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안을 인질 삼으면 내 행동에 제약이 걸릴 걸 알고 저러는 게 분명했다!
“어우, 누가 문을 열어 놨어? 지독한 공기가 안으로 들어오잖아!”
그때 갑자기 올리비아가 방 안에서 나타나 문을 쾅 닫았다. 그래서 더 이상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 두 눈으로 볼 수 없었다.
그나마 육성 대상인 다이안의 상태 창은 계속 확인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잠깐 멈추는가 싶던 그의 스트레스 지수는 그새 또 심상치 않게 상승하고 있었다.
[육성 대상의 스트레스 지수가 1 상승합니다.(75/100)]
[육성 대상의 스트레스 지수가 1 상승합니다.(76/100)]
마침내 다이안의 스트레스 지수가 75를 넘은 순간 나는 위기감을 느끼고 다시 문을 열려고 손을 들었다.
그런데 내 손이 문고리에 닿기 직전, 먼저 내 눈앞으로 뻗어진 팔이 시야를 가렸다.
“너, 못 보던 얼굴인데 이름이 뭐야?”
범인은 조금 전부터 눈치 없이 내 옆에서 얼쩡거리던 레이븐이었다. 눈매를 구긴 채 고개를 돌린 순간,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성수 먹은 꽃을 내 귀 뒤에 꽂았다.
“……?”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지?
하지만 레이븐의 이상한 짓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한 손을 벽에 짚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제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기면서 한껏 치명적인 척하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검은색이라 그런지 흰 꽃이 잘 어울리네. 흑장미를 닮았단 소리를 평소에 좀 듣지 않나?”
헙.
순간 닭살이 돋으면서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우리 부모님 세대에도 통하지 않았을 구닥다리 작업 멘트를 날리는 레이븐을 차게 식은 눈으로 쳐다봤다.
“그동안 마주친 기억이 없는 걸 보니까 신입인가? 아니면 1층에서만 일하는 메이드? 난 4호실 양육자인데, 내 이름이 뭔지 알지? 시간 있으면 잠깐 차 마시면서 얘기나 할래?”
역시 레이븐의 취향은 어두운 머리 색에 까칠한 성격을 가진 메이드인 게 분명했다.
나는 그가 같잖아서 그냥 무시하고 손을 들었다.
“어억!”
벽에 대고 있던 레이븐의 팔 안쪽을 손날로 찹 내려치자, 팔꿈치가 접힌 레이븐이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나는 그런 레이븐을 지나쳐 벌컥 문을 열어젖혔다.
“청소하러 왔습니다!”
“앗, 깜짝이야!”
일부러 우렁차게 소리쳐서 시선을 끌었다. 몇몇 아이들과 올리비아가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
가짜 린 도체스터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하이에나 앞의 토끼처럼 가짜와 마주 보고 서 있던 다이안과도 눈이 마주쳤다.
다이안은 평소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스트레스 지수를 확인한 나는 미묘하게 굳은 그의 표정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런데 나와 시선이 마주치고 2초인가 3초인가가 지났을 때, 갑자기 다이안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동시에 그의 상태 변화를 알리는 시스템 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육성 대상의 스트레스 지수가 1 감소합니다.(75/100)]
[육성 대상의 스트레스 지수가 1 감소합니다.(74/100)]
아까부터 계속 위로 치솟기만 하던 다이안의 스트레스 지수가 서서히 하락하기 시작했다.
나로서는 다행인 일이었지만, 갑작스러운 변화의 원인이 뭔지 의문이 들었다.
‘설마 우리 애가 정말 날 알아봤나? 진짜 저게 가짜인 걸 아는 거 아니야?’
“청소는 아침에 다 끝낸 게 아니었나요?”
“4호실 양육자님이 청소가 덜 된 곳이 있다고 하셔서요.”
마리엔의 질문에 대충 대답한 뒤 들고 있던 대걸레로 바닥을 슥슥 문질러 청소하는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뭐야, 메이드 양. 내가 말한 건 복도였는데.”
곧 열린 문으로 따라 들어온 레이븐이 팔꿈치 안쪽을 손으로 문지르면서 내 말을 정정하듯이 끼어들었다. 나는 그의 말을 대충 넘겼다.
“겸사겸사 방 안도 더 깨끗하게 청소하면 좋잖아요.”
“저기, 여기도 바닥이 더러운데 와서 걸레로 닦아 주면 안 돼?”
“네…! 당장 가서 닦아 드리겠습니다!”
그러다 다이안이 조심스럽게 건넨 말에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그에게 달려갔다. 뒤에서 레이븐이 기가 찬 숨소리를 내뱉었지만 내가 알 바는 아니었다.
“바닥이 어디가 더러워요? 제가 봤을 땐 깨끗한 것 같은데요, 도련님.”
“아니야, 여기 잘 보면 검은 게 묻었어.”
“그럼 우리는 메이드가 청소하기 쉽게 저쪽으로 가요!”
그런데 이 망할 가짜 놈이 얄밉게 생글생글 웃으면서 다이안을 데리고 홀랑 자리를 비켰다. 어디로 보나 내 접근을 피하는 모양새였다.
반면 다이안이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는지, 그는 가짜에게 붙들려 내게서 멀어진 뒤 흔들리는 눈을 움직여 나를 쳐다봤다.
나는 입매를 삐뚜름하게 기울인 채 일단 다이안이 가리켰던 바닥을 걸레로 문질렀다.
가짜는 여전히 나를 향해 빙긋이 웃고 있었다. 꼭 내게 보란 듯이, 다이안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가짜 놈의 손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먹잇감을 눈앞에 둔 뱀이 천천히 미끄러져 아가리를 벌리듯이, 그 손은 퍽 위협적으로 다이안의 목덜미를 매만졌다.
걸레 자루를 쥔 내 손에 힘줄이 돋아났다. 그냥 이 자리에서 저놈의 머리통을 확 깨 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불끈불끈 솟아났다.
하지만 눈을 한번 길게 감았다 뜬 뒤, 태연히 웃는 얼굴로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혹시 또 닦을 데는 없을까요?”
이번에는 다이안도 입술을 작게 벌렸다가 다시 다물었다.
“…없어.”
“네, 그럼 혹시 또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불러 주세요!”
문으로 걸어가는 내게 다이안이 어딘가 간절하게 느껴지는 시선을 보냈다. 나는 그를 향해 달래듯이 웃어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이안의 뒤에 서 있는 가짜를 싸늘히 노려본 뒤 방을 나섰다.
***
“이런 똥물에 튀겨 죽일….”
복도로 나온 내 입에서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른 욕설이 내뱉어졌다. 나는 바로 자리를 떠나지 않고, 복도를 청소하는 척 구석에 남아 동태를 살폈다.
잠시 후 아이들의 방에 있던 마리엔과 올리비아, 그리고 레이븐이 밖으로 나왔다.
“7호실은 진짜 오늘 계속 아이들 방에 있을 거래?”
“그런가 봐.”
“그럼 4호실도 같이 있지, 왜 나와? 7호실한테 관심 있으니까 모처럼 단둘이 있을 좋은 기회잖아?”
“애들도 같이 있는데 무슨 단둘이야? 그리고 애들이랑 오래 같이 있으면 피곤해서… 아니, 그보다 누가 7호실한테 관심이 있다고?!”
“참나, 아니면 말지 왜 이렇게 흥분해? 너무 발끈하니까 오히려 정곡을 찔린 사람 같은데?”
올리비아와 레이븐이 떠드는 소리가 복도에 잠깐 울렸다가 사라졌다. 나는 양육자들이 사라진 복도에 혼자 남아 꽉 닫힌 아이들의 방을 노려봤다.
진짜 제한 시간이 끝날 때까지 다이안 옆에서 죽치고 있을 생각인가? 뻔뻔한 것 같으니!
※검은 공기 중독 5% 진행※
- 중독 증상 1단계: 가벼운 두통, 가벼운 울렁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