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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72)화 (72/300)

심지어 체스휘의 양육 대상인 미뉴엘의 호감도도 두꺼운 0의 장벽을 뚫지 못했다.

물론, 그래도 체스휘가 다른 사람들에게 품은 호감도는 보통 –500에서 -600대인 와중에 미뉴엘은 –100 안쪽이었으니 이 또한 비교하자면 굉장히 높은 숫자이기는 했다.

‘하, -100이 높은 숫자라니…. 다른 캐릭터 같으면 아무리 원수를 진 사이여도 마이너스까지는 가지도 않는데.’

당연히 나는 체스휘를 볼 때마다 매일같이 목격되는 마이너스 호감도의 향연에 엄청나게 당황스러웠다.

아무래도 체스휘의 호감도는 다른 사람들처럼 기본 30부터 시작하지 않는 것 같았다. 만약 기본 30부터 시작하는데 저렇게 바닥 밑으로까지 뚫고 내려갔다고 하면, 그것도 참 쇼킹한 거였다.

아무튼, 내가 봤을 때 저런 호감도 상태는 어지간한 인류애 상실을 맛본 게 아니고서야 불가능할 것 같았다.

나는 오만 가지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체스휘의 얼굴을 힐끔 쳐다봤다.

“정말 화난 거 없어요?”

내 오묘한 시선을 느낀 체스휘가 고개를 옆으로 살그머니 기울였다.

“그런데 왜 얼마 전부터 자꾸 나만 보면 피하는 것 같지….”

여운을 남기며 말꼬리를 흐리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나는 얼른 입을 열었다.

“진짜 그런 거 아니에요. 체스휘 씨가 왜 그런 착각을 하셨는지 모르겠네.”

일단은 천연덕스럽게 체스휘의 의심을 부정했다.

그러자 그의 눈이 살짝 가느스름해졌다. 내 얼굴을 관찰하듯이 살피는 시선이 왠지 조금 전보다 한결 집요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7호실, 여기 있었네? 잠깐 나 좀 봐.”

그때 반갑게도 올리비아가 나타났다.

“아이구, 올리비아 씨가 부르네요. 급한 일 같은데 전 이만 가 볼게요.”

나는 얼른 체스휘의 손을 뿌리치고 돌아섰다. 이번에는 체스휘도 나를 붙잡지 않고 그냥 놔줬다.

등 뒤로 지긋한 시선이 와 닿는 것 같았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올리비아에게 걸어갔다.

[‘체스휘’의 ‘올리비아’를 향한 호감도가 변경되었습니다.]

[호감도 -644]

어억, 그런데 올리비아를 향한 체스휘의 호감도가 뚝뚝 떨어진 것을 알리는 상태 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깜짝 놀라서 뒤돌아보자 체스휘가 사슴 같은 눈망울을 깜빡이며 나를 향해 사르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무래도 체스휘는 내가 그를 돌아봐서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체스휘’의 ‘린’을 향한 호감도가 변경되었습니다.]

[호감도 3]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 호감도가 올리비아와 함께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동안 관찰한 결과 체스휘의 호감도는 변동이 꽤 잦았다. 하지만 호감도가 떨어지는 일이 대부분이었고, 호감도가 오르는 일은 몹시 드물었다.

그래도 지난 일주일 동안 내 호감도가 떨어지는 걸 목격하지는 못해서 그건 다행이다 싶었는데…. 저 한 자릿수 호감도가 다행이라고 여겨지다니, 이건 뭐 웃어야 해, 울어야 해?

나는 체스휘에게 약간 어색한 미소를 지어 준 뒤 올리비아를 데리고 얼른 자리를 옮겼다.

“올리비아 씨, 무슨 일이에요?”

“아, 별건 아니고. 나랑 세르쥬 새 옷을 좀 사려고 오늘 사람을 불렀는데 혹시 7호실도 같이 보고 싶은 마음이 있나 싶어서.”

올리비아는 내가 걸음을 서두르자 살짝 의아한 듯했지만, 그래도 순순히 나를 따라오며 말했다.

“좋죠! 같이 갑시다.”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녀의 청은 진심으로 반가웠다. 꼭 올리비아를 핑곗거리로 삼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나도 우리 다이안과 커플 코스튬 플레이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올리비아도 내가 더 따지지 않고 지금 바로 방으로 가자고 하자 반색했다.

“역시 7호실은 시원하다니까! 그동안 여기 있는 여자 양육자들 중에 마음이 맞는 사람이 없었는데, 보면 볼수록 자기랑은 말이 좀 잘 통하는 것 같아.”

그런데 자기…? 갑자기 이 거리낌 없는 호칭은 뭐지….

바로 그때, 호감도 변경을 알리는 신호가 울렸다.

[‘올리비아’의 ‘린’을 향한 호감도가 변경되었습니다.]

[호감도 75]

올리비아의 호감도가 갑자기 상승했다.

심지어 올리비아는 나한테 친한 척 팔짱을 끼기까지 했다. 나는 난데없이 0으로 수렴한 거리감에 움찔거렸으나 올리비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실 체스휘만큼은 아니지만, 올리비아의 호감도도 나름대로 의외성이 있었다. 일단 생각보다 날 향한 호감도 수치가 높았다.

“그런데 자기, 2호실이랑 화해했어?”

“화해라니, 싸운 적도 없는데요.”

“아닌데, 요즘 둘이 분위기가 좀 묘했는데.”

올리비아가 흐응, 하고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내 귀에 속닥거렸다.

“나한테만 솔직히 말해 봐. 2호실 양육자랑 뭐 있는 거 맞지?”

“있긴 뭐가 있어요.”

“새침 떨긴. 귀신은 속여도 내 눈은 못 속여. 4호실도 자기한테 관심 있는 것 같던데 인기 많네, 우리 7호실?”

마침 옆을 지나가던 귀신,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이 올리비아의 말에 이쪽을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괜히 뜨끔해서 걸음을 재촉했다. 잠시 후 뒤를 돌아보니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은 복도의 모퉁이를 막 돌아 사라지고 없었다.

저쪽은 체스휘가 있는 쪽인데….

그나저나, 저 유령은 아직도 별채로 돌아가지 않고 저택 여기저기를 떠돌고 있네. 가끔 내 눈앞에도 불쑥불쑥 출몰해서 깜짝 놀랄 때가 있었는데, 그나마 얼마 전처럼 나를 계속 졸졸 따라다니진 않아서 다행이었다.

‘물론 매일 빙의를 시도하는 건 하나도 다행스럽지 않지만!’

아무래도 지금 나를 그냥 스쳐 지나간 것도, 아직 빙의 시도가 가능한 쿨타임이 지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나는 내 옆에서 혼자 조잘거리고 있는 올리비아를 한번 올려다봤다.

역시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은 별채에 있을 때와 달리 지금은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듯했다. 어째서지? 원래 별채의 지박령이었는데 영역 밖으로 나와서 그런가?

“올리비아 님,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응접실에 도착하자 그 안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우리를 반겼다.

긴 연두색 머리카락을 가진 호리호리하고 곱상한 남자 한 명, 조수로 보이는 여자와 남자 각 한 사람, 이렇게 총 세 명이었다.

연두색 머리 남자가 나를 보고 눈을 빛냈다.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지난달에 새로 온 7호실 양육자야.”

“아! 그 유명한 7호실의 신입 양육자님! 처음 뵙겠습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연두색 머리 남자가 환해진 얼굴로 내게 굽실거리며 인사했다.

“전 라벨입니다.”

“린이에요.”

나와 짧은 인사를 마친 뒤 라벨은 자신의 조수들을 올리비아와 내게 인사시켰다.

“그리고 이쪽은 새로운 조수인 마벨과 샤벨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게임적 허용인가? 이름이 죄다 벨벨벨이네. 뭐, 옷 가게 주인과 조수들이면 모브 캐릭터이니 이름에 성의가 없는 것도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그래그래, 인사는 그쯤 하고 빨리 가져온 것부터 펼쳐 봐.”

올리비아는 성미가 급했다. 그녀가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재촉하자 라벨과 다른 조수들도 두말하지 않고 들고 온 상자 안의 물건을 서둘러 꺼내 세팅했다.

“앗! 이거 뭐야, 너무 귀여운데?”

“역시 올리비아 님이 보시는 눈이 있습니다. 이 디자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32세계에서만 서식하는 레서판다라는 동물을 모티브로 해서 만든 의상으로….”

“이것도 예쁘네요! 우리 애한테 너무 잘 어울릴 것 같은데!”

“과연 양육자님들의 안목이 전부 높으시군요! 린 님이 보신 이 의상은 날개 모양의 칼라가 포인트로, 이 바지와 양말 그리고 모자까지 세트로 구입하시면 더욱 완성도가 높아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이 옷은 어른용도 준비되어 있어서, 양육자님들은 이쪽의 나비 날개 모양의 케이프가 달린 드레스를 같이 입으시면 더 좋을 겁니다!”

올리비아와 나는 쇼핑 삼매경에 빠졌다.

시스템 로딩이 가속화되면서 이제 곧 아이템 창도 열릴 것 같았다. 그럼 나도 내가 개인적으로 충전해 둔 캐시를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우리 고양이에게 입힐 꼬까옷도 얼마든지 새로 장만할 수 있다는 말씀! 우선 오늘은 레드포드 저택에서 지급받아 모아 둔 돈부터 써야지.

“올리비아, 나 왔어….”

그때 응접실에 세르쥬가 들어왔다. 오늘도 그는 귀여운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동태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쥬쥬! 어서 이리 와, 우리 설탕 과자 같은 귀염둥이! 내가 쥬쥬를 위해서 준비한 선물을 좀 봐!”

올리비아는 세르쥬를 후다닥 데리고 와서 이것저것 옷을 입혀 보기 시작했다.

이런 걸 보면 다이안을 대하는 내 모습을 보고 유난이라 할 것도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나는 올리비아를 이해할 수 있었다! 기침과 귀여움은 못 참는 법이지! 그럼, 그럼!

“우리 쥬쥬 어때?”

“완전 귀여워요! 레서판다의 정령 같아요!”

“그렇지?”

나는 세르쥬를 향해 격렬한 리액션을 보여 줬고, 올리비아는 몹시 만족했다. 세르쥬는 딱히 거기에 호응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거부하지 않고 올리비아가 마음대로 하게 놔두었다.

하지만 잠시 후 한숨을 폭 내쉬며 올리비아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는 그의 눈빛에는 희미한 귀찮음이 담겨 있었다.

[‘세르쥬’의 ‘올리비아’를 향한 호감도가 변경되었습니다.]

[호감도 78]

[‘세르쥬’의 ‘린’을 향한 호감도가 변경되었습니다.]

[호감도 32]

아이구! 세르쥬의 호감도가 떨어졌다. 지난 일주일 동안 내가 본 세르쥬도 저택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호감도가 짠 편이었다.

나는 올리비아와 함께 폭주했던 것에 반성하며 슬그머니 들고 있던 옷을 내려놨다.

“올리비아 씨,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 슬슬 정리할까요?”

“벌써? 난 좀 더 보고 싶은데.”

“시간이 꽤 지났어요. 세르쥬도 힘들 것 같고요.”

올리비아는 아직 성에 차지 않은 듯했지만, 그래도 내 말을 따라 자리를 정리하기로 했다.

[‘세르쥬’의 ‘린’을 향한 호감도가 변경되었습니다.]

[호감도 33]

큽, 호감도 원상 복귀 고맙구나. 앞으로는 누나들이 자중할게.

이제 마지막으로 구입할 옷을 최종 결정하기로 하고, 올리비아는 라벨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조수인 샤벨이 세르쥬의 옷을 갈아입히는 걸 돕기 위해 그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샤벨의 소매에서 날카로운 송곳 같은 게 튀어나와 세르쥬를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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