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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61)화 (61/300)

“더군다나 침실까지 따라 들어오겠다니, 원래는 이러지 않았잖아? 내가 다섯 살 먹은 애도 아니고.”

린은 투덜거리면서 자신의 손을 뿌리치는 다이안을 다시 붙잡지 않았다.

“혼자서도 잘 잘 수 있으니까 따라 들어오지 마!”

다이안은 혹시라도 린의 마음이 바뀔세라 서둘러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바로 목전에서 쾅 닫힌 문에 싸늘한 분홍색 눈이 날아가 박혔다.

“그럼 린 씨도 피곤할 텐데 그만 방으로 돌아가서 자요. 전 아직 산책이 덜 끝나서요.”

눈앞에서 먹잇감을 놓친 맹수처럼 날 선 눈빛이 체스휘에게 꽂혔으나,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이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으로 가짜 린을 향해 웃어 보였다.

기름이 거의 떨어졌는지 체스휘의 손에 들린 등불이 일순간 흔들리면서 복도에 크게 걸린 그림자도 일렁였다. 동시에, 체스휘의 입매에 어린 미소도 한순간 어딘가 기이하게 비틀리고 일그러져 보이는 착시를 일으켰다. 진한 불빛이 번진 보라색 눈이 언뜻 붉게 빛났다.

그 순간 가짜 린 도체스터가 훅 숨을 들이켰다.

“설마….”

그녀는 마주한 얼굴을 눈 한 번 깜빡이지 못한 채 얼마간 응시하다가, 이내 무언가를 깨닫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뒷걸음질 쳤다.

“너, 이제 보니 ‘깃든 자’로구나…!”

맑은 분홍색 눈동자에 경악의 감정이 떠올랐다.

“더군다나 이렇게 사악한 영혼이, 어떻게 이토록 감쪽같이…!”

충격 어린 목소리가 고요한 어둠이 내린 복도에 울렸다.

“이런 불결한 존재가 저택에 있다니, 말도 안…!”

그러나 그녀의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거대한 그림자가 검은 해일처럼 순식간에 눈앞으로 쏟아졌다.

금방 조금 전보다 한결 밀도 높은 침묵이 어둠 속에 깔렸다.

가짜 린 도체스터는 긴장감에 솜털이 곤두선 몸을 벽에 기댄 채, 홍채가 보일 정도로 훌쩍 가까워진 눈을 응시했다. 틀어막힌 입에서 얕은 숨소리만 색색 흘러나왔다.

희미한 불빛에 물든 체스휘의 머리칼이 기울어지는 고개를 따라 녹아 흐르는 황금처럼 흐트러졌다.

여전히 어슴푸레한 미소가 걸린 그의 입술이 작게 달싹이며 그 안에서 짐짓 어르는 듯한 나지막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쉿, 닥쳐요. 너무 시끄럽잖아.”

하지만 그 내용마저 부드럽지는 않았다.

“지금 문에 귀를 대고 서 있는 어린이가 들으면 귀찮아지거든.”

미소 짓고 있는 입술과 달리 가짜 린을 정면에서 꿰뚫을 듯이 직시하고 있는 그의 눈동자에서는 온기 한 점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초면인 사이에 악귀라도 본 듯이 대뜸 그따위로 지껄이면 내 마음이 상하지 않겠어요?”

바로 지척에서 고막을 진득하게 훑고 지나가는 낮은 속삭임에 린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가뜩이나 그 얼굴을 하고 있는 것도 거슬리는데….”

체스휘의 목소리가 한층 낮게 가라앉는 것과 동시에 가짜 린의 입을 막고 있는 손에 지그시 힘이 들어갔다. 한순간 이대로 얼굴을 짓뭉개 버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 손아귀에 들어간 힘은 강했고, 일렁이는 불빛이 번진 그의 눈동자도 꼭 그만큼 비정한 빛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잠시 후, 체스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손에서 서서히 힘을 뺐다.

“역시 그 얼굴은 안 된다니까요. 한 번은 봐주고 싶어지잖아.”

가짜 린 도체스터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곧바로 체스휘와 거리를 벌렸다. 체스휘는 그런 그녀를 굳이 붙잡지 않았다.

굳은 손이 조금 전 그에게 틀어 잡힌 곳이 멀쩡한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얼굴을 더듬거렸다.

“너… 어떻게 그런 육신을 얻었어?”

잠시 후, 그녀는 여전히 눈앞에 있는 남자의 존재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이 크기를 낮춘 음성으로 물었다.

“나는 레드포드의 주인에게 조건을 몇 개나 걸어서, 이 육신을 본뜰 기회도 겨우 얻었는데. 다른 영혼들을 제치고 우선권을 선점하는 것도 어려웠다고.”

탐욕스러운 눈빛이 깜빡이는 등불을 들고 선 남자를 집요하게 훑고 지나갔다.

음영이 진 체스휘의 얼굴에 다시 가느다란 미소가 그려졌다.

“그렇게 어렵게 얻은 기회인데, 차라리 네 나이에 맞는 어린 육신을 고르지 그랬어요? 물론 영혼의 나이는 이미 낡을 대로 낡았지만, 그래도 새 육신은 죽을 때의 나이와 비슷한 게 적응하기 쉬울 텐데.”

“어차피 나처럼 금방 죽을 아이들인데 뭐 하러?”

싸늘한 그녀의 음성이 어둠 속에 스몄다.

“지금 이 몸처럼 강하고 젊은 육신이 좋아. 특히나 양육자는 가장 최적의 육신이지. 너도 그래서 그 몸에 깃든 것 아니야?”

“지금 네가 뭐라고 떠들든 다른 건 다 상관없는데, 그 몸을 흉내 내고 있는 건 마음에 안 드네요.”

그 순간 린 도체스터의 형상을 한 저택의 영혼이 움찔했다. 그녀는 다시금 경계심이 어린 눈으로 앞에 있는 남자를 조용히 주시하며 물었다.

“그 말은… 혹시 날 방해할 셈이야?”

“그건 그쪽이 뭘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체스휘는 뭘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참고로 난 그 몸 주인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다른 건 다 상관 안 해요.”

그 순간 가짜 린의 손이 움찔거렸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체스휘가 덧붙였다.

“아, 우리 2호실 어린이도 예외로 할까요? 가끔 귀찮을 때도 있지만 일단은 계약한 게 있어서. 그리고 방금 만난 7호실 어린이도 린 씨에게 약속한 게 있으니까….”

꼭 선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조곤조곤하게 말을 잇던 체스휘가 제법 상냥한 어투로 물었다.

“어때요? 이 중에 마음에 걸리는 거 있어요?”

물론 있었다.

그녀는 진짜 린 도체스터를 죽이고 그 자리를 완전히 차지할 생각이었으므로.

차가운 빛을 띤 분홍색 눈에 날카로운 섬광이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체스휘의 등 뒤에서 갑작스러운 인기척이 느껴졌다.

“캬아악…!”

어둠 속에서 나타난 무언가가 순식간에 체스휘의 뒤를 덮쳤다.

체스휘는 여전히 린의 모습을 한 영혼을 응시한 채로, 등불을 들고 있지 않은 손을 옆으로 빠르게 뻗었다.

우드득!

그에게 달려들었던 남자는 단말마의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곧바로 목이 꺾여 죽었다. 축 늘어진 시신 밑으로 검은 시체꽃이 피어났다. 남자가 모로스라는 증거였다.

설마 체스휘가 이렇게 단숨에 모로스를 해치워 버릴 줄은 몰랐는지, 가짜 린의 얼굴이 굳었다.

체스휘는 방금 그가 쳐다보지도 않고 죽인 남자를 검은 꽃 무더기 위에 쓰레기 버리듯이 툭 떨어뜨린 뒤, 쉬잇 하고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아이들이 자는 방 앞이잖아요. 자꾸 시끄럽게 굴면 혼나요.”

작게 소곤거리듯이 읊조려진 목소리는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여전히 평온하기만 했다.

“그런데 이렇게 다짜고짜 적의를 드러낸다는 건… 방금 내가 말한 것 중에 역시 걸리는 게 있다는 의미일까?”

이제는 거의 꺼질 듯이 위태롭게 흔들리는 불빛 틈으로 체스휘의 입술이 더 짙은 호선을 그리는 게 보였다.

가짜 린은 그에게서 뒷걸음질 치며 싸늘히 읊조렸다.

“누구든 날 방해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이번에는 그녀의 뒤쪽에 있는 복도에서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해가 지기 전까지만 해도 저택의 고용인이었던 모로스들이었다.

체스휘의 눈매가 살며시 찌푸려졌다. 그는 애석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런. 아무래도 대화로 타협점을 찾을 생각은 없나 봐요?”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체스휘 역시 진짜로 타협할 마음은 없었다는 걸 두 사람 다 알고 있었다.

린 도체스터의 모습을 한 영혼은 말없이 체스휘를 노려보면서 복도로 밀려 나온 사람들 사이로 스미듯이 모습을 감추었다.

키야악!

체스휘는 그에게 달려오는 모로스들을 보다가, 닫힌 문을 힐끗 응시했다.

저것들을 일일이 상대하기는 귀찮았지만, 보호해 주기로 약속했으니 어쩔 수 없나.

[검은 공기 중독에 의한 손상 1단계에 진입했습니다. 주의하십시오.]

그때, 기동한 가이드가 머릿속에서 경고했다. 번거롭게도 이 육체에는 제약이 조금 있었다.

체스휘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얕은 한숨을 내쉰 뒤, 등불을 쥔 손을 들어 가장 먼저 그가 있는 곳에 도달한 모로스를 후려쳤다.

쨍그랑!

아슬아슬하게 깜빡이던 등불이 이내 완전히 꺼지며 어둠 속에 비명이 울렸다.

***

어디선가 짐승 울음소리 같은 게 들린 것 같았다.

나는 움직임을 멈추고 잠깐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였다. 역시 고요한 저택 어딘가에서 희미한 파동이 전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방향이 아이들과 양육자들의 침실이 있는 곳이라 가슴이 차갑게 식는 느낌이었다.

나는 체스휘에게 다이안을 부탁한 뒤 가짜 놈을 유인해 붙잡을 덫을 설치하고 있었다. 낮에 그랬던 것처럼 내가 다이안에게 직접 접근하면 가짜 놈을 자극하게 될까 봐 우려되었는데, 체스휘가 선뜻 도움을 준다고 해서 안심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소란은…. 혹시 체스휘나 다이안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아무래도 일단 소리가 들린 곳으로 나도 가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방향을 바꿔 몸을 돌리자마자 나는 소스라치고 말았다.

“으악…!”

깜짝이야! 언제부터 내 뒤에 서 있던 거지?

마치 그림자처럼 내 등 뒤에 우뚝 서 있는 검은 형체를 보고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게임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등장한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이 은은한 달빛을 맞으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뭐야? 이 유령이 왜 별채에서 나온 거야? 아니, 그보다 그때 성불한 거 아니었어?

지나간 에피소드의 캐릭터가 갑작스럽게 재등장해 놀라긴 했지만,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냥 그 옆을 지나쳐 갔다.

별채의 지박령이나 다름없던 유령이 왜 여기에 나타난 건지 알 수가 없어 의문과 찜찜함이 생겼다.

그런데 더 소름 끼치게도 검은 베일을 쓴 여인과의 만남은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잠시 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내 뒤에 서 있었다.

그래. 이건 어떻게 봐도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이 분명 나를 따라오고 있는 거였다.

진짜 뭔데…? 설마 지난번에 별채에 있던 보라색 리본을 건드렸다고 복수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에 경계했으나, 내 의심과 달리 그녀는 내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린 씨.”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이 눈에 띄는 반응을 보인 건, 체스휘와 마주친 직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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