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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21)화 (121/300)

복도가 조금 어수선한 걸 보니, 조금 전에 내가 있던 회장에서 벌어진 참사를 누군가 발견한 모양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뭘까? 스피드!

나는 방에서 튀어 나가자마자 거침없이 복도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따라오던 콘라드가 내 속도에 놀란 듯이 허겁지겁 나를 쫓아오는 게 느껴졌다.

내 행동에 이상함을 느낄 만도 한데, 경황이 없어서 그런지 콘라드도 순순히 나를 따라왔다.

“헉, 허억! 2호실… 양육자님! 잠깐만!”

어느 순간 뒤에서 숨을 헐떡이며 나를 부르는 콘라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콘라드는 내 생각보다 발이 더 느렸다.

나도 여기서 그를 버리고 갈 마음까지는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중간에 한 번 뒤돌아 가 아까 콘라드가 나한테 그랬듯이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콘라드 선생님, 여기서 늦장 부릴 때가 아니에요. 힘들어도 조금만 서두릅시다. 네?”

“그게 아니라, 헉! 나가는 문은 그쪽이 아닌데요…!”

그 순간, 내 걸음이 우뚝 멈췄다. 콘라드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힘겹게 말을 이었다.

“지금 길은 알고 앞장서서 가는 겁니까? 그쪽에는 문이 없어요!”

거참 그런 얘기는 빨리 좀 하지! 나는 바로 콘라드를 앞세웠다.

“그럼 어느 쪽으로 가요? 오른쪽? 왼쪽?”

“외, 왼쪽….”

그렇게 콘라드를 재촉해 가장 빠른 루트로 건물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안에서부터 소란이 번져 가긴 했으나, 다행히도 범인을 잡으려 건물을 폐쇄하기 전에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콘라드와 내가 뒷문으로 빠져나온 직후, 사람들을 다급히 소집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라도 그들이 나를 붙잡을까 싶어 서둘러 몸을 숨기고 골목길을 뛰어 집회 장소와 거리를 벌렸다.

“빨리, 출발해 주세요!”

“아이고, 오셨습니까? 그런데 의사 선생님과 우연히 만나셨나 보네요?”

마차가 대기한 곳에 도착해, 서둘러 거기에 올라탄 뒤 숨을 몰아쉬었다.

마부가 나와 콘라드를 번갈아 보며 의아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질문은 더 하지 않고 금방 마부석에 올라 말을 몰았다.

콘라드의 겉옷을 빼앗아 입었기 때문인지, 그는 내가 피에 절어 있는 상태라는 걸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이제 보니… 2호실 양육자님도, 헉… 겁이 많으시군요. 이렇게 급하게 자리를 피한 걸 보니….”

댁이 할 소리요?

나는 숨이 넘어갈 듯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꿍얼거리는 콘라드를 차게 식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나저나, 콘라드도 참…. 아까도 회장 안의 참사를 보자마자 다른 사람들에게 가서 위험을 경고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 바로 제 몸의 안위만 챙기며 도망가더니, 지금도 모임 장소로 돌아가 최초의 목격자로서 당시의 상황이 어땠는지 진술하거나 범인을 잡는 데 도움을 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 보였다.

이걸 생존 본능이 뛰어나다고 해야 할지, 이기적이라고 해야 할지.

물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평소에는 혀를 차던 그의 인성질이 지금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금방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아까 모임 장소에서 본 경비병 같은 사람들이 거리로 뛰어나와 주변을 살피는 모습이 보여서 커튼을 쳤다.

마차 안이 삽시간에 어두워졌지만, 오히려 반가웠다. 벌어진 콘라드의 코트 사이로 보이는 붉은 치맛단이나 소매 같은 게 어둠에 먹혀 더는 시야에 비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점점 속도를 더해 가는 마차 안에서 피가 조금 굳어 끈적끈적해진 손을 세게 움켜쥐었다.

조금 전까지 내가 있던 장소에서 최대한 빨리 멀어지고 싶었다.

어차피 이건 게임이니까. 또 지금은 기능이 망가졌지만, 곧 로그아웃이 가능해지면 난 여기서 빠져나가 다시 현실로 돌아갈 거니까.

그런 생각으로 지금까지 이번 44회차의 일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애써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이 세상을 게임으로만 여기는 것치고, 사실 나는 이번 회차가 시작된 후로 줄곧 모로스조차 내 손으로 직접 죽이는 걸 꺼려 왔다. 자살해서 강제 로그아웃을 시도하는 것조차 생각으로만 그쳤다.

단순히 전보다 생생해진 유혈 같은 게 속을 메스껍게 만들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첫날 다이안의 방에서 메이드장 제인을 죽였을 때부터 이미 예민하게 어떤 위화감을 느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식은땀 때문인지 피 때문인지, 아까보다 미끄러워진 손을 옷자락에 문지르며 마른침을 삼켰다.

***

저택 밖으로 나올 때처럼 이번에도 마차에 타고 있던 어느 순간 의식이 끊어졌다.

“도착했습니다!”

다시 눈을 떠 보니 이미 마차는 레드포드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밀폐된 공간에 역한 피비린내가 고인 게 느껴져 곧장 문을 열었다.

“이 옷은 나중에 돌려드릴게요.”

“잠깐만요, 7호실 양육자님…!”

나는 콘라드의 겉옷을 그대로 걸치고 마차에서 뛰어내려 성큼성큼 내 방이 있는 건물로 향했다. 뒤에서 콘라드가 할 말이 있는 듯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빨리 방으로 돌아가서 끈적이는 몸을 씻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아까 있었던 일의 흔적을 전부 지워 내야 마음이 좀 편해질 것 같았다.

다행히 내가 강탈해 입은 콘라드의 코트는 내 종아리까지 내려왔다. 그 밑으로 드러난 양말과 신발도 어두운색이라, 멀찍이 지나가는 고용인들은 나를 언뜻 보는 것만으로 쉽게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걸어온 길에 붉은 발자국이 찍히고 있는 걸 깨닫고 신발 밑창을 바닥에 마구 문질렀다. 그런 뒤 이번에는 아예 뛰어서 방으로 향했다.

“린 씨, 이제 와요?”

그런데 내가 막 방 앞에 도착해 문고리에 손을 올렸을 때, 나른한 남자의 목소리가 두 귀로 매끄럽게 흘러들어왔다.

차라리 그냥 못 들은 척하고 방으로 들어가는 게 나을 뻔했다. 하지만 이미 타이밍을 놓친 뒤였고, 그래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 네…. 지금 막, 도착했어요.”

예상했듯이, 목소리의 주인은 체스휘였다. 그는 어딘가 미묘해 보이는 미소를 입술에 그린 채 내게 다가왔다.

여느 때처럼 별로 빠르지 않고 오히려 느릿해 보이는 걸음걸이였는데, 이상하리만치 금방 거리가 좁혀졌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요. 해질 때쯤 돌아올 줄 알았더니.”

“예정보다 볼일이 빨리 끝나서요. 음, 그런데 다이안은요?”

“다이안은 미뉴엘하고 사이좋게 잘 지냈어요. 지금은 올리비아 씨하고 레이븐 씨가 중간에 합류해서 그쪽 아이들하고 같이 노는 중이고.”

체스휘는 나한테서 몇 발짝 떨어진 거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 상태로 어째서인지는 그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채 가만히 서서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그런데… 무슨 일 있었어요?”

그러다 이내, 잠시 멈췄던 체스휘의 걸음이 내 쪽으로 다시 옮겨졌다.

“이건 못 보던 옷인데.”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한결 가까이에서 고막을 파고들었다.

“린 씨한테는 많이 크네요. 꼭 남자 것처럼.”

마침내 한 발짝 바로 앞까지 나한테 바짝 다가온 체스휘가 손을 움직였다. 느릿하게 팔을 들어 올린 그가 손가락으로 내가 걸친 코트의 옷깃을 걸어 가볍게 잡아당겼다.

틈이 조금 벌어지며 붉게 젖은 흰 셔츠가 시야에 드러났다. 나도 모르게 숨소리를 죽였으나, 마주한 남자에게서는 아무런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체스휘의 고요한 눈이 좀 더 아래로 미끄러졌다. 나는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이 문고리에 닿은 내 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코트의 소매 밖으로 삐져나온 손은 아까 열심히 문질러 닦았는데도 손등 부분이 지워지지 않은 피로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나는 흠칫 놀라 손을 등 뒤로 감췄다. 다시 위로 들어 올려진 체스휘의 눈이 이번에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듯이 응시했다.

무슨 변명이든 해야 할 것 같았는데, 침묵 속에서 그의 눈을 마주하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어 버렸다.

“어? 린!”

하필이면 그때, 반가움을 담은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체스휘의 등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건 다이안이었다.

바로 그 순간, 가벼운 손길에 내 몸이 옆으로 돌아갔다. 방금 내가 잡았던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연 체스휘가 내 등을 부드럽게 밀어 나를 방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러고 나서 내 등 뒤로 문이 닫혔다.

멈칫해서 뒤돌아보자, 굳게 닫힌 문 너머로 다이안이 의아하게 묻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방금 린이랑 같이 서 있던 거 아니었어?”

“먼저 씻고 나온 뒤에 인사하고 싶다고 하네요.”

뒤이어 방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다이안에게 여상히 설명을 덧붙이는 나지막한 목소리도 귀에 울렸다.

“밖에서 누가 린 씨한테 더러운 구정물을 끼얹은 것 같던데.”

“그래?”

잠시 후 문밖에서 발소리들이 멀어졌다. 나는 잠깐 문 앞에 가만히 서 있다가 욕실로 향했다.

제일 먼저 콘라드의 코트를 벗고, 피 묻은 신발도 욕실 구석에 내던졌다. 그런 뒤, 차마 못 봐줄 꼴인 옷들도 서둘러 벗어 눈앞에서 치워 버렸다.

우선 몸에 묻은 피부터 씻어 냈다. 그새 갈색으로 변한 피가 굳은 채 달라붙어 있어 살이 거의 빨갛게 될 정도로 박박 문질러 닦아 내야 했다. 그렇게 핏자국을 어느 정도 말끔히 씻어 낸 뒤에도 멈추지 않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계속 물을 끼얹었다.

처음 욕실에 들어온 후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느 순간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욕실 한가운데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차갑게 식은 몸에 한기가 느껴졌다.

그때서야 내가 생각보다 오랫동안 이 상태로 있었다는 걸 깨닫고 수건으로 거의 다 마른 몸의 물기를 닦기 시작했다. 깜빡 잊고 갈아입을 옷을 욕실에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도 뒤늦게 알아차렸다.

할 수 없이 욕실에 걸려 있던 목욕 가운을 걸치고 산발이 된 머리를 정리했다. 그러면서 확인을 미뤄 뒀던 퀘스트 창을 열었다.

▶퀘스트: 메이드 세라의 비밀

-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 보상 수령 가능.

※성공 보상: 연계 퀘스트 ‘레드포드 저택의 수상한 고용인들(대기)’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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