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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07)화 (107/300)

“긴밀한 관계요? 닥터 콘라드하고 제가요?”

“같은 비밀을 공유한 사이 아닙니까. 어떤 의미로는 목숨을 건 연대라고도 할 수 있는데, 당연히 세상에서 가장 긴말한 관계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아, 예. 그런 의미로….”

아무래도 콘라드는 오늘 내가 그에게 신뢰를 보여 준(?) 일로 나한테 이전과 다른 친근감을 느끼게 된 것 같았다. 나로서는 잘된 일이기는 한데, 왜 이렇게 떨떠름한 기분이 드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니 7호실 양육자님과는 제법 말이 통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거침없는 저돌적인 태도에 좀 놀랐지만…. 보다 보니 그런 면이 오히려 장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콘라드에게서 이런 칭찬 비슷한 말을 듣고 있으려니 기분이 몹시 이상해졌다. 너무 낯설어서 닭살이 돋는 것 같기도 했다.

“2호실 양육자님과 가깝게 지내시는 것도 지금 투입된 자리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위해서겠지요? 그것도 모르고 아까 그 사람이 꼭 7호실 양육자님의 뭐라도 된 양 착각해서 간섭하는 모습을 보니 여간 우스운 게 아니더군요.”

그러나 역시 콘라드는 콘라드였다. 그는 인성 파탄자의 소질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체스휘의 뒷담화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오늘 내 방 앞에서 헤어지기 직전에 보았던 체스휘의 이상한 모습을 떠올렸다.

역시 내가 콘라드의 편을 드는 거라고 오해해서 기분이 상한 게 맞는 것 같은데…. 그런데 원흉인 콘라드가 이렇게 희희낙락해서 내 앞에서 체스휘의 흉을 보는 걸 목격하자, 못마땅한 마음이 은근히 밀려들면서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아무래도 이따가 체스휘를 한번 찾아가 봐야 할 것 같았다. 아까 정원에서 체스휘가 나한테 화가 난 듯했던 것도 나를 걱정해서 그런 게 아니던가? 그런데 이대로 체스휘를 방치하자니 내 마음도 편치 못했다.

“하지만 설마 7호실 양육자님이 그런 온실 속의 화초 같은 악마 재배꾼에게 진심일 리 없지 않겠습니까? 제 말이 맞지요?”

그러다 콘라드의 입에서 처음으로 나온 사이비 종교인 같은 말을 듣자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악마 재배꾼….

지금까지 콘라드는 내 앞에서 말을 조심하는 편이었다. 지난번에도 내가 진짜 단체의 소속이 맞는지 떠보았었고, 내 말을 믿는 듯하면서도 민감한 주제나 심도 깊은 이야기는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체스휘로 인해 자존심이 상해서 이성보다 충동이 앞선 상태라 그런지, 빗장이 한 겹 풀리기라도 한 듯이 평소에 하지 않던 말을 주절거렸다.

지난번에 의상실 직원인 척 저택에 숨어 들어왔던 마벨과 샤벨의 말에서도 느꼈는데, 이 단체의 사람들은 저택의 아이들을 그들이 물리쳐야 할 악의 축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2호실 양육자님에게 비슷한 방식으로 접근하던 동료가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 동료는 작년에 메이드로 위장해서 저택에 들어왔었지요. 혹시 7호실 양육자님도 들어 보셨습니까?”

그러다가 콘라드의 입에서 내가 아는 사람으로 추정되는 사람에 대한 말이 나온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그 얘기라면 저도 알고 있어요. 이름이… 엠버 아니었던가요?”

“아, 역시 아시는군요.”

콘라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아무튼 7호실 양육자님도 조심하십시오. 대의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동료들이 한두 명이 아니긴 합니다만, 2호실 양육자는 의외로 날카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치료가 끝난 듯이 콘라드가 내 등에서 손을 뗐다. 뒤이어 내 어깨 위로 내려앉는 나지막한 말에 방 안의 온도가 일 도쯤 떨어지는 것 같았다.

“방금 말한 예전 동료도 그자의 손에 죽었거든요.”

옷매무새를 정리하던 내 손이 우뚝 멈췄다.

“그거, 확실한 얘기인가요? 그 메이드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고 들었는데요.”

뒤돌아보며 묻자, 콘라드가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답했다.

“제가 직접 목격했으니 확실합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호수에 돌멩이가 떨어진 것처럼 마음속에 파문이 일어났다. 하지만 콘라드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미심쩍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나를 물끄러미 주시하는 콘라드의 눈과 시선이 마주친 순간, 어째서인지 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묘한 촉이 서는 것 같았다. 콘라드가 왠지 내 반응을 살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군요. 닥터 콘라드의 말대로 조심하는 게 좋겠네요.”

그래서 그냥 그러냐는 듯이 반응하며 방금 오간 대화에 크게 관심이 없는 척했다. 그러자 나를 뚫어지게 응시하던 콘라드의 눈빛이 서서히 옅어졌다.

“치료는 이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차도가 있긴 하지만 약재 하나를 살짝 바꿔 봤습니다. 제 예상대로라면 아마 이쪽이 좀 더 효과가 좋을 겁니다.”

콘라드의 자체 스킬인 ‘명의의 눈’의 적중률이 10% 증가했다고 하더니, 그가 지금까지 중에 가장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참, 이번에 오랜만에 비정기적인 모임이 열린다고 들었는데 7호실 양육자님도 가실 겁니까?”

뒤이어 내 눈앞에 먹음직스러운 미끼가 내려왔다.

순간 머릿속에 전구의 불빛이 반짝이는 느낌이 들었다. 콘라드가 당연히 나도 알 거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해서 일단은 나도 눈치껏 아는 척했다.

“아, 그 모임이요?”

“예, ‘그 모임’ 말입니다.”

콘라드가 무슨 모임을 말하는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대화의 맥락상 수상한 단체에 속한 사람들의 모임을 말하는 것 같았다.

“닥터 콘라드는요?”

“전 원래 귀찮아서 그런 자리에 잘 나가지 않습니다만…. 7호실 양육자님이 참석하신다면 이번에는 저도 생각해 볼 용의가 있습니다.”

콘라드가 은근한 어투로 나한테 말했다.

아, 이 인간이 오늘따라 친한 척하는 게 영 적응이 안 되네.

“저도 마찬가지인데 닥터 콘라드와 함께 참석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일단 좀 더 생각해 보려고요.”

“예, 그럼 결정하면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오늘따라 부담스러웠던 콘라드의 만남을 끝내고 그의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주머니에 몰래 숨겨 가지고 나온 것을 꺼내 확인했다. 갑자기 청소 바람이 불었는지, 콘라드가 버리려는 듯이 신문 다발과 함께 올려놨던 복권 뭉치 중 하나였다.

당연히 내가 이걸 훔쳐 온 이유는 혹시 이게 당첨되었을 때 콘라드의 당첨금을 꿀꺽할 속셈… 이라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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