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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32)화 (132/300)

나도 다시 안내인을 따라 걸었다.

안내인은 내가 남자들과 대화 아닌 대화를 나눌 동안 배경 소품처럼 조용히 서 있다가 마차가 세워진 곳으로 나를 다시 안내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이곳의 안내인들은 왠지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다시 걷는 동안 길을 오가던 몇몇 사람들과 우연히 더 눈이 마주쳤다. 그들도 나를 발견하고는 흠칫거리거나 눈살을 찌푸렸다. 대주교와 만나기 위해 처음 여기에 왔을 때도 지금처럼 나를 보며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까지 살펴본 결과, 그들의 반응은 대개 두 가지로 나뉘는 듯했다.

나를 멸시하거나, 껄끄러워하거나.

그 이유가 뭔지는 내 인물 프로필에 적힌 정보로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저기 좀 봐…. 린 도체스터야.”

물론 굳이 그러지 않아도, 이렇게 나한테 다 들릴 정도로 수군거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장기 임무 중이라고 하더니, 잠깐 돌아왔나 봐.”

“진짜네…. 대주교님의 애완견답게 확실히 반반하긴 한데, 저런 얼굴로 잘도 도살자 역할을….”

“쉿. 자꾸 쳐다보지 마. 눈이라도 마주치면 어쩌려고 그래?”

눈이 마주치기 싫으면 다 들리게 떠들지나 말든가….

나는 콧잔등을 찡그린 채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시선 속에서 걸음을 옮겼다.

마차를 타고 이동한 곳은 스텔라 본부에서 그리 거리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대저택이었다.

레드포드 저택도 꽤나 웅장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사이즈도 그렇고, 화려함 면에서도 여기와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나는 눈앞에 있는 저택을 보고 감탄했다.

여기가 내 집? 이런 데서 혼자 살았다고? 린 도체스터는 부자인가? 그래도 대주교 딸이라고 이런 집도 자택으로 가지고 있는 건가?!

“오랜만에 뵙습니다, 린 님.”

하지만 나를 마중 나온 집사로 보이는 남자가 내게 인사한 뒤 덧붙인 말에 내 기대감은 푸쉬식 식어 버렸다.

“대주교님께서는 일정상 오늘 귀가하지 못하실 듯하니, 늦게까지 기다리지 않으셔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아, 대주교랑 같이 사는 집이구나. 난 또, 자택이라고 하기에 내 명의로 된 내 집을 말하는 줄 알았네….

나는 꿈이 야무졌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아쉽게 입맛을 다셨다.

참나, 명색이 대주교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금욕적이고 청렴한 생활을 하지는 못할망정 이런 사치스러운 집에서 살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내일 임무 수행을 위해 다시 떠나실 때까지 외출하지 말고 자택에서만 머무르라는 대주교님의 명령이 있으셨습니다.”

그렇게 남몰래 속으로 투덜거리다가 말고 이어진 집사의 말에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외출하지 말라고?

애초에 이 집에 들른 뒤 그다음으로 뭘 할지 정해 둔 것도 아니었지만, 난데없는 근신 명령에 의구심과 반발심이 들었다.

“사격장을 포함한 개인 연습실은 평소처럼 이용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집사가 물러간 뒤 다른 고용인이 나를 방까지 안내했다.

어차피 원래 살던 집이면 굳이 새삼스럽게 길 안내를 해 줄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은데, 이런 대저택에서 일하는 고용인이라 그런지 서비스가 훌륭했다. 린 도체스터의 방이 어디인지 모르는 나로서는 특히 편리한 일이었다.

“그럼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부르십시오.”

외관만큼이나 화려한 복도를 지나 내가 도착한 곳은 2층의 가장 끝방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문을 열고 들어간 방은… 엄청나게 삭막했다.

“뭐야…. 방이 아니라 감옥 독실 같잖아?”

나는 시야에 비치는 광경에 무심코 이맛살을 구기고 말았다.

정말 거짓말을 하나도 안 보태고, 방에 있는 건 작은 테이블과 의자, 침대와 옷장 하나가 전부였다. 침대의 베개와 이불은 호텔에서 쓰는 것처럼 무늬 하나 없는 흰색이었고, 테이블 위에는 흔한 꽃병 하나 꾸며져 있지 않아 방의 허전함에 한몫을 보탰다.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본 1층 로비 바닥에 깔린 화려한 무늬의 카펫과 복도 창문마다 걸려 있던 섬세한 레이스 커튼, 그리고 계단과 복도의 벽면을 꾸미고 있던 꽃과 장식품들 같은 것들과 굉장히 대비되어 더욱 살풍경한 느낌을 풍기는 방이었다.

나는 조금 어이가 없어져서, 더 둘러볼 것도 없는 방을 뱁새눈으로 훑었다.

아니, 저택이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큰데 명색이 대주교의 수양딸한테 이따위 방을 내줘? 누가 이 방을 보면 대주교 집이 아니라 수녀원이라도 되는 줄 알겠네.

원래 린 도체스터는 엄청나게 금욕적인 생활을 했던 모양이다. 따로 가지고 있는 개인 소지품 같은 것도 없었는지, 방이 텅텅 비다 못해 썰렁할 지경이었다.

이건 단출해도 지나치게 단출한 것 아닌가? 이 정도면 청렴함의 정도가 표백제 수준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아무래도 린 도체스터는 여기에서 썩 대우받는 존재는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단순히 린 도체스터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지만, 이건 그런 식으로 설명하기에도 정도가 좀….

오늘 만난 릭 도체스터의 태도를 보고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기는 했지만, 막상 이렇게 그 증거를 두 눈으로 확인하니 기분이 별로 좋지 못했다.

나는 혹시 뭐라도 있나 괜히 옷장을 열어서 뒤져 보고, 침대 이불도 한번 들쳐서 확인하고, 창틀과 테이블 밑까지 구석구석 살펴보고도 1분 만에 방 탐색을 전부 끝마쳤다.

그런 뒤 다시 벌컥 문을 열자, 아직 떠나지 않고 문 앞에 대기하고 있던 고용인이 내게 물었다.

“혹시 필요한 거라도 있으신가요?”

“사격장에 가려고요.”

고용인은 고개를 끄덕인 뒤 아까처럼 복도를 앞장서 걸었다. 따라오라는 말은 없었지만, 이번에도 사격장까지 데려다주려는 것이겠거니 생각하고 나는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자리를 비우신 동안에도 장비를 꾸준히 관리해 두었으니 불편함 없이 바로 사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잠시 후 도착한 사격장에서 나는 몹시도 눈에 익은 사냥총을 발견하고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말았다.

어, 뭐야…! 저 총이 왜 여기에 있어?

나는 깜짝 놀라서 사격장 안쪽에 비치된 총들이 진열된 곳으로 달려갔다. 믿을 수 없는 마음에 이리저리 뜯어 봤지만, 역시 맞는 것 같았다.

게임 제작사 바니타스, 이 사악한 토끼 놈들이 무참할 정도로 극악한 확률의 랜덤 뽑기로 돌렸던 한정판 레어 아이템!

나도 이 총을 뽑으려고 이벤트 기간 동안 열심히 가차를 돌렸지만, 확률의 신에게 우롱만 당하고 잔고만 거덜 나서 원통함에 눈물 흘려야 했던 바로 그 총!

이 우아한 은백색 총신과 강인하면서도 섬세하게 빠진 외양, 그리고 손에 빨려들 듯이 착 들어오는 이 적당한 묵직함을 보니, 내가 가지고 싶어서 군침을 흘렸던 그 물건이 분명했다.

나는 흥분한 마음으로 뒤쪽에 물러나 있는 고용인을 힐끔거렸다.

사격장에 있는 거니까, 내가 써 봐도 되는 거겠지? 대주교가 이런 총을 직접 쓸 것처럼 생기지는 않았는데, 원래 린 도체스터가 사용하던 게 맞는 거겠지?

내가 이렇게 총을 만지작거리는데도 고용인이 별다른 소리를 하지 않는 걸 보면, 지금 내가 한번 써 봐도 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나는 행여나 이 기회를 놓칠세라 얼른 자세를 잡고 전방의 과녁을 조준했다.

탕!

탕!

탕탕탕!

귀에 울리는 총소리가 마치 감미로운 음악 소리처럼 들렸다.

“하아아….”

게다가 역시 수많은 플레이어를 랜덤 뽑기 게임의 노예로 만들며 눈이 벌게지게 만들었던 레어 아이템답게 손맛이 장난이 아니었다.

나는 첫 만남에서부터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손에 쥔 사냥총을 애틋하게 쓰다듬었다. 그러고 나서 마음속으로 갈등하다가, 일단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고용인에게 물었다.

“이거 내일 떠날 때 제가 가져가도 되나요?”

“네, 그렇게 하십시오. 운반하기 쉽게 분리해 놓겠습니다.”

고용인은 의외로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헉, 대박 사건이다. 그냥 한번 말해 봤을 뿐인데, 이렇게 쉽게 수락하다니.

여기 와서 대주교한테 개새끼 취급이나 받고 좋은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마음이 이것 한 방으로 씻은 듯이 사라졌다.

“린 님.”

그렇게 내가 레어 아이템의 매력에 푹 빠져 있을 때, 다른 고용인이 사격장에 들어섰다.

“라파엘 카드리고 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의외의 소식에 나는 총을 들고 있던 팔을 내렸다.

라파엘 카드리고? 아까도 봤는데 나를 또 찾아왔다고? 혹시 아까 대주교한테 딸랑거리느라 못 한 말이라도 남아 있는 건가?

“일단 응접실로 모시게 했는데, 어떻게 할까요?”

대주교가 나한테 외출 금지령을 내렸다고 하더니, 저택에 찾아오는 손님과 만나는 것까지는 굳이 막지 않는 모양이었다.

마음 같아서야 라파엘 따위는 오든 말든 그냥 무시하고 어렵게 손에 넣은 레어 아이템이나 좀 더 구석구석 뜯어보고 싶었지만, 오늘따라 기묘하던 라파엘의 태도가 이상하게 눈에 밟혔다.

“지금 가죠.”

그래서 결국 총을 내려놓고 사격장을 금방 나섰다.

“린 도체스터. 여기서 뭘 하는 거지?”

하지만 내가 라파엘과 마주친 곳은 응접실이 아니라 사격장 앞이었다. 아무래도 성격 급한 라파엘이 얌전히 응접실에서 기다리지 않고, 나를 찾아 직접 이곳까지 온 모양이었다.

라파엘은 무엇이 그리도 못마땅한지, 나를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리며 대뜸 따지듯이 물었다. 나도 눈썹을 추어올리며 그에게 반문했다.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인데요. 아까도 만났는데, 지금 왜 또 찾아오셨죠? 혹시 깜빡 잊고 못 했던 말이라도 있으신지.”

“스텔라의 숙소에 있는 네 방을 두고 왜 이곳으로 온 거냐고 묻는 거다.”

나는 라파엘의 말을 듣고 눈을 깜빡였다.

미처 몰랐는데 스텔라에도 내가 머무는 기숙사 방 같은 게 있었던 모양이다. 안내인이 하도 자연스럽게 나를 이곳으로 바로 데려와서 몰랐는데, 이제 보니 아무래도 대주교의 명령 때문에 그랬던 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슬쩍 미간을 좁혔다가 다시 편 뒤 라파엘에게 대답했다.

“내일까지 자택에 머물라는 대주교님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정말 너 혼자 여기로 굴러들어오다니… 린 도체스터, 생각이 있는 거냐?”

그런데 이놈의 입에서 또 묘한 말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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