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좋은 냄새만 나.”
체스휘는 단순히 린에게 얼굴을 가까이 붙인 것뿐만이 아니라, 목덜미에 대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기까지 했다.
“전부터 느낀 건데….”
날렵한 콧대가 여린 살갗의 오목한 부분을 문지르자 솜털이 바싹 일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왠지 맛있을 것 같아서 한번 깨물어 보고 싶어지는 냄새야.”
속삭이는 듯한 낮은 목소리가 가볍게 내쉰 숨결에 섞여 귀를 간질이는 순간, 린은 망부석처럼 굳어 있다가 몸을 움찔 떨고 말았다.
물론 여러 번 파손되었다가 복구되면서 신진대사가 거의 멈춘 육신이었다. 게다가 카드리고 저택에서 빠져나오자마자 공중화장실에 들러, 지하실에서 묻은 먼지와 피를 눈에 보이는 대로 닦아 내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런 거리낌 없는 접촉에는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었다. 그 상대가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라면 더욱 그랬다.
체스휘가 고개를 가까이 기울여서 그녀의 뺨과 귀에 닿은 머리카락의 감촉이 유독 간지럽게 느껴졌다.
양팔 사이에 그녀를 가둔 채 앞을 가로막은 사람이 조금도 꿈쩍하지 않으니, 유일한 퇴로인 뒤쪽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자꾸 어디 가요?”
하지만 그 퇴로 또한 체스휘의 시야에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내가 진짜 깨물까 봐 도망가는 거예요?”
앉은 채로 뒤로 꾸물꾸물 움직이던 린은 허리를 감싼 팔에 가로막혀 다시 앞으로 훌쩍 끌어당겨졌다.
“체스휘 씨…. 거리가 좀, 너무 가깝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아니요. 난 이것보다 더 가까워지고 싶은데.”
일부러 그러는 건지, 아까처럼 다른 의미를 함의한 것 같은 나지막한 목소리가 귓가에 은밀하게 속삭여졌다.
그러나 느슨히 내리깔린 보라색 눈동자에는 얼핏 장난스러운 미소가 어려 있었다. 꼭 하찮고 귀여운 것을 보는 듯한 눈빛이 린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린은 이 와중에도 포기를 몰랐다. 허리를 붙잡혀 움직임을 봉쇄당한 채로 어떻게든 거리를 벌리려다 보니 린의 상반신만 뒤로 기울어졌다.
“린 씨, 아무래도 많이 피곤한가 보네요.”
그런 린을 보던 체스휘가 흐음, 하고 말을 이었다.
“하긴 밤이 늦었으니 그럴 수 있죠. 눕고 싶으면 그냥 누워요.”
“으앗!”
그렇게 공방 아닌 공방을 벌이던 어느 순간, 체스휘가 갑자기 봐준다는 듯이 린을 붙들고 있던 팔에 힘을 풀었다. 허리를 지탱하던 힘이 일시에 사라지자 몸이 확 뒤로 기울어졌다.
투둑, 툭!
린은 재빨리 팔꿈치를 테이블에 대서 몸이 완전히 넘어가는 걸 막았다. 대신 그 반동으로 그녀의 주머니에 들어 있던 것이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팔꿈치가 찌르르한 것을 느끼며 린은 소리가 들린 쪽으로 눈을 움직였다. 체스휘의 시선도 그녀를 따라 미끄러졌다.
주머니에서 굴러떨어진 건 카드리고 저택의 지하에 갇혔을 때 바닥에서 주운 부스러기들이었다. 어둠 속에서 거리를 가늠할 용도로 사용할 겸, 집사에게 자신의 위치를 교란시킬 목적으로 쓰기 위해 주머니에 쑤셔 넣어 놓고 지금까지 잊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옆으로 뻗어진 체스휘의 손이 그중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린도 몰랐지만, 그녀가 주운 것에는 깨진 물건의 파편 말고 다른 것도 섞여 있었던 모양이다.
체스휘의 손가락 사이로 언뜻 보이는 건 크기가 작아서 이렇게 대충 봐서는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단추인가? 동그란 게, 단추 비슷하게 생긴 것 같기도 한데.
“하하.”
불현듯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머리 위에서 흩어진 건 바로 그때였다.
“이거 나 주려고 선물로 가져온 거예요?”
고개를 든 린은 정면에서 마주한 눈을 보고 당황스럽게 눈을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이해할 수 없게도, 체스휘는 아주 행복해 보였다. 그는 뜻 모를 이채가 반짝이는 눈으로 린을 내려다보면서, 테이블에 반쯤 누운 그녀의 위로 부담스러울 만큼 바짝 몸을 기울였다.
“응? 나 주려고 가져왔어요?”
“그으… 네, 마음에 들면 가지세요.”
린은 보채듯이 물어오는 체스휘에게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러자 체스휘가 아주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었다.
“고마워요. 정말 마음에 들어요.”
왠지 지금의 체스휘는 크리스마스나 생일 같은 날에,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던 선물을 받아 몹시 기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린은 사실 자신이 카드리고 저택의 지하에서 주워 온 게 엄청난 귀중품이라도 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의혹이 어린 눈으로 체스휘의 손을 힐끔거렸으나, 체스휘가 무엇인지 모를 물건을 이미 완전히 손안에 그러쥐고 있어 정체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다 린은 이마와 콧잔등에 쪽쪽 소리를 내면서 차례로 눌러 찍히는 말랑한 감촉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뭐, 뭐예요?”
“좋아서요. 오늘 꼭 내 생일 같아요.”
당혹감 어린 린의 질문에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뒤따랐다.
카드리고에서 주워 온 게 그렇게 마음에 드나…?
린은 여전히 체스휘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는 정말 기분이 좋아서 들뜬 듯이 린의 얼굴에 계속 새가 부리로 쪼는 듯한 입맞춤을 퍼부었다. 꼭 주인에게 선물을 물어 온 다람쥐나 고양이를 귀여워하는 것 같은 모양새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체스휘는 린이 저택에 돌아왔을 때부터 이미 기분이 퍽 유쾌한 상태인 것 같았다. 혹시 그녀가 없는 동안 레드포드에서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저기, 다음에는 더 좋은 거로 선물해 줄게요.”
아무튼 체스휘가 별것도 아닌 걸로 너무 좋아하니 괜히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애초에 그에게 주려고 마음먹고 가져온 선물을 보고 이런 반응을 보여도 멋쩍을 텐데, 더군다나 이건 별생각 없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쓰레기를 주워 온 거나 마찬가지라서 더욱이 그랬다.
체스휘의 목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정말? 난 이것도 좋은데. 지금까지 내가 받아 본 선물 중에 제일 값지고 귀한 거예요.”
“그게요…?”
정말 카드리고의 숨겨진 가보나, 아니면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엄청 비싼 보석이라도 되나?
그리고 또 한 번 불거진 린의 의심을 종식시키며, 체스휘가 낯간지러운 소리를 했다.
“응, 린 씨가 준 거잖아요.”
“음….”
“그래도 다음에는 더 좋은 걸 주겠다니 설레네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대할게요.”
사실 린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꺼낸 말인데, 체스휘에게서 느껴지는 과한 기대감에 왠지 책임이 막중해졌다.
부담감에 어두워진 그녀의 표정을 읽어 냈는지, 체스휘가 장난스럽게 킥킥 웃으면서 또 린의 얼굴에 도장을 찍었다.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뽀뽀 세례에, 린은 조금 전 체스휘에게 간지러운 소리를 들었을 때보다 더 낯부끄러워졌다. 깃털 같은 입맞춤이 내려앉는 얼굴도 간지러웠고, 거기에 전염되기라도 한 것처럼 덩달아 간질거리는 속도 손으로 벅벅 긁고 싶어졌다.
꼭 주인에게 꼬리를 치며 달려들어 얼굴을 핥아 대는 대형견에게 떠밀린 것처럼 몸이 점점 뒤로 기울어졌다.
“잠깐, 잠깐만요. 알겠으니까 이제 그만….”
결국 참다 못한 린이 손을 들어 다시금 다가오는 얼굴을 막았으나, 뒤이어 눈을 가늘게 접은 체스휘가 그녀의 손가락을 잘근거리며 깨물어서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펄쩍 뛸 수밖에 없었다.
거세진 감정의 동요 탓인지, 가이드가 마음대로 잠금 기능을 해제해 그녀와 밀착한 남자의 인물 정보를 눈앞에 풀어놨다.
<체스휘(24세)>
- 제41세계 출신(루녹스 예비 양육자 육성 기관 소속)
- 레드포드 저택 2호실 미뉴엘의 양육자
- 성격: 다정함, 신중함, 희생적, 사려 깊음, 온화함
- 별명: 순정남
- 현재 상태: 즐거움, 기쁨
- 호감도: 98/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