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89)화 (89/300)

[‘레이븐’의 ‘체스휘’를 향한 호감도가 변경되었습니다.]

[호감도 19/100]

[‘레이븐’의 ‘올리비아’를 향한 호감도가 변경되었습니다.]

[호감도 44/100]

레이븐은 공용 다과실에 들어와 팔짱을 끼고 선 채 체스휘와 올리비아를 무척 불쾌한 눈으로 훑어보았다.

“레이븐 씨, 설마 이런 문제에 진심으로 순서 따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체스휘가 여전히 웃고는 있으나, 어딘가 레이븐을 같잖게 여기는 듯한 눈으로 보면서 말했다.

[‘체스휘’의 ‘레이븐’을 향한 호감도가 변경되었습니다.]

[호감도 –980/?]

“2호실 말이 맞아! 새치기는 무슨. 애초에 4호실은 7호실하고 별로 친하지도 않으면서 왜 탐내는 거야? 질척이는 남자는 매력 없는 거 몰라?”

올리비아도 느닷없이 끼어들어 경쟁률을 높이는 레이븐을 향해 경계하듯이 쏘아붙였다.

[‘올리비아’의 ‘레이븐’을 향한 호감도가 변경되었습니다.]

[호감도 42/100]

우와…. 아주 여기저기서 호감도가 깎이느라 난리가 났구나.

눈앞이 어지럽고 정신이 사나워져서 나는 조용히 호감도 열람 기능을 껐다.

그러는 동안에도 세 사람은 여전히 나를 사이에 두고 긴박감 넘치는 분위기를 풍기며 대치 상태를 이어 가고 있었다. 서로를 향한 눈빛들에서 이러다 스파크까지 튈 것 같았다.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이래?

이걸 스크린샷으로 캡처해서 게시판에 올리면 플레이어들이 <평범한 양육자였던 내가 이렇게 인기 있어져서 어쩌자는 거야!> 같은 옛날 인터넷 소설이냐고 낄낄거릴 것 같은 광경이었다.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조금 고민이 생겼다.

급기야 그들은 서로를 경계하듯이 예리한 눈으로 보다가 내게 화살을 돌렸다.

“우리끼리 이럴 게 아니라 7호실이 선택해!”

“그래, 아예 지금 속 시원하게 말해 봐! 역시 나지?!”

“린 씨, 이 사람들 말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나는 떨떠름하게 내 앞에 있는 세 사람을 훑어보았다.

“그런데 꼭 한 명만 선택해야 돼요?”

내 말에 올리비아와 레이븐이 그런 대답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것처럼 ‘헉!’ 하고 경악 어린 숨을 들이켰다.

“7호실… 은근히 욕심이 많네.”

“우리를 다 갖겠다는 거야?”

아니, 씨. 그런데 반응이 왜 이래? 누가 들으면 내가 양다리라도 걸치겠다고 선언한 줄 알겠네!

믿었던 체스휘마저 소파의 등받이를 짚고 선 몸을 내게 좀 더 가까이 기울이며 곤혹스러운 얼굴로 속삭였다.

“린 씨, 나로는 만족이 안 되는 거예요?”

이쪽도 꼭 바람을 피우는 애인에게 하는 것 같은 소리였다.

나는 골치가 아파져서 미간을 손으로 꾹꾹 누르며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내 말은…! 굳이 둘씩 짝을 지어야 할 이유가 있느냐는 뜻이죠.”

“그럼?”

내 말에 나머지 세 사람의 반응은 영 떨떠름했다. 내가 굳이 왜 이래야 하나 싶었지만, 그래도 평화로운 저택 생활을 위해 세 사람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냥 지난번에 다 같이 공동생활할 때처럼 여러 명이 시간 날 때마다 같이 어울리면서 아이들도 지키고, 그러면 되지 않아요? 솔직히 지금 저택 사람들이 다들 너무 개인 플레이하는 성향이 있긴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사실 처음 여기에 왔을 때부터 이렇게 언제 모로스 같은 게 튀어나올지 모르는 저택에서 다들 너무 따로 지내는 게 좀… 위험하지 않나 싶었거든요?”

솔직히 이건 다들 내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부분 아닌가?

아니, 원래 공포 영화 같은 데서도 다들 뿔뿔이 흩어지면 흩어질수록 사망 확률이 높아지잖아? 그럼 뭉쳐서 서로서로 돕는 게 더 좋을 텐데, 굳이 각자도생할 게 뭐가 있느냐는 말이다.

“그래, 뭐…. 7호실 말도 일리가 있긴 한데.”

“듣고 보니 나쁜 방법은 아닌 것 같긴 하네. 아무튼 그럼 7호실도 같이 있겠다는 거지?”

그래도 낙오되어 혼자 지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내가 제안한 방법이 낫겠다 싶었는지, 올리비아와 레이븐은 그럭저럭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오직 체스휘만 그래도 탐탁지 않은 듯이 으음, 하고 시원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체스휘는 평소처럼 다정한 미소를 입가에 그리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린 씨가 원하는 대로 해요. 괜히 저 사람들 때문에 골치 아프게 계속 고민할 필요는 없죠.”

체스휘까지 수락하자 속이 다 후련해졌다.

물론 올리비아와 레이븐은 자신들을 중간에 꼽사리 낀 성가신 미꾸라지로 취급하는 체스휘의 말에 기분이 상한 듯했으나, 체스휘는 그들을 눈곱만큼도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럼 그렇게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걸로 해요! 전 다이안의 수업이 끝나기 전에 잠깐 들러야 할 곳이 있어서 먼저 일어날게요. 다른 분들은 방금 말한 것처럼 편하게 여기 더 같이 있으시든가… 아무튼 마음대로 하세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공용 다과실 밖으로 나가자, 체스휘가 자연스럽게 문까지 나를 따라오며 물었다.

“린 씨, 무슨 급한 볼일이라도 있어요?”

“콘라드 선생님한테 잠깐 가 보려고요.”

“닥터 콘라드요? 혹시 어디 아픈 데라도 있는 거예요?”

내 말을 들은 체스휘의 목소리에 걱정이 담겼다. 그 순간 등이 또 따끔거렸다. 하지만 체스휘에게 사실대로 말하지는 않았다.

사실 초상화와 술래잡기를 하면서 다쳤던 등이 거의 회복되었나 싶었는데, 최근에 갑자기 다시 상처가 도지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내가 고이 가지고 있던 최고급 포션으로 치료가 되었다가도 또 덧나기를 반복해서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사실 그때의 기억이 가물가물한 만큼, 혹시 단순히 계단에서 떨어져 다친 게 아니라 초상화의 영혼 놈에게 상처를 입어서 이렇게 회복이 안 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물론 각성 전의 콘라드는 의사로서 신임하기 어렵긴 한데…. 그래도 검은 공기 중독 증상을 방어하는 약은 완벽하게 만들었으니까 어쩌면 이번에도 쓸 만한 구석이 있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콘라드에게 겸사겸사 알아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지하실의 문을 만진 후 내가 보게 된 1년 전의 과거에서 콘라드는 엠버에게 수상한 말들을 했었다. 거기에 대해서도 혹시 알아낼 게 있을까 싶었다.

‘메이드들에게 알아보니 진짜 엠버라는 메이드가 저택에 있었지. 물론 희한하게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데다, 그마저도 이상하게 말을 피하는 눈치였지만….’

지하실의 문을 만졌을 때 일어난 이 이상한 현상과 거기에서 본 엠버에 대해 생각할수록 알쏭달쏭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물어볼 게 좀 있어서요.”

“그래요….”

나는 그냥 체스휘에게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짤막하게 대꾸하고 말았다. 그러자 그가 옆에서 내 얼굴을 잠깐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게 느껴졌다.

그러다 이내 체스휘가 내게 문을 열어 주며 빙긋이 웃었다.

“그럼 조심해서 다녀와요.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게요.”

요즘 희한하게 분리 불안증에 걸린 것처럼 구는 모습을 봤을 때, 혹시 이번에도 체스휘가 나를 따라가겠다고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문에 느슨히 기대선 체스휘가 공용 다과실을 떠나는 나를 가볍게 미소 띤 얼굴로 배웅했다.

나는 기이한 찜찜함에 뒷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콘라드의 연구실로 향했다.

***

“손 치워! 마지막 남은 과자는 우리 쥬쥬한테 줄 거야.”

“그렇다고 손을 때려? 아프잖아!”

린이 떠난 공용 다과실에서, 올리비아와 레이븐은 여전히 티격태격하면서 시끄럽게 떠들었다.

“4호실, 요즘 트레이닝 열심히 안 하지? 이런 설탕 과자 말고 근육 보충제를 먹어. 전보다 물렁살 된 거 알아?”

“뭐?! 내 어디가? 내 복근 한번 보여 줘?”

“아우, 씨. 누구 눈 버리게 할 일 있어? 그리고 어디서 시답잖게 근육 자랑이야? 진짜가 뭔지 내가 알려 줘? 자, 특별히 내 걸 감상할 기회를 주지.”

“헉…! 뭐야, 5호실 그동안 이런 근육을 숨겨 두고 있었어?! 말도 안 돼…!”

“후훗, 알았으면 이제부터 까불지 마.”

체스휘는 그들의 앞에서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손에 턱을 괴고 앉아 남모를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거슬리는군. 역시 전부 다 없애 버리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럴듯하게 호선을 그린 입술과 달리, 체스휘의 눈동자에는 온기의 잔상조차 맺혀 있지 않았다. 그러나 불쾌한 마음을 감춘 채 살기를 능숙하게 갈무리하고 있었기에, 나름대로 정예 훈련을 받고 선출되었다고 할 수 있는 눈앞의 두 사람도 바로 목전에서 스멀거리는 불길한 기운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런데 5호실, 언제부터인지 자연스럽게 나한테 반말하더라?”

“4호실 너도 나한테 반말하는데 나는 너한테 반말하지 말라는 법 있니?”

“아니, 그건 그렇긴 한데…. 그래도 내 나이가 더….”

4호실 양육자 레이븐과 5호실 양육자 올리비아는 방금 린이 내린 결정에 만족한 듯이 공용 다과실에 눌어붙어 저들끼리 이런 바보 같은 대화를 이어 가고 있었다.

뭘 모르면 용감하다더니, 체스휘의 눈앞에서 린을 탐내던 이 두 사람의 모습이 딱 그랬다.

손에 턱을 괸 체스휘의 고개가 느릿하게 기울어지며, 그의 입술에 그려진 미소도 덩달아 삐딱해졌다.

조금 전 체스휘가 린의 말에 동의한 건 정말 그게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이 같잖은 자들을 그냥 뒤에서 조용히 처리해 버리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린은 자애롭게도 이 두 사람에게 곁에 있을 기회를 주었지만, 그들은 린의 특별한 호의를 받을 자격이 없었다.

마음 같아서야 린과 단둘만 있을 수 있는 곳으로 그녀를 데려가고 싶었으나, 애석하게도 그는 이 레드포드 저택을 오래 떠나 있을 수 없는 몸이었다.

그러니 나머지 사람들을 쫓아내든 죽이든 해서, 이 저택을 비워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그러고 나서 이곳을 린과의 단둘만의 성으로 만드는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만족스럽고 마음이 벅차서 체스휘의 얼굴에 꿀이 녹아 흐르는 듯한 달콤한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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