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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91)화 (91/300)

오늘 여기에 온 목적은 두 개가 있었지만, 일단 콘라드를 떠보는 건 천천히 간을 좀 보는 게 좋을 듯해서 먼저 내 등의 상처에 대해 말했다.

“실은 제가 얼마 전에 저택에서 좀 다쳤는데요.”

“그런데요.”

“그런데 상처가 거의 다 낫는 듯하다가 다시 심해져서요.”

“그래서요?”

“그 후로 어떤 약을 발라도 전혀 안 낫는데, 뭔가 좀 이상해서 진찰을 받을 수 있을까 싶….”

“관리 소홀로 도졌나 보네요. 조심성이 없는 환자들에게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콘라드가 내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들으란 듯이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단정 지어 말했다. 게다가 꼭 대사를 외운 듯이 판에 박힌 의사 소견을 줄줄이 읊기 시작했다.

“먼저 환부를 깨끗이 소독해 주고 그 후에 이 연고를 꾸준히 발라 주면 조만간 나을 겁니다. 다친 부위를 격하게 움직이지 말고, 물이 들어가지 않게 평소에 조심해 주시고요. 뭐, 환자의 부주의로 혹시 좀 치유가 더뎌져도 의사의 처방 탓은 아니니 이 점은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일하다 보면 가끔 의사에게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진상 환자가 나와서 말이지요.”

아니, 이 돌팔이 의사가 아직 다 설명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처방을 내리고 있네. 환자를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닙니까? 네?

게다가 설령 진료받은 후에 차도가 없어도 자기 탓이 아니라는 말을 굳이 덧붙이기까지. 늘 이런 식으로 대충 처방을 내려 왔으면 환자가 뭐라고 하는 것도 당연한 것 같은데 말이다.

콘라드는 내가 차게 식은 눈으로 보거나 말거나, 오늘도 한껏 귀찮은 듯한 몸짓으로 책상 밑에서 약을 툭툭 꺼내 주었다.

나는 콘라드가 꺼낸 약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이왕 줄 거면 이거 말고 효능이 더 좋은 걸로 주시죠.”

“양육자님이 뭘 모르셔서 그러는데 이 약이 효능이 가장 좋은 약입니다.”

“빨간 라벨이 붙은 게 제일 비싸고 효능도 좋잖아요. 그다음이 초록 라벨이고, 이 흰 라벨은 제일 별로인 거 다 알거든요?”

“…….”

콘라드는 또 뻔뻔하게 나를 속이려 하다가 내 돌직구 말에 흠칫해서 약병을 내려놓던 손을 멈췄다. 나는 힐끔 나를 쳐다보는 콘라드에게 썩은 미소를 돌려주었다.

매우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훑어보던 콘라드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지난번부터 이상했는데, 내 약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 겁니까?”

아니, 그런데 이 양반이… 왜 이렇게 악성 스토커를 보는 것 같은 시선으로 날 보는 거지? 상체는 또 왜 뒤로 슬그머니 빼시는데요?

그보다 지난번이라면, 다이안의 해열제를 받아 갔을 때를 말하는 건가 싶었다.

나는 궁금하면 오백 골드… 라는 구시대적 농담을 할까 하다가 이 인성 나쁜 돌팔이에게 괜히 경멸 어린 눈빛을 받을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그런데… 어떤 의미로 이건 기회인가? 어쩌면 자연스럽게 콘라드를 떠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글쎄요…. 제가 그런 걸 어떻게 알고 있을까요?”

나는 괜히 의미심장한 척, 나를 경계하듯이 보는 콘라드에게 목소리를 한 자락 내리깔고 속닥거렸다.

“닥터 콘라드라면 이미 짐작 가는 부분이 있지 않아요?”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닥터 콘라드가 생각하는 것보다 제가 당신에 대해 잘 안다는 소리죠.”

나는 그렇게 덧붙이면서 ‘나는 네 비밀을 알고 있다!’의 의미를 담은 강렬한 눈빛을 콘라드에게 쏴 주었다.

그러자 콘라드의 몸이 굳었다.

사실 별로 특별한 말을 한 건 아니지만, 원래 뭔가를 숨기고 있는 놈들은 작은 떡밥만 던져 줘도 속이 켕기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만약 내가 엠버의 몸일 때 알게 된 것처럼 콘라드에게 진짜 비밀이 있다면 사소한 반응이라도 보일 것이라 생각했다.

엠버라는 메이드도 진짜 실존했던 사람이라고 하니까 그때 내가 본 콘라드의 수상한 모습도 진짜일 수 있잖아?

아, 그런데 내가 콘라드에게 미끼를 던지는 방향성을 좀 잘못 잡았나 보다…. 이어진 콘라드의 반응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 달랐다.

콘라드는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보다가 의자를 슬그머니 뒤로 끌어 나와 거리를 더 벌렸다. 그런 뒤 그는 내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듯이 흘러내렸던 흰 가운을 앞으로 모아 제대로 여미며 왠지 조금 긴장한 듯한 손길로 자신의 마른 입술을 훑었다.

[‘콘라드’의 ‘린’을 향한 호감도가 변경되었습니다.]

[호감도 60/100]

“죄송하지만, 7호실 양육자님…. 저는 누군가와 진지하게 교제할 마음이 없습니다.”

“네?”

“물론 제 외모가 특출하다 보니 예전부터 이런 식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러니 나비가 꽃에 끌리듯이 7호실 양육자님이 저한테 호감을 품은 것도 이해합니다만….”

“네에?”

“그래도 이런 식의 집요한 관심은 부담스럽기만 하군요.”

콘라드의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아니…! 이 돌팔이가 지금 뭐라는 거야? 설마 지금 내가 고백한 적도 없이 콘라드에게 차인 건가? 내가 언제 너한테 그런 식으로 관심 있다고 그랬어?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힌다는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뭐…. 그래도 이렇게 열정적으로 마음을 표현한 사람은 처음이라 신선하기는 한데….”

콘라드는 꼭 구애하는 수컷 공작새를 보는 암컷 공작새라도 되는 것처럼 살포시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재듯이 훑어보았다.

[‘콘라드’의 ‘린’을 향한 호감도가 변경되었습니다.]

[호감도 67/100]

“그래도 역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도 없이 바로 이러는 건….”

나는 꽉 움켜쥔 주먹에 핏줄이 서는 걸 느끼며 이어지던 콘라드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게 아니고요! 내가 애초에 닥터 콘라드에 대해 잘 아는 상태로 여기에 왔다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저에 대해 이미 알고 저택에 들어왔다고요…?”

그 순간, 외알 안경을 낀 콘라드의 눈에 빛이 반사된 듯한 이채가 반짝였다.

설마 콘라드가 처음에 내가 한 말을 자신에게 이성적 호감이 있는 것으로 오해할 줄은 몰랐지만, 이번에는 그래도 내 말뜻을 제대로 이해한 것 같았다.

“저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듣고 오셨죠?”

콘라드의 눈빛이 조금 전과 다른 의미로 살짝 바뀌었다.

“앞으로 제가 이 저택에서 할 일에 닥터 콘라드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들었어요.”

나는 비밀 이야기를 하듯이 콘라드 쪽으로 상체를 더 가까이 기울이고 작게 소곤거렸다.

“이를테면… 하나뿐인 목숨을 결정적인 순간에 값지게 쓸 수 있도록 조력해 준다든지.”

엠버일 때 콘라드에게 들은 말이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지금 콘라드에게서 아무 반응이 없다면 그런대로 나한테는 문제 될 것 없는 일이었다. 사실 나도 지금 긴가민가하면서 콘라드를 떠보는 거였으니까, 적어도 내 속은 시원해지겠지.

“닥터 콘라드라면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죠?”

콘라드는 미동 없이 앉아 뼛속까지 시려질 듯한 푸른 눈으로 나를 꿰뚫을 것처럼 주시했다.

콘라드의 입에서 먼저 무슨 말이라도 나오기를 기대했으나 그는 고요한 눈으로 한동안 가만히 나를 응시하기만 했다.

[‘콘라드’의 ‘린’을 향한 호감도가 변경되었습니다.]

[호감도 64/100]

드르륵.

그러다가 콘라드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벽에 있는 선반 쪽으로 다가가, 약병이 빼곡하게 들어찬 서랍을 뒤적이다가 빨간 라벨이 붙은 약병을 꺼내 왔다.

이 자식….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역시 지난번처럼 약을 따로 찾아오기 귀찮아서 책상 서랍에서 바로 꺼낼 수 있는 효과 약한 약을 그냥 주려고 했던 거네.

아무튼,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래요…. 부상을 입은 곳의 상처가 다시 도졌다고요. 어디를 어떻게 다친 거죠? 자세한 얘기를 좀 들어 봅시다.”

다시 의자에 앉은 콘라드가 조금 전에 무슨 대화를 나누었냐는 듯이 담담한 얼굴로 갑자기 의사다운 문진을 하기 시작했다. 나를 지그시 응시하는 눈에서는 특별히 두드러진 동요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완전히 뜬구름 잡는 얘기를 한 거라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반문이 따라와야 했을 텐데…. 콘라드는 내 말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나는 콘라드의 이 반응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알쏭달쏭한 채로 일단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상처 부위는 등이고, 아마도 계단에서 굴렀을 때 다친 것 같아요.”

“타박상인가요?”

“아뇨, 모서리에 찍힌 것처럼 찢어졌어요.”

“일단 환부를 확인해 보죠.”

나는 흠칫 놀랐다.

콘라드가 정말 이렇게 제대로 진찰을 한다고?

나를 마주한 콘라드의 눈에는 평소의 귀찮음이나 짜증 대신 명료하면서도 건조한 빛이 담겨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본 모습 중에 가장 의사다운 모습이라, 나는 강한 의혹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오늘따라 낯설다, 콘라드….’

나는 살짝 얼떨떨한 상태로 콘라드에게서 뒤돌았다.

사실 이게 그냥 보통 상처였다면 콘라드가 숨겨진 명의이든 뭐든지 간에 정말로 진찰받을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상처는 좀 심상치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주섬주섬 상의를 벗어 내려 등을 보이자마자 콘라드에게서 작게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도대체 뭘 하고 돌아다니다가 등이 이렇게 된 겁니까?”

뭘 하긴 뭘 해. 그냥 유령이랑 술래잡기 좀 하고, 이상한 문으로 유체 이탈도 좀 하고… 그런 거지.

하지만 나도 내가 좀 무모하게 움직였다는 걸 알긴 해서 콘라드의 물음에 뻘쭘하게 변명하듯이 대답했다.

“아시다시피 제 일이 원래 그리 얌전한 게 아니다 보니까….”

“그건 알지만 이건 정말 보통 상처가 아닌데요.”

콘라드가 내 등 뒤에 있어서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들려오는 목소리만으로도 지금 그가 얼마나 어이없어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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