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30)화 (130/300)

순교자…?

시선이 막 지나치던 복도의 사진으로 향했다.

미카엘 카드리고.

딱히… 릭 도체스터가 한 말을 듣고 크게 동요한 건 아니었다. 물론 이 복도에 걸린 사진의 주인들이 전부 죽은 사람이란 건 좀 의외이기는 했다.

이 중에는 최근에 내가 본 사람도 속해 있었고, 아까 복도를 지나갈 때 라파엘 또한 자랑스러운 얼굴들이라며 그것이 엄청난 영광인 것처럼 말했었다. 그래서 막연히 이 사람들이 무슨 큰 공을 세워서 여기에 사진을 걸었겠거니 하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순교자들을 의미했었다고 하니 조금 놀랐을 뿐이고, 그 이상의 감흥까지는 없었다.

애초에 저 미카엘 카드리고라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던 것도 외모가 워낙 눈에 띄는 데다가, 라파엘과 같은 성을 가지고 있어서 조금 호기심이 생긴 정도였을 뿐이다.

그것 말고는 나와 이렇다 할 교류가 있던 사람도 아니었고 말이다.

굳이 따지자면 이건 그런 기분이었다. 특별한 친분은 없지만, 분명 얼마 전에 만났던 사람인데 그사이에 죽어서 이제는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하니 괜히 묘하게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

“사명을 지키려 용감하게 죽음을 맞이한 자들이니 분명 본받아야 마땅하긴 하지. 모두가 본국을 위해 희생한 자들을 기리며 기도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누가 앞장서 피를 흘리려고 하겠느냐.”

“과연 대주교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자고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다.

이제는 나도 완전히 현생에서의 감을 되찾아 사회인 모드 ‘ON’ 상태가 되어, 회사에서 부장님에게 그랬던 것처럼 대주교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린, 네 사진 또한 언제든 이곳에 걸릴 수 있게 특별히 널 위한 자리를 항시 준비해 두고 있으니 정진하거라.”

“너와 나도 언젠가 저기에 이름을 올리게 되겠지. 나는 그렇다 쳐도, 야생 개인 너한테는 분에 넘치는 대우이니 영광인 줄 알아라.”

문득 라파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대주교의 뒤통수를 흘기면서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그렇게 좋으면 자기들끼리 순교할 것이지 왜 자꾸 애꿎은 나를 그 사이에 집어넣는 거람.

하지만 사회인의 스킬을 발휘해 입으로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지껄였다.

“영광입니다! 대주교님의 은혜가 하늘과 같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어디에도 이름 한 글자 남기지 못할 천한 신분이지만, 너는 내 수양딸이 되는 행운을 누렸으니 말이다. 그러니 설령 네가 폐기될 때가 온다 해도 너는 도체스터로서 영광된 최후를 맞을 것이다.”

“제게는 둘도 없는 행운이자 축복입니다! 감사합니다, 대주교님!”

그렇게 영혼 없는 대답을 열심히 내뱉으며 걷는 동안, 대주교와 나는 사진이 걸린 복도를 지나 1층 로비에 진입했다.

길을 오가던 사람들이 릭 도체스터와 나를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은 아까처럼 나를 보고 수군거리는 대신, 공손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물론 그 인사의 대상은 내가 아니라 릭 도체스터였다. 그걸 보고 나는 역시 권력이 깡패구나 싶었다.

릭 도체스터는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일일이 화답해 주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건물 밖으로 나섰다.

다행히 대주교는 아까 내가 본 공포의 계단을 내려가는 대신, 흰 기둥이 세워진 회랑을 걸었다.

이어진 길을 따라 건물 옆쪽으로 꺾어지자, 아까보다는 확실히 마주치는 사람의 수가 줄었다.

“하지만 확실히 요즘은 열정만큼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점점 줄고 있어.”

그때쯤이 되자, 릭 도체스터도 아까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한 말을 다시 이었다.

“그래서 네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너는 내 덕분에 과분한 축복을 받아,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니 말이다.”

나는 또 지금까지처럼 영혼이 빠져나간 상태로 적당히 맞장구치려다가 멈칫했다.

“게다가 너라면 레드포드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잘 알 테니,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기에 가장 적합할 터.”

지금 릭 도체스터가 내뱉은 말은 여태껏 그가 했던 말 중에 가장 내 관심을 끌었다.

“내 말 무슨 의미인지 알겠느냐?”

탕!

그런데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갑자기 귓가에 큰 소리가 울리며 무언가가 날아왔다.

가장 먼저 시스템 창이 반응했다.

순간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느낌이 들었다. 앞에 있는 대주교의 움직임도 꼭 슬로 모션 효과를 준 것처럼 느리게 느껴졌다.

어쩐지 익숙한 소리다 했더니, 어디에선가 총이 발포된 모양이다.

미처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순식간에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본능적으로 날아오는 총알을 피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꼭 내가 경호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대주교를 보호하면서 옆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회전하며 날아온 총알이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가 벽에 박혔다.

“대주교님! 괜찮으신가요?”

나와 밀착한 대주교는 겁이 없는 성격인지, 조금도 놀라지 않은 얼굴로 한쪽 눈썹만 슬쩍 치켜들었다.

“죄송합니다, 대주교님! 총을 정비하다가 오발 사고가 나서…!”

금방 어떤 남자가 사색이 된 얼굴로 달려왔다.

릭 도체스터는 당장이라도 그를 죽여 버릴 듯한 싸늘한 눈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상당히 높은 직위에 있는 대주교를 만나러 가는 자리인데도, 그의 방으로 들어갈 때까지 나한테 몸수색 한번 하는 사람이 없었다.

혹시 내가 대주교의 수양딸이기 때문에 신뢰가 있어 그런 건가 싶었는데, 이렇게 다른 사람도 건물 부지 안에서 총을 소지하고 있는 걸 보면 딱히 그런 이유 때문인 건 아닌 듯했다.

아무리 홈그라운드라고는 하나, 지금도 무려 대주교씩이나 되는 인물이 이렇게 밖으로 나왔는데도 호위하는 사람이 따로 없는 것도 이상했고 말이다.

그 순간, 어째서인지 갑자기 조금 전에 대주교가 내게 한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네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너는 내 덕분에 과분한 축복을 받아,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니 말이다.”

그때, 대주교가 시선을 미끄러뜨려 나를 쳐다봤다. 꼭 타이밍을 맞추기라도 한 듯이 내 눈앞에 선택지 또한 떠올랐다.

1. 대주교에게 총알을 날린 사람의 뺨을 때린다.

2. 대주교에게 총알을 날린 사람에게 박수를 친다.

3. 대주교에게 총알을 날린 사람에게 총을 갈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