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99)화 (99/300)

거미집 모양으로 번져 가던 상처가 이틀 사이에 이제는 거의 등 전체로 퍼져 있었다. 갈라진 상처에서는 피만 안 나왔지 벌건 속살이 다 드러나 있어 담이 작은 사람은 보기만 해도 진저리치며 시선을 피할 만도 했다.

“그런데 닥터 콘라드는 의사면서 이 정도 상처에 뭘 그렇게 과민 반응하고 그래요?”

“전 섬세해서 이런 징그러운 상처는 잘 못 본단 말입니다.”

“아니, 그래도 의사라면 침착한 모습으로 환자를 안심시켜 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미 더할 나위 없이 침착한 7호실 양육자님의 모습을 보니, 굳이 그런 도움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어휴, 이 인성 파탄 돌팔이가 입만 살아서는. 섬세함이 다 죽었나? 내가 봤을 때 이 인간의 경우에는 그 섬세함이 자기 자신에게만 향해서 문제였다.

그렇게 내가 혀를 차는 동안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안정시킨 듯한 콘라드가 잠시 후 다시 의자를 끌고 나한테 다가왔다.

“일단 약을 바꿔 보겠습니다. 처음이라 시행착오를 거쳤을 뿐이고, 이번에는 정말 효과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콘라드도 평소만큼의 확신은 없는 듯했다. 여느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말투가 까칠해진 걸 보면, 아무래도 자존심이 좀 상한 것 같기도 했다.

나도 콘라드가 영 미덥잖았다. 그래도 레드포드 저택에 있는 유일한 의사이니, 현재로서는 그가 내가 고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이기는 했다.

‘아니지…. 체스휘한테 한번 물어볼까?’

그러고 보면 맨 처음에 체스휘에게 치료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상처는 멀쩡히 잘 아물어 가고 있었다. 그 이후에 상처가 덧나기 시작했던 것이니, 체스휘에게 그때 무슨 약을 썼던 건지 물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콘라드 선생님.”

나는 콘라드가 내 등의 상처를 살피는 동안 바닥에 그려진 그의 그림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동안 저택에서 꽤 바쁘게 움직이셨나 봐요.”

그 순간 시야에 비친 콘라드의 그림자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

“제가 저택에 자리를 잡는 동안에도 상당히 많은 일이 있었던데. 아무래도 콘라드 선생님이 저 같은 사람들에게 그동안 도움을 많이 주셨던 것 같아서.”

일전에 세르쥬에게 독을 먹이려고 한 범인이 잡히긴 했으나 배후가 따로 있지 않을까 내심 의심스러웠고, 또 성수를 망가뜨려 저택의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린 범인이 누구인지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피해가 없어 가볍게 넘어가긴 했지만, 저택의 아이들에게 자잘한 사건 사고가 일어난 적도 종종 있긴 했었다.

승마 수업 중에 갑자기 말이 날뛰어서 다리를 다치거나, 창문 밑을 지나갈 때 머리 위로 갑자기 화분이 떨어지거나 하는….

‘그러고 보니 예전에 다이안이 악마의 화원에서 들고나온 씨앗 폭탄 사건도 있었지.’

다이안에게 그 씨앗에 대해 알려 준 3호실의 비비는 그런 얘기를 어디에서 들었을까? 지금까지는 비비의 양육자인 유지니아가 신입인 내 신고식을 하려고 그런 짓을 벌인 것으로 생각해서 더 파 보지 않았는데 갑자기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단순한 우연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니 그동안 신경 쓰지 않던 하나하나가 전부 수상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1년 전에 이 저택에서 일어난 이전 1호실 페어의 죽음도 수상쩍기는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의심스러운 건 엠버와 연관이 있어 보이는 콘라드와 세라였다.

“제가 바쁠 게 뭐가 있나요.”

그래서 지난번처럼 은근슬쩍 떠봤으나 콘라드는 내 물음에 아무런 거리낌도 없는 듯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지금처럼 소일거리로 약이나 만들고, 필요한 분께 사소한 도움을 드릴 뿐인데요.”

“겸손하시네요. 그렇게 사소한 도움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제가 예전부터 그런 말을 좀 많이 들었습니다. 세상을 놀라게 할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고도 항상 잘난 척하지 않고 겸양의 미덕을 안다고요.”

“…….”

[‘콘라드’의 ‘린’을 향한 호감도가 변경되었습니다.]

[호감도 70/100]

쓸데없이 콘라드의 호감도만 올라갔다.

이 돌팔이가,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또 내가 무슨 꿍꿍이를 가졌는지 떠보려고 한번 던져 본 말을 칭찬으로 알아들은 모양이다.

기분이 한결 좋아진 듯이 손을 가볍게 놀리는 콘라드를 보자 나는 다시 입을 열어 다른 말을 더 던져 볼 마음이 싹 사라졌다.

이러다가 또 혼자 착각해서 내가 자기한테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내가 이 인간에게 관심이 있다고 오해받는 건 이상하게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 콘라드는 아닐 거다!

하기야 콘라드는 심각한 귀차니즘 환자이니, 굳이 나서서 번거로운 일을 벌일 리가 없었다.

그럼 저택의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위해를 끼치려 한 건 설마 세라인가? 아니면 다른 제3의 인물?

“그런데 7호실 양육자님은 누구의 추천으로 이 저택에 들어온 겁니까?”

바로 그때, 콘라드가 지나가듯이 단조로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분명 이 시기에 새로 들어올 사람이 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는데….”

몸을 무심코 움찔거릴 뻔하기는 했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은 아니기에 나도 태연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7호실 양육자님한테 제 얘기를 해 준 사람이 누구죠?”

지난번에는 세라가 갑작스럽게 난입해서 콘라드와 긴 얘기를 나누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콘라드를 떠봤듯이, 콘라드도 내게 의심을 품고 이런 질문을 꺼내리라 예상했다.

“너무 당연한 걸 물어보시네요.”

마침 콘라드의 치료가 다 끝났다. 나는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닥터 콘라드도 알다시피, 그냥 고용인도 아니고 양육자 자리에 선발되어 들어오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요?”

“그건 그렇지요.”

“그러니 그런 일을 가능하게 만들 정도의 힘을 가진 분이 제 뒤에 계시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죠?”

나는 마지막 단추를 잠그며 콘라드를 돌아봤다.

“너무 당연한 걸 물어보셨어요.”

아무렇지 않게 웃어 보이자, 콘라드가 잠깐 나를 말 없이 쳐다봤다. 그러다 이내 그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러네요. 제가 너무 당연한 걸 물어봤군요.”

콘라드는 내 말에 납득한 눈치였다.

내가 콘라드를 이렇게 속이려고 하는 건 당연히 관계자인 척하면서 내부로 들어가 수상한 자들과 단체에 대해 더 캐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설령 콘라드와 세라가 내가 찾아서 처결해야 하는 사람들이 맞다고 해도 그들을 바로 처리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그들과 안면이 있어 죽이기 찜찜해서라든가, 하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장 중대한 이유는 이 퀘스트의 내용이 심히 개떡 같았기 때문이다.

※실패 페널티: 대주교 릭 도체스터의 실망, 스텔라에서의 파문, 불명예스러운 사망.

※성공 보상: 대주교 릭 도체스터의 기쁨, 스텔라에서의 1계급 승진, 명예로운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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