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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63)화 (63/300)

복도 어딘가에 창문이라도 열렸나? 왠지 주변에 싸늘한 한기가 밀려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시 위로 올라온 체스휘의 시선이 살짝 나를 비껴 나갔다. 그 순간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이 스르륵 뒤로 물러났다.

그 반응에 나는 의구심이 들었다. 혹시 지금 둘이 눈 마주친 건가?

하지만 뒤이어 내게 더 가까이 걸어오며 말하는 체스휘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장난스럽기만 했다.

“아프겠네요. 또 울진 않았어요?”

“안 울었거든요?”

나도 모르게 살짝 발끈해서 눈을 날카롭게 치켜떴다.

와, 이 사람은 내가 뭐, 맨날 엄살떨면서 징징대는 사람인 줄 아나 봐.

“잘했어요. 다른 사람 앞에서는 울지 마요.”

체스휘가 내 앞으로 다가와서 작게 소곤거리며 손을 잡았다.

역시 체스휘는 가짜와 달리 내 손을 피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확인하자 새삼스럽게 안심이 됐는데, 그런 기분을 느끼자마자 나는 스스로에게 의아함을 느끼고 눈살을 찌푸렸다.

체스휘는 내 손을 들어 상처 부위를 가까이에서 자세히 살폈다. 그의 눈매도 나처럼 슬쩍 찌푸려져 있었다.

“깊게도 긁혔네요. 그래도 흉터는 남지 않을 것 같아요.”

체스휘가 주머니를 뒤적여 손수건을 꺼냈다. 그리고 그걸로 내 손등을 싸매기 시작했다.

“저도 손수건 있어요. 제 거 쓰면 되는데요.”

“이미 꺼냈으니까요.”

나는 체스휘의 손이 능숙하게 움직이는 걸 지켜봤다.

저택에 와서 체스휘에 대해 알게 된 몇 가지 사실 중 하나.

체스휘는 병간호를 못 한다. 하지만 부상을 치료하는 데는 익숙하다.

“그나저나 안경이 또 망가졌네요. 새로 주문하는 것도 귀찮은데….”

내 손에 손수건을 다 묶은 체스휘가 모로스를 상대할 때 깨진 듯한 안경을 벗었다. 자세히 보니 그의 안경과 얼굴에 검은 액체가 조금 튀어 있었다. 더러워진 안경알을 상의에 대충 문질러 닦는 체스휘의 얼굴이 한탄하듯이 살짝 시무룩한 표정을 띠었다.

‘앗…!’

나는 그런 체스휘에게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이 바짝 다가가는 걸 보고 입술을 달싹였다.

더군다나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은 체스휘의 바로 코앞까지 다가가서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검은 베일에 가려져 여인의 얼굴은 윤곽만 드러나 있었지만, 그녀의 맹렬한 시선만큼은 나한테까지 뚜렷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체스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이, 여전히 살짝 찌푸린 얼굴로 안경을 뽀득뽀득 닦고만 있었다.

나는 식은땀이 삐질삐질 나오는 걸 느끼며 체스휘의 팔을 잡아 내 쪽으로 살짝 돌려세웠다.

“체스휘 씨, 제 손수건 줄게요. 이거 써요.”

“아니에요. 어차피 너무 망가져서 못 쓰겠네요, 이거.”

체스휘는 다리까지 달랑거리는 안경을 닦다가 후드득 떨어지는 깨진 유리 조각에 결국 포기한 것 같았다.

“그럼 이걸로 얼굴이라도 닦아요.”

“아, 얼굴. 많이 지저분한가요?”

체스휘가 그 생각은 못 했다는 듯이 내게서 손수건을 받아 들었다. 그런데 계속 쓸데없는 곳만 문지르는 것 같은데?

결국 보다 못한 내가 검은 피가 묻은 곳을 알려 줬다.

“거기 말고 턱이랑 뺨 쪽이요.”

“여기요?”

“더 옆에.”

“이쪽?”

“아니요. 거기서 좀 더 밑에.”

“거울이 없으니 불편하네요.”

잠시 후 한숨을 폭 내쉰 체스휘가 내 손에 손수건을 쥐여 주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나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체스휘에게서 손수건을 받아 그의 얼굴을 문질렀다.

“아휴, 그러니까 여기 말이에요.”

아, 답답해. 체스휘가 눈앞에서 계속 헛손질만 하는 걸 보니까, 왠지 내가 간지러운 곳을 못 긁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드디어 조금씩 깨끗해지는 체스휘의 얼굴을 보자 속이 시원해졌다.

그렇게 열중해서 체스휘의 뺨을 문지르던 순간, 문득 눈이 마주쳤다.

평소에는 늘 유리 막을 한 겹 사이에 두고 마주쳤던 눈이었는데, 지금은 시선을 가로막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 그의 눈은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주했을 때 특히 더 예쁜 보석처럼 느껴지는 보라색이었다.

체스휘의 얼굴을 이렇게 안경 없이 바로 코앞에서 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시선을 옭아매듯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체스휘가 다음 순간, 그 눈에 미소를 머금었다.

“고마워요. 덕분에 깨끗해진 것 같네요.”

그런데 가까이에서 본 그의 웃는 얼굴이 생각보다 더 예뻤다.

난 밝은 달밤에 인간으로 변신한 구미호와 마주친 선비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잠깐 굳어졌다.

왠지 모르게 팽팽해진 공기를 순식간에 와장창 깨트린 건, 그 순간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창이었다.

[레드포드 저택의 ‘방랑하는 영혼’이 린 도체스터에게 빙의를 시도합니다.]

[실패(3/5)]

[레드포드 저택의 ‘방랑하는 영혼’이 린 도체스터에게 빙의를 시도합니다.]

[실패(4/5)]

[레드포드 저택의 ‘방랑하는 영혼’이 린 도체스터에게 빙의를 시도합니다.]

[실패(5/5)]

[‘방랑하는 영혼’의 빙의 시도를 5회 방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24시간 동안 영혼들의 침입이 불가능한 육신이 됩니다.]

…아, 진짜!

이 언니, 오늘 왜 이래? 아니, 사람이 이렇게 멀쩡히 두 눈을 뜨고 있는데 이렇게 뻔뻔하게 빙의 시도를 하다니, 이건 좀 도의적으로 할 짓이 아니지 않아요?

게다가 왠지 게임 장르가 계속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다. 그래도 방금까지는 오랜만에 좀 연애 시뮬레이션 같은 분위기였는데, 이렇게 되면 또 갑자기 호러가 되는 거잖아.

혹시 내가 자기 전 애인이랑 같이 있다고 이러는 건가? 하지만 언니는 이미 죽었잖아요….

아무튼 체스휘의 전 여자 친구로 추정되는 유령이 두 눈을 버젓이 뜨고 있는 곳에서 이런 분위기를 형성하는 건 적절하지 못한 것 같았다.

“큼, 그만 돌아가죠. 다른 양육자들도 다 깨어 있다니 오래 자리를 비우기 좀 그렇네요.”

그래서 체스휘에게 손수건을 떠넘긴 뒤 그와 거리를 벌렸다.

어차피 여유를 즐길 시간은 없었다. 체스휘의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확인해 보니, 어두운 복도에서 나타난 건 잠옷을 입은 모로스였다.

“또 나왔네요. 정말 끈질기기도 하지.”

체스휘가 지겹다는 듯이 한숨을 폭 내뱉었다.

아무래도 검은 공기가 짙어져서 모로스의 움직임이 활발해진 것 같았다. 아니면 혹시 그 초상화 놈이 수작을 부린 건가?

나는 주머니에서 총을 꺼냈다.

어차피 사람들도 다 깼다고 하니까 소리가 좀 커도 상관없겠지. 게다가 지금의 난 다시 린 도체스터의 외양으로 돌아왔으니 시선을 끌어도 상관없었다. 무엇보다도, 직접 내 손으로 살이 썰리고 뚫리는 감촉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총을 사용하는 게 제일 나았다.

탕!

총알에 이마가 꿰뚫린 모로스가 뒤로 넘어갔다.

체스휘와 나는 검은 꽃을 밟고 아이들과 양육자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이거 혹시 체스휘 씨가 처리한 거예요?”

복도는 어두웠지만 이미 눈이 어둠에 익숙해져서 주변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했다.

나는 바닥에 군데군데 깔린 검은 꽃과 그 위에 쌓인 재들을 보고 얼떨떨해졌다.

뭐야, 체스휘가 너무 멀쩡해 보여서 기껏해야 모로스가 한둘 정도 나온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내가 본 흔적만으로도 예닐곱 마리는 족히 넘겠는데?

“네, 무섭게 계속 쫓아오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만.”

안경을 벗은 체스휘의 눈은 유독 사슴 눈망울처럼 맑고 투명해 보였다. 체스휘가 나를 향해 그런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말했다.

“지금은 린 씨랑 같이 있어서 좋네요. 확실히 혼자보다는 둘이 좋아요. 그렇죠?”

그러면서 체스휘가 잡을 듯 말 듯, 감질나게 내 손을 건드리며 손가락 끝을 슬며시 얽어 왔다. 그러면서 예쁘게도 생긋 웃는데….

이러지 마세요…. 당신 전 여자 친구가 두 눈을 부릅뜬 채 아직도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다고요.

하지만 나도 작은 헛기침을 내뱉었을 뿐, 체스휘의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그러다 나는 문득 의문을 느꼈다.

확실히 이렇게 모로스가 많이 나온 걸 보면 체스휘가 놀랐을 만도 했다. 하지만 다친 곳 하나 없는 그의 모습을 보니 무서워할 정도로 위험했던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더군다나 지금 체스휘에게는 무기라 할 만한 게 보이지도 않는데 뭐로 이렇게 깔끔하게 처리한 걸까? 체스휘도 총을 쓰나?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모로스였던 시신들은 이미 검은 재로 변해 있어서, 내가 아무리 궁금해 봤자 어떻게 죽은 건지 알 수 없었다.

“7호실! 왜 이제 와?”

잠시 후 우리는 양육자들과 아이들의 방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체스휘의 말대로 양육자들은 전부 깨어나 복도에 나와 있었다. 양육자들뿐만이 아니라 고용인들도 전부 깨어났는지 숙소 건물에는 모두 불이 켜진 상태였다.

“아니, 도대체 모로스가 얼마나 많이 나온 거예요?”

나는 카펫처럼 복도 전체를 뒤덮은 검은색 꽃밭을 황망하게 내려다봤다. 이 정도면 저택에 있는 고용인이 오늘 하룻밤 사이에 반절은 줄었을 것 같은데. 저택에 숨어 있는 모로스가 이렇게 많았어?

“몰라, 오늘 이것들이 단체로 미쳤나 봐!”

올리비아는 자다가 일어나서 심기가 불편한 것 같았다. 양육자들은 모두 잠옷 차림으로 무기를 하나씩 손에 들고 있었는데, 특히 리본이 잔뜩 달린 올리비아의 귀여운 잠옷이 아주 눈에 띄었다.

“7호실이 먼저 모로스를 유인하러 갔었다며? 2호실이랑 같이 다 처리했어?”

“아아, 네. 전부 처리했어요. 애들은 방에 있어요?”

아무래도 체스휘가 둘러대 준 것 같아서 나도 말을 맞췄다.

그런 뒤 나는 마음이 급해서 서둘러 문을 열고 우리 개복치 고양이를 보러 들어갔다.

“다이안 도련님! 제가 왔어요!”

방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아이들이 나를 쳐다봤다. 먼저 방에 들어와 있던 1호실 양육자 마리엔과 6호실 양육자 길버트의 시선도 나를 향했다.

오직 다이안만 이불을 반쯤 뒤집어쓴 채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었다.

“다이안?”

그는 내가 이름을 부를 때마다 소파 위에서 몸을 움찔움찔했다. 고집스럽게 입술을 앙다물고 있는 얼굴이 창백했다.

나는 다이안이 이러는 이유를 깨닫고 그에게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얼굴을 들여다봤다.

“다이안 도련님, 저예요.”

내가 속삭인 순간, 다이안이 무언가를 느낀 듯이 번쩍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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