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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05)화 (105/300)

“연못에 빠진 건 어린아이라고 들었는데, 왜 린 씨가 그렇게 젖어 있는 거죠?”

체스휘는 정원 앞을 지나가다가 소란을 듣고 와 본 듯했다. 하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는 못해서 사건 장소에 있는 나를 보고 놀란 모양이었다.

“아, 그건….”

“여기, 헉…. 환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체스휘의 물음에 막 대답하려 했을 때, 누군가 부르러 갔던 콘라드도 마침 정원에 도착했다. 그의 양팔은 다른 사람들이 붙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고용인들에게 반강제로 급히 끌려온 듯이 콘라드는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헐떡거리는 중이었다.

“이쪽이에요, 이쪽!”

그는 미처 숨을 돌리기도 전에 또다시 메이드들의 등쌀에 떠밀려 마리엔과 루스카가 있는 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체스휘는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이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연못에 빠진 건 루스카예요. 전 루스카를 도우려고 들어갔던 것뿐이라 멀쩡해요.”

나는 아까 연못에 들어가기 전에 벗는 걸 깜빡해서 옷과 마찬가지로 물이 줄줄 흐르는 신발을 벗어 들고 걸어갔다. 이내 몰려 있는 사람들에게서 시선을 뗀 체스휘가 내게 다가왔다.

“담당 양육자는 도대체 뭘 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린 씨가 대신 연못에 들어갔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되는데.”

“아, 마리엔 씨 몸 상태가 갑자기 이상해져서요.”

왠지 좀 뻘쭘한 기분이 들어서, 마리엔이 나랑 머리를 박은 후유증 때문에 저렇게 된 걸지도 모른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내 바로 앞까지 가까이 다가온 체스휘가 겉에 입고 있던 카디건을 벗어 내 어깨 위에 걸쳐 줬다.

“그래서 저 사람들은 루스카를 구해 준 린 씨를 저렇게 본체만체하고 있다는 거군요.”

그런데 내 귀에 흘러든 고요한 목소리가 왠지 평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저렇게 은혜를 모르다니, 도와줄 가치도 없는 사람들이네요.”

어어? 설마 지금 화가 난 건가?

“아니…. 뭐, 다들 정신이 없으니까….”

“다른 사람들을 보니 저 두 사람을 챙길 정신은 있는 것 같은데요.”

화난 게 맞나 보다.

평소처럼 차분한 목소리지만 묘하게 신랄한 말투인 데다, 잘 보니 표정도 좀 차갑게 식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좀 신기해져서 체스휘의 얼굴을 쳐다봤다.

체스휘는 나한테 겉옷을 입혀 준 뒤 신발을 벗었다. 그러고 나서 자리에 몸을 낮추고 앉아 내 쪽으로 신발을 돌려 주었다.

이후 체스휘가 서슴없이 내 발에 손을 대서 깜짝 놀라 앞에 있는 그의 어깨를 짚었다.

“발도 차갑네요. 이거라도 신어요.”

“제 신발도 있어요.”

“그건 젖었잖아요.”

“흙 묻어서 더러워질 텐데….”

“그런 건 신경 쓰지 말고.”

체스휘의 태도는 단호했다. 아무래도 내가 그의 뜻을 따르기 전까지는 물러날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못 이긴 척 앞에 놓인 신에 발을 꿰었다.

당연히 체스휘의 신발은 컸다. 내 몸을 덮은 그의 옷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차갑게 식었던 몸에 금방 따뜻한 온기가 배어드는 느낌이었다.

조금 전까지는 체스휘의 말처럼 다들 나를 본체만체해서 은근히 서글프고 외로운 기분이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나를 챙겨 주는 사람이 생기니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 같았다.

괜히 쑥스러워져서 코를 훌쩍거리며 애꿎은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다시 몸을 일으킨 체스휘가 주변을 잠깐 살피다가 연못에서 눈길을 멈췄다.

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가 흠칫했다. 어느새 연못 밖으로 나온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이 처음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풀밭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실체가 없는 유령인 만큼 당연히 같이 물에 빠졌던 나나 루스카와 달리 그녀의 몸에는 젖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한순간 체스휘의 눈이 싸늘한 빛을 발한 채 가늘게 좁혀지는 것을 보고, 혹시 그의 눈에 뭐가 보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숨소리를 작게 죽이고 체스휘를 주시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체스휘는 날카로운 기색을 지우고 다시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뒤이어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나는 탁 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연못에 공이 떨어져 있네요.”

“아, 정말이네요…. 혹시 루스카가 저걸 주우려고 연못에 가까이 갔다가 빠졌나?”

공을 보고 있었던 거구나. 난 또 혹시나 했네.

“비비의 공인 것 같은데 혹시 방금 다녀갔나요?”

“네, 잠깐이었지만요.”

체스휘의 눈에 또다시 마뜩잖은 기운이 번지는 것 같았지만 잠깐 사이에 사라져서 내가 잘못 봤다고 생각했다.

“아 참, 그런데 연못이 생각보다 깊더라고요? 그냥 밖에서 봤을 때는 저 정도일 줄 몰랐는데, 정말 애들이 가까이 가면 위험하겠어요.”

“린 씨, 아이들 걱정을 하는 것도 좋지만 먼저 본인 몸부터 챙겨요.”

왠지 체스휘가 얕게 한숨을 내쉰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루스카와 마리엔이 있는 곳이 또 조금 시끄러워져서 시선을 돌렸다. 사람들이 그들을 건물 안으로 옮기려는 듯이 마리엔을 부축하고 루스카를 등에 업고 있었다. 그래도 콘라드가 적절한 조치를 취했는지, 두 사람의 얼굴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다들 안으로 들어가려나 봐요.”

“우리도 그만 가죠.”

“앗! 잠깐!”

그런데 갑자기 발이 땅에서 떨어지고 몸이 붕 떠올라서 깜짝 놀랐다. 내 허리와 다리 뒤쪽을 손으로 받쳐 안아 든 체스휘가 성큼성큼 걸어서 잔디밭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체스휘 씨, 제가 걸어갈 수 있는데요!”

당황스러움에 입을 열었지만 체스휘는 들리지 않는 것처럼 내 말을 무시하고 정원의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체스휘와 나를 목격한 몇몇 메이드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려주세요. 전 멀쩡하다니까요?”

“멀쩡하기는.”

이번에는 체스휘에게서 반응이 있었지만, 그리 긍정적이라 해석할 수는 없었다.

혼잣말을 하듯이 낮게 중얼거린 체스휘가 나한테 시선을 떨어뜨렸다. 찌푸려진 그의 눈을 보고 입이 저절로 다물어졌다.

뭐지…? 꼭 체스휘한테 혼나는 것 같은 기분인데….

“7호실 양육자님? 듣자 하니 1호실 도련님과 같이 물에 빠지셨다던데, 괜찮습니까?”

바로 그때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체스휘와 나 사이에 끼어들었다.

루스카와 마리엔의 상태를 보고 온 뒤 그새 지친 것처럼 핼쑥해진 콘라드가 뒤에서 비실거리면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어디 상태 좀 봅시다.”

저런 꼴을 하고도 굳이 나까지 진찰해 주겠다고 온 걸 갸륵하다고 해야 할지….

나는 체스휘를 힐끗 본 뒤 콘라드에게 말했다.

“전 괜찮아요. 그냥 좀 젖은 것 말고는 아무 문제도 없어요.”

“그 물에 젖었다는 부분이 문제인데요…. 연못 물이 깨끗한 것도 아니고. 어차피 오늘은 정기 검진을 받으시는 날 아닙니까. 지금 병동으로 가시지요.”

아, 그러고 보니 콘라드의 연구실에 다녀온 지 또 이틀이 지났던가. 그래도 이번 약은 효과가 있는지 이상하게 등이 안 아픈 느낌이긴 한데, 콘라드의 말처럼 오염된 물이 상처에 들어갔으니 혹시 모를 일이긴 했다.

그래서 콘라드의 말대로 할까 싶어서 막 입술을 뗀 찰나에, 체스휘가 먼저 선수를 쳤다.

“린 씨는 방에 가서 쉬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요.”

“잘 모르셔서 하는 말입니다. 7호실 양육자님은 일단 병동으로 가시는 게 나아요.”

그러나 콘라드는 체스휘의 말을 단칼에 잘라 버렸다.

불친절한 의사답게 그는 다른 설명을 더 곁들이지 않았다. 게다가 체스휘가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며 끼어드는 이 상황이 성가신 듯이 말투까지 퉁명스러웠다.

“보아하니 2호실 양육자님은 아무것도 모르시는 것 같은데, 그럴 때는 그냥 의사의 소견을 따르시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콘라드가 그렇게 한마디를 더 보탠 순간. 체스휘의 입술이 살짝 미묘하게 비대칭으로 기울어졌다.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왠지 불길하게 느껴지는 낮은 혼잣말이 체스휘의 입술에서 흘러나와 귓가를 맴돌았다.

그리고 내가 영문을 알 수 없는 위험을 감지한 순간, 체스휘의 고요한 목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글쎄요, 지금 병동으로 가도 닥터 콘라드가 과연 린 씨에게 손톱만큼이나마 도움이 될지 모르겠는데.”

나는 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체스휘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부드러웠지만 그 내용만큼은 상당히 도발적이었다.

나는 휘둥그렇게 뜬 눈으로 체스휘를 올려다봤다. 체스휘는 여전히 은은하게 미소 지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서는 평소와 다른 한기가 느껴졌다.

“2호실 양육자님….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콘라드도 체스휘가 느닷없이 자신에게 이런 공격적인 말을 할 줄은 몰랐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당연히, 린 씨가 부상으로 닥터 콘라드의 연구실을 오간 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 아직도 치료 방법을 전혀 찾아내지 못한 무능함을 두고 하는 말이겠죠.”

나는 잇따라 두 귀에 매끄럽게 울리는 체스휘의 목소리를 듣고 몸을 작게 움찔거렸다.

“지금 레드포드 저택의 유일한 의사인 제 실력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당연히 콘라드의 반응은 썩 곱지 않았다. 그는 눈을 날카롭게 뜬 채 체스휘를 응시했다.

그러나 체스휘는 그런 콘라드의 반응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들은 듯이 엷게 웃었다.

“실력은 고사하고, 그동안 본인이 하는 일에 특별한 열의도 없지 않았던가.”

헉, 체스휘가 이런 팩트 폭력을…?

“언제까지 쓸모도 없는 방법으로 괜한 사람을 고생시키면서 시간 낭비할 생각인지, 그건 좀 궁금하네요, 닥터 콘라드.”

미려한 선을 띤 입술에서 흘러나온 매끄러운 음성이 분위기를 한결 긴장되게 만들었다.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당황해서 조용히 숨을 죽인 채 체스휘와 콘라드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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