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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80)화 (80/300)

“안 돼, 우리 개복치…!”

나는 나비 날개를 단 다이안이 모로스의 거미줄에 걸려 불쌍하게 흐느끼면서 오들오들 떠는 악몽을 꾼 뒤 번쩍 눈을 떴다.

누워 있던 몸을 벌떡 일으키자, 침대 옆쪽에 있던 사람이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앗, 깜짝이야! 엠버, 이제 정신이 들어?”

물수건을 대야에 던지고 급히 나한테 다가와서 상태를 살피기 시작한 건 모리나였다.

“모리나? 내가 왜 여기에 있어?”

“왜긴 왜야! 너 어제 모로스한테 당해서 쓰러졌던 거 기억 안 나?”

헉!

모리나의 말을 듣자마자 기절하기 직전에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게 나랑 같이 얌전히 도망이나 가지,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거길 가! 이 바보!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기나 해? 네가 팔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 시체처럼 하얗게 질린 모습으로 업혀 와서 진짜 죽은 줄 알았단 말이야!”

모리나는 나를 많이 걱정한 듯이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쏘아붙였다.

어쩐지, 꼭 두드려 맞은 것처럼 몸 구석구석이 욱신거리더라. 특히 팔이 불타는 것처럼 아팠는데, 모로스의 손톱에 할퀸 부분인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나는 모리나를 붙들고 서둘러 물었다.

“그보다 다이안은? 안 다쳤어? 지금 괜찮아?!”

식료품 창고에 혼자 숨어서 불쌍하게 달달 떨던 우리 개복치 고양이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하필이면 내가 기절하는 바람에 마지막에 데리러 가지도 못했는데, 그래도 체스휘가 내 말을 알아듣고 대신 구해 주지 않았을까?

“엠버…. 난 정말 네가 이렇게 이타심 넘치는 사람인지 몰랐어.”

모리나가 다이안의 안부를 가장 먼저 확인하는 나를 향해 탄식하는 건지, 감동하는 건지 모를 눈빛을 보냈다.

“다이안 도련님은 괜찮아. 우리가 발견했을 때는 식료품 창고에 기절해 있었는데….”

“기절?! 혹시 모로스한테 많이 다친 거야?”

“너보다 많이 다치진 않았어. 그냥 모로스한테 등을 좀 베이고 창고 선반이 쓰러질 때 타박상을 입은 게 전부래. 아, 가벼운 뇌진탕 증세도 있다고 하더라.”

나는 그 말을 듣고 뭉크의 그림인 절규 속 인물처럼 얼굴을 감쌌다.

“그게 많이 다친 거잖아…!”

“아유, 모로스를 만나고도 그 정도면 다친 것도 아니지. 아무튼 콘라드 선생님 말로는 탈진해서 기절한 것 같다고 하더라. 지금은 방에서 쉬고 있고….”

아무래도 다이안을 보러 가 봐야 할 것 같아서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하지만 침대에서 빠져나와 바닥에 첫발을 딛기 무섭게 힘없이 무릎이 꺾였다.

“어억.”

“엠버! 괜찮아? 갑자기 일어나니까 그러지! 지금 콘라드 선생님 불러올 테니까 기다려!”

나도 문밖으로 튀어 나간 모리나를 따라가려고 했다. 하지만 온몸을 강타한 끔찍한 근육통으로 바들거리며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나는 우리 다이안만 개복치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이 엠버라는 메이드도 상당한 개복치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 봐요. 내가 분명 멀쩡히 일어날 거라고 했잖습니까. 그런데 왜 다들 의사 말을 안 믿고 이렇게 성화들인지.”

결국 내가 방을 빠져나가기 전에 콘라드가 먼저 도착했다. 모리나는 얌전히 누워 있지 왜 바닥을 기어 다니냐고 한소리 한 뒤, 나를 번쩍 들어 다시 침대로 원상 복귀시켜 놓았다. 이제 보니 모리나는 아주 힘이 장사였고, 나는 문밖으로 빠져나가려 한 내 노력이 단숨에 수포로 돌아가 허무해졌다.

“열도 떨어졌네요. 해열제를 두고 갈 테니 식후에 드세요. 이 연고는 상처 부위에 하루 세 번 꼬박꼬박 발라 주고.”

“선생님, 엠버의 팔에 흉터는 안 생길까요?”

“나중 일을 내가 어떻게 압니까? 뭐, 약을 열심히 바르면 안 생길 수도 있겠죠.”

콘라드는 1년 전이나 현재나 데칼코마니로 찍어 낸 것처럼 똑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귀찮다는 듯이 왕진 가방을 뒤적이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 해열제를 안 가져왔네…. 혹시 제 연구실 책상에 있는 노란 라벨이 붙은 약병 좀 가져다줄 수 있을까요? 문은 안 잠갔으니 그냥 들어가면 돼요.”

“앗, 네! 금방 다녀올게요.”

모리나는 갑작스러운 심부름에도 싫은 내색 한번 보이지 않고 얼른 밖으로 뛰어나갔다.

모리나…. 참 좋은 룸메이트네. 솔직히 처음에 봤을 때는 나한테 일을 떠맡겨서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이래서 사람은 첫인상만 보고 모르나 봐.

“엠버 그린로스 양.”

그런데 왕진 가방을 정리하던 콘라드가 갑자기 나를 힐끔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

“앞으로는 이번처럼 너무 위험한 짓은 하지 마세요.”

나는 콘라드가 건넨 뜻밖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잉. 지금 이 돌팔이가 나를… 아니, 이 메이드를 걱정해 주는 말을 한 건가? 이 인성 파탄 난 인간이 어쩐 일이지? 설마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나요?

“먼저 저택 사람들의 신임부터 얻을 생각인가 본데, 아무리 그래도 저택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이렇게 눈에 띄는 짓을 해 버리면 앞으로의 움직임에 제약이 생기잖습니까.”

하지만 이어지는 콘라드의 말을 듣고 내 머릿속에는 거대한 물음표가 떠올랐다.

이제 보니, 나를 향한 이 돌팔이 의사의 눈에는 한심하다는 듯한 기색이 살짝 어려 있었다.

나는 거기에 깊은 의혹과 반발심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눈매를 찡그렸다.

“그렇게… 눈에 띄는 짓을 한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저택의 아이를 구하겠다고 단신으로 모로스 앞에 뛰어든 게 눈에 띄지 않는다고요?”

콘라드가 입술 끝을 삐뚤게 들어 올렸다. 왠지 은근히 내 속을 긁는 얄미운 표정과 말투였다.

“뭐, 도와줄 사람이 금방 나타났으니 결과적으로 괜찮은 선택이긴 했군요. 혹시 처음부터 그걸 노렸나요? 2호실 양육자에게도 은근히 접근하는 눈치던데.”

이 인간…. 조금 전부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그래도 이런 요행이 다음에도 있을지 알 수 없으니 모험은 한 번만 하란 말입니다. 당신도 자기 목숨은 아까울 것 아닙니까. 하나뿐인 목숨인데 결정적인 순간에 값지게 쓸 수 있게 소중히 아껴 줘야죠.”

콘라드는 그렇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나한테 남긴 뒤 유유히 먼저 방을 나섰다.

나는 콘라드가 떠난 자리를 구겨진 눈으로 응시했다.

방금 들은 말을 천천히 곱씹는 동안 갑자기 콘라드에게도 깊은 의혹이 들었다.

아무래도 돌팔이 의사 콘라드와 이 엠버라는 메이드에게 뭔지 모를 비밀이 있는 듯했다.

***

콘라드가 먼저 방을 나선 뒤, 금방 모리나가 돌아왔다.

그녀는 내게 해열제를 먹으라고 준 뒤, 마지막까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면서 마저 일을 하러 떠났다.

나도 모리나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방을 나섰다.

식료품 창고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이곳의 다이안을 한번 만나러 가고 싶었지만 내 몸 상태를 보니 아무래도 그것까지는 무리일 듯했다.

‘아쉽지만, 다른 사람들이 괜찮다고 했으니 일단은 그 말을 믿어야지.’

우선 지금 당장 급한 일은 지하실에 가서 원래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내가 기절한 사이에 벌써 하루가 지나 버렸다니, 정말 난감했다. 내가 이곳에 있는 동안 그곳의 육신은 어떤 상태인지 알 수가 없어서 더 걱정스러웠다.

혹시 그쪽 몸은 의식이 없는 상태라든가 해서, 우리 개복치 고양이가 지금 날 엄청 걱정하고 있는 게 아닐까?

‘누나가 금방 간다…! 조금만 기다려!’

하지만 이번에도 심한 근육통으로 거의 느릿느릿 기어가다시피 걸어야 했던 탓에, 지하실까지 향하는 속도가 좀처럼 나지 않았다.

“엠버, 이제 몸은 좀 괜찮아?”

“하루 만에 얼굴이 반쪽이 된 것 좀 봐. 메이드장님이 다 나을 때까지 쉬라고 했는데 왜 벌써 나왔어?”

젠장, 게다가 갑자기 날 아는 척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이래서 어떻게 지하실까지 몰래 들어가?

“으응, 난 괜찮으니까 다들 가서 볼일 봐.”

내가 손까지 휘저어 그만 가 보라는 의사를 전달했으나 다들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보다 이번에는 모로스가 두 마리나 한꺼번에 나와서 정말 깜짝 놀랐어.”

“엠버, 넌 갑자기 무슨 용기가 생겨서 7호실 도련님을 도와주려고 한 거야?”

“그렇게 안 봤는데 간이 크네. 하긴, 그러니까 마리네즈 님이 무서운 줄 모르고 어제도 체스휘 님 품에 덥석 안겼겠지.”

저기, 얘들아? 왜 나를 졸졸 따라오면서 쓸데없이 배경 사운드를 까니? 그냥 가서 너희들 할 일이나 하라니까?

“오죽하면 양육자님들도 담당하는 도련님이 위험한 게 아니면 모로스 앞에 나서는 걸 꺼리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내 생각에는 다들 농땡이를 부릴 생각으로 나를 따라오며 수다를 떠는 것 같았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본의 아니게 어제 일에 대한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물론 2호실 양육자님은 예외이긴 한데….”

“맞아. 어제도 모로스가 복도에서 7호실 도련님을 공격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가려고 했는데, 같이 있던 마리네즈 님이 말렸다지?”

양육자들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맡은 아이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애초에 다른 호실의 아이들에게는 책임감을 느낄 필요도 없었고 말이다. 그래서 다른 페어가 위험한 건 대부분 그냥 무시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예전에 모로스를 상대하는 올리비아를 도와줄 때, 레이븐도 뭐 하러 쓸데없는 짓을 하냐는 듯이 말했었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어제도 다이안을 도와주려고 했던 게 체스휘밖에 없었다니…. 이것 참 인심이 각박한 사회구먼.

“그보다 그 7호실 도련님도 참 문제야. 양육자도 없으면서 왜 방 밖으로 나와서는.”

그러다 문득 어느 고용인이 입 밖으로 꺼낸 질책 어린 음성에 나는 얼굴을 왕창 구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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