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43)화 (143/300)

린 도체스터는 잠깐 바닥에 엎드린 채 미동이 없었다.

그녀는 상황 파악을 하려는 듯이 분홍빛 눈을 두어 번 깜빡인 뒤 고개를 돌렸다.

“이… 빌어먹을 놈들!”

푹, 하고 날카롭게 갈린 날붙이가 린의 얼굴 옆으로 꽂혀 들어왔다.

토마스는 린이 그것을 피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손을 휘둘렀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 방향이 좀 이상했다.

“여기까지, 헉… 나를 쫓아와서 죽이려고 해?! 그렇다고 내가 죽을 것 같으냐…!”

토마스의 불타는 눈이 맹렬히 노려보고 있는 곳은 아무도 없는 허공이었다. 아무래도 지금 그가 노리는 목표물은 린이 아닌 듯했다.

그런 와중에 뚝뚝,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린의 흐릿한 정신을 현실로 불러들였다.

손등에 튀는 차가운 물의 감촉에 희미하던 현실감이 급격히 밀려들었다. 지금까지의 상황이 순식간에 정리되어 머릿속에 입력되기 시작했다.

“나는 붉은 매 용병단의 123기 부대장이다!”

반사적으로 가이드와의 교신을 시도해 봤으나 여전히 먹통이었다. 아무래도 교란 장치로 인한 일시적인 기능 단절인 듯했다.

“다 죽어 가는 꼴로 나타난 네놈들 따위에게는 결코 당하지 않아!”

게다가 환각 작용이 있는 꽃.

린은 조금 전 토마스의 목을 조르던 덩굴에서 떨어져 바닥에 흩어진 보라색 꽃을 이전에 보았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이것은 포자가 점막에 직접 닿았을 때 증상이 나타나는 종류였는데, 아무래도 집사 토마스는 방금 린과 근접전을 벌일 때 문제가 되는 식물의 포자와 대거 접촉한 듯했다.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며 지껄이는 소리를 들어 보니, 그의 눈에는 용병 생활을 하던 시절에 죽인 자들이 보이는 모양이었다.

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에 든 총의 개머리판으로 계속해서 헛소리를 떠드는 남자의 머리를 가차 없이 후려쳤다.

퍼억!

“큭!”

토마스는 비틀거리면서도 미친 듯이 린을 향해 칼을 휘둘러 댔다.

린은 몸을 낮춰 그것을 피하면서 토마스의 가슴팍으로 파고 들어가 그의 명치를 더 세게 가격했다. 급소를 맞은 토마스가 마침내 단말마를 내뱉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철컥!

망설임 없이 움직인 총구가 토마스의 머리를 짓눌렀다. 바닥에 엎어진 남자의 등을 발로 짓밟은 린이 싸늘한 눈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린의 손가락은 막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에 멈췄다.

굳이 살생을 꺼리는 마음 때문은 아니었다. 다만 집사 토마스는 카드리고 저택의 권속으로, 그의 생사여탈권은 린의 손에 있지 않았다.

탕탕! 탕, 탕…!

잠시 후 총이 발포되었다. 토마스는 양쪽 어깨와 무릎에 총알을 하나씩 박은 채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린은 토마스를 무력화시킨 뒤 그에게서 주저 없이 손을 뗐다. 토마스의 옷을 뒤져 무장 해제를 시키고, 총알을 꺼내 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 뒤 린은 어깨에 멘 자신의 총 대신 토마스의 총을 들어 기둥과 벽면 그리고 바닥을 통통통 두드려 보기 시작했다.

어차피 토마스의 성격상 순순히 출입구를 알려 주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스스로 찾아낼 생각이었다.

그렇게 밀실의 통로가 숨어 있을 법한 장소를 몇 군데 확인해 보자,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소리가 유독 가볍게 들리는 곳이 두어 군데 있었다.

린은 아까 넘어졌을 때 배수관에서 샌 물에 젖은 손을 그 앞쪽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미약하게나마 공기의 흐름이 느껴지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탕탕! 타앙…!

린은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린 뒤, 총알을 보충한 토마스의 총을 들고 벽에 난사했다.

얼기설기 구멍이 뚫린 곳으로 미약한 빛이 새어 들어왔다.

체중을 실어 벽을 들이받자, 구멍이 뚫려 내구성이 줄어든 금속 합판이 뜯겨 나갔다. 린은 그것과 함께 바닥을 나뒹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헤치며 고개를 돌리자, 예상했던 대로 통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정확히 어디로 이어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 길을 따라가면 지상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린은 신음하는 토마스를 어두운 지하에 혼자 두고 미약한 불빛이 일렁이는 통로를 걷기 시작했다.

***

“소, 손님? 아까 돌아가신 게 아니었나요?”

통로는 1층의 다용도실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번에도 강제로 막혀 있는 입구를 뚫고 밖으로 나오자, 고용인들이 놀란 눈으로 린을 쳐다보았다.

“린 도체스터!”

소란을 듣고 온 듯한 라파엘도 ‘네가 왜 거기서 나와?’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로 린을 보며 입을 벌렸다.

“뭐지? 도대체 지금까지 어디에 있다가 그런 몰골로….”

“라파엘 카드리고 2등급 심문관님.”

하지만 라파엘은 린의 입에서 나온 건조한 목소리에 멈칫하고 말았다.

린이 부르는 라파엘의 호칭과 그를 대하는 태도가 누구라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물론 그것이 낯설지는 않았다. 린이 ‘선배님, 선배님.’ 하면서 라파엘에게 이상할 정도로 살갑게 굴기 전의 원래 모습이었으니까. 그녀는 원래도 대주교 릭 도체스터의 앞에서만 주인의 관심에 눈이 뒤집힌 개처럼 굴었었다.

“집사 토마스는 이 저택의 지하에 있습니다.”

“뭐?”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오해로 저를 감금하고 협박했을 뿐 아니라 일방적으로 공격해 오기까지 한 탓에, 그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부상을 입혔습니다. 도체스터의 이름을 모욕한 것만으로도 즉결 처분할 중죄라 할 만하나, 그는 카드리고 소속이고 이곳 또한 카드리고의 사적인 장소이니, 그를 처벌하는 것은 제 소관이 아니라 판단되어 목숨은 빼앗지 않았습니다.”

라파엘이 린의 말에 무어라 반응을 보일 새도 없이, 그녀는 걸음을 옮겨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훌쩍 좁혔다.

“그리고 확인할 것이 있어서 잠시만.”

뒤이어 린은 라파엘의 옷깃을 손으로 잡아 그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주변에 있던 고용인들이 그 모습을 보고 놀란 듯이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린은 그들의 시선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라파엘의 목덜미에 코를 묻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직후, 린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역시, 라파엘에게서는 익숙한 냄새가 났다. 새로운 주인의 냄새였다.

“린 도체스터…. 이게 무슨 짓이지?”

“이 일은 대주교님께 보고하지 않겠습니다.”

린은 자신의 돌발 행동에 당황한 듯한 라파엘을 가볍게 밀쳐 내며 말했다. 그 내용이 의외였는지 라파엘이 눈매를 찌푸렸다.

“그런데 미카엘 카드리고는 본국을 위해 명예롭게 순교한 게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미처 방비하지 못한 사이에 찔러 들어온 린의 물음에 라파엘은 굳은 듯이 움직임을 멈췄다.

린의 시선은 언젠가부터 라파엘에게서 살짝 비껴 나 있었다. 사실 그녀의 눈에는 지하실에서 보던 것과 비슷한 환영이 아까부터 계속 어른거리는 상태였다.

그리고 지금, 린의 시야에는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의 미카엘 카드리고가 피투성이가 된 채 라파엘을 둘러싸고 있는 광경이 비치고 있었다.

<미카엘 카드리고(27세)>

- 제44세계 중앙 비밀 기관 스텔라(stēla) 소속 1등급 집행관

- 성격: 냉혹함, 오만함, 자기중심적, 몰인정함, 비정함

- 별명: 스텔라의 사신, 이단 처형인, 대주교의 광견, 도살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