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안의 눈이 살피듯이 내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러다가 이내 그가 입술을 작게 달싹여 숨죽인 음성을 그 사이로 흘려보냈다.
“린…?”
그래, 애기야! 누나야…!
“우리 다이안 도련님, 나 보고 싶었죠!”
나는 다이안의 통통한 뺨이 납작해지도록 그를 꽉 끌어안고 둥기둥기 얼렀다. 다이안의 옆을 떠나 있었던 건 고작 하루인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다이안의 상태 창을 틈틈이 확인해 그가 무사하다는 걸 알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내 두 눈으로 확인하는 건 또 달랐다.
“지, 진짜 린이야?”
“네, 진짜 린이에요!”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다이안이 갑자기 나를 확 밀쳤다. 그러더니 그는 내 얼굴을 양손으로 떡 하니 붙잡고 황급히 요리조리 돌려서 샅샅이 뜯어보기 시작했다.
“진짜… 진짜네?! 어, 어떻게….”
얼마간의 확인 작업 끝에 마침내 내가 진짜라는 걸 믿을 수 있게 되었는지, 다이안이 울컥하는 감정을 못 이긴 듯이 몸을 파르르 떨었다.
“왜… 왜 이제 왔어…!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데….”
아이구, 짧은 시간이지만 다이안의 마음고생이 심했나 보다. 그래, 스트레스 지수를 보고 그럴 줄 알긴 했지. 울먹울먹하는 우리 개복치 고양이를 보니 나도 마음이 찡해졌다.
“나도 보고 싶었어요!”
“린…!”
“다이안…!”
우리는 다시 서로를 부둥켜안고 이 감격스러운 마음을 나누었다.
“아니, 뭐 얼마나 떨어져 있었다고 그렇게 유난이야?”
그러다 떨떠름한 목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려 보니, 어느새 방 안에 옹기종기 모인 양육자들과 아이들이 극적인 상봉을 한 우리를 오묘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반응 따위에 나는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았다.
“보기 좋은데요, 뭐. 미뉴엘, 원하면 나도 안아 줄까요?”
“뭐?! 싫어, 저리 가…!”
역시 체스휘만이 내 편을 들어 주었다. 물론 미뉴엘은 질색했지만.
결국 그날은 양육자들이 교대로 아이들의 방을 지키며 밤을 새우기로 했다. 언제 또 검은 공기에 영향을 받은 모로스가 공격해 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귀여운 해바라기 무늬 잠옷을 입은 올리비아가 내 팔을 붙잡고 귀에 속닥거렸다.
“7호실. 그래도 그쪽한테는 나쁜 감정이 없어서 말해 주는 건데, 1호실 조심해.”
난데없는 소리에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올리비아의 의미심장한 눈이 마리엔에게 향했다.
“오늘 느닷없는 모로스 사태로 중간에 일어나서 알게 된 건데, 양육자들이 다들 밖으로 급히 뛰쳐나갔을 때 1호실만 자리에 없었어. 꽤 늦게 돌아온 걸 보면 화장실을 다녀온 것도 아닌 것 같고. 한밤중에 혼자 뭘 하고 돌아다니던 건지 수상하지 않아?”
마리엔을 작게 턱짓한 올리비아가 내 어깨를 툭툭 치면서 덧붙였다.
“뭐, 나한테 독을 먹이려고 한 놈이나, 성수를 망가뜨린 범인도 아직 잡히지 않았으니까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는 소리야.”
아까 모로스가 나왔을 때 침실에 없던 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하지만 체스휘가 먼저 모로스를 유인하러 갔다고 잘 둘러대 줘서 나는 의심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내 생각에 마리엔은 딱히 우리에게 위험한 짓을 하려고 침실을 빠져나간 건 아닐 것 같았다.
사실 나는 마리엔이 밤에 어디를 다녀온 건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일전에 별채에서 어른거리던 불빛의 주인이 마리엔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 예상이 맞다면 그 이유는 아마도… 내가 예전에 말했던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닐까? 자신의 여동생이 맞는지 확인해 보려고.
‘그 유령, 조금 전까지 제 뒤에 있었어요….’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은 그래도 방까지 따라 들어오지는 않았다. 나는 살짝 복잡한 기분으로 마리엔을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아무튼 모두가 모로스를 신경 쓸 때, 나는 사라진 초상화의 영혼을 경계했다. 기껏 내 모습을 되찾았는데 방심하고 있다가 다시 빼앗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날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불청객은 오지 않았고, 우리는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
“흐, 흐윽…. 아파….”
상처받은 영혼은 다친 몸을 질질 끌면서 어둠 속으로 깊숙이 숨어들었다.
린 도체스터, 그 지독한 여자는 저택 곳곳에 길 잃은 영혼을 고통스럽게 만들 덫을 많이도 만들어 놨다. 그녀의 뒤를 따라다니던 검은 베일을 쓴 여자 유령이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도망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살아 있는 양육자의 몸을 차지한 그 사악한 영혼에게 방해를 받을까 괜히 마음이 초조해져서 성급하게 움직인 게 패착이었다.
하지만 아직 기회는 있었다. 그러니 서둘러 상태를 회복할 필요가 있었다.
린 도체스터의 몸을 빼앗아, 자신을 이 저택에 보내고 또 자신을 죽인 사람들에게 복수해야 했다.
상처받은 영혼은 어둠 속에서 망설이다가, 이내 다친 몸을 이끌고 레드포드 저택의 주인이 있는 지하로 향했다.
***
제한 시간: 30:33:59
다음 날 아침, 방 밖으로 나간 나는 믿을 수 없는 무언가를 목격하고 놀라서 멈칫했다.
복도에서는 어젯밤 모로스 때문에 더럽혀진 복도를 청소하는 고용인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그중 누군가의 얼굴을 목격하고 경악했다.
처음에는 내 눈을 의심했으나, 아무리 보고 또 봐도 눈에 익은 얼굴인 게 확실했다.
하지만 말이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분명 저 고용인은 어제 총괄 집사의 열쇠를 빼앗아 들어간 지하실에서 내가 직접 얼굴을 확인했던 죽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쌍둥이예요?”
“예?”
복도를 지나가던 나한테서 불시에 질문을 받은 고용인이 어리둥절하게 두 눈을 깜빡였다.
“아, 아닙니다. 전 외동인데요….”
이어진 그의 대답을 듣고 나는 더 영문을 알 수가 없어졌다.
뭐야, 쌍둥이도 아닌데 이렇게 똑같이 생겼다고? 도플갱어야 뭐야?
물론 게임의 모브 캐릭터들의 생김새가 비슷한 경우는 있었지만, 이 게임에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듀크(26)>
- 제11세계 소속 견습 집사
- 성격: 우유부단함, 산만함, 겁이 많음
- 호감도: ?/?(비활성화)(시스템 로딩 70% 이상부터 열람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