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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25)화 (125/300)

물론 실수 한번 했다고 바로 사망 엔딩으로 가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이번에 콘라드와 세라의 즉결 처분을 보류한 것 한 번으로 벌써 명령 불이행도가 30%나 채워진 거야?’

나름대로 융통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좀 짠 거 아닌가….

뭐,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나는 퀘스트에 최종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미 기정사실화된 사망 엔딩을 피하기 위해 이 부분을 좀 더 이용해 볼 수 없을지 생각에 잠겼다.

그 후 일주일은 금방 지나갔다.

피투성이가 된 콘라드의 코트는 세탁해서 돌려줬다.

처음에는 나 혼자 어떻게 해 보려고 했는데, 세탁 전용 세제나 도구가 없어서 그런지 더러워진 부분이 영 깨끗하게 지워지지를 않았다.

그래서 은근슬쩍 다른 사람들의 세탁물에 코트를 끼워서 메이드들의 세탁실에 보냈다.

메이드들은 안감에 핏물이 덜 빠진 코트를 보고 놀란 듯했지만, 고용인의 신조에 맞게 그 원인을 캐내려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뒤에서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 것 같기는 하더라.

보아하니 저 남성용 코트가 내 손에서 나온 것까지는 모르는 듯해서, 나도 그냥 입을 씻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콘라드의 코트는 그러는 동안 깨끗이 세탁되어 주인에게 돌아갔다.

눈썰미 좋은 한 메이드가 주말에 그 코트를 입고 외출한 콘라드를 기억해서 바로 그에게 세탁물을 돌려준 탓에 중간에 내 손을 거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콘라드의 코트는 바로 그 직후에 사라졌다.

콘라드도 영문을 모르는 듯했다. 분명 코트가 말끔히 세탁되어 방에 온 것을 확인했는데, 이후에 흔적도 없이 하늘로 솟은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더욱이 알 수 없는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콘라드의 코트는 저택의 후미진 곳에 있는 소각장에서 발견되었다. 그것은 이미 불에 타서 소매 부분의 쪼가리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콘라드는 이 상황이 몹시 언짢은 듯했다. 나도 기분이 좀 찝찝했다.

어쨌든 나한테 옷을 빌려준 뒤에 이렇게 사라진 것이고, 후줄근한 콘라드답지 않게 꽤 비싸고 좋은 코트였던 것 같은데 애초에 나 때문에 더러워졌던 것도 사실이니 내가 물어 줘야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어쨌든 이미 주인에게 돌려준 뒤에 사라진 것이니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제가 닥터 콘라드라면 부담스러울 것 같은데요.”

그런데 일요일에 내가 외출 후 빌려 입고 돌아온 것이 콘라드의 코트라는 사실을 이미 눈치채고 있던 듯한 체스휘가 지나가는 듯이 대수롭지 않은 어투로 이렇게 말해서 그냥 그 말에 따르기로 했다. 콘라드도 내게 별말을 하지 않는데 괜히 나서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말이다.

참, 그리고 나중에 대충 상황을 알아보니 사이비… 아니, 프로메테우스 혁명 단체는 그날 회장에서 있었던 일로 초비상이 걸린 모양이다.

지난 일요일, 저녁 늦게 저택에 귀가한 세라의 표정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전보다 몸을 사리는 건지, 그 후 일주일 동안 콘라드의 연구실을 단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어쩌면 정체를 알 수 없는 학살범으로부터 단체나 동료들과의 연관성을 들키지 않으려고 주의하는 건지도 몰랐다.

반면 콘라드는 조심성 없이 오히려 전보다 더 곧잘 나한테 말을 걸곤 했다.

아무래도 그는 함께 위험을 헤쳐 나온 동지(?)로서 내게 내적 친밀감이라도 느끼는 것 같았다. 물론 내 등의 부상 때문에 원래도 콘라드에게 진찰을 받으러 연구실을 주기적으로 오가긴 했지만, 지금은 내 상태가 많이 호전된 상태라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치료를 명목으로 가끔 나를 연구실로 불러 단체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늘어놨다.

그런데 뉘앙스를 보면, 그는 나도 단체의 임원으로서 내부 사정을 어느 정도 이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그날 콘라드의 초대장으로 사이비 모임에서 VIP 취급을 받았던 것을 떠올렸다. 그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 이렇게 허술하게 입을 놀려도 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뭐, 나로서는 일단 나쁠 게 없는 일이라 그냥 가만히 입을 벌리고 콘라드로부터 쏟아지는 콩고물을 받아먹었다.

그렇게 콘라드에게 들어 보니, 지난 일요일은 헌금을 위해 무더기로 받아들인 신입 회원들을 위주로 모임을 연 날이었다고 한다.

대충 돌아가는 사정을 보자면, 그 정도의 말단 회원들에게는 정말 사이비 종교를 포교하듯이 세뇌한 뒤 돈을 뜯어내거나 위험한 일에 고기 방패로 투입하는 등의 일만 시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날 가장 윗선이라 할 만한 높으신 분들은 애초에 모임에 참석하지 않아서 그나마 수습이 불가능한 피해는 없었다고 했다.

그날 내가 떨어뜨린 칼에 대한 얘기는 따로 없는 걸 보니, 역시 내 정체를 들키지는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저택의 고용인들도 남몰래 조용히 관찰했다.

월요일에 내가 확인한 고용인의 수는 총 82명. 게임을 시작할 때 고용인의 숫자가 총 150명을 넘었던 것에 비하면 단기간에 굉장히 눈에 띄게 축소된 규모였다.

그동안 느낌이 이상하기는 했어도 정말 이 정도로 숫자가 줄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 눈으로 고용인들을 직접 확인해 본 뒤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중간에 성수에 문제가 생겼을 때 적지 않은 고용인이 검은 공기에 오염돼 죽거나 모로스화 되어 양육자들에게 처리된 전적이 있긴 했으나, 그 후 분명 새로운 고용인들이 충원되었을 텐데….

하지만 이후 고용인들을 계속 살펴본 결과, 나는 이 문제가 정말 심각한 사안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불과 일주일이 지난 사이에, 고용인들의 숫자가 82명에서 71명으로 또 줄어들었던 것이다.

이 고용인들 중 모로스가 몇인지도 파악해야 했으나, 역시 육안으로는 그런 사실을 단번에 알아낼 수 없었다.

“린 씨, 요즘 바쁘네요. 오늘은 오랜만에 고향에 간다고 했던가요?”

그렇게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 또다시 주말이 찾아왔다.

“잘 다녀와요.”

아침 일찍, 체스휘가 느슨히 팔짱을 끼고 문에 기대서서 미소를 띤 얼굴로 나를 배웅했다. 나는 오늘도 이렇게 그가 일부러 나를 보러 나올 줄 몰라서 멈칫했다.

그러고 보면 체스휘는 내가 드물게 볼일이 있어 저택 밖으로 나갈 때마다 꼭 이렇게 일부러 문 앞까지 내 배웅을 나오곤 했다.

“다녀올게요. 체스휘 씨도 주말 동안 잘 지내요.”

나는 체스휘를 돌아보며 화답하다가 문득 떠오른 걸 물었다.

“그러고 보니 체스휘 씨가 저택 밖으로 나가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네요. 고향에도 간 적이 없는 것 같고. 주말에 잠깐이라도 원래 지내던 곳에 들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네, 저는 어차피 돌아갈 곳이 없어서요.”

하지만 별 의미 없이 던진 물음에 체스휘가 지나가듯이 대꾸한 순간, 왠지 말문이 막히는 기분이 들고 말았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그의 말이 남 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린 씨가 이렇게 외출할 때마다 나와서 인사하는 거 좋아해요.”

체스휘는 내가 동요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어렴풋하게 미소 띤 낯으로 태연히 말을 이었다.

“내가 잘 다녀오라고 하면 린 씨는 나한테 다녀오겠다고 말해 주잖아요.”

“…….”

“그럴 때마다 꼭 내가 린 씨의 돌아올 장소가 된 것 같거든요.”

그 순간, 지금까지 체스휘를 보면서 느꼈던 것 중에 가장 크게 심장이 덜컹거렸다.

방심하고 있던 사이에 훌쩍 다가든 손이 꼭 내 정중앙을 뚫고 들어오기라도 한 것처럼 당황스러웠다.

나는 괜히 가방을 든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시선을 내리깔아 내 발끝만 보다가, 이내 다시 고개를 들어 체스휘를 마주 보고 작게 말했다.

“…저도 좋아해요. 체스휘 씨랑 이런 인사하는 거.”

체스휘가 하얀 빛 속에서 보드라운 아침 햇살처럼 웃었다. 왠지 다른 때보다 거기에서 시선을 떼기가 어려웠다.

“존 씨가 기다리네요. 늦기 전에 어서 가 봐요.”

나는 마차를 타고 레드포드 저택을 벗어날 때까지도 계속 그의 생각을 했다.

이번에도 정문을 나서자마자 의식이 툭 하고 끊어지지만 않았다면, 내 머릿속에는 아주 오랫동안 체스휘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도착했습니다, 양육자님.”

“아, 네. 내릴게요.”

나는 괜히 입가를 문지르며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마차에서 내렸다.

오늘은 다시 돌아온 토요일. 라파엘이 전달했듯이 스텔라의 대주교와 일 대 일 면담 약속이 잡힌 날이었다.

그래서 드디어 44세계에 도착했나 싶었는데….

“어?”

나를 맞이한 것은 텅 빈 공터였다.

사방이 자욱한 안개로 뒤덮여 있었고, 눈앞에는 어디에선가 본 듯한 거대한 검은 문이 우뚝 솟아 있었다.

“뭐야?”

나는 공터의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세워진 문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럼 내일 약속된 시간에 다시 모시러 오겠습니다, 양육자님.”

“잠깐….”

혹시 마부가 잘못 내려 준 게 아닌가 싶어서 뒤를 돌아봤다. 그러나 방금 내게 말을 건 마부 존과 내가 타고 온 마차는 그사이에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나는 귀신에 홀린 기분이 되어서 다시 고개를 돌렸다.

꼭 장소를 잘못 잡은 조형 예술품처럼 안개 사이에 뜬금없이 서 있는 문을 보다가, 빙 돌아서 반대쪽으로 한번 가 봤다.

어느 쪽에서 보나, 문고리가 달린 평범한 문이었다. 아니, 물론 이런 곳에 위치한 것 자체가 절대 평범하다고 할 수 없었고, 거기에서 풍겨 나오는 기운도 범상치 않긴 했다.

그런데 그걸 보는 동안, 왠지 기분이 묘하게 불쾌해졌다.

목적지로 가려면 이 문에 손을 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어째서인지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이 영문 모를 거부감과 꺼림칙함이 도대체 무엇에서 야기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꼭 무언가에 억지로 떠밀리듯이 결국 손을 들어 앞에 있는 검은 문을 툭 하고 건드렸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시스템 창이 울렸다.

[제44세계는 세계 공통 평화 연합에 의해 특수 자치 구역으로 지정된 최상위 세계로, 문을 넘기 위해 별도의 입국 절차가 필요합니다.]

[입력된 코드를 확인하겠습니다.]

[린 도체스터. 23세. 제44세계 중앙 비밀 기관 스텔라stēla 소속 3등급 심문관. 신원 보증인 릭 도체스터.]

[절차를 생략합니다.]

[인증이 완료되었습니다.]

[문이 개방됩니다.]

그 직후, 어디선가 본 듯한 보라색 빛이 나를 집어삼켰다.

빠아아앙!

뒤이어 시끄러운 소음이 고막을 찢을 듯이 귀에 우렁차게 울렸다.

나는 무심코 숨을 들이마시면서 눈을 떴다.

갑자기 강렬한 빛을 정면에서 받은 탓인지, 시야가 금방 돌아오지 않았다. 상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무언가가 하얀빛에 뒤섞여 눈앞에서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다만 폐로 들어온 공기가 아주 탁한 것만큼은 바로 알 수 있었다.

레드포드 저택에서 성수 없이 그냥 맞닥뜨렸던 검은 공기의 답답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좀 더 익숙하고, 좀 더 직접적인 텁텁함이 폐부에 들어찼다.

그래, 꼭 도시에 가득 차 있던 현실 세계의 오염된 공기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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