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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33)화 (133/300)

분명 나를 타박하는 말이었는데, 왠지 단순한 비난을 위해 꺼낸 말이 아닌 것 같았다. 그보다는 아까처럼 이상하게 나를 위해 충고를 해 주려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이럴 때의 라파엘은 꼭 내가 미처 짐작하지 못하고 있던 실수를 지적해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선임 같았다.

그렇게 내가 오묘한 눈으로 라파엘을 쳐다보자, 그가 혀를 차면서 말했다.

“네가 이 저택에 머물면 내가 필요할 때마다 바로 불러내서 일을 시키기 불편하잖나?”

“…….”

“아무리 대주교님이 넓으신 아량으로 배려해 주셨다고 해도 네가 알아서 빠릿빠릿하게 움직였어야지, 그래서야 훌륭한 스텔라의 일원이라 할 수 있겠나?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원.”

이어진 말은 내가 알고 있는 라파엘답다고 할 만했다.

이럴 때는 또 진짜 그냥 트집을 잡아서 후배를 달달 볶는 악덕 선배 같기도 하고…?

이렇게 오락가락하면서 사람을 헷갈리게 만들다니, 이것도 참 재주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쯧. 알아들었으면 당장 따라 나와라.”

자기 할 말을 끝낸 라파엘 카드리고가 먼저 몸을 돌리며 나를 재촉했다.

“설마 본국에 와서 한가하게 휴식이나 취하다가 갈 생각은 아니었겠지? 주말에도 네가 할 일은 많다.”

나는 옆에 서 있는 고용인들을 힐끗 쳐다봤다.

그들은 아무도 라파엘과 내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손님인 라파엘의 갑작스러운 방문 소식을 듣고 온 집사도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여기서 내가 라파엘을 따라 나가도 막을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대주교의 명령이 있긴 했지만, 스텔라의 일이면 외출해도 상관없다는 건가? 아니면 라파엘의 가문도 귀족 중의 귀족인 카드리고라서 고용인들의 신분으로 막기 어려운 걸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단순히 대주교 릭 도체스터가 외부에는 좋은 양아버지 흉내를 내고 있어서 라파엘의 앞에서 내 행동을 강제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그러는 걸지도 몰랐다.

뭐, 어느 쪽이든 크게 상관은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이대로 골방 같은 곳에 처박혀 있을 바에는 라파엘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본국에서 하는 스텔라의 일이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잠시만요, 선배님. 가져가야 할 물건이 있어서요.”

“가져갈 물건?”

하지만 기껏 발견한 레어 아이템은 꼭 챙겨 갈 생각으로 입을 열자 라파엘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나를 돌아봤다.

“확실히 내일까지 이곳에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니 필요한 건 미리 챙겨 두는 게 좋겠군. 집사에게 말해 내일 역 앞으로 바로 짐을 보내게 해라.”

내게 말한 것이긴 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집사에게 들으란 듯이 꺼낸 소리이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라파엘의 말에 집사가 바로 대답했다.

“그렇게 준비해 놓겠습니다.”

“아뇨, 제가 지금 가져갈래요.”

하지만 내가 거기에 반박했다.

내일 짐을 싸 줄 때까지 기다리라고? 혹시 그사이에 마음이 바뀌어서 총을 못 가져가게 할지도 모르잖아! 지금 라파엘을 따라 나가서 다시 이곳에 돌아올지 아닐지 확신할 수 없다면 더더욱 내 귀염둥이를 이곳에 두고 갈 수 없었다.

라파엘이 나를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나는 겨우 영접하게 된 레어 아이템을 이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눈이 뒤집혀서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방금 내가 사격장에서 쓴 총 있죠? 지금 바로 가져다주세요.”

결국 나는 내 뜻대로 원하던 물건을 손에 넣은 뒤에야 신이 나서 라파엘의 뒤를 팔랑팔랑 따라나섰다.

“누가 보면 금은보화라도 그 안에 든 줄 알겠군.”

“선배님, 뭘 모르시네요. 이건 금은보화로도 못 사는 거예요.”

“너야말로 없이 살았던 야생 개답게 뭘 모르는 소리를 하는군. 금은보화로 못 살 게 어디 있다는 거지? 사람 목숨마저 돈으로 사고파는 세상에.”

마차 안에서도 총을 든 가방을 고이 끌어안은 채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나를 보고 라파엘이 옆에서 이죽거렸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그가 무슨 말을 해도 타격이 없었다.

“도착했군. 내려라.”

그렇게 마차를 타고 얼마간 이동한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나는 혹여나 내 레어 아이템에 흠집이라도 날까 또다시 갓난아기 안듯이 곱게 품에 감싸 안고 마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밖으로 나와 내가 본 것은 아까 릭 도체스터를 만나러 들어갔던 건물이 아니었다.

이곳 또한 거대한 저택이었는데, 대주교가 있던 스텔라의 건물이 신성함의 총집합이고 릭 도체스터의 집이 화려함의 극치였다면 이곳은 우아함의 끝판왕이었다.

‘여긴 아까 갔던 곳이 아닌데? 바로 기숙사로 온 건가? 정부 비밀 기관은 기숙사조차 이렇게 고급진 건가?’

라파엘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묻지는 못했지만, 마음속에 의구심이 생겨났다.

“멀뚱히 서 있지 말고 따라와라.”

라파엘은 거침없이 앞서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당당하게 라파엘의 뒤를 따라갔다.

“오셨습니까, 도련님.”

릭 도체스터의 집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고용인들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이 모습을 봐도 기숙사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그런데 뒤에 계신 분은….”

“내 손님이다.”

“예?”

내 의심은 집사의 반응을 보고 확신으로 굳어졌다. 라파엘의 말에 어째서인지 경악한 얼굴로 고개를 돌린 집사와 내 눈이 마주쳤다. 집사는 금방 표정을 가다듬고 다시 시선을 내리깔았다.

“아, 죄송합니다. 셋째 도련님께서 이렇게 저택에 직접 손님을 데려오신 건 처음이라 놀라서 실례했습니다.”

이 자식, 역시 여기 스텔라 아니었잖아? 아무래도 릭 도체스터의 집에 이어서 이번에는 카드리고 가문에 내가 방문한 것 같은데?

“선배님, 스텔라 일로 저한테 시키실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시킬 일, 있지.”

내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라파엘에게 묻자 그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내일까지 여기서 지내라.”

“예?”

“내일까지 여기서 지내라고 했다.”

“제가 왜요?”

“너를 내 가까이에 두라고 내 안 깊은 곳에서 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 순간, 라파엘의 해괴한 말을 들은 집사가 다시 한번 눈을 부릅뜬 채 고개를 번쩍 쳐드는 모습이 보였다. 이번에는 주변의 고용인들까지 방금 뭘 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입을 벌린 채 라파엘을 쳐다보았다.

방금 라파엘이 내뱉은 말이 이상하게 오해받기 딱 좋은 말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귀가 의심스럽고 수상쩍은 기분이 드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선배님, 혹시 뭘 잘못 드셨나요?”

“오늘은 바빠서 아침과 점심 식사를 모두 건너뛰었으니 그럴 일은 없다.”

혹시 두 끼나 굶어서 맛이 갔나? 그래도 그렇지, 뭔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야?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보다는 황당함과 의문이 더 컸다.

“원래 네가 지내려던 곳보다도 여기가 편할 거다. 그러니 내일 다시 본국을 떠날 때까지 다른 곳에 갈 생각 하지 말고 내 옆에만 붙어 있어라.”

라파엘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또 한 번 오해받기 딱 좋은 말을 나불거렸다.

사람들이 놀라서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다가, 이내 바늘 굴러가는 소리조차 들릴 것처럼 주변이 조용해졌다. 집사는 이 상황이 몹시 충격적인 듯이 콧수염까지 바르르 떨고 있었다.

어떤 고용인들은 꼭 도련님의 사생활이라도 목격한 것처럼 뺨을 붉히며 침을 꿀꺽 삼키기까지 했다. 내 반응이 어떨지 매우 궁금한 듯이 호기심 어린 시선이 나를 힐끔거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헛웃음을 삼킨 뒤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고 라파엘의 얼굴을 쳐다봤다.

뭐지…? 갑자기 장르가 바뀌기라도 했나.

이 비슷한 장면을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데, 그건 연애 시뮬레이션 장르 게임이었다.

물론 라파엘의 외모만큼은 그런 장르의 메인 공략 캐릭터들에 뒤처지지 않았으니 눈에 필터를 끼고 보면 이런 장면에서도 위화감이 없긴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겉모습만 두고 따졌을 때 그렇다는 얘기였다.

지금까지 라파엘이 나한테 보였던 말이나 행동으로 봐서는, 지금 이런 상황이 도출된 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주위에 있는 고용인들의 반응을 봐도, 이런 라파엘의 모습이 매우 낯선 건 마찬가지인 듯했다.

지금 내가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역시 오늘의 라파엘은 이상하다는 점이었다.

나는 라파엘을 가늠하듯이 설핏 가늘게 뜬 눈으로 물끄러미 주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럼 저를 여기 데려온 이유는 그게 다예요? 다른 일은 시킬 게 없는 거고요?”

“내 옆에 있는 게 네 할 일이다.”

“아…. 일단 마음 써 주셔서 감사하고요. 초대해 주셔서 고맙긴 한데 내일까지 여기 있을지는 좀 생각해 볼게요.”

“생각해 볼 게 뭐가 있지? 넌 그냥 내가 시키면 하라는 대로….”

“저, 도련님…! 일단 지금 막 돌아오셨으니 먼저 의복을 갈아입으시고 잠깐 휴식 시간을 갖는 게 어떻겠습니까?”

라파엘이 썩 긍정적이지 않은 내 반응에 눈썹을 꿈틀거리며 평소처럼 강압적으로 말을 이으려 했을 때, 집사가 서둘러 끼어들었다.

“마침 곧 저녁 식사 시간입니다. 모처럼 손님과 함께 오셨으니 식당에 자리를 준비해 놓겠습니다. 그동안 손님께 머물 방을 먼저 안내해 드리는 게 좋지 않을지요.”

옆에 있던 고용인들도 그게 좋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라파엘이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싸늘한 눈으로 나를 보던 그가 먼저 자리에서 몸을 돌리며 집사의 말에 수긍했다.

“그게 낫겠군. 린 도체스터에게 방을 안내해 주도록.”

“알겠습니다.”

나는 여전히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채로 자리를 떠나는 라파엘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가시지요, 린 도체스터 님. 들고 계신 물건은 이쪽으로 건네주십시오.”

노련하게 조금 전의 당혹감을 감춘 집사가 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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