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38)화 (138/300)

“미카엘 도련님?”

“이미 아시겠지만, 카드리고 가문의 차남이셨지요.”

이어진 발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린 도체스터 님처럼 카타콤 출신이었습니다.”

집사는 내가 아니라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방 주인에 대한 회상이라도 하는지, 그는 마른 시선으로 주변을 느리게 훑으며 방의 외곽 쪽을 둘러 걷기 시작했다.

“아, 그러고 보니 스텔라에서 같은 도살자라 불리기도 했군요.”

집사를 따라 무심코 움직인 시선 끝에 사진 액자 하나가 걸렸다. 장식장 위에 놓인 독사진이었는데, 역시 죽은 것이 아까울 정도로 참 잘생긴 얼굴이었다.

“이제 보니 미카엘 도련님과 린 도체스터 님은 공통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비천한 출신으로 카드리고와 도체스터, 본국에서도 손에 꼽는 두 명문 귀족 가문에 거두어진 것도 그렇고요.”

하지만 잘생긴 건 잘생긴 거고, 이렇게 묻지도 않은 TMI 설명을 집사에게 강제 입력 당할 정도로 미카엘에게 그리 큰 관심이 있지는 않단 말이다.

‘라파엘도 그러더니, 이놈의 집사도 괜히 나를 자기네 둘째 도련님에게 이입시켜서 떠들어 대네.’

말본새를 보니 둘 다 미카엘이란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래도 그렇지 이 집사 아저씨는 참 나잇값도 못 했다. 미카엘의 출신 배경이 나와 얼마나 비슷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죽은 사람까지 소환해서 이렇게 꼽을 주면 쓰나?

“그러니 어쩌면 두 분의 마지막 순간까지 닮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이어서 나지막하게 덧붙여진 집사의 말은 퍽 의미심장했고, 그 안에서 이제는 정말 감출 수 없는 악의가 느껴졌다.

“이 방은 원래 미카엘 도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바로 치우려 했지만, 라파엘 도련님이 말리셨습니다.”

나를 지그시 응시하던 집사가 손을 움직여 마침 옆에 있던 장식장을 훑었다. 혹시 손에 잡히는 물건을 무기 삼아 드디어 나를 공격하려는 건가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는 장식장 앞을 지나쳐 벽난로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모두가 멸시하던 분에게조차 온정을 베푸실 정도로 정이 깊은 분입니다, 라파엘 도련님은.”

아무래도 이 집사는, 자기 셋째 도련님에게 콩깍지가 단단히 씐 듯하다. 물론 인물 정보를 확인해 웃기지도 않은 별명을 눈에 담았을 때부터 알아보긴 했다.

“그러니 당신 같은 기생충이 주제도 모르고 달라붙은 것이겠지만.”

오늘 44세계에 와서 가뜩이나 사냥개니 야생 개니 하는 소리를 듣다가, 이번에는 기생충까지 등판하셨다.

“귀족 중의 귀족이라는 카드리고에서 손님맞이를 뭐 이런 식으로 하는지 모르겠네요.”

나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채 집사를 보다가, 곧 그가 그랬듯이 방 안을 천천히 걸으면서 입을 열었다.

이곳은 도체스터 가문의 저택에서 본 내 방처럼 좁고 텅 빈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카드리고에서 앞서 본 다른 방들과 달리 꽤나 심플한 편이었다.

방 주인의 취향인 건지, 아니면 나처럼 노골적으로 군식구 대접을 받아서 이런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래서 집사가 이 방을 고른 게 아닐까 싶었다. 몸싸움을 벌여도 때려 부술 물건이 거의 없어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밖에도 소리가 들릴 텐데, 큰 소란 없이 나를 해치울 자신이 있는 건가? 아니면 다소의 소란이 일어나도 라파엘이나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에 처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

“집사가 말하던 카드리고의 품격이 이런 거라면 다른 건 굳이 더 듣지 않아도 알 만하고….”

나는 테이블 뒤에서 걸음을 멈추고 집사에게 보란 듯이 에휴, 한숨을 푹 내쉬면서 얄밉게 말했다.

“그런데 어쩌나요? 그 정 깊은 라파엘 도련님은 그 기생충이 꼭 옆에 있어야 하겠다는데.”

어차피 이제는 집사도 내숭을 떨지 않고 본색을 드러낼 생각인 것 같은데, 나도 굳이 친절하게 굴 필요는 없었다.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자기 옆에만 꼭 붙어 있으라고 오늘만 해도 나한테 몇 번이나 귀 따갑게 말했는데요. 카드리고의 집사님은 그 다정한 라파엘 도련님의 마음을 응원해 줄 생각은 없나 봐요?”

물론 라파엘이 나한테 옆에 있으라고 말한 건 카드리고에 있을 때 한정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달콤상큼한 감정으로 그런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그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집사에게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사실 집사의 말본새가 영 별로라, 겸사겸사 약올려 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역시 카타콤 출신답게 주제를 모르는군.”

역시나 내 말에 열이 오른 듯이 집사가 턱을 파르르 떨며 이를 악물어서 조금 깨소금 맛이었다.

“그래, 아무리 좋게 말해도 라파엘 도련님에게서 떨어질 생각이 없을 줄 알았다.”

“아니, 달라붙은 건 내가 아니라 당신 도련님이거든요? 아까 들었을 텐데, 계획에도 없이 오늘 여기에 오게 된 것도 그쪽 도련님의 일방적인 행동 때문이라고요.”

“벌레 주제에 언제 또 라파엘 도련님 같은 완벽한 분을 만날 수 있을까. 카드리고의 위광 속에 기어들어 와 명예와 권력과 부를 탐낼 생각인가 본데, 상대를 잘못 골랐다.”

“진짜 이 아저씨 왜 이래. 저기요? 잊었나 본데, 일단은 나도 도체스터예요. 카드리고의 위광 따위 누가 필요하다고. 우리 대주교님 자존심 상해서 분기탱천할 소리 하시네.”

어이가 없어서 반박했으나. 집사는 눈이 뒤집혀서 내 말이 들리지 않는 눈치였다. 그는 자기 하고 싶은 말만 멋대로 계속 지껄였다.

“이 토마스가 있는 한, 카드리고의 것은 무엇 하나 부스러기조차 훔쳐 갈 수 없을 것이다!”

덜컹!

그리고 집사가 벽난로의 어느 부분을 건드렸다. 그 순간 갑자기 내가 서 있던 곳의 발밑이 푹 꺼졌다.

어어? 집사가 이 방을 고른 이유가 이거였어?

나는 순발력을 발휘해, 옆에서 함께 추락하기 시작한 테이블을 반사적으로 낚아채 거꾸로 뒤집었다. 그리고 몸을 움직여 판판한 상판 부분을 디딤대 삼아 발로 세게 걷어차듯이 짓밟았다. 그 반동으로 몸이 조금 위쪽으로 올라가, 꺼지지 않은 바닥의 모서리를 간당간당하게 손으로 짚어 매달릴 수 있었다.

그래도 린 도체스터의 방과 달리 미카엘의 방에 있는 테이블에는 하얀 테이블보도 깔려 있었고, 그 위에 이런저런 자잘한 물건들도 놓여 있었다.

내 발에 차인 테이블과 물건들은 이미 깜깜한 어둠 속으로 떨어졌지만, 마침 손에 잡힌 흰 테이블보라도 끌어당겨 내게 달려오는 집사에게 내던졌다.

그러나 집사는 시야가 가려진 상태에서도 거침없이 몸을 날려 나를 향해 품속에 숨겨 두었던 단도들을 투척했다.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귓가에 떨어진 물건들이 부서지고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찢어진 흰 테이블 사이로 보이는 집사의 형형한 눈을 마주하며 몸을 지탱하고 있던 손을 놨다.

날카로운 칼이 미끄러진 내 손가락 사이로 박혔다. 함께 날아온 다른 단도도 내 몸을 스쳐 지나갔다.

“얌전히 기다려라. 곧 숨통을 끊어 주러 갈 테니까.”

지금 나를 따라 밑으로 몸을 던질 생각은 없는지, 집사가 단도가 꽂힌 자리에 선 채 나를 내려다보며 읊조렸다.

나는 추락하는 도중에 그에게 보란 듯이 혀를 내밀면서 손가락 중 하나를 세워 올렸다.

집사가 내 손가락 욕을 봤는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 거리에서라면 무난하게 목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원래대로라면 내가 떨어진 방 아래층에도 똑같은 크기의 방이 있을 테니 금방 바닥이 나왔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대충 어림잡아도 그보다는 더 많이 떨어진 것 같았다. 아무래도 미카엘의 방과 그 아래층은 구조가 특이한 듯했다.

그래도 나보다 먼저 떨어진 테이블과 물건들이 바닥에 부딪혀 박살 났을 때 들린 소리에 의하면, 생각보다 이 함정이 깊지는 않은 것 같았다.

방금 집사가 마지막으로 지껄였던 소리도 그렇고, 사람을 추락사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진 함정은 아닌 모양이지?

덜컹!

그때, 집사가 다시 장치를 작동시켰는지 머리 위의 빛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쿵!

그리고 거의 동시에 밑으로 곤두박질친 내 몸이 딱딱한 바닥에 부딪혔다.

“아! 아이고, 삭신이야.”

예상대로 생각보다 함정의 깊이가 깊지 않아 타박상 외에는 다친 곳이 없는 것 같았다.

혹시 잘못 떨어져서 팔다리 한쪽이라도 잘못되면 낭패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멀쩡했다.

나는 잠깐 눈이 익숙해질 때까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주변에 귀를 기울였다.

꼭 굴속에 혼자 떨어진 것처럼 사방이 어둡고 조용했다. 혹시 다른 인기척은 없는지 주위를 살폈으나 이곳에 나 말고 다른 살아 있는 생명체는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어깨에서 흘러내린 가방을 제대로 고쳐 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사가 내 숨통을 끊으러 곧 오겠다고 친절하게 경고까지 해 줬는데 여기에 마냥 퍼질러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그나저나, 방에 이런 이상한 장치가 되어 있다니 도대체 뭐지? 뭐, 원래 이렇게 역사가 깊은 대저택에는 비밀 통로가 몇 개 있어도 놀랄 일은 아니긴 했다.

일단은 나도 집사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기에 몸 곳곳에 숨겨 놨던 작은 칼 같은 호신용 장비를 꺼내 언제든 사용하기 쉬운 곳에 다시 넣어 놨다.

가방 속의 총도 꺼내서 총알을 채운 다음 어깨에 걸쳤다.

그런 뒤 발소리를 죽이고 육감이 이끄는 대로 걷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가이드로 라파엘이나 스텔라의 다른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할 수 있지 않나?

그런 생각에 한번 시도해 봤지만, 어째 가이드는 먹통이었다.

결국 그냥 포기하고 어둠 속을 걸었다.

그런데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어느 순간, 문득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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