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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65)화 (65/300)

콘라드도 어젯밤에 잠을 잘 자지 못했는지, 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오늘따라 유독 예민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어제 시킨 일도 제대로 하지 않고 그냥 가 버린 데다 그 후로 정말 코빼기 한번 안 비추다니. 그렇게 직업의식이 없는 고용인을 써도 되는 건가요? 도대체 이 저택은 무슨 기준으로 고용인을 뽑는 겁니까?”

왜 날 찾나 했더니, 이제 보니 어제 내가 총괄 집사를 치워 주지 않고 그의 방에 그냥 놔두고 간 일로 불만이 남은 것이었다.

나는 좀 어이가 없었다.

저 돌팔이 양반 뒤끝 좀 보게. 게다가 지금 누가 누구에게 직업의식이 없다고? 그게 댁이 할 소리요?

“아이쿠,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제가 임시 메이드장님께 말씀드려서 꼭 시정하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제가 직접 말할 겁니다! 그 메이드가 지금 어디 있는지나 말해요.”

콘라드는 단호했다. 그의 앞에 선 고용인은 어째서인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머뭇거렸다. 그러나 계속된 독촉에 결국 고용인은 콘라드가 설명한 것 같은 인상착의를 가진 사람을 저택에서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예? 그렇게 생긴 메이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요?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저 말고도 아는 사람이 없는 걸 보니 아마 신입인 것 같습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고용인이 이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숙연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런데 더 찾으셔도 소용없을 것 같습니다. 실은 어젯밤에 고용인이 반 정도 줄어서…. 알고 보니 모로스였던 고용인도 있고, 모로스에게 공격당해서 죽은 사람도 좀 있거든요.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고용인은 오늘 새벽에 생존자를 확인하는 자리에도 없었습니다. 그걸 보면, 아마 어젯밤 일에 휘말린 게 아닐지….”

그 말을 들은 순간 콘라드가 이맛살을 와락 찌푸렸다.

“죽었다고요? 그 메이드가?”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렇게 죽을 사람 같지는 않았는데….”

“아이고, 이 세상에 죽을 만해서 죽는 사람이 뭐 몇이나 됩니까? 게다가 원래 이 저택이 올 때는 순서 있어도, 갈 때는 순서 없기로 유명한 거 아시잖습니까?”

그건 맞다고 생각했는지, 콘라드는 다른 말을 더 얹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미심쩍은 듯하기도 했고, 조금은 싱숭생숭해 보이기도 했다.

“혹시 날개뼈 정도 밑으로 내려오는 검은 머리카락과 눈꼬리가 올라간 갸름한 연한 갈색 눈을 가진 메이드 못 봤….”

그런데 콘라드는 내 생각보다 집요했다. 그는 조금 전에 들은 말에도 포기하지 않고, 또 다른 사람에게 나에 대해 물었다.

“어제 저 의사 선생님도 만났나 봐요, 린 씨.”

배웅이라도 나온 건지, 문 앞까지 나를 따라온 체스휘가 팔짱을 끼고 문가에 기대선 채 속닥거렸다. 나는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고 대충 둘러댄 뒤 자리를 떠났다.

“아, 2호실 양육자님. 마침 잘 만났네요. 혹시 날개뼈 밑으로 내려오는 검은 머리카락….”

“못 봤는데요.”

그 후로 콘라드가 체스휘에게도 내 행방을 묻는 소리가 들렸으나, 체스휘는 여느 때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의 물음을 칼같이 잘라냈다.

‘그런데… 이 언니는 또 따라오네.’

나는 어느새 나타나서 또 내 뒤를 그림자처럼 쫓기 시작한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을 힐끔 뒤돌아봤다.

혹시 또 날 방해하려는 건가 싶어서 영 탐탁지 않은 마음이 들었다.

“저기요, 언니 진짜 이전 1호실 양육자 맞아요?”

[…….]

“그럼 나 대신 1호실 마리엔 언니한테 한번 가 보는 게 어때요?”

[…….]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은 내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1호실 양육자의 이름이 내 입에서 나왔을 때 고개를 살짝 돌리는, 작은 반응을 보이긴 했다.

결국 나는 그냥 그녀를 없는 사람 취급하기로 하고 본관으로 이동했다. 물론 어제 본 영혼에게 위치 추적기가 달린 건 아니지만, 자세히 보면 어젯밤에 내가 덫을 설치할 때 사용한 총탄 속의 특수 물질이 바닥과 벽면 곳곳에 흔적을 남긴 상태였다.

새로운 성수가 도착해서 움직임이 자유로워지기 전까지는 지금 저택 사람들이 모여서 생활하는 숙소 건물 외에 다른 곳은 청소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그 흔적을 쫓아가다 보니 어제의 지하실이 나왔다.

‘여기에 숨어 있다고?’

나는 의구심이 들어 인상을 찌푸렸다.

어제 이곳에서 사라진 시체들도 그렇고, 초상화의 영혼이 숨어들어 온 곳도 이 지하실이라니 뭔가 찝찝하면서 더 수상한 느낌이 들었다.

총괄 집사가 가지고 있던 열쇠는 아직 그에게 돌려주지 않아 나한테 있었다. 하지만 그사이에 문에는 쇠사슬까지 칭칭 감겨서 자물쇠가 걸려 있는 상태였다.

‘그래도 이 정도쯤이야.’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단 말이 있다. 그러니 게임을 43회차나 해 봤다면 문 따기 정도는 간단히 할 수 있는 게 인지상정.

나는 옷핀 하나로 쉽게 자물쇠를 열고 지하실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실에서는 어제보다 더한 한기가 느껴졌다. 언제 초상화의 영혼이 나타날지 몰랐기 때문에 아예 총을 빼 들고 안쪽을 살폈다.

아무래도 녀석을 이대로 방치하면 위험할 듯해, 약해져 있을 때 아예 해치워 버리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지하실 안에도 곳곳에 흔적이 남은 걸 보니, 초상화의 영혼은 분명 이곳에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몇 번을 둘러봐도 녀석의 본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 의혹이 짙어졌다.

내가 의혹을 느낀 부분은 한 가지 더 있었다.

‘원래 어제도 지하실에 이런 게 있었던가?’

나는 벽 한 면을 차지한 거대한 문 앞에 서서 설핏 미간을 찌푸렸다.

어제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이 검은색 문에는 레드포드 저택의 다른 문들과 마찬가지로 두 개의 수레바퀴와 날개를 펼친 독수리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다만 이 문에는 문고리가 없었고, 아무리 봐도 지하실에 있기에는 지나치게 웅장했다.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봤지만 여전히 내가 쫓는 영혼은 눈에 띄지 않았다. 얼마 전 같으면 마냥 신이 나서 ‘뉴 맵! 뉴 퀘스트!’를 외치며 새로운 콘텐츠의 등장에 흥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예기치 못한 위기를 좀 겪은 탓에 나도 나름대로는 예전과 다른 경각심을 살짝 품게 되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잠깐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였다.

우웅!

그런데 내 손가락 끝이 간만 보듯이 검은 문에 톡 하고 닿는 순간, 갑자기 공기가 크게 울렁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문에서 보라색 빛이 팟 하고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곧바로 문에서 손을 뗐다. 그러자 서서히 빛이 사그라지며 기묘한 느낌도 금방 사라졌다.

“방금 뭐였지?”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눈앞에 있는 문을 다시 쳐다봤다.

그런 뒤 다시 주변을 살폈을 때, 이번에는 더욱 놀라서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지하실이 아니었다.

나는 따스한 햇빛이 가득히 쏟아져 들어오는 방 안의 정경을 황당하게 둘러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내 앞에는 검은 문이 우뚝 서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없던 문고리가 생겨 있었다.

그것을 벌컥 열고 밖으로 나가자, 마찬가지로 밝은 햇볕으로 물든 복도가 나타났다.

“손님이 오시기 전에 빨리빨리 움직여!”

“거기, 뭐 하는 거야! 먼지가 그대로 있잖아. 좀 더 깨끗이 청소하지 못해?”

고용인들이 활기차게 움직이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내 주변에 감돌던 묘한 공기는 어느새 안개가 걷힌 듯이 말끔히 사라진 상태였다.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복도에는 화병이 곳곳에 장식되어 있었고, 답답하던 공기도 지금은 아주 깨끗했다. 또한 흐리던 하늘이 어느새 맑게 개어 있었다.

며칠 동안 계속 고립된 데다 어젯밤에는 모로스까지 단체로 나타나 우중충하던 사람들의 얼굴이 지금은 아무런 시름도 없는 것처럼 밝기만 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 나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혹시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성수가 와서 문제가 해결됐나? 그런데 분명 지하실에 있던 내가 왜 여기로 옮겨진 거지?

“아, 체스휘 씨!”

그러다 마침 체스휘를 발견했다. 나는 그에게 서둘러 다가갔다.

“갑자기 사람들 분위기가 왜 이렇게 밝아졌어요? 혹시 제가 없는 동안에 별다른 일은 없었….”

그런데 가까이에서 본 그의 얼굴이 어쩐지 묘하게 낯설어서 나도 모르게 말을 멈추었다.

체스휘 또한 나를 낯선 사람 보듯이 내려다보았다.

“음…. 뭘 물어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글쎄요. 특별한 일은 없었는데.”

살짝 헝클어진 머리카락, 안경알 밑으로 보이는 보라색 눈, 그리고 얼굴에 박힌 이목구비는 그대로인데, 묘하게 체스휘의 인상이 평소와 달라 보였다.

내가 자신의 얼굴을 여기저기 뜯어보자 체스휘는 살짝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어딘가 곤란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오늘 저택에 방문하기로 한 손님과 관련한 물음이라면,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요. 혹시 이것 말고 궁금했던 부분이 달리 있을까요?”

맥락을 알아들을 수 없는 뜬금없는 소리였으나, 내가 이상함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엠버! 어머, 얘가 미쳤나 봐!”

그때 갑자기 나타난 메이드가 체스휘의 팔을 붙잡은 내 손을 황급히 떼어 냈다.

“죄송합니다, 체스휘 님. 얘가 어제 들어온 신입 메이드라 뭘 잘 몰라요. 아마 양육자님을 가까이에서 본 게 처음이라 감격해서 잠깐 이성을 잃은 것 같아요.”

“괜찮아요. 손님 맞을 준비로 바쁠 텐데 그만 가 봐요.”

체스휘가 우리를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메이드가 나를 잡아끄는 대로 따라갔다.

“너 진짜 간도 크다. 어제 막 저택에 들어온 햇병아리가 이렇게 바로 양육자님한테 들이대? 너 혹시 양육자님 꼬셔서 팔자 피려고 여기 들어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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