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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09)화 (109/300)

“지금 나 째려보는 거예요?”

나도 모르게 눈을 치켜뜨고 체스휘를 노려봤다. 그런데 그걸 또 귀신같이 눈치챘는지, 체스휘가 내게 물었다.

나는 뜨끔해서 스르륵 눈을 굴려 처음부터 불순한 눈빛을 보낸 적이 없는 척했다. 머리 위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울렸다.

“일부러 그러는 건가.”

약간 서늘한 손이 미끄러지듯이 움직여 약간 헐렁한 내 잠옷 사이로 파고들었다.

“자꾸 귀엽게 구니까 화도 마음대로 못 내겠네.”

맨살을 간지럽게 스치는 손에 피부 위로 솜털이 일어날 것 같았다. 하지만 어깻죽지와 등을 뭉근하게 매만지는 손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아서 막지 않았다.

예상대로, 곧이어 꼭 상처를 후벼 파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 덮쳐들어서 작살에 꿰뚫린 고기처럼 몸이 파드득 튀어 올랐다.

“흐읏, 아…!”

“쉬잇. 괜찮아.”

내가 버둥거리지 못하게 막으려는 듯이 몸을 옭아맨 힘이 강해졌다.

체스휘가 나를 복구시키는 방법은 내 아버지인 대주교님과 달랐다. 아버지는 어느 정도 망가진 육신을 그냥 한번 죽여서 기능을 완전히 정지시킨 뒤 재복구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고 성능적으로도 뛰어나다고 했는데, 체스휘는 이 상태 그대로 나를 복구시키려는 것 같았다.

나는 차라리 원래의 방법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육신의 기능이 완전히 멈춘 뒤에는 나도 의식이 없어 고통을 더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안 돼. 참아.”

그런 내 생각을 알기라도 했는지, 귓가에 단호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매달릴 게 지금 맞닿아 있는 사람밖에 없어서 손에 잡히는 걸 있는 대로 쥐어뜯었다. 손톱이 팔과 등을 인정사정없이 아프게 긁는데도 체스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내 온몸을 덮어 버릴 듯이 더 바짝 당겨 끌어안고, 아까 내가 그에게 그런 것처럼 내 어깨 위로 고개를 숙였다. 날카로운 콧대가 귀밑의 맥이 뛰는 곳을 훑고 내려갔다. 나는 숨을 헐떡이면서 등을 곧추세웠다.

꼭 어미에게 보호받는 새끼 짐승이 된 듯한 안정감과, 육식 동물에게 급소를 물린 사냥감이 된 것 같은 긴장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마치 그것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이, 바람이 새는 것 같은 희미한 웃음을 흩뿌린 입술이 내 목덜미 위에 내려앉았다. 꼭 짐승이 가볍게 쪼는 듯한 입맞춤이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이번에도 역시 나를 달래는 것 같기도 하고, 위협하는 것 같기도 한 이중적인 느낌이 드는 움직임이었다.

그러던 중에 조금씩 통증이 잦아들면서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었던 몸에서도 서서히 힘이 풀렸다.

체스휘가 그의 위로 완전히 늘어진 내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나는 진이 빠져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시야에 비친 달빛이 뿌옇게 일렁이면서 흔들렸다. 어쩐지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여전히 꿈속인 것처럼 느껴졌다.

아, 그래. 역시 나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자 애써 버티고 있던 무거운 눈꺼풀이 스르륵 아래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의식이 멀어지며 눈앞이 깜깜해졌다.

고생 끝에 찾아온 안식은 참으로 달콤하기도 했다. 나는 금방 거기에 빠져들어 눈을 감았다.

***

“…나요.”

나지막한 목소리가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나를 깨웠다.

“일어나요, 린 씨. 아침이에요.”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언제부터 내가 알람을 이렇게 스윗한 남자 목소리로 지정해 놨지?

왠지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고막이 간질간질해져서 어깨에 귀를 문지르며 혼자 의문을 느꼈다.

하지만 잠을 깨우는 목소리가 아무리 듣기 좋다 한들, 아침 기상 시간을 알리는 알람이 반가울 리 만무했다. 그래서 알람을 끄려고 손을 들어 머리맡을 더듬거렸다.

대충 무언가가 손에 닿아서 그걸 잠깐 만지작거린 뒤 다시 팔을 내리고 이불 속에 더 깊숙이 파묻혔다.

하지만 그런 보람도 없이 곧바로 방금 들었던 나지막한 목소리가 다시 한번 내 귀에 울렸다.

“린 씨, 그만 일어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 5분만….”

알람이 아직 안 꺼졌나? 거참 끈질기네.

자꾸만 귀에 대고 울리는 목소리에 잠투정을 하면서 아예 이불 속에 얼굴까지 파묻었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게 베개인가?

몸을 웅크리면서 머리를 이불 속에 더 깊이 파묻자마자 마냥 푹신한 느낌이 드는 게 아니라 이마에 뭔가 좀 단단한 게 닿는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이상했다.

그러고 보니 알람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방금 귓가에 흘러든 목소리가 낯설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한데….

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무심코 손을 움직여 앞쪽을 더듬거렸다. 역시 베개라고는 할 수 없는 탄탄한 촉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무언가가 내 손을 확 잡아챘다.

“지금 그렇게 만지면 좀 곤란해요.”

한층 낮아진 음성이 귀에 읊조려진 순간, 이번에는 확실히 이상함을 감지하고 번쩍 눈을 떴다.

그러자 어렴풋이 예상했던 얼굴이 곧바로 시야에 들어찼다.

“더 자게 두고 싶었지만, 이제 곧 저택의 고용인들이 활동할 시간이라.”

아직 해가 완전히 뜨기 전인 새벽인 듯, 창가에서 스미는 햇빛이 푸르스름했다. 체스휘는 그 새벽빛에 물든 채 침대에 걸터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 상관없지만 린 씨는 아닐 것 같아서, 다른 사람들이 보기 전에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깨웠는데….”

내가 잠결에 뭔지도 모르고 대범하게 더듬거렸던 건 그의 다리인 듯했다. 체스휘가 붙잡고 있던 내 손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입술을 약간 삐딱하게 끌어 올렸다.

“그냥 그러지 말 걸 그랬나요?”

“…엄마야!”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체, 체, 체스휘 씨?”

벌에 쏘이기라도 한 듯이 번쩍 정신이 들면서, 동시에 머리가 혼란해져서 뭐가 뭔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뭐야? 도대체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 거지?

왜 눈을 떴더니 체스휘가 눈앞에 있고, 그가 나를 잠에서 깨우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더니, 지금 이곳은 내 방도 아니었다.

눈에 익은 가구와 방 안에 배치된 물건들을 보니 아무래도 여기는 체스휘의 방인 것 같았다.

순간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뒷골이 띵 하고 울렸다.

“제, 제가 왜 여기에 있죠?”

나는 일단 상황부터 파악하려고 체스휘에게 물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지난밤이 궁금해지다니, 무슨 만취 상태에서 필름이 끊긴 것도 아니고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내 물음에 체스휘의 눈이 슬쩍 가느다랗게 좁혀졌다.

그가 붙잡고 있던 내 손을 놔주며 대답했다.

“당연히 린 씨가 찾아왔으니까 여기에 있죠.”

그 순간 또 한 번 머리가 띵 울렸다.

“아니면 설마 제가 린 씨의 방에 들어가서 굳이 잠든 사람을 데리고 제 방으로 왔을까요?”

확실히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고, 나도 그런 생각까지 한 건 아니었다.

“하나도 기억이 안 나나 보네.”

내 얼굴을 들여다보던 체스휘가 나한테 말하는 건지 혼잣말을 하는 건지 모호한 어투로 읊조렸다. 체스휘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쉽게 가늠하기 어려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일단 뇌를 풀가동시키며 슬금슬금 침대에서 내려갔다.

분명 나는 어젯밤에 내 방에서 고이 잠들었었다. 그런데 언제인지 모를 한밤중에 내가 내 발로 체스휘의 방에 찾아왔다니…. 뭐야, 설마 나한테 몽유병이라도 있나?

‘응?’

그런데 그 순간 어떤 장면이 눈앞을 스쳤다.

몽유병 하니까 생각난 건데,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 이상한 꿈을 꿨었다. 꼭 다른 사람이 내 몸을 조종하는 것 같았던 꿈. 한밤중에 저택의 복도를 돌아다니다가 누군가를 공격하고, 또 마리엔과 별채에서 마주친 뒤 급격히 시야가 어지러워지면서 잠에서 깨어났었다.

그리고 그 후에 또 기이한 꿈 하나를 더 꿨던 것 같은데….

그래, 만약 그게 꿈이 아니라면 나는 어젯밤에 확실히 체스휘와 만났던 것 같았다. 달빛이 번지던 이 방에서 나를 고요하게 쳐다보던 그의 눈이 퍼뜩 머리에 떠올랐다.

나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침대에서 뒷걸음질 쳐 문으로 다가가던 발을 멈추고 체스휘를 쳐다봤다. 그는 여전히 침대 위에 걸터앉은 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지금의 체스휘는 어젯밤만큼 화가 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잠에서 깨어나서 처음 시선이 마주쳤을 때처럼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어제처럼 나쁜 상태도 아닌 것 같았다.

‘세상에, 아무튼 그럼 내가 무단 침입한 거라고 보면 되는 건가? 와 씨, 현실이라면 쇠고랑을 차고도 남을 일 아닌가, 이거?’

어제의 일이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아도, 어쨌든 내가 그의 방에 허락도 없이 무단으로 침입한 건 사실인 것 같아서, 일단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체스휘에게 사과했다.

“체스휘 씨, 저기 어제는 제가 제정신이 아니었는지 크나큰 실례를….”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면서 왜 사과를 하지.”

하지만 나를 쳐다보던 체스휘가 입술을 슬쩍 비스듬히 기울인 채 왠지 의미심장하게 던진 말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나는 또르륵 시선을 굴려 뒤늦게나마 내 옷차림을 확인했다. 혹시 싶어서 슬쩍 눈을 들어 체스휘의 행색도 위아래도 확인했다. 일단 겉보기에 의심스러운 부분은 없었다.

“혹시… 제가 체스휘 씨한테 무슨 실수라도 했나요…?”

“글쎄요.”

그러나 체스휘는 또 애매모호한 답변을 남겨서 나를 고뇌에 빠지게 만들었다.

내가 막 다시 입을 열려는 찰나에, 복도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다. 체스휘의 말대로 저택의 고용인들이 움직일 시간이 된 것 같았다.

일단 아까 그가 말한 것처럼 지금은 그의 방을 초고속으로 떠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저기, 일단 전 제 방으로 갈게요. 이따가 다시 얘기해요…!”

나는 당황스러움을 꼬리처럼 뒤에 매단 채 서둘러 체스휘의 방에서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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