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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82)화 (82/300)

“엠버 그린로스 양, 뭘 하고 있나? 빨리 나를 따라오게.”

“아, 넵.”

총괄 집사 슈나우더가 다시 한번 나를 독촉하며 먼저 돌아섰다. 나는 얼른 그의 뒤를 따라갔다.

붉은 리본을 손목에 묶은 마리네즈의 메이드가 분한 듯이 뒤에서 거친 콧바람을 내뿜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총괄 집사가 워낙 단호하게 굴어서 그런지, 자리를 떠나는 나를 붙잡지는 못했다.

그나저나 저 메이드도 대단하네. 여기서 양육자의 권위가 높은 건 알았지만, 일개 메이드가 총괄 집사한테도 저런 건방진 태도를 보인단 말이야?

“들어가게.”

잠시 후 총괄 집사 슈나우더가 나를 데려간 곳은 메이드장 제인의 방이었다.

나는 총괄 집사를 힐끔 쳐다본 뒤 안으로 들어갔다.

“메이드장님, 부르셨어요?”

“오, 그래. 이쪽으로 오렴.”

제인은 장부라도 보고 있었던 듯했다. 그러다가 나를 발견한 그녀가 안경을 벗고 콧잔등을 손으로 누르며 가까이 오라고 내게 손짓했다.

“엠버, 몸은 좀 괜찮니?”

나는 무심코 괜찮다고 말하려다가, 곧 직장인의 촉을 발동시켰다.

“아직 여기저기가 아프네요.”

“음, 그래….”

내가 엄살을 떨면서 말하자 예상대로 제인이 멈칫했다.

나를 힐끔 보며 말끝을 흐리는 모양새로 봐서, 내가 예의상으로라도 괜찮다고 말할 줄 알았나 보다.

제인의 얼굴에 고뇌가 떠올랐다. 그녀는 잠깐 책상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다가, 이내 매우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엠버, 네 몸이 아직 성치 않은 건 알지만 아무래도 네가 한동안 손님방을 좀 맡아 줘야겠다.”

“네? 하지만 어제만 해도 저한테 손님 접대를 맡기기 불안하다고 하셨잖아요?”

“손님께서 시중을 들 메이드로 너를 직접 지목하셨으니 어쩌겠니.”

내 질문에 제인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콧잔등과 관자놀이를 조금 전보다 더 세게 꾹꾹 눌렀다.

“혹시 네가 지목된 이유가 뭔지 아는 게 있니?”

“글쎄요….”

제인은 내가 어쩌다 손님의 관심을 끌었는지 영문을 알 수 없는 눈치였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두 번 마주쳤지만, 처음에는 꽃병을 들고 가다가 부딪칠 뻔하고…. 그다음에는 모로스한테 쫓기다가 죽을 뻔했던 것뿐이라, 딱히 일을 잘할 것 같은 이미지는 아니었을 텐데?

아니면 혹시 진짜 엠버랑 또 마주친 적이 있었나?

“아무튼, 그럼 지금부터 엠버 네가 손님방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라. 그래도 네 몸이 아직 성치 않은 걸 알고 배려해 주신다고 하더구나. 자세한 내용은 먼저 손님방을 담당하던 툴라에게 듣고.”

제인은 못내 불안한 눈치였지만, 그래도 할 수 없다는 듯이 나를 손님 접객 담당으로 배정했다.

어제 자신이 한 말을 이렇게 단숨에 번복한 걸 보니, 아무래도 지금 저택에 머무는 이 손님이란 사람이 보통 중요한 위치인 게 아닌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아까 총괄 집사도 양육자보다 손님이 우선이라고 했었는데….

솔직히 나는 아까 붉은 리본을 묶은 메이드가 나섰을 때, 총괄 집사 슈나우더가 또 손수건을 꺼내 식은땀이 배어난 이마를 닦으며 나를 마리네즈에게 보낼 줄 알았다.

“혹시 제가 미리 알아 둬야 할 사항은 없을까요? 모셔야 할 손님의 신분이나 주의할 점 같은….”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아까의 상황을 잠깐 곱씹다가, 제인의 방을 나서기 전에 물었다.

제인은 고민하는 얼굴로 내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러다 이내 그녀가 대답했다.

“이 레드포드 저택에서 선택받은 아이들을 양육할 수 있도록 돕는 시설과 연관된 분이라고만 알고 있으렴.”

***

그렇게 해서 뜬금없이 손님 담당이 되었지만, 지금 바로 일을 시작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

듣기로는, 손님의 배려로 내 몸이 웬만큼 나아지면 그때부터 일을 해도 된다고 했단다.

‘손님의 시중을 들 기한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은 걸 보니, 장기간 저택에 머물 수도 있는 손님인 모양이지?’

아무튼 표면적으로는 메이드장 제인에게 불려간 날부터 손님의 접객을 맡게 되었기에, 마리네즈도 또 나를 불러 해코지를 하려 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엠버 씨.”

나는 오늘도 지하실의 문이 작동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한결 울적해진 마음으로 혼자 복도를 걷고 있었다. 오늘은 참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이곳의 다이안에게 한번 들러 볼 생각이었다.

“몸은 좀 어때요? 벌써 침대에서 일어나도 괜찮은 거예요?”

체스휘가 나타나 내게 안부를 물어 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나는 그에게 대답하기에 앞서 먼저 주위를 둘러봤다. 다행히도 다이안의 방에 가까워져서 그런지, 복도를 돌아다니는 고용인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체스휘도 일부러 엠버라는 메이드의 입장을 고려해, 보는 눈이 없을 때 말을 건 것 같았다.

“많이 괜찮아졌어요. 걱정해 주셔서 고마워요.”

“다행이네요. 참, 어제 또 마리네즈가 엠버 씨를 부르려고 했다고 들었어요. 제가 알아듣게 얘기를 했으니 이제 정말 엠버 씨를 귀찮게 할 일은 없을 거예요.”

체스휘가 설핏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아, 마리네즈가 잠잠한 이유에는 체스휘의 도움도 있었던 건가? 어휴, 그런 사람이 옆에 있어서 체스휘 씨도 참 피곤하겠네.

“네, 신경 써 주셔서 고마워요.”

나는 그에게 인사한 뒤 가던 길을 다시 가려고 했다. 그런데 잠시 후,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힐끔 뒤돌아보았더니, 나를 따라오고 있는 체스휘가 보였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생긋 가볍게 웃어 보였다. 보폭을 크게 해서 내 옆으로 다가온 체스휘가 나를 내려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7호실에 가는 건가요?”

“네.”

“어제 엠버 씨가 다이안을 도와줬다고 들었어요. 혼자 모로스 앞에 나서기 무서웠을 텐데 대단하시네요.”

체스휘가 나를 추켜세워 줬지만 나는 당시의 일을 떠올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별로 도움이 되지도 않았는걸요. 모로스를 해치운 것도 제가 아니고요.”

“무슨 소리예요? 엠버 씨가 용감하게 모로스를 유인한 덕분에 다이안이 크게 다치지 않았잖아요. 저야말로 좀 더 빨리 가 봤어야 하는 건데,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해요.”

체스휘는 그렇게 덧붙이며 면목이 없다는 듯이 표정을 흐렸다.

하지만 그때 다이안을 도우러 급히 뛰어와 준 양육자는 체스휘밖에 없었다. 물론 그의 뒤에는 마리네즈도 있었지만, 그녀는 체스휘를 따라온 것뿐인 듯했으니 예외로 치겠다.

본의 아니게 엠버의 몸으로 이곳에 머물게 되면서 알아본 결과, 현재 이 저택에 있는 양육자 중 내가 아는 사람은 체스휘와 유지니아가 유일했다. 나머지 양육자들도 마리네즈를 제외하고는 전부 처음 듣는 이름이었는데, 아무래도 1년 동안 양육자들이 교체가 많이 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1년 후의 양육자들보다 더 사이가 데면데면해서, 어제 같은 일이 생겨도 다른 사람이 알아서 해결하겠거니 하고 굳이 얼굴을 비추지 않는 듯했다.

‘거참 아무리 생각해도 각박한 인심이로세.’

“마침 저택에 머무는 손님이라도 나서 줘서 다행이었죠. 모로스를 그런 식으로 간단히 죽이다니, 깜짝 놀랐어요.”

이어지는 체스휘의 말을 듣고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감탄하듯이 말한 것치고, 그의 눈매는 살짝 찡그려져 있었다. 아무래도 어제 현장에 도착해서 본 상황을 떠올린 듯했다.

그러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체스휘가 다시 웃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쨌든, 다이안도 엠버 씨에게 고마워할 거예요. 다가가기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사실 상처와 외로움이 많은 아이거든요.”

역시 우리 다이안을 챙겨 주는 사람은 체스휘밖에 없는 것 같았다.

“네, 저도 다이안이 얼마나 좋은 아이인지 알고 있어요.”

나는 고마운 마음에 그를 보고 진심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걸 알아주는 체스휘 씨도 좋은 사람이고요.”

그 순간, 어째서인지 체스휘의 걸음이 약간 느려졌다.

시야에 비친 보라색 눈의 동공이 서서히 크게 뜨였다.

이곳의 그는 린 도체스터인 나를 모르지만, 나는 그가 친근했다. 그래서 굳이 꾸며내지 않고도 정말 마음을 담아 웃을 수 있었다.

불현듯 체스휘의 걸음이 완전히 우뚝 멈춰졌다.

나를 응시하는 눈이 희미하게 흔들리고, 마주한 그의 얼굴에도 살짝 붉은 물이 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체스휘가 스스로도 조금 당황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려서, 그런 변화를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

“아, 저…. 갑자기 급한 볼일이 생각나서 전 그만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체스휘는 그렇게 말한 뒤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정말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급한 일인가 보다.

나는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체스휘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혼자 다이안의 방으로 향했다.

***

똑똑.

“다이안 도련님. 잠깐 들어가도 될까요?”

잠시 후 다이안의 방에 도착해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똑똑.

“도련님?”

다시 한번 노크를 해 봤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망설이다가 살며시 문을 열었다.

그러나 누가 마음대로 들어오랬냐며 호통을 칠 것 같던 다이안은 조용했다.

살짝 열린 창문에서 산들바람이 솔솔 흘러 들어와 커튼을 흔들리게 했다. 햇빛이 스민 침대에서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다이안은 깊게 잠든 것 같았다.

나는 발소리를 죽이고 침대로 다가가, 불쌍하게 몸을 웅크린 채 자고 있는 다이안을 내려다보았다.

가여운 우리 뽀시래기의 몸에는 붕대와 반창고가 가득했다.

“에구, 아직도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네.”

이 조그만 어린애의 몸에 무슨 시름이 많아서 이렇게 지친 얼굴로 잠이 든 걸까?

나는 안쓰러운 마음에 잠든 다이안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아프지 말고 빨리 나아요.”

누구에게도 선택받지 못한 채 혼자 쓸쓸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1년 전의 다이안.

이게 진짜 다이안이 겪었던 과거가 맞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렇게 내 두 눈으로 직접 천덕꾸러기 신세로 있는 다이안을 보자 마음이 짠했다.

“누… 구야…?”

다이안이 잠기운이 묻어난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깨어난 것은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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