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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39)화 (139/300)

나는 걸음을 멈추고 숨소리를 죽인 채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주변은 여전히 바늘 굴러가는 소리조차 들릴 것 같을 정도로 조용하기만 했다.

한순간이지만 사람 목소리 같은 게 들린 듯했는데, 혹시 내가 잘못 들었나?

다시 한번 오감을 집중시켰으나 역시 이곳에 다른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미심쩍은 마음에 고개를 갸웃한 뒤 몸을 숙여 바닥을 더듬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부서진 물건의 파편 같은 것들이 손에 잡혔다. 그걸 주워 들어 어둠 속으로 내던졌다.

툭! 툭…! 데구루루….

내가 던진 게 어딘가에 부딪친 뒤 떨어져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나서 또다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나는 다시 한번 더 손에 움켜쥔 것들을 여러 방향으로 동시에 집어 던졌다.

딱딱한 것들이 어딘가에 부딪치는 소리가 연이어 울리고, 그 직후 어김없이 사방에는 한결 짙게 느껴지는 적막감이 고였다.

확인해 보니 역시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게 확실한 듯했고, 나는 그중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던 곳으로 걸어갔다.

곧이어 손에 벽처럼 느껴지는 단단한 감촉이 닿았다.

서늘한 공기와 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두운 시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아무래도 여긴 지하인 것 같았다. 뭐, 추락할 때의 느낌으로 이미 그럴 거라고 예상하긴 했던 참이라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혹시 다시 위쪽으로 올라갈 수는 없을까 생각해 봤지만, 나한테 맨몸으로 암벽을 등반하는 재주는 없었다. 게다가 기껏 개고생해서 부득불 올라가 봤자, 천장이 다시 열리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일단은 벽을 따라 걸으면서 탈출로를 찾든가, 아니면 집사에게서 몸을 숨길 만한 장소를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정확한 전투 스타일은 모르지만, 집사의 피지컬로 봐서는 근접전에 유리할 것 같던데. 그럼 나는 원거리를 노리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혹시 이대로 탈출로를 찾지 못할 것 같으면, 조용히 은신해 있다가 집사가 왔을 때 총으로 저격해 쏠 수 있게 대비하는 게 가장 좋을 듯했다.

‘그나저나, 여기 되게 깜깜하네.’

그나마 눈이 어둠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 마음대로 돌아다닐 정도는 아니었다. 어딘가에 불을 켜는 장치가 있을 것 같기도 했는데, 이런 상태에서 그걸 찾아내는 건 지나친 요행을 기대하는 일인 것 같았다.

덜그럭!

‘에구…!’

그렇게 벽을 따라 걷다가, 무릎에 무언가가 부딪혀서 퍼뜩 걸음을 멈췄다.

조심해서 걷는다고 했는데도 시야 확보가 수월하지 않아 실수했다. 주위가 조용해서 그런지 소리가 유독 크게 울린 것처럼 느껴졌다.

혹시 집사가 지금 근처에 와 있다가 방금의 소리로 내 위치를 알아낸 거 아니야?

그럼 낭패다 싶어서, 아까 챙겨 온 작은 파편들을 꺼내 곧바로 멀리 집어던졌다. 그러고 나서 나도 만일을 대비해 날아든 공격을 피할 수 있게 재빨리 몸을 낮췄다.

하지만 다행히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에이 씨, 괜히 긴장했네.’

나는 바닥에 낮은 포복 자세를 취하고 있다가, 혼자 원맨쇼를 벌인 듯한 뻘쭘함에 엉거주춤 일어났다. 다가오는 움직임이 보이면 바로 쏘려고 들고 있던 총도 내리고, 방아쇠에 걸었던 손가락도 뗐다.

그런 뒤 다시 벽 쪽으로 다가가 방금 무릎에 부딪힌 것을 손으로 더듬었다.

만져 보니 모양이 의자 같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앞에는… 책상으로 추정되는 물건도 있었다.

책상하고 의자? 왜 지하에 이런 게 있지?

그냥 창고로 쓰이는 공간은 아닌 것 같은데….

‘…습니까, 도련님?’

바로 그 순간, 작게 소곤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나는 흠칫 놀라 몸을 곧추세웠다.

‘폐품이 되어 …의 먼지로 사라졌어야 할 도련님에게 새로운 …과 이름을 준 것은… 카드리고 가문입니다.’

‘그러니… 늘 카드리고의 은혜에 감사하며… 헌신하는 …을 가지십시오. 아시겠습니까?’

소리는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 가늘게 이어졌다.

조금 전처럼 착각으로 치부하지 못할 정도로, 이번에 고막을 파고든 건 확실히 또렷한 말소리였다.

그런데 이게 도대체 어디에서 들려오는 소리일까? 분명 어디선가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이상하게 방향을 감지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귀에 번지는 음성은 꼭 몽롱한 상태에서 듣는 소리처럼 어딘가 아득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숨을 죽인 채 작게 흘러드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이내 설핏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래도 환청인 것 같은데?’

혹시 집사 아저씨가 던진 칼에 독이라도 묻어 있었나? 혹시 몰라서 나도 아까 이곳으로 떨어지자마자 칼이 스친 부위에 대충 조치를 취하기는 했었는데, 어쩌면 독의 일부가 체내에 흡수된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스템 창에 딱히 중독 상태라고 뜨지 않은 걸 보면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되었든 간에, 나는 손으로 코를 막으며 걸음을 서두르기로 했다. 원래는 탈출구를 찾지 못하면 이곳에서 몸을 감출 만한 장소를 찾으려고 했는데, 만약 여기에 환청을 유발하는 요소가 있는 거라면 오래 머물기 위험했다.

툭!

그렇게 걸음을 옮기다가, 또다시 무언가에 몸을 살짝 부딪혔다.

나는 장애물을 피해 움직일 생각으로, 내 앞에 있는 게 뭔지 확인하려 손을 들었다.

“……!”

하지만 곧 손끝에 닿은 감촉에 솜털이 바짝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철컥!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며 곧장 총구를 겨냥했다.

분명 내 손에 닿은 건 지금까지처럼 딱딱한 물건이 아니었다. 좀 더 보드랍고 따스한 온기를 가진 무언가.

그것은 살아 있는 생물체, 그것도 인간에게만 느낄 수 있는 감촉이었다.

하지만 내가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마치 안개가 걷히듯이 어둡던 시야가 서서히 개기 시작했다. 꼭 어둠 속에서 한 곳에만 조명을 틀기라도 한 것처럼 내 앞쪽만 서서히 밝아졌다.

내가 총을 들이밀고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도 곧 알 수 있었다.

방금 나와 몸을 부딪친 건….

‘뭐야, 어린애?’

마음이 동요한 순간 앞을 겨냥한 총구가 살짝 흔들렸다.

내 앞에 서 있는 건 검은 머리카락에 주홍빛 눈을 가진, 십 대 중반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예쁘장한 소년이었다. 그런데 지독히도 서늘하고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이렇게 그냥 보면 꼭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마네킹이나 인형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뭐지?’

아마 다음 순간 소년이 작게 입술을 달싹이지만 않았다면, 방금 내 손에 닿은 따스한 체온도 잊고 정말 진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지금 뭔가가 나를 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왠지 소년의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연인지, 일순간 시선이 마주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년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다가 팔을 들었다. 그리고 내가 서 있는 곳으로 손을 움직였다.

나는 그 손이 나한테 닿기 전에, 무심코 그것을 피하듯이 뒤로 물러났다.

‘미카엘 도련님, 거기에서 뭘 하십니까? 빨리 이리 오십시오.’

그 순간, 내 뒤에서 방금 들은 것과 같은 목소리가 다시 한번 울렸다. 막 나한테 닿을 것처럼 앞으로 뻗어지던 손이 불현듯 멈췄다.

잠시 후, 소년은 팔을 내리고 자리에서 걸음을 떼 나를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나는 방금 내 앞을 지나간 소년을 쳐다봤다.

한번 눈을 감았다가 떴을 뿐인데, 꼭 장면 전환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어느새 소년은 나와 훌쩍 멀어진 곳에 앉아 있었다.

‘카드리고에 헌신하기 위해 미카엘 도련님이 배워야 할 내용이 많습니다. 그러니 이번 달 안으로 이 방에서 나가고 싶다면 정신 똑바로 차리십시오. 지난번처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천박한 기질을 버리지 못하고 추태를 부린다면 더 큰 벌을 받아야 할 겁니다.’

소년과 함께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건 어른인 남자였다. 내게 뒷모습만 보이는 소년과 달리 남자는 꼭 오물이라도 눈앞에 둔 것처럼 불쾌함과 멸시가 담긴 냉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두 사람이 앉아 있는 곳은, 아까 내 앞길을 가로막은 장애물인 책상과 의자가 있는 곳이었다.

나는 잠깐 가만히 선 채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움직였다.

그런데 내가 바로 코앞까지 가까이 다가가도 두 사람은 나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꼭 내가 유령이라도 된 듯한 느낌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첫째 도련님께서는 성년이 된 지금까지도 지나치게 자유분방하시고 실질적으로 가문을 물려받을 가능성이 큰 영특한 셋째 도련님은 아직 나이가 어리시지요. 그러니 셋째 도련님이 장성하실 때까지 그분을 잘 보필하는 게 미카엘 도련님의 역할입니다.’

나는 팔을 들어, 소년에게 계속 주절거리고 있는 남자에게 살짝 손가락 끝을 가져다 댔다.

하지만 내 손은 그의 몸을 그대로 통과해 지나갔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입술 사이로 얕은 숨을 내뱉었다.

뭐야, 이것도 환영이야?

그럼 방금 그 느낌은 뭐였지? 분명 이 남자애하고 몸이 부딪힌 것 같았는데… 설마 착각이었나?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조금 전에 내 손에 닿았던 온기가 아직도 손가락 끝에 스며 있는 듯했다. 소년도 분명 누군가가 자신을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었고 말이다.

‘아예 셋째 도련님을 주인으로 여기며 살아가십시오. 한낱 무덤 출신인 미카엘 도련님에게는 분에 넘치는 영광이자 다시는 오지 않을 행운이란 것을 잊지 마시고요.’

그보다….

이 남자애, 역시 미카엘 카드리고인가 보다.

처음 봤을 때부터 어딘가 눈에 익은 외모에 설마 싶긴 했는데, 귀에 들리는 환청에서도 역시나 그는 내가 알고 있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럼 이건 어린 시절의 모습인가?

그런데 왜 이렇게 생생한 환영이 보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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