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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23)화 (123/300)

하지만 뜬금없이 라파엘의 등장이라니, 이상했다.

“혹시 린 님을 보러 오신 게 아닐까요? 지난번에 급한 일이 있어서 인사도 없이 떠나셨잖아요.”

그러다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말하는 사라로사를 보자 마음속에 한 가지 짚이는 게 생겼다.

혹시 퀘스트 보상 때문인가? 대주교와의 일 대 일 면담에 대한 소식을 알려 주려고 찾아온 우편 서비스 같은 건가?

나는 일단 다이안의 방으로 향하던 걸음을 돌려 사라로사와 함께 1층으로 향했다.

“사제님, 이렇게 오신 김에 저희 쥬쥬한테 그 유명한 축복이란 것 좀 한번 내려 주시면 안 될까요?”

“축복은 무슨, 하급 세계의 인간답게 개풀 뜯어 먹는 소리를 하고 앉았군. 원래 제 앞길은 스스로의 힘으로 닦는 것이다.”

“아아, 준비가 필요해서 지금 당장은 어렵군요. 하긴, 신성한 힘을 사용하는 일이 그렇게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요.”

“쯧, 그렇게 남의 기원만 바라고 사니 평생 하급 세계에서 벗어나지를 못하지. 왜 이런 인간들은 늘 사제복을 입은 사람만 보면 이렇게 귀찮게 구는지, 원.”

“별말씀을요! 저희는 괜찮으니 그렇게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되어요. 축복은 다음에 오셨을 때 내려 주시면 되지요. 이렇게 사제님을 두 눈으로 직접 뵐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영광인 걸요.”

1층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맥락이 어긋나는 대화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대놓고 악담을 퍼붓는 냉정한 남자의 목소리와 달리, 여자의 목소리는 들뜬 듯이 밝았다.

어디를 봐도 각자의 말은 따로 놀고 있었으나, 희한하게도 대화가 통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지난번처럼 남자의 가이드가 그의 말을 적당히 구색에 맞게 자동 번역하고 있기 때문일 터였다.

그때,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던 남자가 나를 발견한 듯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린 도체스터. 왜 이제 오는 거냐?”

왠지 엄청나게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미청년이 냉담한 목소리로 나를 맞이했다.

긴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청초한 외모의 남자는 오늘도 지난번에 본 것과 같은 성직자복 비슷한 의상을 입고 있었다. 짜증스러운 양 얼굴을 한껏 구기고 있긴 했지만, 여전히 이름처럼 현세에 강림한 천사인 듯 신성함이 깃들어 보이는 휘황찬란한 외모였다.

“젠장, 오늘도 하급 땅덩어리의 공기는 몹시 역겹군. 이런 곳에 나를 이렇게 오래 세워 놓다니, 여기가 본국이었다면 당장 네 썩어 빠진 정신머리를 재교육시켜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남자는 외모와 이름이 아까운 인성을 가지고 있는 것도 여전했다.

“오늘 저택에 방문한다고 미리 말도 안 했으면서…. 아무튼 오랜만이네요, 선배님.”

사라로사의 말대로, 정말 지금 레드포드 저택을 방문한 손님은 라파엘 카드리고였다.

나는 사람들을 헤치며 내게 다가오는 라파엘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1층에는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 있었다. 그 중심에 있는 건 역시 라파엘이었는데, 그의 주변에 차마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하고 멀리서 힐끔거리는 고용인들도 여럿 보였다.

다른 경우라면 말을 조심했을 테지만, 지금은 가이드가 라파엘과 내 대화를 적당히 번역하고 있을 것이란 사실을 알아서 호칭을 조심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선배님 꼴이 왜 그렇지요? 진흙탕에라도 구르셨나요?”

그러다가 가까워진 라파엘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물었다.

라파엘의 행색은 결벽증이 의심될 정도로 말끔했던 지난번과 달리 다소 지저분했다. 꼭 진흙탕에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여기저기에 더러운 얼룩이 져 있었는데, 심지어 그 상태로 꽤 오랫동안 방치된 듯이 바짝 건조된 흙이 가루가 되어 떨어지고 있기까지 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비가 좀 많이 쏟아졌어야지.”

“비가 왔었다고요?”

여기는 날씨만 좋았는데…. 라파엘이 원래 있던 44세계에는 비가 왔었나 보군.

물론 그렇다 해도 뭔가 이상하긴 했지만, 애초에 라파엘의 신변에 깊은 관심을 두고 더 파고들 정도로 그와 친밀했던 것도 아니라서 안부 인사는 그쯤으로 끝냈다.

“7호실! 자기도 사제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왔구나?”

조금 전까지 세르쥬를 데리고 라파엘의 앞에 서 있던 올리비아도 평소보다 세 배는 반짝이는 눈을 돌려 내게 어서 오라는 듯이 손짓했다.

어쩐지 멀리서 듣기에도 목소리가 많이 익숙하다 했더니, 라파엘에게 악담을 듣고 있던 건 다름 아닌 올리비아였다.

지난번에 사제 행세를 하고 방문한 라파엘과 만나지 못한 것을 내심 아쉬워하더니, 오늘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누구보다 빠르게 걸음을 서두른 모양이었다.

‘그런데… 너무 초롱초롱한 눈으로 라파엘을 힐끔거리고 있는데?’

왠지 라파엘을 보는 올리비아의 눈이 지나치게 반짝여서 나는 살짝 속이 거북해졌다.

거참, 방금 이 녀석이 그녀에게 엄청난 악담을 퍼부었다는 사실을 알려 줄 수도 없고.

물론 라파엘의 겉가죽이 훌륭한 건 사실이었지만 인성만큼은 콘라드와도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파탄이 나 있었다. 그러니 절대로 올리비아가 그의 멀쩡한 외모와 엉터리로 듣기 좋게 번역된 말만 믿고 거기에 홀랑 넘어가면 안 되었다.

“여긴 너무 시끄럽군. 잠깐 조용한 곳으로 가지.”

“네에….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

어쨌든, 예상하고 있었듯이 라파엘은 나를 보러 저택에 방문한 듯했다.

주위에 사람이 많은 건 나도 좀 부담스러웠고, 또 이대로 올리비아가 라파엘에게 관심을 더 두는 것도 꺼려지던 참이었다. 그래서 나는 흔쾌히 라파엘을 데리고 자리를 옮기려 했다.

“잠깐! 7호실, 지금 사제님을 독점하려는 거야?”

하지만 올리비아가 떠나는 라파엘을 황급히 붙잡았다.

“사제님! 그러지 마시고,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 같이 응접실에서 차라도 마시면서 심도 깊은 이야기를 좀 더 나누는 게 어떨까요!”

“올리비아 님, 사제님은 지난번에도 린 님께 도움을 받은 일로 고마움을 전하러 저택에 찾아오셨었잖아요. 그러니 당연히 오늘도 린 님한테 인사를 드리러 오신 거겠죠! 바쁘신 분이 어렵게 시간을 내서 오신 건데, 그렇게 계속 붙잡는 것도 실례예요!”

처음에 비하면 많이 용감해진 사라로사가 그런 올리비아를 막았다.

라파엘은 뒤에서 자신을 사이에 두고 소란이 일어나든 말든, 어디서 개가 짖냐는 듯이 먼저 앞장서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올리비아, 그만해. 그만 방으로 가자.”

“쥬쥬, 그래도 이왕 사제님이 오셨는데 이대로 보내긴 아쉽잖아!”

“저 사람은 사제 아니야.”

“아이, 우리 쥬쥬도 참 귀엽기는. 사제님한테 축복을 받지 못해서 심통 났구나?”

“그게 아니라, 저 사람이 방금 올리비아한테…. 하아. 됐으니까 일단 그냥 가자.”

왠지 뒤에서 세르쥬와 올리비아 사이에 마음에 걸리는 대화가 오고 간 듯했지만, 일단은 라파엘에게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등 뒤의 소란을 밀어 둔 채 라파엘의 뒤를 따라갔다.

“선배님, 그래서 연락도 없이 갑자기 무슨 일이세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마침 네게 전달할 소식이 있기도 해서 이렇게 내가 직접 왔다. 그러니 영광으로 알도록.”

어느 정도 구석진 복도로 와서, 라파엘이 바닥에 흙가루를 우수수 떨어뜨리며 뒤돌아섰다.

그런데 그의 말이 어딘가 좀 이상한 건 둘째치고, 나는 아까보다 가까이에서 마주한 라파엘의 얼굴을 본 뒤 묘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대주교님께서 너를 보고자 하신다. 다음 주 주말에 바로 본국으로 귀환할 수 있게 시간을 비워 두도록.”

역시 라파엘은 퀘스트 보상을 전달하러 온 우편 요정이었다. 뭐, 그건 이미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그렇다 치고….

“선배님, 이렇게 보니 얼굴에 멍이 크게 들었네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입술도 터지셨고요? 누구랑 싸우기라도 하셨나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이건 어디에서 온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빌런이신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인지, 라파엘은 아까부터 내 물음에 똑같은 대답만 반복했다.

라파엘은 그렇게 대주교와의 면담 일정을 통보한 뒤 이런 곳에 오래 있고 싶지 않다는 듯이 바로 나를 지나쳐 갔다.

복도를 걸어가는 라파엘을 뒤에서 다시 보니, 다리가 불편한 듯이 걸음걸이도 어딘가 이상했다. 어째서인지 전체적으로 오늘, 사람이 묘하게 삐걱거리는 느낌인데….

옷에 더러운 게 잔뜩 묻은 것도 그렇고, 저 얼룩덜룩한 얼굴도 그렇고, 진짜 어디에서 쥐어 터지고 온 거 아니야?

나는 미심쩍은 마음에 눈살을 찌푸린 채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라파엘의 뒤를 따라 걸었다.

“아, 사제님! 린 님과 이야기는 다 끝내셨나요?”

복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한 사라로사가 라파엘과 나를 발견하고 환한 얼굴로 다가왔다.

“마침 잘됐네요. 모처럼 저택에 귀한 분이 오신 기념으로 요리사님이 실력을 발휘해 만찬을 준비하셨어요. 지난번에는 금식 기도 중이셔서 맛을 보지 못하셨으니, 혹시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오늘에야말로….”

“쯧. 개밥만도 못한 하급 세계의 쓰레기를 자꾸만 권하는군.”

라파엘이 언짢은 눈으로 사라로사를 보며 예전에도 들어 본 듯한 인성 파탄 난 소리를 또 지껄였다. 그러자 사라로사는 일전에 라파엘이 방문했을 때 그랬듯이, 안타까운 얼굴로 탄식한 뒤 또 맥락에 맞지 않는 말을 했다.

“아, 또 금식 기도 중이셨군요…. 이렇게 방문해 주실 때마다 금식 기도 중이시라니, 참 아쉽네요.”

이번에도 가이드는 라파엘의 비하 발언을 금식 기도 중인 것으로 온건하게 바꿔 전달한 모양이었다.

나는 가이드가 아니었다면, 라파엘이 참 여러 곳에서 칼침에 맞아 죽었을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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