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24)화 (124/300)

“선배님, 지금 바로 돌아가시려고요?”

“그래, 이런 곳에는 1분 1초라도 오래 있고 싶지 않다.”

저택에 방문한 목적은 이게 다였는지, 라파엘은 매몰차게 말한 뒤 정문을 향해 휘적휘적 걸어가기 시작했다.

“앗, 사제님! 이렇게 일찍 떠나시다니요? 조금만 더 머물다가 가시지….”

어렵게 다시 만난 희귀 직종 종사자가 이대로 돌아가는 게 아쉬웠던 듯, 사라로사가 아쉬운 얼굴로 그를 쫓아가며 미적거렸다. 그러나 라파엘은 이미 마음을 굳힌 것 같았다.

“린 도체스터, 다음 주 일정 잊지 마라.”

마지막으로 내게 당부한 뒤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 라파엘이 순식간에 1층 현관을 가로질러 저택의 문을 나섰다.

“손님, 벌써 돌아가십니까?”

상황을 살피러 왔다가 그 장면을 목격한 총괄 집사 슈나우더가 부랴부랴 라파엘의 뒤를 따랐다. 나는 검푸른 빛으로 물든 바깥의 풍경을 시야에서 차단시키며 문이 닫히는 광경을 찌푸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맞먹는 갑작스러운 퇴장이었다.

물론 말하는 걸 들어 보니 저쪽도 원래 계획에 있던 방문은 아니었던 듯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전에 보고했던 저택의 이상한 문이라거나, 반동 단체에 대해 뭐라고 언질이라도 해 주고 갈 줄 알았는데.

“린!”

그렇게 내가 라파엘이 나간 문을 미심쩍게 보고 있을 때,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다이안이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계단을 뛰어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뭐야, 사제가 왔다더니 왜 코빼기도 안 보여?”

미뉴엘도 종종걸음으로 그 뒤를 따라오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는 동안 내가 있는 곳까지 서둘러 달려온 다이안이 나를 확 끌어안았다.

“왜 나한테 바로 안 왔어? 아까 린의 방 앞까지 내가 찾아갔었는데!”

“아…. 저도 씻고 나오자마자 바로 가려고 했는데 손님이 왔다고 해서요.”

“맞아, 사제님이 왔다며? 린이 오늘도 외출했다가 불량배들에게 당하고 있던 사제님을 발견하고 도와줘서 감사 인사차 저택에 들렀다고 하던데?”

이상하게 라파엘이 올 때마다 저런 식으로 소문이 나는 것 같았다.

가이드의 번역이 묘하게 일관성 있는 걸 보니, 생각보다 창의성이 떨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이번엔 불량배에게 당했다는 설정이 구체적으로 더해진 건, 라파엘이 누가 봐도 얻어맞은 것 같은 몰골을 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나는 습관적으로 다이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시선을 들어 계단 쪽을 힐끔거렸다.

분명 다이안과 미뉴엘이 여기에 있다는 건….

“조금 전에 창문으로 보니 마차가 정문 밖으로 나가는 것 같던데. 손님이 벌써 돌아가신 건가요?”

그래, 역시 체스휘가 그들을 데리고 왔다는 거였다.

체스휘의 등장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는데도 나는 미뉴엘의 뒤로 나타난 그를 보고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 떨었다. 나와 붙어 있다가 그것을 느꼈는지, 다이안이 몸을 살짝 떼고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최대한 태연한 얼굴과 목소리로 체스휘의 물음에 답했다.

“네, 손님은 방금 떠났어요.”

“굉장히 빨리 돌아갔네요. 손님한테 뭔가 급한 일이라도 있었나 봐요.”

체스휘는 내 말에 가볍게 화답하면서 방금 라파엘이 떠난 저택의 문을 한번 쳐다보았다.

“뭐야, 그놈의 사제 얼굴 한번 보기 참 어렵네. 기왕 저택에 찾아왔으니 특별히 나를 위해서 축복을 내릴 기회를 주려고 했는데 말이야.”

라파엘의 빠른 퇴장이 불만스러운 듯이 미뉴엘이 투덜거리자 다이안이 그에게 말했다.

“그런데 방금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세르쥬가 오늘 온 손님에 대해서 이상한 소리를 하던데?”

“무슨 이상한 소리?”

“그게….”

그런데 다이안은 잠깐 주변 사람들을 힐끔거리더니, 미뉴엘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뭐라고 귓속말을 소곤거렸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소년들이 달라붙어서 어른들 몰래 속닥거리는 모습이 귀엽기는 했다.

한편, 다이안과 미뉴엘이 그러는 동안 계단을 완전히 내려와 내 앞으로 다가와 선 체스휘가 문에서 시선을 떼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체스휘 씨, 아까는 귀가하자마자 정신이 없어서 인사를 못 드렸는데 오늘 다이안을 돌봐 주셔서 고마워요.”

나는 아까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그를 올려다보았다. 혹시 체스휘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먼저 결심했듯이 아무렇지 않게 반응할 생각이었다.

욕실에 있는 동안 이미 둘러댈 말도 생각해 뒀다. 그러니 언제든 와라! 그런 생각으로 내게 다가온 체스휘를 맞이했다.

“뭘요, 린 씨의 부탁이라면 얼마든지 들어드려야죠.”

하지만 체스휘는 아까의 일에 대해 내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나를 응시하는 그의 얼굴은 내 몸에서 핏자국 같은 건 보지도 못했다는 양 평온하기만 했다.

그래서 ‘혹시 정말 아까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기대감이 일순간 솟아났으나, 역시 눈이 장식으로 달린 게 아닌 이상 그럴 리는 없었다.

게다가 마차에 잠깐 타고 있는 동안에도 그렇게 피비린내가 진동했는데, 나한테 그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던 체스휘가 아무런 냄새도 맡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역시나 체스휘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던 시선을 금방 아래로 미끄러뜨렸다. 그 직후, 내 손을 감싼 온기에 나도 모르게 눈매를 움찔 떨었다.

“이제 흔적도 없이 깨끗해졌네요.”

체스휘가 내 손을 붙잡고 내려다보다가, 이내 다시 시선을 들어 내 눈을 마주하며 말했다.

“괜찮아요. 더러운 게 묻으면 지금처럼 닦아 내면 되죠.”

여느 때처럼 상냥하고 부드러운 음성이 두 귀를 가볍게 스쳐 지나갔다. 체스휘는 내가 꺼림칙하지도 않은지, 여전히 다정한 눈으로 나를 보며 엷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아직까지도 체한 것처럼 약하게 울렁거리던 가슴이 그 순간 잠잠하게 가라앉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린한테 달라붙지 마!”

그러나 그런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갑자기 꼬리를 빳빳하게 곤두세운 고양이 한 마리가 체스휘와 나 사이에 날쌔게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자그마한 앞발… 아니, 손으로 야멸차게 체스휘의 손등을 후려친 다이안 때문에 그에게 붙잡혀 있던 내 손은 금세 자유를 되찾았다.

체스휘가 미소를 띤 얼굴로 다이안을 지그시 내려다봤다. 그에 다이안이 몸을 움찔 떨었다.

“다이안?”

나는 살짝 당황스럽기도 하고 뭔가 이 상황이 조금 웃기기도 해서 잔뜩 힘이 들어간 다이안의 어깨를 붙잡았다.

“허락도 없이 린의 손을 마음대로 잡다니, 책에서 이런 남자는 전부 다 나쁜 남자라고 했어!”

다이안은 끝까지 물러나지 않고, 공주를 지키는 기사라도 된 양 내 앞에 버티고 서서 씩씩거렸다.

“앗, 총괄 집사님. 손님은 잘 배웅해 드렸나요?”

“그래, 방금 무사히 저택을 떠나셨네.”

그때, 라파엘의 배웅을 나섰던 총괄 집사 슈나우더가 다시 저택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그는 다른 고용인과 대화하다 말고 무언가가 굉장히 의아한 듯이 눈살을 찌푸린 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이상하군…. 분명 오늘 사제님이 마차에서 내리시는 걸 본 기억이 없는데. 존도 사제님을 태워 드린 적이 없다고 하고….”

“예? 마차를 타지 않고 여기까지 어떻게 와요? 주말이라 저택을 오가는 사람이 많아서 헷갈린 거 아니에요?”

“그런가? 하긴… 그럴 수도 있겠군.”

그러나 곧 총괄 집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그 말에 수긍하는 기색을 비쳤다.

왠지 또 정확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거스러미처럼 묘하게 마음에 걸리는 느낌이라 총괄 집사에게 잠깐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그 순간 바로 앞에서 들려온 체스휘의 목소리가 다시금 내 주의를 끌었다.

“다이안, 도대체 무슨 책을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나쁜 남자라는 게 무슨 뜻인지는 정확히 알고 말하는 거예요?”

체스휘는 다이안의 맹랑한 말이 꽤나 흥미로운 듯했다.

“어디서 애 취급이야? 어쨌든 나쁜 사람이라는 거잖아!”

“그래도 우리가 꽤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저를 나쁜 사람으로 보다니 서운하네요….”

하지만 다이안이 매정하게 소리치자 체스휘는 금방 상심한 듯이 시무룩한 척했다. 다이안은 여전히 그런 체스휘를 경계하면서 나를 옆으로 떠밀었다.

“린, 저런 사람은 무시하고 우린 방으로 가자!”

그 모습을 보자 왠지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긴장 한 올도 모두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아까 복도로 나설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방으로 돌아가 라파엘의 방문 이후 또 다른 new 표시가 뜬 퀘스트 창을 확인했다.

▶레드포드 저택 조사(장기)

제44세계 중앙 비밀 기관 스텔라(stēla)에서 내려온 비밀 지령.

1. 수상한 지하실의 문

2. 레드포드 저택의 살인마

3. 위험한 고용인(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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