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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41)화 (141/300)

“린 도체스터. 아무리 애써 봤자 결국은 헛짓거리일 뿐이고, 어차피 너는 이곳에서 죽는다. 네가 어떻게 바르작거려도 그 사실은 바뀌지 않아.”

역시나 내 예상대로 지금 당장 나를 잡아 죽일 생각은 없는 듯, 여유로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니 어디 한번 할 수 있는 만큼 꿈틀거려 봐라.”

집착하는 중년 아저씨는 소름만 끼치는데.

‘게다가 나는 말 많은 아저씨도 별로 안 좋아한단 말이야!’

타앙…!

집사에게 닥치라는 의미로 총알을 한 발 먹여 줬다.

집사는 그 후로 나를 더 가지고 놀듯이 여기저기서 나를 저격하며 몇 발 더 총탄을 낭비했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나자, 문득 주변이 조용해졌다.

집사가 그새 어디론가 사라진 건지, 아니면 여전히 어딘가에 숨어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내 안의 유교 걸을 버리고 속으로 집사의 욕을 하면서 일단은 인기척을 최대한 죽인 채 자리를 옮겼다.

아까 섬광탄이 터졌을 때 언뜻 보니 왠지 저쪽에 출입구가 있을 것처럼 생겼던데, 집사가 무반응일 때 확인을 한번 해 보고 싶었다.

이 지하로 떨어지고 나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라파엘이 내 부재를 알아차리기에는 충분한 듯했다.

그래도 그가 집사를 의심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더 나아가서, 내가 자기네 저택의 지하에 있다는 걸 알아차릴 확률은?

내가 집사라면 라파엘에게 그가 자리를 비운 동안 손님이 떠났다고 거짓말을 쳤을 것 같았다. 나사가 하나 빠진 듯이 굴던 라파엘이라면 그 말을 순순히 믿을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집사는 아까 그의 말처럼 내가 이 어둠 속에서 혼자 꿈틀거리다가 완전히 진이 빠질 때까지 기다릴 작정인 게 분명했다. 정말 변태 같은 성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조용히 자리를 옮기는 동안, 천장에 매달려 있던 덩굴 식물이 내 머리를 건드렸다. 그 순간 웬 가루 같은 게 흩날려서, 기침이 나올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식물에 꽃 같은 게 피어 있는 것 같던데, 내가 건드려서 꽃가루라도 날린 건가? 아니면 먼지?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환각 작용이 일어나는 원인도 찾지 못했다. 겸사겸사 호흡기를 막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해져 있는 손수건을 꺼내 코와 입을 가렸다.

“미카엘 도련님. 어쩐 일로 저를 다 보자고 하셨습니까?”

그렇게 잠깐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해 보고 있을 때, 아까의 소년이 이번에는 내 기억과 좀 더 가까운 청년의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났다.

확연히 키가 커지고 건장해진 몸. 그리고 이목구비가 한결 뚜렷해진 잘생긴 얼굴.

늘 써늘하니 무표정한 얼굴만 하고 있던 소년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손에 턱을 괴고 있었다.

이미 그럴 거라고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나이 든 모습을 보니 내가 아는 미카엘 카드리고가 맞았다.

그러나 지금은 갓 성인이 된 정도의 나이인 듯이, 내 기억에 있는 것보다 아직 앳되고 싱그러운 기운이 남아 있는 얼굴이었다.

“어쩐 일이냐니, 거의 일 년 만에 보는 건데 인사가 너무 삭막하네요.”

아까부터 계속 등장하는 어른 남자 쪽도 조금 더 나이가 든 모습이었는데, 그의 물음에 미카엘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저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고 싶어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늘 무표정하기만 하던 얼굴에 지금은 미소를 짓고 있어서 그런가?

소년 시절과는 확실히 미카엘 카드리고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불과 몇 년이 지났을 뿐인데, 인간 같지 않게 삭막하던 말과 행동이 전보다 자연스러워진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여전히 냉연하고 건조한 기운도 느껴졌는데, 어쩌면 비록 미소를 짓고 있기는 하나, 거기에서 감정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제는 예전처럼 교육받을 일이 없어져서 이렇게 직접 얼굴을 마주할 일이 좀처럼 생기지 않기도 하니까.’

태연하게 덧붙여진 미카엘의 말에 그와 마주 앉은 남자가 한순간 불만스러운 듯이 입술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는 곧 표정을 감추고 입술 끝을 비틀어 미소 비슷한 것을 만들어 보인 뒤 말했다.

“그러고 보니 따로 축하 인사를 드리지 못했군요. 이번에 이례적인 인선으로 미카엘 도련님이 주인님의 일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주인님께서도 요즘 밖에서 미카엘 도련님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지요?”

처음에는 어쩐 일로 미카엘을 칭찬하나 했더니, 이어지는 내용은 역시 먼저 들었던 것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무덤의 흙더미를 갉아 먹던 버러지나 다름없더니, 그래도 지금은 제법 인간답게 살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 모습을 보니 저도 무지한 카타콤의 폐물을 데려다가 가르친 보람이 느껴져 기쁩니다.”

어떻게 들어도 악의가 뚝뚝 떨어지는 말이었다.

하지만 미카엘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이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앞에 앉은 남자를 가만히 응시하고만 있었다.

“하지만 미카엘 도련님의 교육을 담당했던 자로서 노파심이 들어서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는데…. 주인님께서 요즘 미카엘 도련님을 조금 좋게 봐 주신다고 너무 오만불손하게 구는 게 아닙니까? 그래 봤자 당신은 카드리고의 소모품일 뿐입니다. 혹시 예전처럼 주제도 모르고 본인이 진짜 카드리고의 귀하신 도련님들과 같은 위치라도 되는 양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나는 그냥 귀를 닫기로 하고 마침 지하실의 끝에 도착해 손에 닿은 벽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늘 겸손하게 엎드려 사십시오. 은혜와 분수를 모르는 개는 금방 잡아먹히는 법입니다.”

“은혜와 분수를 모르는 개…. 제가 그렇게 보였나 보군요.”

“그래도 한때의 인연이 있으니 이런 충고도 해 드리는 겁니다. 아무리 인간 행세를 하고 있어도 출신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 항상 제 가르침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사세요.”

하지만 사람의 귀라는 게 닫고 싶다고 마음대로 닫을 수 있는 것이던가. 뚫려 있는 귓구멍으로 계속 기분 나쁜 소리가 흘러들어서 점점 짜증이 났다.

이런 게 가스라이팅의 정석인가 싶을 정도로 남자가 지껄이는 소리는 하나같이 저열하고 졸렬하기 짝이 없었다.

아, 아까부터 진짜 마음에 안 드네. 가뜩이나 집사 때문에 짜증스러운데 같잖은 환영까지 정신을 산만하게 만들고 말이다.

“생각보다… 용감하시네.”

그런데 다음 순간, 문득 옅은 웃음소리가 부스러지듯이 귓가에 울렸다.

집사를 경계하며 벽을 조사하던 나는 그 소리를 따라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뜻밖에도 미카엘은 이 상황이 조금도 불쾌하지 않은 듯이 아까보다 좀 더 짙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기분 탓인지 그 미소는 어딘가 섬뜩하게 느껴졌다.

“나라면, 그 은혜와 분수도 모르는 개새끼와 겁도 없이 단둘이 밀실에 있지 않을 텐데.”

“뭐… 그게 무슨 말….”

…드르륵!

불현듯 불길함을 감지하기라도 한 것처럼 미카엘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뒤로 밀려난 의자가 바닥을 끄는 소리를 내고, 몸에 부딪힌 테이블이 흔들렸다.

“지금…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어쩐지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애초에 인사 따위를 하려고 부른 게 아니었던 거군?”

남자가 지금까지와 달리 경계심을 드러내며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미카엘은 여전히 여유롭게 의자에 앉은 채 다리 위에 느슨히 깍지를 낀 손을 가볍게 까딱였다.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었으나, 그의 눈빛은 지금까지 어떻게 알아차리지 못했나 싶을 정도로 어둡고 차가웠다.

“미친 건가? 내가 카드리고에 온 걸 위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봤는데. 주인님께서도 내가 너와 만나는 걸 알고 계신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날 건드리면 네가 무사할 줄….”

“이 와중에도 내 걱정을 다 해 주시다니, 참 감동적이기도 하지.”

그리고 마침내, 미카엘이 막 사냥을 시작하려는 맹수처럼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 사실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걸 당신도 알 텐데.”

그와 시선을 마주한 남자가 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는 기둥에 실제로 등을 부딪치기라도 한 듯이 뒷걸음질 치던 것을 멈췄다.

“밖에 나가서 이쪽 세계 기준에 맞춰 살아 보니, 벌레 새끼 죽이는 데 그리 큰 품이 들지는 않더라고.”

그 속삭임을 끝으로 곧게 다물린 미카엘의 입술이 짙은 호선을 그렸다.

남자가 급히 몸을 움직이고, 미카엘이 그 뒤를 따랐다.

내 시야에 비치지 않는 기둥 너머에서 남자의 비명이 울렸다.

나는 어느새 벽을 더듬던 손을 멈추고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몰입하고 있었다. 어쩐지 등 뒤로 식은땀이 배어 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심코 숨소리마저 죽인 채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있다가, 잠시 후 살며시 몸을 움직여 기둥 뒤쪽을 확인했다.

미카엘 카드리고는 나를 등진 채 서 있었다. 방금까지 그의 앞에 서 있던 남자는 헝겊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진 상태였다.

그리고 미카엘이 갑자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온 남자의 콧등과 뺨, 목덜미 부분에는 피로 보이는 붉은 것이 튀어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그 순간 시스템 창에 새로운 인물 정보가 떠올랐다.

<미카엘 카드리고(19세)>

- 제44세계 중앙 비밀 기관 스텔라(stēla) 소속 3등급 집행관

- 성격: 냉혹함, 오만함, 자기중심적

- 별명: 이단 처형인, 도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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