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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51)화 (151/300)

체스휘의 방해가 좀 있긴 했지만, 이번에도 고용인들이 활동하기 전에 그의 방에서 빠져나와 내 방으로 돌아가는 데 성공했다.

“린!”

“다이안!”

그리고 아침 식사 시간, 다이안과 나는 감동의 상봉을 했다.

고작 주말 동안에만 떨어져 있었던 것뿐인데, 시간이 엄청나게 오래 지난 것 같았다. 그렇게 느낀 건 다이안도 마찬가지인지, 그는 창밖을 보며 혼자 오도카니 앉아 있다가 내가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반색하며 나한테 달려왔다.

“주말 동안 잘 지냈어요?”

“아니.”

심지어 다이안은 나를 와락 끌어안고 내 배에 얼굴을 부비부비하기까지 했다. 다이안의 격렬한 환대에 나는 심장을 격침당해서 비틀거렸다.

“린이 없어서 잘 못 지냈어.”

아니, 우리 고양이가 이런 귀여운 짓을? 다이안은 아닌 척하면서도 평소에 쑥스러움을 많이 타서 이런 말이나 행동을 자주 해 준 적이 없었는데 어쩐 일이지?

“정말 돌아왔구나…. 다행이야.”

나를 꽉 끌어안은 다이안이 내 귀에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시야에 들어온 다이안의 작고 동그란 머리통을 마구 쓰다듬어 주었다. 주말 동안 떨어져 있었더니 내가 그렇게 많이 보고 싶었던 건가? 체스휘가 꼭 분리불안증에 걸린 대형견 같다면, 이쪽은 귀여운 아기 참새 같았다.

“그럼 제가 저택으로 돌아오지 어딜 가겠어요?”

“원래 살던 곳으로 갔다고 하니까, 왠지 다시 안 올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앗.

하지만 뒤이어 다이안의 입에서 웅얼웅얼 읊조려진 말을 듣고, 나는 마냥 다이안을 귀여워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쩐지 이틀 전에도 내가 주말 동안 원래 살던 고향에 잠깐 다녀온다고 하니까 아련한 눈으로 쳐다보더라니,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가? 내가 고향에 간 김에 양육자 같은 건 그냥 힘들다고 때려치우고 그대로 거기 눌어붙을까 봐 불안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이제는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이 꽤 쌓여서 나름대로의 신뢰 관계를 구축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믿음이 부족했었나?

나는 얼른 다이안의 눈높이에 맞춰 몸을 낮춘 뒤, 말랑한 볼을 양손으로 붙잡고 그와 시선을 맞댔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다이안 도련님이 여기 있는데 제가 어딜 가요.”

아무래도 우리 고양이가 집사를 잃을까 봐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니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단호한 목소리로 말해 주었다.

“앞으로도 무슨 일이 있어도 다이안 도련님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올 거예요.”

“정말이야…?”

“그럼 정말이죠.”

누나 믿지, 애기야? 게다가 애기야. 누나 이제 집 없는 노숙자 될지도 몰라….

나는 어제 레드포드 저택 밖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아련한 기분이 되었다.

지금으로서는 다이안의 생각대로 린 도체스터의 고향인 44세계에 짱박히기는커녕, 앞으로 다시 그곳 땅을 밟을 수나 있을지 우려되었다.

눈이 뒤집혀서 역까지 나를 쫓아왔던 카드리고 가문의 고용인들과 도체스터의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게다가 레드포드 저택에 도착했을 때 마부 존 아저씨가 한 말에 의하면, 내가 레드포드로 돌아오지 못하게 그들이 길에 수작까지 부렸던 모양이던데.

사실은 가이드를 통해서도 어제부터 계속 교신이 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 인간들, 좀 속 보이는 거 아니냐? 예전에 내가 퀘스트 때문에 궁금한 게 있거나 도움을 좀 받으려고 연락했을 때는 전부 다 무시하더니, 자기들 필요할 때만 이렇게 불이 나게 연락을 취해 오고 말이다.

그나마 레드포드 저택의 출입이 평일에는 전부 금지되는 탓에, 앞으로 최소한 일주일 동안은 그들이 나를 잡으러 이곳에 쳐들어올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니 일단은 가만히 상황을 좀 지켜보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스텔라와 릭 도체스터에게는 당장 응답할 마음이 없었지만, 라파엘에게는 한번 답신을 보내 볼 마음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 넋이 나가 보였던 그의 상태가 멀쩡한지도 궁금했고, 또 체스휘와 미카엘 카드리고에 대해 그에게 묻고 싶은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제 내가 이상한 상태였을 때, 분명 라파엘에게서 체스휘의 손길이 닿은 듯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났다. 이번에 다시 만난 라파엘이 나사 하나를 빠뜨린 듯한 모습이었던 것도 그럼 혹시 체스휘와 연관이 있는 걸까?

그런 거라면 차라리 체스휘에게 직접 묻는 게 나을 수도 있었지만, 그가 대답해 줄지 알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런데 미카엘 카드리고는 본국을 위해 명예롭게 순교한 게 아니었습니까?”

“내가, 내가, 내가, 내가 죽였다.”

…왠지 라파엘이나 미카엘에 대해 체스휘에게 직접 물어보기 껄끄럽기도 하단 말이지.

카드리고 저택에서 내가 보고 들은 것과, 어제 레드포드 저택으로 다시 돌아와서 미카엘 카드리고의 이름을 꺼냈을 때 체스휘가 보였던 반응을 떠올리자 또 머리가 복잡해졌다. 꼭 마구잡이로 뒤엉킨 실타래를 누군가 내 앞에 던져 놓고 제한 시간 내로 풀어 보라는 숙제를 내 준 것처럼 곤혹스러운 기분마저 들었다.

“린, 있잖아. 아침 식사하기 전에 나 린한테 보여 주고 싶은 게 있는데.”

그렇게 내가 잠깐 다른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아까보다 기분이 훨씬 좋아진 듯한 다이안이 환한 얼굴로 돌아와 내게 말했다. 그는 후다닥 뛰어서 책상이 있는 곳으로 가더니, 분홍 리본에 묶여서 돌돌 말린 하얀 종이 하나를 들고 왔다.

헉, 설마 나한테 주는 선물인가? 나는 다이안이 내게 준 종이를 바로 펼쳐 봤다. 그런 나를 응시하는 다이안의 눈이 기대로 반짝이고 있었다.

다이안이 나한테 보여 주고 싶어 한 건 그가 직접 그린 듯한 그림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와, 이게 뭐죠? 보라색 가오나시?”

눈코입이 점처럼 찍힌 희멀건 얼굴이나 보라색 망토를 뒤집어쓴 듯한 원통 같은 몸이 옛날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연상시켰다.

그런데 이 세계관에도 가오나시가 있었나? 아무튼 꽤 잘 그린 그림이었다.

“어쩜 우리 다이안 도련님은 그림까지 이렇게 잘 그려요? 이렇게 멋진 그림은 처음 봐요!”

다이안이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우물쭈물거리면서 말했다.

“가오나시? 그게 뭐야? 이건 린인데….”

“…우와아! 말도 안 돼, 제가 이렇게 예뻐요? 전 또 동화책에 나오는 요정인 줄 알았잖아요!”

나는 기꺼이 다이안이 그려 준 그림 속의 가오나시가 되기로 했다.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바로 태세 전환에 들어가, 다이안의 그림을 마구 칭찬하고 찬양해 주었다.

“흐음, 그 가오나시라는 게 요정의 일종인가 보지?”

칭찬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는 어린이답게 다이안은 쑥스러운 듯하면서도 어깨가 으쓱한 듯이 새침데기처럼 말했다.

“사실 내가 여기 애들 중에서 그림은 좀 그리거든. 주말 동안에 심심해서 한번 린을 그려 봤는데 나름대로 괜찮게 나온 것 같아서 보여 주려고 안 버리고 놔뒀어. 그거 마음에 들면 린이 가져.”

“헉, 이거 정말 저 주시는 거예요? 이 걸작을? 이 세기의 역작을?”

“응, 줄 테니까 가져!”

“세상에, 이렇게 멋진 선물이라니 너무 감동이에요! 액자에 넣어서 제 방 벽에 걸어 둘게요! 제일 눈에 잘 보이는 자리에!”

다이안의 콧대가 점점 더 위로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그의 뿌듯한 얼굴에 나도 흐뭇해져서 그 후로도 한참은 더 아낌없는 칭찬을 퍼부었다.

그런 뒤 화기애애하게 아침 식사 시간을 함께 하면서, 내 맞은편에 앉아 있는 다이안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래도 지금은 반만 이상하네.”

“아무튼 잘했어요. 지금 다이안한테 갔으면 린 씨가 평소와 다른 걸 눈치챘을지도 몰라요. 꼬맹이들 눈치가 생각보다 빨라서.”

작은 입을 우물거리면서 식사를 하는 다이안을 보는데, 문득 어젯밤에 체스휘에게 들었던 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 연쇄 작용이라고 해야 할지, 일전에 초상화 속 영혼이 나로 둔갑해서 다이안의 앞에 나타났을 때의 일도 어렴풋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체스휘의 말대로, 그때도 다이안은 나와 같은 모습을 한 영혼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린 것처럼 보였다.

그럼 정말 이번에도 어제처럼 다른 인격의 내가 전면에 나온 것 같은 상태로 다이안과 만났으면, 그는 나를 낯선 눈으로 보면서 피했을까?

사실 나는 오늘 아침부터 내가 어제와 다른 의미로 조금 이상한 상태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오늘 아침에 내 본래의 의식을 완전히 되찾은 뒤에도, 지난번처럼 불안하거나 두려운 마음이 들기는커녕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차분하고 고요했기 때문이다.

체스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그가 내 생각보다 복잡한 비밀을 가진 기이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도 조금도 무섭거나 껄끄럽게 여겨지지 않았다.

분명 이상한 현상과 마주해 놓고 그게 조금도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게 오히려 기묘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왠지 지금은 그 이유가 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체스휘와 마찬가지였으니까. 어쩌면 나도 그 못지않게, 보통 사람들의 논리로 이해하기 어려운 기이한 존재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무의식중에 깨달아서 그랬던 것이다.

어쩌면 온갖 기괴한 일들이 일어나는 이 세계에 미리 적응한 덕에, 이런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도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몰랐다.

물론 그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헷갈리기는 했다.

내가 맨정신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퀘스트가 나올 때마다 어제처럼 또 다른 린 도체스터가 나와서 해결해 주는 건 솔직히 꽤나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이제 고작 두 번 겪었을 뿐인데도, 나는 거기에 내 생각보다 지나치게 빨리 적응해서 또 다른 나와 벌써부터 조금씩 동화해 가는 것 같은 느낌마저 받고 있었다.

그 사실에는 확실히 경계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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