는 동안에 저택에 다른 일은 없었어요?”

“글쎄, 별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 여기 일상이 매번 똑같지 뭐.”

올리비아는 내 물음에 별로 생각도 안 해 보고 바로 답했다. 뜨뜻미지근한 얼굴을 보니 정말 기억에 남는 특이한 일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럼 저택에서 느껴지는 이 미묘한 느낌에 대해 최소한 올리비아는 모른다는 거로군.

사실 나도 다이안이 말하기 전까지는 눈치채지 못하던 부분이라, 의외로 별것 아닌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고양이가 그렇게 예민한 반응을 보인 건 처음이라, 좀 더 알아보긴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런데 7호실.”

그때, 올리비아가 갑자기 또 친한 척 내 팔짱을 끼면서 은근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이 여자가 또 왜 이러나 싶어서 그녀를 쳐다봤다.

“나도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요?”

“자기 말이야, 혹시 지난번에 본 그 사제님하고 따로 연락하는 사이니?”

지난번에 본 사제님? 라파엘 말인가…?

“그건 왜 물어보세요?”

“아니, 다른 이유 때문은 아니고. 그냥 언제 한번 시간이 괜찮으실 때 다시 저택에 와서 우리 애들한테 축복도 내려 주고 같이 저녁 식사도 하고 그러면 좋을 것 같아서.”

올리비아가 수상하게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배배 꼬면서 말했다.

“왜, 지난번에도 사제님이 방문하셨을 때 금식 기도 때문에 레드포드 저택에서 만찬 한번 같이 들지 못했었잖아? 주방장이 얼마나 아쉬워했다고.”

그것 때문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달갑지 않은 촉이 서는 걸 느끼며 올리비아의 얼굴을 가느스름하게 뜬 눈으로 훑어봤다. 올리비아는 라파엘의 이야기를 하면서 더욱 수상쩍게도 볼까지 발갛게 붉혔다.

지난번에도 느꼈는데, 역시 올리비아는 라파엘에게 다소 지나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내 촉이 말해 주건대, 이건 성직자를 향한 단순한 호기심과 호감이 아닌 듯했다.

나는 떨떠름하게 콧잔등을 찌푸렸다.

‘올리비아, 이제 보니 남자 외모를 따지는 편이었구나….’

하지만 라파엘의 성격상 만약 그가 다시 이곳에 온다고 해 봤자, 레드포드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려 줄 건 축복이 아니라 저주뿐일 터였다.

게다가 원래도 라파엘은 내가 부탁한다고 해서 그걸 잘 들어주는 상관이 아니었고, 지금은 더군다나 그와 내 입장이 애매했다.

“아! 그리고 1호실 마리엔 씨 있지?”

그리고 핑계를 대듯이 덧붙여진 올리비아의 말에 나는 눈썹을 꿈틀거리고 말았다.

“지난번에 호수에 빠진 이후로 계속 몸이 안 좋은가 보더라. 이번 주말에도 말이야, 어쩐 일로 루스카까지 우리한테 맡기고 계속 방에서 혼자 지내던데.”

얼마 전에 호수에 빠진 건 마리엔이 아니라 나하고 루스카였지만, 아무튼 그녀의 몸 상태가 안 좋다는 말에는 나도 신경이 쓰였다.

“몸이 계속 안 좋아요? 어떻게요?”

“몰라, 의사 선생님은 그냥 환절기 감기라고 하던데 그런 것치고는 영 차도가 없나 봐.”

콘라드야 거의 모든 증상이 감기 때문이라고 하는 인간이니까, 확실히 그 말에는 신빙성이 없었다.

“그런데, 그 사제님 말이야. 지난번에는 경황이 없어서 어디에 사는지 물어보는 것도 깜빡했네. 어느 종교를 믿는 사제님이래? 혹시 평생 수절하면서 순결을 중시하는… 그런 종교는 아니겠지?”

역시 마리엔의 이야기는 핑곗김에 꺼낸 것이었던 듯이, 올리비아는 금방 다시 라파엘에 대해 내게 묻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눈이 꼭 사냥 직전의 솔개처럼 번뜩이는 걸 보고 그녀에게 꽉 잡힌 팔을 무심코 움찔거렸다.

“그렇게 자세한 건 저도 잘 몰라서요. 다음에 알게 되면 말씀드릴게요.”

“자기…. 혹시 일부러 말 안 해 주는 거 아냐?”

하지만 라파엘이 위장 중인 종교에 대해서는 나도 아는 게 없어 대충 둘러댈 생각으로 말을 꺼내자, 갑자기 올리비아가 의심스러운 눈길을 내게 보내기 시작했다.

“하긴, 다들 보는 눈이 있는데 그 정도의 남자를 탐내는 여자가 나만 있는 건 아니겠지. 7호실, 그래서 지금 나 견제하느라 사제님에 대해서 자꾸 아무 말도 안 해 주는 거야? 혼자만 정보를 독점하려고?”

“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당연히 나는 황당하게 올리비아를 쳐다봤다. 어느새 그녀는 자신이 노리는 먹잇감을 가로채려 하는 경쟁자를 보듯이 나를 보고 있었다.

“자기도 사제님한테 관심 있는 거지? 그렇지? 내 말이 맞지?”

“아니, 뭔…. 전혀 아니거든요?”

이 사람 진심이잖아? 아니, 그래도 그렇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 라파엘하고 나를 엮어?

나는 짙은 의심으로 물든 올리비아의 눈을 보고 불쾌해져서 얼굴을 종잇장처럼 구기고 말았다.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의심을 하는 거예요? 그 사람은 내 취향도 아니에요! 돈 주고 가지라고 해도 안 가질 거라고요!”

“어떻게 그 얼굴이 취향이 아닐 수가 있어?! 내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믿을 것 같아?”

아무래도 올리비아는 라파엘의 얼굴에 단단히 홀린 모양이었다.

내 진심 어린 항변에도 그녀는 도무지 내 말을 믿지 않아서 환장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올리비아 씨. 왜 우리 린 씨한테 소리를 질러요?”

바로 그때 누군가 내 편을 들면서 등장했다.

다리가 유독 더 길어 보이는 검은 트라우저스와 소매를 걷어 올린 흰 셔츠를 입은 체스휘가 밝은 햇살이 번진 복도를 걸어왔다. 여느 때처럼 나른한 분위기를 흘리며 다가온 체스휘가 내 편을 들듯이 나한테 가까이 붙어 섰다.

나는 바로 옆에서 나를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시선에 주춤했다.

“린 씨,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올리비아 씨한테 계속 듣고 있어요?”

“뭐야, 2호실이 갑자기 왜 끼어들어?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은 저리 가시지?”

“아무 상관 없지 않은데요.”

체스휘가 흐음, 하고 미묘한 소리를 내며 내게서 시선을 뗐다.

이어서 내 등 뒤로 묵직한 체중이 더해졌다. 어깨에는 체스휘의 팔이 감기고, 아무래도 내 정수리에 그가 턱을 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상태로 체스휘가 말했다.

“올리비아 씨야말로 남의 자기한테 함부로 자기라고 부르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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