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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56)화 (56/300)

“단지 그동안 비싼 척하던 건 뭐였나 싶어서 어이가 없는 거예요! 갑자기 나타난 7호실 양육자한테 유독 곰살맞게 굴던 것도 기가 막혔는데, 이번에는 처음 보는 귀여운 메이드랑 노닥거리고 있으니까!”

아니, 그런데 듣는 사람 쑥스럽게 뭐가 귀엽다고 자꾸 저런 말을 하는 거지? 더군다나 지금 내 얼굴은 귀여움과는 거리가 멀 텐데. 혹시 예쁜 메이드 언니의 취향은 이런 사납고 성격 나빠 보이는 얼굴인가?

“하, 됐어요. 더 말해 봤자 내 입만 아프지…. 애초에 내가 왜… 자존심 상하게 이런….”

하지만 잠깐 울컥한 듯하던 세라도 곧 자신이 더 이럴 만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런 뒤 그녀는 한결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쏘아봤다.

“거기 메이드. 남자랑 노는 건 좋지만 업무 시간 외에 해야 할 것 아니에요? 할 일이 어지간히 없나 본데 그럼 지금 나 좀 따라와요.”

왜요…?

여전히 눈빛이 곱지 않은데 설마 지금 따라갔다가 세라에게 머리채라도 뜯기는 건 아닐지 의심이 들었다.

“안타깝지만 여기 메이드 양은 나랑 할 일이 있어요.”

그때, 체스휘가 내 어깨를 붙잡으면서 세라의 말을 대신 거절했다. 그 순간, 나는 조금 전에 그가 말했던 ‘둘이서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일 어쩌구저쩌구’ 하던 야살스러운 속삭임이 떠올라서 파드득 몸을 떨었다.

“아니요! 방금도 말했다시피 메이드는 일을 해야죠.”

역시 지금은 이 가짜 느낌 나는 체스휘와 있는 것보다 예쁜 메이드 언니를 따라가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내가 체스휘의 손에서 벗어나자, 체스휘는 설핏 눈매를 찌푸렸고 세라는 쌤통이라는 듯이 웃었다.

“2호실 양육자님은 다시 방으로 돌아가셔야 하지 않겠어요? 미뉴엘 님이 찾으시는 것 같던데요.”

그 말에 체스휘의 미간에 더 깊은 주름이 생겼다. 그는 무언가를 가늠하듯이 먼저 복도에 놓인 시계를 힐끗 쳐다봤다.

그러다 결국은 어쩔 수 없다는 양 체스휘가 얕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할 수 없네요. 미뉴엘은 혼자 오래 두면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니까.”

체스휘도 양육자라 담당하는 미뉴엘이 걱정되긴 한 모양이다. 그는 나를 더 붙잡지 않고 등을 살짝 밀어 주었다. 그런데 기분 탓인지, 체스휘의 손이 스친 어깻죽지 쪽에 한순간 화한 느낌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메이드 씨, 내가 한 말 기억하죠?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와요. ‘그 방’도 열려 있으니까 마음대로 편하게 써도 괜찮고요.”

상냥한 음성이 마지막으로 내 귀를 간질였다. 체스휘를 올려다보자 그는 마음을 놓이게 만드는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을 한 채로 나를 향해 빙긋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무래도 이건 아까처럼 날 꼬드기려는 게 아니라 진짜 단순한 선의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체스휘의 참된 마음씨에 감격했다.

“아주 그냥 놀고 있….”

세라가 그런 우리를 보고 꼴값이라는 듯이 사납게 중얼거렸다.

어쨌든 그렇게 체스휘는 계단을 올라가고, 세라와 나는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그런데 복도의 모퉁이를 돌자마자, 갑자기 세라가 나를 박력 있게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너, 잠깐 나랑 얘기 좀 하자.”

나는 손으로 벽을 짚어 내가 움직이지 못하게 원천 봉쇄까지 한 뒤, 싸늘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세라의 얼굴을 마주하며 눈을 깜빡였다.

벽쿵…? 설마 지금 이 예쁜 언니가 나한테 벽쿵을 한 건가요?

“처음 보는 얼굴인데 신입인가?”

“네에…. 맞아요.”

“진짜 저 2호실 양육자랑 그렇고 그런 사이야?”

세라는 여전히 믿기 어렵다는 듯이 내게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녀는 체스휘와 내가 같이 있는 장면을 보고 정말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분위기상 나를 연적 취급하며 머리채를 뜯지는 않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아까 내가 한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아서 나는 사실을 정정했다.

“아닌데요. 방금 그런 거 아니라고 말했잖아요.”

“손잡고 있었잖아. 그런데 교제하는 사이가 아니라고?”

그래도 세라는 미심쩍은 듯한 눈으로 나를 보며 재차 질문했다.

이 메이드 언니, 생각보다 순진한 건가? 손잡는 게 뭐가 대수라고 교제하는 사이로 오해까지 하는 거야?

나는 그녀를 향해 콧방귀를 뀌었다.

“손잡으면 뭐, 다 사귀나요?”

“아, 하긴 저택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다고 했지. 그럼 뭐, 아직 교제하는 것까지는 아니고 간 보는 사이인가?”

세라가 벽에 대고 있던 손을 내리고 팔짱을 꼈다. 그러고 나서 나를 내려다보며 흐음, 하고 눈을 가늘게 뜨더니 불쑥 충격적인 말을 던졌다.

“아니면, 그렇게 진지하게 만나는 건 아니고 가볍게 육체의 즐거움만 추구하는 사이? 둘이 잤어?”

세라가 던진 직구를 맞고,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 떨었다.

이 언니가 조금 전에는 순진한 말을 하는 것 같더니, 지금은 또 이런 노골적인 직구를 던지네? 더군다나 우리는 초면인데….

“딱히 너한테 뭐라고 그러려는 건 아니니까 굳이 숨기지 않아도 돼. 이 답답한 저택에서 따로 할 것도 없는데 진득하게 연애할 수도 있고, 가볍게 하룻밤 만남을 추구할 수도 있는 거지.”

알고 보니 세라는 굉장히 깨어 있는 연애관을 가진 것 같았다. 그런데 뒤이어 그녀는 꼭 비밀 이야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내 어깨를 붙잡고 고개를 기울여 나한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아무튼 그래서 내가 너한테 궁금한 건 말이야.”

그러고 나서 세라가 내 눈을 똑바로 보며 은밀하게 속삭인 말에, 나는 표정 관리를 하기가 좀 어려워졌다.

“그 남자, 벗은 몸 봤어?”

“아니…. 안 봤거든요?”

내 말을 듣고 마주한 예쁜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래? 왜 못 봤지? 혹시 아직은 옷을 입은 상태로만 뭔가 했니? 아니면 2호실 양육자가 그런 취향인가?”

“하긴 뭘 해요! 아무 사이도 아니라니까!”

급기야 나는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세라는 귀가 따갑다는 듯이 고개를 들어 내게서 거리를 벌렸다.

“아니면 아니지 왜 성질이야? 아, 너도 2호실이 생각처럼 쉽게 안 넘어와서 짜증 나서 그래?”

그녀는 투덜거리다가 곧 나를 이해한다는 듯이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그래도 내가 보니까 넌 가망이 있어 보여. 얼굴도 귀엽고, 까다로운 그 2호실도 아까 보니 너한테는 제법 말랑하게 굴던데. 그러니까 부탁 하나만 하자.”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세라는 체스휘를 좋아해서 그를 유혹하려고 전력으로 노력 중인 게 아니었나? 그런데 왜 나를 대하는 태도나, 지금 말하는 내용을 들으면 체스휘를 좋아하는 느낌이 별로 안 들지?

그리고 나는 세라가 이어서 내 귀에 속닥거린 말을 듣고 의구심이 더 커지는 걸 느꼈다.

“혹시 다음에 2호실 양육자가 옷을 벗은 걸 보게 되면 말이야, 등이랑 어깨 좀 잘 살펴봐 볼래? 여기. 이쯤에 뭐가 있는지 없는지.”

그렇게 말하면서 세라가 손으로 가리킨 곳은 어깨 뒤쪽, 공교롭게도 내 몸에 박힌 가이드가 있는 위치였다.

순간 나도 모르게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 건 왜요? 도대체 뭘 확인하라는 거예요?”

“그건 알 것 없고, 그냥 본 대로 말해 주기만 하면 돼. 간단하지?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딱히 나쁜 짓 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메이드 동료로서 부탁 좀 할게. 아, 그럼 난 바빠서 이제 가 봐야겠다. 넌 소속이 어디야?”

“세탁실이에요.”

세라의 질문에 자동반사적으로 대답해 놓고 이제는 거짓말이 너무 자연스러워진 건 아닌가 싶어서 뜨끔했다. 이러다가 진짜 세탁실 메이드들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 앞으로는 조심 좀 해야겠다.

세라는 짐짓 다정한 척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어유, 저택에 오자마자 힘든 일에 걸렸네. 내가 지금 임시 메이드장으로 있는 메리다 님하고 친하거든. 내 부탁만 들어주면 좀 더 편한 곳으로 옮길 수 있게 도와줄게.”

그렇게 말한 세라가 나한테 손에 들고 있던 쟁반을 건네줬다.

“그리고 이왕 도와주는 김에 이거 들고 의사 선생님 방에 좀 가 줄래?”

“뭐요?”

“빈 그릇만 정리해서 나오면 돼. 도와줘서 고마워.”

그녀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생긋 웃은 뒤 검은 머리칼을 흩날리며 돌아섰다.

“아니, 저기요, 언니? 거기 좀 서 보실래요?”

나는 빈 쟁반을 손에 든 채 산뜻하게 뒤돌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예쁜 메이드 언니를 황당한 눈으로 쳐다봤다.

뭐야, 방금 뭐가 지나간 거지? 되게 자연스럽게 나한테 일을 떠넘기고 갔는데?

어이가 없었지만, 그냥 세라를 붙잡지 않고 닥터 콘라드의 방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가짜 놈과 망할 술래잡기 퀘스트를 이어 가기 위해 약물의 도움을 좀 받아 볼 생각이었다. 그래서 겸사겸사 그냥 지금 저택에 있는 돌팔이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체스휘가 준 꽃 덕분에 중독 증상도 늦춰진 상태라 나는 바로 콘라드의 방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조금 전에 본 메이드 세라와의 오묘한 대화를 떠올렸다.

여러 가지로 수상쩍은 느낌이었는데, 아무래도 이게 바로 ‘메이드 세라의 비밀’ 퀘스트와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콘라드 선생님.”

잠시 후, 나는 콘라드의 방에 도착해 문을 두드렸다.

콘라드는 레드포드 저택의 유일한 의사답게 이런 상황에서도 혼자 방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걸 보면 저택 내에서 양육자들보다 더 대우받는 건 이 돌팔이 같은데…. 뭐, 어느 시대건 의사는 존중받는 직업이니 딱히 불만을 가질 만한 일은 아니었다.

“콘라드 선생님 안 계세요?”

그런데 노크를 해도 방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아까 아침에 체스휘가 왔을 때도 콘라드가 방에 없었다고 했는데, 난 속지 않았다.

난 이미 알고 있지! 이 돌팔이는 귀찮아서 대답하지 않을 확률이 99%라는 걸!

“안에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갈게요!”

나는 그렇게 통보한 뒤 문을 벌컥 열었다.

“엥?”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으읍, 읍!”

콘라드가 결박당한 채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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