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29)화 (129/300)

대주교의 검은 눈이 꼭 블랙홀처럼 나를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나는 홀린 듯이 약간 멍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대주교님.”

사이비가 여기에도 있었냐….

얼굴을 붙잡혀서 고개를 돌릴 수도 없는 상황인데 표정 관리를 하기가 어려워서 곤란했다. 그러니 대신 영혼을 가출시킬 수밖에.

“착하구나. 그래야 내 딸이지.”

다정함을 덧씌운 목소리가 귓가에 나긋하게 내려앉았다. 대주교가 꼭 칭찬하듯이 내 뺨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실제 나이는 반백 살이 거의 다 된 중년이지만 겉모습은 삼십 대라, 기껏해야 삼촌이나 큰오빠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남자한테 이런 소리를 들으려니 위화감이 상당했다.

똑똑.

“대주교님.”

다행히도 그때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라.”

아니, 그런데 좀 떨어지고 나서 사람을 안으로 들이면 안 되는 건가? 아까도 손님이 있는 상태로 나를 그냥 들어오게 하더니.

대주교의 허락을 받고 방으로 들어온 고용인이 발소리 없이 다가와 테이블 위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어제 슈바르츠에서 진상품으로 올라온 특등급 라이세린 홍차입니다.”

대주교가 내게서 손을 뗐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대주교와 내 모습이 이상하지도 않은 건지, 아니면 이쪽에 관심이 없는 건지, 고용인은 방에서 나갈 때까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릭 도체스터는 나를 두고 혼자 찻잔을 들어 올렸다.

“음. 향이 나쁘지 않군.”

찻잔 속의 액체를 한 입 머금어 음미하는 모습이 퍽 기품 있고 우아했다.

그는 나한테 차를 권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더 웃긴 건, 애초에 고용인이 놓고 나간 찻잔도 하나뿐이었다는 것이다. 릭 도체스터가 나와 겸상(?)하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던 것처럼 말이다.

그는 내가 보는 앞에서 혼자 차 맛을 보다가, 다시 내게 시선을 돌리며 들고 있던 찻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어디로 보나 고의로 여겨지는 손짓으로 찻잔을 기울여 제 구둣발에 차를 쏟았다.

“이런, 흘렸구나.”

대주교가 자연스럽게 내게 다리를 내밀었다.

“닦아라.”

그 타이밍에 선택지가 떠올랐다.

1. (손수건을 대주교의 목 밑에 껴 주며) 세 살 먹은 아기세요? 마시다가 또 흘리지 않게 턱받이라도 해 드릴까?

2. 개처럼 몸을 낮춰 옷 소매로 대주교의 신발을 열심히 문질러 닦는다.

3. (대주교의 손을 붙잡으며) 세상에! 이렇게 옥처럼 고우신 손이 붉어지다니! 감히 뜨거운 찻물을 올려 대주교님께 화상을 입힌 자를 지금 당장 제 손으로 처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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