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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53)화 (53/300)

반면 체스휘는 아주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닥터 콘라드의 방에서 약을 가져왔는데 그거라도 바를게요.”

잠시 후 내 어깨와 등에 감겨 있던 붕대가 옆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체스휘 말처럼 진짜 붕대가 피에 절여져 있어서 기겁했다.

금방 체스휘의 손이 날개뼈 사이에 닿았다.

아니, 그런데 왜 이렇게 아프냐? 역시 이건 충격 저항 효과 0%인 게 분명하다.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를 낼 것 같아서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래도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체스휘가 물었다.

“혹시 지금 우는 거예요?”

“으아니요.”

하지만 솔직히 이미 내 눈은 살짝 촉촉해져 있었다. 체스휘가 머리카락에 가려진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것 같았다.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으니라그여.”

가뜩이나 등도 아픈데 또 같은 걸 물어보는 게 살짝 짜증 나서 이를 악문 채 다시 대답했다. 그러자 잠깐 등 뒤가 조용해졌다.

체스휘는 다시 조용히 치료를 이어 갔다. 계단 모서리에 등을 제대로 찍힌 듯이, 약을 다 바르고 붕대를 감을 때까지도 계속 상처 부위가 화끈거렸다. 의외로 체스휘의 움직임은 꽤 능숙했다.

잠시 후 등 밑까지 내려갔던 옷이 다시 어깨 위로 훌쩍 올라왔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어깨와 팔이 잡혀서 몸이 돌아갔다.

불시에 일어난 일이라 다른 반응을 보일 새도 없었다.

체스휘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가 찡그린 듯한 얼굴로 웃었다.

“울고 있으면서 왜 거짓말해요?”

아 씨, 그런 건 좀 모른 척해 주면 어디가 덧나나요?

“아직 울진 않았거든요? 그냥 그렁그렁하기만 한 상태거든요? 이게 넘쳐서 떨어질 때까지는 운 걸로 치지 않는 거 몰라요?”

나도 모르게 주먹을 들어 체스휘의 팔을 퍽 때렸다.

“아야. 아파요.”

“아프긴 뭐가 아파요? 난 이것보다 오천 배는 더 아파요!”

지금 몸에 힘도 쫙 빠져서 진짜 아프지도 않을 텐데 엄살을 떠는 체스휘가 얄미워서 두 대 더 때렸다.

그러다 뒤늦게 지금 내가 메이드치고는 너무 과감한 짓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흠칫해서 손을 내리고 체스휘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하지만 체스휘는 내 허물없는 행동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오히려 그는 이 상황이 재미있기라도 한 듯이 나를 보며 피식 웃기까지 했다.

“그래요, 많이 아플 텐데 내가 눈치 없이 굴었네요. 진통제도 가져왔는데 줄까요?”

아니, 그런 게 있었으면 빨리 줄 것이지!

하지만 물에 빠진 놈을 구해 놨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하는 격인 것 같아서, 이번에는 다른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손만 내밀었다.

그러다 문득 아까부터 고소한 냄새를 풍기고 있던 쟁반 위의 접시에 시선이 갔다.

“그런데 저것도 저 먹으라고 들고 온 거 아니었나요?”

“이거요? 제 건데요.”

아, 그랬구나…. 아픈 사람을 앞에 두고 혼자 먹으려고 들고 온 거였구나.

내가 차게 식은 눈을 하려던 찰나에 체스휘가 손을 뻗어 테이블에 있던 쟁반을 가져왔다.

“농담이에요. 이것부터 먹고 약 먹어요.”

나는 그걸 내려다보면서 상태창을 힐끗 확인했다.

술래잡기 퀘스트

제한 시간: 53:50:59

제한 시간 안에 내 모습을 빼앗아 간 초상화 놈과 어떻게든 담판을 지어야 하는데 이렇게 한가롭게 있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일단은 컨디션을 회복해야 뭔가를 할 수 있을 게 아닌가.

그러다 문득 나는 미심쩍은 마음으로 체스휘를 쳐다봤다.

“그런데 초면인데도 되게 친절하시네요. 원래 누구한테나 이렇게 잘해 주시나요?”

“아니요.”

체스휘가 내 말에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면서 느른히 입매를 당겼다.

“아무한테나 그러지 않는데요.”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낯선 메이드에게도 이런 과한 친절을 베푸는 체스휘에게 고마운 한편, 의아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 전 잠깐 미뉴엘을 보러 다녀와야 해서 나가 볼게요. 미리 말해 두는데….”

그때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체스휘가 나를 내려다보며 덧붙였다.

“아직 몸이 완전히 ‘고쳐지지’ 않았으니까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얌전히 쉬고 있어요.”

왠지 그 말을 듣는데, 뒷덜미가 살짝 으스스해졌다. 꼭 본능적으로 세포에 각인된 위험 요소를 감지하고 솜털이 곤두서는 것처럼.

“금방 돌아올 테니까 나머지 얘기는 이따가 마저 하고요.”

나머지 얘기? 나한테 무슨 할 말이 또 있나?

아무튼 체스휘가 먼저 방에서 나간 뒤 나도 테이블 위의 시계를 확인했다. 그러고 나서 적당히 식은 수프와 약을 서둘러 먹어 치우고 방을 빠져나갔다.

체스휘는 나한테 방에서 기다리라고 했지만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일단, 감히 내 모습을 빼앗아 간 그 초상화 놈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

“다이안 도련님! 좋은 아침이에요!”

가짜 초상화는 뻔뻔하게도 다이안의 앞에서 내 흉내를 내고 있었다.

‘저, 저 망할 가짜 놈이…!’

나는 내 눈앞에서 버젓이 다이안에게 친한 척하는 초상화 놈을 보며 주먹을 세게 말아쥐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내 캐릭터와 똑같은 외양을 한 ‘가짜 린 도체스터’가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다이안을 끌어안았다.

나는 복도에서 청소하는 척하면서 열린 방문 안쪽을 이글이글한 눈으로 노려봤다. 예전에 꿍쳐 놨던 메이드복을 꺼내 입어서 아무도 나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어젯밤에는 잘 잤어요? 친구들하고 싸우진 않았고요?”

“응, 아무 일도 없었어. 린은 잘 잤어?”

“아구. 우리 도련님, 제 걱정도 해 주시고. 저 너무 감동이에요!”

천연덕스럽게 내 흉내를 내는 가짜 놈을 보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내가 언제 저렇게 멍청한 얼굴로 웃었어?! 언제 저렇게 얼간이 같은 말투로 말했어…?!’

가슴속에서 천불이 나고 너무 화딱지가 나서 살의까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뭐야, 여기 바닥이 왜 이렇게 끈적해?”

그때, 양육자들의 방에서 나와 옆방으로 걸어오던 레이븐이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면서 멈춰 섰다.

“거기, 메이드 양. 이리 와서 바닥 좀 닦아 줬으면 좋겠는데.”

주위에 있는 메이드는 나밖에 없었으니, 아무래도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방을 엿보느라 바빴다.

내가 못 들은 척하자 레이븐이 살짝 짜증이 난 듯한 목소리로 다시 나를 불렀다.

“내 말 안 들려? 여기 바닥 좀 닦으라니까?”

“아, 네. 조금 이따가요.”

“이따가 언제? 그사이에 누가 또 밟을 수도 있으니까 그냥 지금 바로 닦아.”

조금 이따가 닦겠다고 하는데도 레이븐은 자꾸 나를 닦달했다. 가뜩이나 인내심이 짧아져 있던 나는 계속 옆에서 잡음을 끼워 넣는 레이븐을 홱 노려봤다.

“내가 조금 이따가 닦는다고 했잖아요, 아저씨! 지금은 바쁘거든요?”

“어…?!”

그런데 레이븐이 뭐에 그렇게 놀랐는지, 갑자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두 눈을 부릅떴다.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방에 있는 다이안과 가짜 린 도체스터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은 아직도 내 분통이 터질 정도로 오순도순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린, 이제 놔줘. 다들 쳐다보잖아.”

“에이, 누가 보면 어때서요.”

“부끄럽잖아! 빨리 놔줘.”

“힝, 알겠어요.”

그런데 마침내 가짜 린 도체스터의 품에서 벗어나 바로 가까이에서 그녀의 눈을 마주한 다이안이 돌연 움직임을 멈췄다.

다음 순간, 어째서인지 그는 바늘에 찔리기라도 한 것처럼 숨을 급히 들이마시면서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 그 행동에 가짜 린 도체스터가 천천히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갑자기 왜 그러세요?”

“아…. 깜짝이야. 린의 머리에 실밥이 붙어 있는 걸 보고 순간 벌레인 줄 알고 놀랐어.”

다이안은 그 말이 진짜인 듯이 가슴까지 쓸어내리면서 태연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다이안의 상태창이 갑자기 변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현재 상태: 당황, 의혹, 경악, 혼란,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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