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충돌이라 할 법한 강한 접촉에 콧대가 부딪히고 입술이 얼얼할 정도로 세게 짓눌러졌다.
린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뒤로 기울어졌다. 하지만 이미 빈틈없이 맞물린 입술이 따라붙듯이 그녀를 쫓아와 이어지는 자극을 피할 수는 없었다.
체스휘는 린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곧바로 그녀의 입술을 물어뜯듯이 아프도록 세게 짓씹었다. 그러고는 린이 움찔거리며 작게 신음하는 사이, 거침없이 그 틈새를 파고들어 기어이 그녀의 깊은 곳까지 침범했다.
“잠깐, 읍….”
거기에 가로막혀 내뱉지 못한 말들이 안에서 의미 없이 부스러졌다. 미처 감지 못한 린의 눈에, 여전히 기묘한 광채가 서린 신비로운 보라색 눈동자가 한가득 비쳤다.
위에서 덮쳐드는 체중을 이기지 못해 린의 몸이 뒤로 완전히 넘어갔다. 그나마 체스휘의 손이 뒷머리를 감싸고 있어 테이블에 직접 부딪히지는 않았지만, 애초에 그 손의 목적은 보호가 아니었던 듯했다.
린은 단단한 손아귀에 뒷머리를 붙잡혀 고개를 조금도 옆으로 돌리지 못하고, 버겁도록 퍼부어지는 입맞춤을 고스란히 감당해 내야만 했다.
뒷머리를 파고든 손가락에 얽힌 머리카락이 당겨져 조금 아팠지만, 그런 것보다는 눈앞에 있는 남자가 주는 자극이 훨씬 강했다.
체스휘는 꼭 린조차 모르는 그녀 안의 무언가를 갈취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끊임없이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 그녀를 파헤쳤다. 뒤섞인 숨과 타액마저 꼭 향기롭고 달콤한 꿀이라도 되는 것처럼 린에게서 모조리 탐욕스럽게 빼앗아 삼켰다.
창살 없는 감옥처럼 린을 가두듯이 위에서 뒤덮은 몸이 뜨겁고 단단했다. 맞닿은 곳에서부터 퍼진 뜨거운 열기가 불덩이가 되어 온몸을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마주한 사람을 밀어내려고 시도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그랬듯이 별다른 소용은 없었다. 결국 린의 손은 체스휘의 어깨만 쥐어뜯듯이 움켜잡고 말았다.
지금의 체스휘는 늘 여유롭던 남자답지 않게 어쩐지 성급했다. 이제까지 중에 가장 거칠고, 어떤 의미로는 사납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입맞춤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는 이미 그녀를 완전히 무력화시켰음에도 만족을 모르는 것 같았다.
“아…. 어떡하지.”
그러다가 가까스로 얽혀 있던 혀가 떨어져 린이 허덕이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을 때, 눅눅한 숨결이 섞인 목소리가 귀에 낮게 울렸다.
“당신이 이 입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 어떤 기분이 들지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데….”
주체하지 못한 감정에 집어삼켜져 어딘가 고양된 것처럼 들리는 목소리가 낯선 음률처럼 속삭여졌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좋아.”
린과 마찬가지로 평소보다 붉게 물들어 촉촉하게 젖은 입술에 그 말처럼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잠깐 위로 들렸던 체스휘의 고개가 다시 린에게 떨어져 내렸다.
부드러운 입술이 달아오른 열로 조금 불그스름해진 린의 눈매에 눌러 찍혔다. 그러고는 아까처럼 그녀의 콧잔등과 뺨을 포함한 얼굴 곳곳을 지나쳐, 마지막으로 아직도 가쁜 숨을 내쉬는 린의 입술을 머금듯이 핥고 빨아당겼다.
린이 몸을 파르르 떨면서 작게 신음하는 순간, 체스휘의 눈이 다시 위험하게 가라앉았다.
가볍게 시작된 키스는 금방 다시 짙어졌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번에는 그리 오래지 않아 입술이 떼어졌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아까 체스휘가 얼굴을 박고 코를 문질렀던 린의 목덜미에 곧장 젖은 입술이 내려앉았던 것이다.
“으응…!”
린은 여린 살갗에 화인처럼 눌러 찍히는 뜨겁고 부드러운 감촉에 흠칫 놀라 몸을 뒤틀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체스휘가 원하지 않는 한 그의 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아까처럼 린의 뒷머리를 잡아 고정시킨 체스휘가 아예 그녀의 어깨를 활짝 열게 만든 뒤 눈앞에 드러난 하얀 목덜미를 크게 깨물었다. 린의 몸이 들썩였다.
“하, 하지 마요… 아!”
“미안, 아팠어요?”
“그게 아니라….”
전부터 한번 깨물어 보고 싶었다고 하더니, 빈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체스휘는 잇자국이 살짝 남은 린의 목을 달래듯이 입술을 포갰다. 하지만 애초에 그렇게 세게 문 것도 아니었고, 그래서인지 통증보다는 차마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문제였다.
체스휘의 눈매도 린처럼 조금 열이 오른 듯이 붉어져 있었다. 린을 향한 눈에는 명백한 욕망이 담겨 있었다.
그걸 보는데, 린도 이상하게 목이 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괜스레 숨이 가빠졌다.
“역시 단맛이 나는 것 같아요.”
체스휘가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속삭이며 목덜미의 여린 부분을 핥다가 입술 사이에 강하게 머금었다. 린은 또 당황스러운 신음이 새어 나올 것 같아서 얼른 입술을 깨물었다.
린은 꼭 자신이 눈앞에 있는 남자에게 진상된 정찬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그는 그녀의 모든 것을 먹어 치워 버릴 것처럼, 이제껏 눌러 참고 있던 탐욕을 온전히 드러내 그녀를 천천히 맛보려 하고 있었다.
목덜미를 야릇하게 지분거리는 입술의 감촉에 발끝이 곱아들고 몸이 비비 꼬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허리를 감싸고 있던 체스휘의 손이 미끄러지듯이 움직여 셔츠 속으로 파고든 순간, 린은 위기감을 느끼고 다급하게 입을 벌렸다.
“체… 체스휘 씨, 아니… 미카….”
하지만 그녀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작게 벙긋거리는 입술이 린의 당혹감을 알려 주었다.
‘뭐라고 불러야 되지?’
린은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상한 인물 정보를 확인한 직후 바로 상황이 이렇게 되어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한 사람에게서 두 명의 신원 정보가 떠오르는 건 일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도 이것과 비슷한 기시감이 들었던 기억이 린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래,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체스휘에게서 이름이 가려진 미카엘 카드리고의 인물 정보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단순히 오류로 인한 잘못된 정보인 줄 알고 그냥 넘어갔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당신… 도대체 뭐예요?”
린은 자신의 옷 사이로 파고든 체스휘의 팔을 붙잡고 숨을 죽인 목소리로 물었다.
체스휘는 린의 혼란을 느낀 듯이 여전히 그녀의 목덜미에 입술을 파묻은 채로 낮은 웃음을 흘렸다. 예민한 몸에 간지러운 숨결이 쏟아지자 등줄기가 오싹거렸다.
“그게 중요해요?”
가벼운 대꾸에 이어, 뜨거운 손이 린의 맨 살갗을 쓸며 허리를 타고 올라갔다.
린이 몸을 작게 들썩이면서 체스휘의 팔을 붙든 손에 힘을 줬다. 물론 체스휘에게는 이번에도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
“아니.”
체스휘가 린을 향해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지.”
린으로서는 헤아리기 어려운 빛이 깃든 눈동자가 가까워지고, 코끝이 가볍게 스쳤다. 뒤섞이는 숨결이 이상하게 달짝지근하게 느껴졌다.
“정말 중요한 건 우리가 결국 다시 만나서 지금 같이 있다는 거니까.”
그리고 이어진 그 말에 린이 의문을 드러낼 새도 없이 다시 거친 입맞춤이 이어졌다.
휘몰아치는 열기에 다시금 의혹은 부스러지고 정신은 아득해졌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내 눈앞에서 사라지지 말고 늘 옆에 있어요.”
어쩐지 어지러울 정도로 달콤한 그 속삭임이 온몸을 속박하듯이 휘감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린은 눈을 질끈 감았다.
기묘한 밤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10. 당신이 내 이름을 부를 때
‘아무래도 망한 것 같다.’
새벽녘에 내가 눈을 뜨자마자 가장 처음 한 생각이었다.
창밖에는 푸르스름한 빛이 은은하게 퍼져 있었고, 방 안에는 동이 틀 무렵 특유의 서늘한 고요함이 내리깔린 상태였다.
나는 푹신한 침대와 포근한 이불에 둘러싸여 아주 안락한 아침을 맞이했다. 그러나 이곳은 분명 내 방이 아니었고, 지금 나를 꽁꽁 감싸고 있는 건 이불만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이불이 이렇게 딱딱할 리가 없으니까.
나는 옆으로 누운 채 섣불리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온몸의 감각을 뒤쪽으로 집중시켰다.
등 뒤가 결코 무생물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온기로 뜨끈뜨끈했다. 게다가 내 허리를 감싸고 있는 팔도, 틀림없는 사람의 것이었다. 내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듯이 기대고 있는 사람이 숨을 색색 내쉴 때마다 노출된 피부가 간지러웠다.
게다가 나는 지금 나와 같은 침대에 누워 뒤에서 나를 끌어안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이미 알고 있었다.
잠깐 숨소리를 죽인 채 가만히 누워 어제의 일을 곱씹다가, 이내 상황 파악을 마친 뒤 동공 지진을 일으키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고 나서 또 잠깐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마른 입술을 침으로 축인 뒤, 슬쩍 이불을 들춰 내 행색을 확인했다.
다행히 나는 옷을 입고 있었다. 물론 처음 이 방에 왔을 때처럼 완전히 제대로 옷을 갖춰 입고 있느냐고 하면 그건 아닌데…. 그래도 이 정도면 세이프였다.
어젯밤의 일을 떠올리자 또다시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면서 두 눈이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얼굴을 마구 문지를 뻔하다가, 등 뒤에 누운 사람을 떠올리고 불현듯 몸을 굳혔다.
술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만취한 듯한, 그런 억울한 기분에 시달리며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려 하는 한숨인지 탄식인지 모를 것을 가까스로 삼켰다.
아니, 차라리 지난번에 콘라드와 만났던 수상한 사이비 집회에서처럼 필름이라도 끊긴 것처럼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면 그게 더 나았을까?
하지만 공교롭게도 지금의 나는 전부 다 기억이 났다.
그러니까 어젯밤 체스휘와 있었던 일도, 또 레드포드 저택에 돌아오기 전에 44세계에서 있었던 일도 전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