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거울을 봐서 내 등의 상처가 어떤 모습인지 알고 있었다.
계단 모서리에 찍혀 찢어진 부위의 상처가 꼭 거미줄 모양 같기도 하고, 도자기가 깨졌을 때 생기는 실금 같기도 한 모양으로 등에 퍼져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나날이 조금씩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이게 보통 상처가 아닌 것 같다고 의심한 이유였다.
솔직히 지금 콘라드의 반응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냥 찢긴 상처가 도져서 우연히 이런 이상한 상태가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콘라드의 저 질겁하는 모습을 보니 역시 이게 방심하고 넘어가도 될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거참…. 일단 한번 자세히 살펴봐야겠습니다.”
아무래도 그냥 대충 봐서는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콘라드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나한테 다가왔다. 도르륵,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작게 들리는 걸 보니 콘라드가 구석에 있던 간이 의자를 옮겨온 것 같았다.
“그냥 계단을 굴러서는 절대 이런 상처가 생길 수 없는데…. 그렇다고 모로스에게 당한 것도 아닌 것 같고….”
뒤에 앉은 콘라드가 의료용 장갑을 낀 손으로 내 등을 살폈다.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게, 왠지 콘라드도 이런 상처를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콘라드 선생님도 왜 이렇게 된 건지 원인을 잘 모르시겠나 봐요.”
“누가 모르겠다고 했습니까? 아직 보는 중이니까 가만히 있어 봐요.”
그런데 내 말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콘라드가 제법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반발했다.
“혹시 이 저택에서 이상한 물건을 만진 적이 있습니까?”
별채의 보라색 방에 있던 리본처럼 원념이 깃든 물건이나 지하실의 문 같은 수상한 걸 말하는 건가?
“많은데요.”
“이상한 존재를 보고 말을 건 적은?”
이건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이나 초상화 속 영혼 같은 존재를 말하는 것 같은데.
“그것도 많은데요.”
“검은 공기가 짙은 밤에 저택을 돌아다닌 적은….”
“당연히 많죠.”
“그렇겠죠.”
콘라드가 내 등 뒤에서 작게 혀를 찼다.
“이렇게 저택의 온갖 규칙을 다 어기고 다니면서 몸이 성하길 바라는 게 이상한 일이라는 자각쯤은 있는 거겠죠?”
뭐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콘라드에게 이런 상식적인 말을 듣다니, 왠지 좀 굴욕적이었다.
“일단 임시로 처방은 내려 보겠는데, 반드시 이 방법이 효과가 있을 거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겠습니다. 이틀 후 이 시간에 다시 연구실에 방문하세요. 상태를 봐서 처방을 바꿔야 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콘라드는 나한테 다른 잔소리를 더 하지는 않고, 뭔지 모를 연고와 소독 용품, 그리고 핀셋과 붕대 등등의 도구들이 담긴 쟁반을 가져왔다.
“한동안 밤에 돌아다니는 건 자중하시고요. 검은 공기 중독 때문에 증상이 더 심해졌을 수도 있습니다.”
콘라드는 생각보다 섬세하게 손을 움직였다. 게다가 한동안 돌팔이 생활을 하긴 했어도 의사는 의사인지, 움직임이 숙달된 데다 속도도 빨랐다.
“검은 공기 중독 증상을 막는 약을 먹어서 아마 그 영향은 아닐걸요.”
“아무거나 막 주워 먹으면 탈 납니다. 어느 돌팔이가 만든 약인지는 모르겠지만, 효과가 없는 불량품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아, 불량품이요…. 그거 콘라드 선생님이 만든 건데요?”
“제가요?”
그런데 내가 무심코 꺼낸 말에 콘라드의 손이 멈추었다. 이어진 말에 나는 내가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가 언제 7호실 양육자님한테 그런 약을 드렸지요? 재료를 구하기 어려워서 제가 가지고 있던 것도 두 병밖에 없었고, 그중 한 병은 다른 사람에게 줬는데.”
아차, 그때는 린 도체스터의 모습이 아니었지!
콘라드가 자신 외의 다른 의사는 죄다 돌팔이 취급하기에 웃겨서 딴죽을 걸다가 괜한 소리를 했다.
“아, 그으래요? 그럼 다른 데서 구해 놓고 제가 헷갈렸나 보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혹시 모르니까 한동안 밤 외출은 조심할게요. 그보다 다 끝난 거예요? 이제 옷 입어도 되는 거죠?”
나는 콘라드에게 깊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정신없이 후다닥 말한 뒤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그렇게 내가 대충 빠르게 옷매무새를 정리한 후 뒤돌았을 때, 콘라드는 아직도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살짝 멍한 얼굴을 한 채로 굳은 듯이 앉아 있는 모습이 이상해 보였다.
“저기요, 콘라드 선생님? 그럼 저는 이만….”
나는 그런 그를 무시하고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나보다 먼저 콘라드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갑자기 내게 다가온 콘라드가 돌연 내 어깨를 붙잡았다. 묘하게 박력 있는 손길에 몸이 뒤로 밀려나면서 내 무게에 눌린 의자에서 끼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 혹시….”
“선생님!”
그리고 콘라드가 나를 내려다보며 막 입을 열었을 때, 갑자기 연구실 문이 벌컥 열렸다.
“콘라드 선생님, 지난번에 그 수면제 좀 더 주… 어?”
박력 있게 안으로 들어온 건 검은 단발과 눈물점이 매력적인 예쁜 메이드 언니, 세라였다.
그녀는 나를 발견하고 놀란 듯이 눈을 약간 크게 떴다. 콘라드에게 먼저 선객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눈치였다.
그러다 이내 콘라드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던 세라의 얼굴이 묘하게 어색해졌다.
“7호실 양육자님… 도 여기에 계셨네요? 그런데 중요한 얘기 중이셨는지…. 저 조금 이따가 다시 들어올까요?”
도도한 세라가 이런 묘한 표정을 짓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이놈의 돌팔이 의사가 의자에 앉아 있는 나를 갑자기 박력 있게 붙잡아 누르는 바람에, 꼭 예전에 체스휘와 세라가 어두운 방에서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며 밀착해 있었던 것과 비슷한 모양새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콘라드와 내가 그때의 두 사람처럼 미성년자 관람 불가의 아슬아슬한 분위기까지 내고 있었다는 건 절대 아니었다. 그냥 자세가 비슷했다는 얘기다. 자세만!
“다들 왜 이렇게 허락도 없이 내 연구실에 막 들어오는 겁니까?”
역시 콘라드답다고 해야 할지, 그는 다른 무엇보다도 자신의 성역인 연구실에 제멋대로 침입한 불청객의 존재 자체에 짜증이 난 듯했다.
하지만 까칠하기로 따지면 세라도 지지 않았다.
“선생님이 안에 있어도 없는 척하니까 그렇죠? 그런 소리를 할 거면 평소에 노크를 했을 때 대답이나 좀 잘해 주시든가요.”
세라는 콘라드와 내가 조금 전 그녀가 오해한 것처럼 비밀스러운 관계라서 붙어 있었던 게 아니라는 걸 눈치챈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다른 종류의 호기심이 담긴 눈이 우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래도 내가 먼저 뿌리치기 전에 콘라드가 나한테서 손을 뗐다. 콘라드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책상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지난번에 그 약 말이지요. 이번에도 보름치입니다. 가져가세요.”
그런 뒤 그는 다시 귀차니즘에 빠진 모습으로, 따로 조제한 듯한 약 뭉치를 서랍에서 꺼내 책상 위에 대강 내려놓았다. 세라가 슬쩍 내 얼굴을 살핀 뒤 약 뭉치를 들고 바로 콘라드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럼 나중에 또 올게요.”
나도 이 기회를 놓칠세라 의자에서 바로 일어났다.
“저도 그만 나가 볼게요.”
왠지 콘라드가 내 말실수를 걸고넘어지려는 것 같았는데 여기서 붙잡히면 괜히 귀찮아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바로 세라를 뒤따라가려고 하자, 나를 응시하는 콘라드의 눈이 가느스름해졌다.
“그래요, 두 분이 나눌 얘기도 있을 텐데 같이 나가 보십시오.”
의외로 콘라드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콘라드의 말에 세라는 의아한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세라와 나 사이에 따로 나눌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듯이 묘한 뉘앙스의 말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 순간 나는 촉이 왔다. 세라도 엠버처럼 콘라드하고 뭔가 있구나!
콘라드와 나는 잠깐 말없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그런 뒤 연구실을 나서는 내 뒤로 콘라드의 목소리가 꽂혔다.
“이틀 후에 다시 오시는 거 잊지 말고요.”
등 뒤로 문이 닫혔다.
“7호실 양육자님? 방금 콘라드 선생님의 말씀이 무슨 의미죠? 저한테 하실 말씀이라도 있나요?”
연구실 밖의 복도에서 세라가 내게 경계심 어린 눈빛을 보냈다.
나는 세라의 인물 정보를 먼저 열람했다.
<세라(23)>
- 제27세계 소속 메이드
- 제?세계 소속 ?
- 성격: 호승심 강함, 완벽주의적, 고집 있음
- 현재 상태: 의혹, 경계
- 호감도: 30/100
- 진행 중인 퀘스트: 메이드 세라의 비밀 (완료 시 숨겨진 인물 정보 공개)(상세 설명 확인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