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34)화 (134/300)

나는 카드리고의 손님방으로 안내받았다.

그렇게 집사를 따라 걷다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바로 옆쪽의 벽면에 카드리고 가문 사람들로 보이는 사진들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가족들이 다 같이 찍은 사진도 있고 독사진도 있었는데, 그중에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카드리고 가문의 주인과 안주인인 듯했다.

그런데 이쪽도 릭 도체스터 못지않은 엄청난 동안으로 보였다. 사진으로만 봐서는 라파엘 같은 장성한 아들이 있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라, 혹시 젊을 때 찍은 사진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카드리고 부부의 사진보다 그 밑에 걸린 사진에 더 관심이 갔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걸음을 늦추며 흥미를 끈 사진에 시선을 옮겼다.

그것은 세 명의 젊은 남자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그 안에서 금발의 남자 두 명은 의자에 앉아 있고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만 옆쪽에 서 있었다.

‘셋 다 잘생겼네. 카드리고 사람들은 유전자가 좋은가? 방금 본 부부도 잘생기고 예쁘더만.’

금발 남자 중 한 명은 방금도 얼굴을 봤던 라파엘이었다.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다리를 꼬고 앉은 모양새가 이렇게 사진으로만 봐도 참으로 건방지고 오만해 보였다.

그 옆에 앉은 다른 금발 남자는 셋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였는데, 아무래도 라파엘의 두 형 중 내가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는 나머지 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나마 이쪽은 은은하게 미소를 띤 얼굴을 보니 카드리고 사람들 중에 그나마 가장 성격이 좋아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파엘이 앉은 의자의 등받이에 손을 올린 채 냉연한 얼굴로 서 있는 검은 머리 남자.

그는 아까 대주교 릭 도체스터를 만나러 갔다가 본 라파엘의 형, 미카엘이었다.

온 가족이 금발인 와중에 혼자만 새까만 머리카락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벽에 걸린 카드리고 가족들의 사진 중에서도 이상하게 눈에 띄었다.

“린 도체스터, 경고하는데 다시는 내 앞에서 저 사진을 보고 카드리고를 운운하지 마라.”

“왜, 대주교님의 밑으로 들어가 도체스터가 된 너처럼 운 좋게 카드리고의 이름을 가졌던 놈이라 관심이 가기라도 하나?”

아까 미카엘의 사진이 걸려 있던 복도에서 라파엘이 내게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나랑 같은 경우라는 걸 보니까, 이쪽도 양아들인 거네.’

왠지 동질감이 느껴져서 무심코 쯧쯧 혀를 차며 다시 걸음을 옮겨 계단을 올라갔다.

그나마 릭 도체스터는 느낌상 독신 같던데. 그래서 나한테는 라파엘처럼 내 존재에 대해 질색하면서 학을 떼는 진상 형제도 없었다. 그러니 똑같은 양자라도 그나마 이 사람보다는 내 상황이 낫다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괜히 쓸데없는 비교질을 하다가 말고 나는 불현듯 뇌리를 스친 생각에 멈칫하고 말았다.

아닌가…? 이쪽은 변태 또라이 같은 양아버지가 있으니 도긴개긴인가?

“이 방입니다. 손님이 방문하실 줄 몰라 미리 준비하지 못해 미흡한 면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머무시는 동안 불편하신 점이 있다면 언제든 제게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잠시 후 안내받아 도착한 곳은, 릭 도체스터의 저택에서 봤던 삭막한 내 방과 달리 제대로 된 손님 방이었다. 고용인들의 태도도 릭 도체스터의 저택에 있던 사람들보다 좀 더 친절했다.

단순히 내가 손님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그들의 도련님인 라파엘이 오늘따라 이상한 소리를 지껄여서 뭔가를 오해해서 유달리 상냥하게 구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친절하게 대해 주는 건 좋았지만 은근슬쩍 몰래 힐끔거리는 시선은 별로였다.

“취향을 말씀해 주시면 교체가 가능한 부분은 바로 원하시는 대로 바꾸겠습니다.”

“이대로도 좋은데요. 역시 카드리고 가문답게 훌륭하네요.”

나는 내 귀염둥이가 들어 있는 가방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방을 둘러보았다. 그런 내게 집사를 따라온 메이드가 물었다.

“곧 다과를 들이겠습니다. 혹시 선호하시는 차가 따로 있을까요?”

“향이 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예, 그럼 편안히 쉬고 계십시오.”

고용인들이 물러난 뒤 나는 잠깐 소파에 앉아 할 일 없이 총이 들어 있는 가방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가 카드리고 저택이 조금 궁금해져서 금방 일어나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역시나 이곳에서도 방 앞을 지키고 있던 고용인과 바로 눈이 마주쳤다.

나는 완전히 문을 닫고 복도로 나온 뒤 무해한 얼굴로 생긋 웃어 보였다.

“여기 세면실이 어디지요?”

***

“도련님, 요즘 주인어른께서 염려가 많으십니다.”

방을 나와 고용인을 따라 복도를 걷는 동안 공교롭게도 마침 지나가던 계단 쪽에서 작은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전에도, 한 달 동안 연락도 없으시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목소리가 익숙하다 했더니, 조금 전에 만났던 카드리고 가문의 집사와 라파엘의 목소리였다.

아무래도 아래의 1층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는데, 계단과 거리가 가까워 소리가 위쪽까지 올라온 듯했다.

소곤거린다고 할 만큼 충분히 작은 소리였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내 청력은 유독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나누는 말소리를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내가 걸음을 멈추자 세면실이 있는 곳까지 앞장서 걷던 고용인이 나를 돌아보았다.

“예, 물론 개인적으로 알아볼 일이 있어서 외부에 나가 계셨다고 나중에 설명해 주셨지요. 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돌발적인 행동을 하신 적이 없는 분이 요즘은 왜 갑자기 이렇게 변하신 겁니까?”

세면실로 나를 안내하다가 내 앞으로 다시 되돌아온 고용인의 귀에도 집사의 말소리가 닿은 듯했다.

“저….”

“쉬잇.”

고용인이 곤란한 얼굴로 나를 불렀지만 나는 오히려 이맛살을 구긴 채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내 태도가 하도 당당하고 뻔뻔해서 그런지, 고용인은 엉겁결에 나를 따라 입을 다물었다.

“오늘도 갑자기 손님을 데려오시고 말입니다. 더군다나 처음으로 여성분을요.”

“그것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빌런의 등장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분명 없었던 것 같은 말버릇인데, 지금은 꼭 입력되지 않은 질문에 같은 대답만 반복하는 AI 같았다. 그런 라파엘을 마주한 집사의 답답함이 여기까지 전해졌다.

“또 그 말씀입니까? 도련님, 도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혹시 주인님께 말씀드리기 어려운 문제가 생기기라도 한 거라면 제게만 살짝 알려 주십시오.”

“집사야말로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설마 내가 내 집에 마음대로 손님 한 명 데려올 수 없다는 건 아니겠지?”

“당연히 그런 의미로 드린 말씀이 아닙니다. 다만 린 도체스터라면… 카타콤 출신 아닙니까?”

뒤이어 무언가 비밀스럽고 껄끄러운 이야기라도 하듯이 집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 순간, 내 앞에 있던 고용인이 얕은 숨을 삼켰다. 무언가에 놀란 듯한 눈빛도 나를 향해 날아왔다.

나는 고용인의 눈빛이 아까 스텔라 본부에서 마주친 사람들처럼 변한 것을 깨달았다.

“맞지요? 릭 도체스터 대주교가 양녀로 삼은 그 도살자….”

“맞다. 내 밑에서 함께 일하는 후배이기도 하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사람과 이렇게 사사롭게 만나시다니요! 주인어른께서 아시면 얼마나 놀라시겠습니까?”

집사는 라파엘이 자신의 말에 지나치게 간단히 수긍하자 감정이 격해진 듯했다.

잠깐 언성을 높이던 집사가 이내 격양된 감정을 삼키려는 것처럼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런 뒤 그는 다시금 애써 침착해지려고 노력하는 듯한 목소리로 라파엘에게 말했다.

“물론 주인어른 내외께서도 자선 활동의 일종으로 카타콤 출신을 카드리고에 들이신 적이 있지요. 하지만 이건 경우가 다르지 않습니까? 믿었던 라파엘 님께서 무덤지기나 되었어야 마땅한 폐품 인간에게 개인적인 흥미를 가지신 걸 알면 경악하실 겁니다.”

집사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이 침음했다.

‘음, 그러니까 저 집사는 내가 상당히 탐탁지 않은 모양이로군.’

이놈이고 저놈이고 간에, 다들 린 도체스터의 출신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좋은 말을 하지 않는 걸 보니 원래 소속되어 있었다는 저 카타콤이라는 곳이 여기에서는 상당히 멸시받는 모양이었다.

“라파엘 도련님. 설마 진심이신 건 아니겠지요? 저분을 옆에 두시겠다는 말씀 말입니다.”

“당연히 진심이다. 린 도체스터는 반드시 내 옆에 있어야 한다.”

“도련님…!”

시종일관 동요 없이 침착하고 서늘하기만 한 라파엘의 대답이 곧바로 이어지고, 비명을 내지르듯이 새된 음성이 뒤따랐다.

나는 지금 라파엘이 도대체 어떤 얼굴로 집사를 마주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확실히 그냥 이렇게 들으면, 라파엘이 꼭 신분의 차이로 인한 반대까지 감수하고 어떤 역경에서도 자신의 사랑을 지키려 하는 오만한 부잣집 도련님처럼 느껴졌다. 그러니 집사도 저렇게 펄쩍 뛰는 것일 테고 말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라파엘이 나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을 리는 없었다.

일단 그동안 라파엘과 만날 때마다 한 번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고, 나를 향한 그의 호감도도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니 오늘 라파엘이 한 말에는,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을 게 분명했다.

문제는 그런 주제에 왜 자꾸만 저렇게 오해받을 만한 뉘앙스의 말을 하느냐, 이건데.

어지간히 눈치가 없는 게 아닌 이상, 본인도 자신의 말이 주변인들에게 이상하게 받아들여진 걸 알 텐데 아무 해명도 하지 않는 게 기묘했다.

꼭 자신의 의지로 그런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라파엘이 있을 계단 쪽을 응시한 내 눈이 가늘게 좁혀들었다.

그러다 문득, 나는 내 앞에서 당황한 듯한 얼굴로 서 있는 고용인을 발견했다.

확실히 조금 전의 대화는 손님인 내가 듣기에는 다소 사적인 내용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다 들리는 곳에서 이야기를 나눈 사람의 잘못이지, 우연히 복도를 지나가다가 그걸 들은 사람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그만 갈까요? 이제 들을 건 다 들은 것 같은데.”

나는 태연하게 고용인을 지나쳐 걸어갔다.

그 순간, 눈앞에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